중력 - 권기태 장편소설
권기태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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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무게는 우리를 짓누르기도 하지만 이 무게가 우리를 지탱해주기도 한다. 부모가 된 엄마, 아빠는 일이 힘들고, 일과 얽힌 사람과 관계가 힘들어도 아이와 가족을 생각해 경솔하게 행동하지 않는다. 삶의 무게, 책임감 때문에 포기해야 하는 것도 많지만 그보다 얻게 되는 소중한 것이 더 많기 때문이다. 삶의 무게는 그렇게 우리를 지탱하고, 우리를 이끌어 준다.


중력도 마찬가지다. 처음 바다에서 뭍으로 올라온 생명들이 온전히 받고 견뎠어야 할 중력의 힘은 어마어마했을 것이다. 물의 부력 덕분에 자유자재로 자유롭게 노닐 수 있었지만, 부력을 버리고 처음 땅을 내디뎠을 때 그들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그들은 무엇을 보았을까. 부력이 주는 자유로움은 버렸지만, 다른 자유... 광활하고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는 곳을 어떻게 채울까 하는 그런 자유와 설렘을 맛보지 않았을까.


어쩌면 우주로 나아가려고 하는 지금 인류가, 태초에 바다를 떠나 육지로 올라왔던 그 생물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은 기자 출신 권기태 작가가 13년간 준비하고 쓴 소설이다. 십여 년 전 '대한민국 최초 우주인' 이야기로 떠들썩 했던 우리나라. 우리나라 최초 우주인 프로젝트에 모티브를 얻어 쓴 소설로 이 소설엔 실제 있었던 일이 많이 반영되어 있지만, 결코 사실 그대로의 글이 아니며 작가님의 상상이 많이 가미되어 있다.


소설은 주요 화자인 '이진우'의 시각으로 그려진다. 그는 생태보호연구원에서 식물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식물연구원이라고 하니, 그냥 식물 접붙이기 뭐 이럴 걸 할 느낌이지만 그보다는 생물 활동 기저, 세포나 그 밑 단계를 연구하는 학자다. 말하자면 과학자.


이진우는 일반 직장인으로 생활하다가, 어느 날 우주인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자연스럽게 응모했고 국내 테스트를 모두 무사히 통과한다. 그리고 러시아 우주 센터로 가게 된 마지막 4인 중 한 명이 된다. 이진우는 기존 직장에서 많이 힘들었었다. 새로 온 상사와의 트러블이 컸고, 그 때문에 인사고과가 매우 안 좋았다. 그는 묵묵히 연구하는 사람이었는데, 직장에서는 그냥 연구만 열심히 한다고 해서 인정받는 곳이 아니었다. 연구보다는 인맥이, 실력보다는 찍히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어쨌거나 우여곡절 끝에 이진우는 러시아 우주 센터로 와서 열심히 훈련을 받는다. 하지만 그가 러시아에서 겪게 되는 건 한국 직장에서 겪었던 '그것'이었다. 러시아 우주 센터에서도 파벌이 존재했고, 힘 있고 권력 있는 사람에게 '찍히지 않아야' 자신의 꿈인 우주인이 될 수 있었다.


파벌, 경쟁, 견제, 질투, 서열...


이 책 속에서 화자를 비롯해 주요 인물 4명은 서로 경쟁하고, 그들(러시아인들)이 말하는 '복잡한 문제' 때문에 서로 엎치락뒤치락하다가 단 한 명만 우주인으로 선발되어 우주에 갔다가 지구로 돌아온다.


어릴 때 생각하는 꿈은 대체로 두루뭉술하고, 희망차고 멋져 보이는 것들이다. 커서 느끼는 꿈은, 꿈을 이룬다는 것은, 이 책에서 다루는 것처럼 어쩌면 이런 것들인지도 모르겠다. 꿈이 현실에, 현실에 꿈이 있으면 고상했던 꿈은 현실로 뚝 떨어져 지리멸렬한 문제들과 맞닥뜨리게 된다. 서로 얽힌 사람들은 때로는 알면서 외면하고, 때로는 잘 모르면서 지레짐작으로 상대방을 떠보기도 하고 엉뚱한 소문을 퍼트리며 심리싸움과 감정싸움을 이어간다. 그래서 꿈이 무엇인지 상당히 모호해진다. 고상하고 멋진 것과는 거리가 멀게 된다.


그럼에도, 이 꿈이라는 것이 중력과 비슷한 게 아닐까 싶다. 삶의 무게. 우리를 짓누르기도 하지만 지탱하고 이끌어주기도 하는.


천체의 운행처럼 우리 삶은 홀로 마음먹는다고 꿈을 다 이룰 수 있는 게 아니고 수많은 것들과 연결되어 영향을 받고, 영향을 준다.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우리로서는 알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어떤 일이 일어나든 어떻게 받아들이냐가 아닐까.


소설 속 화자는 꿈이 좌절되지만 희망 차고 긍정적으로 끝을 맺는다. 삶의 무게를 우리를 짓누르는 것으로 볼 것인지, 우리를 지탱하는 것으로 볼 것인지, 어느 쪽에 더 비중을 둘 것인지 우리의 '선택'이 더 중요한 것이다. 부력이 주는 익숙한 자유를 버리고, 제약이 크지만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선택했던 태초의 육지 동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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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에 기대선 여자 빙허각
곽미경 지음 / 자연경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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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여성 실학자, 

빙허각의 일대기를 그린 역사소설


소설의 주인공 빙허각은 『규합총서』라는 실학사에 남을 탁월한 가정 백과사전을 쓴 사람으로, 국어 시간 혹은 국사 시간에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규합총서』는 언문으로 쓴 '규방문학' 혹은 '실학 서적'으로 소개된다. 『규합총서』에는 음식, 요리법, 옷 짓는 법, 세탁, 태교, 육아 등 가정에 대한 내용을 담았다. 내용이 상세하고, 유익하며 인용한 부분은 분명히 밝혀 당시에도 널리 읽혔다고 한다.


이 소설은 빙허각의 일대기를 그린 역사소설이다. 역사소설이지만 문장과 내용이 어렵지 않고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잘 읽힌다. 군데군데 순수 우리 말 표현이 있어 반갑다. 저자가 사료를 많이 참고했는지 그 당시 묘사가 생생하다. 다만, 빙허각이 세손 이산을 똑바로 쳐다보는 장면이나, 연행단을 따라 청에 갔다가 건륭제를 똑바로 바라보며 1:1로 대화하는 장면들은 사실 믿기 힘들다. 궁 정원에서 만난 궁녀들의 시선이 모두 이산에게 향하며 미소 짓는 장면도 마찬가지. 이 부분은 작가의 상상으로 본다.


빙허각은 1759년에 태어나 1824년에 죽었다. 영조 시대에 태어나 정조 시대를 거쳐 순조 대에 죽은 것이다. 빙허각이 살던 시기가 서구 문물이 물밀듯 들어오던 때였다. 당시 조선에서는 정기적으로 연행단을 꾸려 청의 북경에 갔는데, 이 연행단이 그 당시엔 무척 놀랍고 신기하며, 신묘하도록 일상에 도움 되는 서양 문물과 학문을 들고 조선에 돌아온다. 그리고 청에서 싹튼 변화의 바람을 조선에도 가져와 흩뿌렸다.


따라서 조선에도 새로운 큰 바람이 불었다. 소위 깨인 가풍을 지닌 가문이 생겨난 것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나라가 뒤집어진 전쟁으로 급격하게 보수화로 돌아섰던 조선이 다시 새롭게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시대적 흐름 속에 빙허각이 태어났다.


빙허각의 아버지는 영조 말에 예조판서와 수어사를 지냈다. 이름은 이창수, 어려서부터 천재 소리 들을 만큼 똑똑했고 과거도 장원 급제하였다. 무도 뛰어나 말도 잘 타고, 사냥도 잘했다고 한다. 이런 아버지를 꼭 빼닮고 태어난 자식이 빙허각 이선정이다.


이창수는 선정을 무척 좋아하고 아꼈다고 한다. 선정이 어머니를 꼭 닮은 수려한 외모를 지녔을 뿐만 아니라, 똑똑하고 배우고자 하는 열망이 강해 가르치는 재미가 극히 있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재치 있는 말을 잘해, 아버지나 친척 어르신, 혹은 아버지의 지인들을 기쁘게 했다고 한다. 그래서 아버지 이창수는 바쁜 나랏일에도 불구하고, 짬을 내 어린 선정이를 직접 가르치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조선 땅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었다지만, 똑똑한 여자아이를 곱게 보기만 할 시대는 아니었다. 소설 『허공에 기대선 여자』는 이 이야기에서부터 출발한다.




여자로서는(?!) 당시 너무 똑똑했던 빙허각. 주위 사람들의 걱정이 많았다. 걱정보다도 헐뜯고, 있는 말 없는 말을 붙어 깎아내는 소문이 많았다. 하지만 빙허각은 개의치 않았고, 누가 뭐라 하든 본인이 하고자 한 바와 하고자 한 공부는 손에서 놓지 않고 열심히 한다. 스승으로 모시고 가르침을 받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누구든, 어디에 살든, 스스로 찾아가 스승으로 삼고 배웠다. 그때만 해도 여성의 몸, 이름 있는 가문의 막내딸이 어디론가 배우러 다니는 일이 쉽지 않았을 텐데 그녀는 기어코 본인의 뜻을 이룬다. 본인 스스로가 지은 이름, '빙허각'도 이런 데서 나왔다.


"기댈 빙, 빌 허, 집 각 빙허각이온데 '허공에 기대어 선다'라는 뜻으로,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이 삶의 주인이 되어 살아가겠다는 각오를 담은 이름입니다." (-107쪽)


곽미경, 『허공에 기대선 여자 빙허각』, 자연경실, 2019


본인에 대해 어떤 소문이 돌든, 가까운 친척이 오랜만에 놀러와 칭찬하는 척 심술궂은 마음을 내비쳐도 빙허각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빙허각이 기죽지 않고 살았던 건, 본인 스스로도 본인이 똑똑한 걸 잘 알았고, 또 그런 자신을 전적으로 사랑해 주는 부모가 뒤에 든든히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이 소설에는 빙허각의 오빠도 나오는데 이 사람도 실존 인물이다. 이름 이병정. 소설 속에는 오빠가 빙허각을 질투하고, 애써 무시하는 듯 나오는데(경쟁해야 하는 남자 동생이 아나라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인터넷 검색을 해 보니 어떤 글에는 오빠 이병정과 빙허각이 무척 친했다고 한다(어느 사실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허빙각이 오빠에게도 사랑을 받고 귀여움 받았다 하면 그 외의 다른 사람에게 어떤 소리를 듣든 쉽게 흔들리지 않을 자존심, 자존감을 가졌을 거라 생각한다.


또 운도 있었다. 소설 초반에 빙허각의 언니, 숙정이가 나오는데 숙정이는 자유로운 가풍 속에 살다가 고지식하고 남존여비에 대한 믿음이 강한 가문에 시집갔다가 그만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빙허각도 어쩌면 숙정이가 시집간 집안처럼 보수적인 가문에 시집갔다면 그녀의 재능이나 능력을 수이 펴지 못했을 것이다.


소설은 빙허각의 어린 시절(어리다곤 해도 시집갈 나이 대부터 시작한다)과 자기 소원 대로 연행단을 따라 청의 북경에 간 이야기, 팔자가 드세다고 쉽게 혼처를 찾지 못하다가 수에 정조가 될 이산과 혼인할 뻔한 이야기, 후에 남편이 되는 서유본과의 첫 만남 이야기가 펼쳐지고 서씨 가문에 시집가 살림을 잘 해내고 남편과 함께 공부하며 때론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물건을 발명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특히나 서씨 가문 사람들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이 서씨 가문 사람들도 다 실존 인물들로 후에 실학자로서 이름을 날린 사람들이다.


소설에도 나오지만, 남편 서유본의 바로 아랫동생 서준평은 빙허각이 직접 공부를 봐주고 함께 공부하기도 하는데 이 서준평은 『임원경제지』를 쓴 서유구다. 실제로 서유구가 어렸을 때 빙허각이 직접 가르쳤다는데, 서씨 가문에서도 그만큼 빙허각의 실력을 인정한 것이다.


빙허각은 삶에 몇 번의 우여곡절을 겪지만 대체로 평탄하게 산다. 정당의 흐름이 바뀌어 서씨 가문에 위기도 찾아오지만, 그렇게 힘들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서로를 극진히 아끼고 사랑한 배우자가 있었기 때문일 듯. 행복한 삶, 행복한 결혼이지 않았나 싶다. 당시 조선시대에 흔치 않은 일이었다고 본다.


빙허각은 어릴 때, 남편이 죽어 남편 뒤를 이어 죽는 소위 열녀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으스스 오싹해 하며 질색한다. 자긴 그렇게 살기 싫다고. 하지만 빙허각은 남편 서유본이 죽자 두 번의 자살 시도를 하고 결국 아무것도 안 먹고, 씻지도 않은 채 그냥 누워만 있다가 몇 개월 후 남편을 따라 죽는다. 아마도 그녀는 죽을 때 '이 죽음은 사회의 압박이나 시댁의 압박이 아닌 오로지 내 스스로 선택한 죽음이다'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다.



사랑과 신뢰, 배움으로 충만했던 삶


빙허각은 한중일 세 나라 통틀어 99명을 꼽은 실학자 중 유일하게 여성 실학자라고 한다. 허공에 기대어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본인의 삶에 주인이 되어 살아가겠다는 의지가 컸기 때문에 『규합총서』로 대표되는 <빙허각전서>를 썼다.


하지만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과연 그녀가 허공에 선 여인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아해진다.


자신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사랑해 주는 아버지와 어머니, 서로 공부에 뜻이 맞아 한평생 함께 배우고 익히며 기뻐하는 남편, 스승으로 모시며 잘 따라준 시동생, 언제나 신뢰로 며느리를 대한 시댁 어르신, 시댁 친척들. 이 책을 덮으며 정말 중요한 것은, 본인의 의지도 의지지만 가정환경과 본인이 누구와 인연을 맺고 살아가느냐이다.


빙허각의 이름 뜻은, 허공에 기대선다는 뜻이지만 그녀의 삶은 사랑으로 충만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는 누구를 사랑하고, 누구와 사랑을 나눌 것인지. 그래서 그 흘러넘치는 사랑을 다시 누구에게 줄 수 있을지. 나는 또 누구를 신뢰하고, 누구와 믿음을 나눌 것인지. 그래서 그 흘러넘치는 믿음으로 다시 누구를 신뢰할지.' 이런 생각 했다. 결국은 사랑과 신뢰, 믿음임을...


이 책은 아마도 여성의 사회적 위치, 페미니즘 시각으로 읽힐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여성', '남성', '성 역할', '조선시대 보수적 분위기' 등등 이런 걸 다 떠나서 '사랑과 믿음'만 생각이 났다. 진정 좋은 건 단지 성 역할을 바꾸는 게 아니라 그걸 떠나, 그걸 뛰어넘어 사랑과 신뢰를 이야기하는 게 아닐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빙허각이 '여성'으로서 부각 받기 보다 좋은 인연들(부모님, 남매, 남편, 시댁, 스승 등)을 만나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다간 '인간'으로서 부각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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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킨케어 바이블 - 원인 없는 트러블은 없다
안잘리 마토 지음, 신예용 옮김 / 윌북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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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로 더 이상 상처 받지 않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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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킨케어 바이블 - 원인 없는 트러블은 없다
안잘리 마토 지음, 신예용 옮김 / 윌북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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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새로이 깨달은 것이 있다. 나이에서 숫자 앞자리가 바뀌는 것만큼, 나이의 뒷자리 숫자가 바뀌는 것도 상당히 타격이 크다는 것. 노화가 내 등 뒤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가, 나이 하나 먹기를 기다렸다가 보란 듯이 내 앞에 얼굴을 들이민다. 좀, 가라. 가라고. ㅠㅅㅠ 나를 슬프게 하는 노화.


2~3년 전만 해도 어디 자기소개하는 자리가 있으면, 은근히 내 차례가 되길 기다렸다. 내 차례가 되면 이름 말하고 이것저것 말하고 뜸 들이다, 적당한 순간 내 나이를 말하는데 이때 보통 사람들이 놀라며 정말 어려 보인다고 한 마디씩 해주셨다. 겉으로는 웃으며 '헤헤, 아니에요~ 제가 키도 작고, 머리 스타일 때문에 그래 보여요.' 라며 짐짓 빼지만, 속으로는 '이 순간만 기다렸다!'고 되뇌며 즐겼다. 밋밋한 일상에서 이런 순간들이 짜릿했고, 나의 소박한 낙으로 삼았다.


그런데 이것도 옛이야기가 돼버렸다. 1~2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급격히 노화한 얼굴. 점점 푸석해지는 얼굴에, 시나브로 늘어나는 실주름들이 내 소박한 낙을 앗아가고 있다. 이제는 자기소개 시간이 싫다. 나이를 말해도, 깜짝 놀라지 않는 사람들. 이제는 내 나이보다 많이 볼까 봐 걱정되고, 의기소침해진다. 가급적 나이를 밝히지 않는다. 나이를 말 안 하려 해도 꼭 얘기하라는 분이 있어 속상함. ㅠㅅㅠ


노화의 이유는, 실제로 나이를 먹고 있다는 게 첫 번째 이유고 두 번째는 피부에 대한 무관심 때문일 것으로 본다. 사실 2년 전부터인가, 기초는 '아이크림-알로에겔-수분크림' 이렇게만 바르고 있다. 남들 다 바르는 스킨, 로션은 바르지 않는다. 그래도 피부는 좋아 보였고 오히려, 피부가 좋아졌다는 소릴 들어서 이런 루틴을 지속했던 것.


하지만 이렇게 노화가 역습해 올지는 몰랐다. 역시나 나이에 맞는 스킨케어를 했어야 하는데... 그동안 안이했던 나를 반성합니다.




그러던 중 이 책을 읽었다.


이 책은 어릴 때 여드름 때문에 상처받고, 고민했던 저자가 결국 피부과 전문의가 된 사람이 쓴 책이다(닥터 안잘리 마토 씨!). 저자는 십 대 때 여드름 흉터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았다고 한다. 이 병원 저 병원을 다니다, 어느 날 한 피부과에 갔는데 그 의사 선생이 대화를 오로지 저자의 어머니와 했단다. 상담이 끝나고(물론 저자는 말도 못 했고) 밖으로 나가기 직전 저자는 간신히 용기를 내어 의사에게 물었단다.


"(여드름) 흉터가 나아질까요?"


의사가 마침내 날 쳐다보더니 한 단어로 대답했다.


"아니."


이 대목에서 내가 눈물을 터뜨렸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대화는 끝이 났다.


안잘리 마토, 『스킨케어 바이블』, 윌북, 2019 (- 112쪽)


와, 나도 화가 난다. 의사의 무례한 태도에!! 나도 십 대 때 피부 트러블이 있었던 사람으로서 저자의 마음이 십분 이해가 된다. 내 같았어도 그 자리에서 울음을 터트렸을 것이다. 십 대 때는 자기가 아는 협소한 세상이 다인 줄 알고, 자기 경험만이 다인 줄 할고, 자기가 만나는 사람만이 다인 줄 알기 쉬운 나이인데, 너무 대못을 박는 태도에 상처를 주는 말을 하다니! 나쁘다!!! (그러니 마흔이 다 되어 가는 나이이지만 이 기억은 잊히지 않는 것이다. 저자가 나이를 많이 먹어도 이 기억은 잊히지 않겠지) 어쨌든, 그런 경험이 전화위복이 되었고 저자는 피부 전문의가 되었다. 이제는 자기 어린 시절처럼, 피부 때문에 고민하고, 스트레스받는 사람을 위해 진료를 하고 이렇게 책도 냈다. (저자의 여드름 흉터는 성인이 되어 의학 공부 겸 캐나다에 가서 레이저 치료를 받았고 현재 아주 약간의 흔적만 있는 상태란다. 이 흔적도 레이저로 없앨 수 있지만 신경 안 쓰이는 정도라 가만히 놔뒀단다. 일단, 잠정적으로. 나중에 마음 변하면 없앨 수 있다고!)


사실 요즘 피부 케어에 대한 정보는 넘쳐난다. SNS에 접속해도, 모바일로 네이버에 접속해도, 티비를 틀어도, 잡지를 펼쳐도 피부 이야기가 많다. 또 요즘엔 피부과나 피부관리실에 정기적으로 가는 사람도 많고, 한 달 화장품 구입에 어마어마한 돈을 쓰는 사람도 많다. 화장품 종류는 어찌나 많은지. 단지 하나의 브랜드만 살펴봐도 다 기억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게 많은 라인이 나와있다. 그래서 일반인들도 피부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고, 화장품 후기 글에는 꼭 '무슨 무슨 성분이 포함되어 있네요. 매우 유해한 성분인데, 어떻게 이런 성분을 넣을 수가 있나요? 양심이 있나요, 없나요? 안 삽니다! 다른 분들도 사지 마세요!'라는 글이 있다. 일반인들도 피부, 화장품에 대해서라면 이제는 전문가 뺨을 친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데. >ㅁ<


어쩌면 그런 분께는 이 책이 새로울 게 없을 수 있겠지만 읽어 본 바, 이 책의 강점은 바로 신뢰성이 아닐까 싶다. 일단, 일반인들이 뷰티업계의 상술에 넘어가는 걸 염려스러워하고, 본인이 중립적이고 전문적인 피부과 의사라는 점에서 신뢰할 수 있다. 무엇보다 본인이 십 대 때 피부 트러블로 가슴앓이 했던 사람으로서, 그런 독자를 상정하고 쓴 책이라 무해하다. 그러니 신뢰가 간다.


노화가 걱정되어 읽었지만, 다른 피부 트러블에 대해서도 잘 읽었다. 평소 고민거리이기도 했던 '민감성 피부'에 대해서도 좀 더 잘 알 수 있었던 기회였다. 또 인상적인 부분은 바로 '수면'이었는데, 누구나 피부 건강에 수면의 질과 양이 중요하다는 건 다 안다. 나도 아는데 그게 참 잘 안된다. 이 책에 보니 이런 내용이 있다.


체내의 수많은 과정에는 일주기 리듬이 있다. 그러나 2000년 이후, 뇌에 있는 가장 상위의 시계 외에 피부 조직에도 자체 내부 시계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놀라운 연구가 소개되었다. 많은 세포 조직 유형에 자체 내부 시계가 있다. 콜라겐을 만드는 세포(섬유 모세포)와 색소를 만드는 세포(멜라닌 세포). 더불어 줄기세포까지. 이 세포들은 두뇌는 물론이고 서로 상호작용을 하여 피부의 리듬 변화를 생성한다. 


피부의 일주기 리듬은 피부의 거의 모든 기능에 영향을 미친다. 여기에는 수분 공급과 수분 손실, 지방 피지 생성과 혈류 피부 세포 분할과 장벽 기능이 포함된다. 이 과정은 낮 동안 같은 비율로 진행되지 않으며 활동의 정점과 저점을 보인다. 일주기 리듬을 이해하는 것은 다음 두 가지 주요 원인 때문에 대단히 중요하다. (...) 결국 수면을 충분히 취하지 못하면 피부의 장벽 기능이 축소되고 피부 노화의 징후가 급속도로 진행되는 것이다. 

안잘리 마토, 『스킨케어 바이블』, 윌북, 2019 (157-158쪽)


한 사람에게 필요한 수면의 양은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고 각기 다르다. 수면 필요 시간 역시 나이에 따라 달라지는데, 어린아이는 어른보다 훨씬 더 많이 자야 한다. 전문가들은 신체가 휴식을 취하고 효율적으로 기능하기 위해 성인에게는 평균 7시간에서 9시간 사이의 방해 없는 양질의 수면이 필요하다는 사실에 동의한다. 피부에 영향을 끼치는 라이프스타일 요인을 해결하고 싶다면 바람직한 수면 습관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 

안잘리 마토, 『스킨케어 바이블』, 월북, 2019 (159쪽)


아, 내 피부의 노화의 원인은 나이 탓도 있겠지만 수면 부족이 아니었을까... 싶다. 급 반성. ;ㅅ; 더 늦기 전에 충분한 수면을 습관화해야겠다. 앞으로 내게 남은 일은, 나이 먹는 일밖에 없지만 그래도 좀 동안으로, 건강하게 늙고 싶다. 어떤 큰 즐거움은 없더라도, 내 나이를 말할 때 사람들이 깜짝 놀라는 모습을 소소한 낙으로 즐기고 싶다. 암튼, 지금도 늦은 시각이지만, 어서 잠자리에 들어야지. 뿅!



피부 관련 온갖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지만, 피부에 관한 양질의 정확한 정보를 얻고 싶은 분께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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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랑콜리 해피엔딩
강화길 외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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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작가의 콩트집, 『나의 아름다운 이웃』 개정판 출간 기념으로 우리 문단의 신진, 중견 작가들이 박완서 작가님의 작품을 오마주한 짧은 글들이 실려있다. 모르는 작가분도 있었지만, 대체로 인지도 있는 작가분들이다.


그래서 작가님의 개정판과 더불어 출판된 것이 기쁜데 그러면서도 이 책을 읽을 때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박완서 작가님의 글을 먼저 읽고 읽었던 터라 작품의 질 차가 현격히 느껴졌다. 글의 내용, 문장, 어휘 등 이런 건 둘째치고 기본적으로 퇴고도 안 한 듯한 작품이 하나 눈에 들어왔다. 그 글을 쓴 작가가 진심 퇴고도 안 하고 출판사에 보냈는지 나로선 알 수 없지만 어쨌건 읽다가 너무 충격을 받았다. 일단 기본적으로 문장이 너무 길고, 작가가 일부러 의도한 것인지 주어와 술어의 호응이 안 맞다. 뭐가 뭐의 주어이고, 뭐가 뭐의 술어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나의 독서 인생에서 이런 문장은 어디에서도 보기 힘들었고 오직 글쓰기 관련 책에서 '잘못된 글쓰기의 사례'로 드는 글 수준이라 아직까지 충격에서 못 빠져나오는 중이다. 사실 내가 난독증이 되게 심한데, 나의 난독증 때문일까 싶어 재독을 해보았다. 그런데 재독을 해도 읽기가 영 힘들었다. 사실 작가와 독자의 문장 호흡이 잘 맞아야 한다. 이번에 읽을 때 단순히 그 작가와 나의 호흡이 안 맞아서 그랬던 건지, 아니면 원래 이상한 문장으로 쓰였던 건지 잘 모르겠다. 아리송. 이 책의 제목처럼 멜랑꼴리해졌다. 슬프기도 하고, 불쾌하기도 하고. 웬만한 책 읽고도 이런 이야기는 서평에 잘 안 쓰는데 그 정도가 심하기에 쓴다. 암튼, 박완서 작가님 글 읽고 정말 기쁘고 설레고 좋았었는데 그 좋은 기운을 비문 투성이의 글을 읽고 푹 꺾인 게 씁쓸하다. 이 책이 청출어람의 파티이길 바랐는데...



가방에 텀블러와 같이 넣어다니다가 표지가 찍혔다. 내 심장도 찍힌 듯 많이 아프다. ㅠㅅㅠ


어쨌든 여러 작가가 참여한 작품집이니, 실망한 글도 있었지만 재미나게 읽은 글도 있었다. 그중 두 개 소개한다.


│김종광, 「쌀 배달」


세상에는 수많은 여왕이 있지만, 아내는 어떤 여왕의 타이틀도 갖지 못했다. 그래서 어느 날 여왕의 타이틀을 달게 되는데, (그것도 자진해서) 어떤 여왕이었냐 하면 바로 '무능력의 여왕'이다. 무능력의 여왕은, 무능력의 왕인 남편이 즉흥적으로 저지르게 된(?), 아니 가입하게 된 자원봉사 활동에 따라가게 되었고 먹고살기 힘든 사람들이 모여있는 동네에 쌀 배달이를 시작한다(여왕의 남편은 중간에 봉사활동에서 은근슬쩍 빠짐). 그 동네에서 무능력의 여왕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자원봉사를 싫어하면서도 맡은 바 아니 맡기지도 않은 일도 열심히 한다. 드디어 무료 봉사활동이 끝나고, 돈을 내며 봉사활동을 하게 된 때에 그만둔다. 그리고 이때 무능력의 여왕은 하나의 깨달음을 얻는다.


진정 봉사하고 사시는 분들이 얼마나 훌륭하신 분들인지 깨달았어. 우리 같은 범인은 범접 못 할 성인들이셔.- 75쪽


나도 동의- ㅋㅋ

김종광 작가님의 위트와 해학이 잘 묻어있는 콩트였다. 달동네에 사는 분들의 이야기 때문에 마냥 재미난 콩트라곤 할 순 없지만, 웃음 지어진 글이었다.




백수린, 「언제나 해피엔딩」


꿈 많았던 소녀는 꿈이 꺾이고 꺾이며 흐르고 흘러 모 대학 철학과 계약직 행정 조교로 일하게 된다. 이름은 민주. 어느 날 학교 축제 때문에 모든 강의가 휴강되었다. 그런데 박 선생님이라는 분은 그것도 모르고 무거운 백팩을 메고 강의하러 출근했다. 갑자기 시간이 비게 된 박 선생님과 사무실에서 차를 마시게 된 민주. 둘은 잠깐 대화를 하게 된다. 대화는, 전혀 현실적이지 않아 보이는 박 선생이 젊을 때 영화관에서 알바했다는 이야기가 나왔고 그 선생이 그 알바를 할 때 제일 좋았던 점을 말하는 데서 정점을 찍는다.


"공짜 영화를 볼 수 있었나요?"


장점이 무엇인지 크게 관심은 없었지만 민주는 대화를 이어나가기 위해 질문했다. 그러자 박 선생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것도 그렇지만 모든 영화의 결말을 미리 본다는 점이었어요. 영화가 끝나면 문을 열고 손님들에게 출구를 안내해야 하니까 끝나기 직전에 상영관 안에 들어가 있어야 했거든요."


"결말을 알아버리면 나쁜 거 아니에요?"


민주가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그 시절에는 뭐가 그렇게 인생에 불안한 게 많았던지. 영화만이라도 결말을 미리 알고 싶더라고요. 그러면 나는 해피엔딩인 영화만 골라 볼 수 있잖아요." (119-120쪽)


이후 박 선생은 과 사무실을 떠나고, 홀로 남은 민주는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남자친구에 대한 걱정과 고민은 접고 온전히 그 시간, 그 순간에 집중하게 된다.


전형적인 콩트(혹은 단편소설) 형식으로 쓰였고, 잘 쓴 작품이었다.


이 외에도 박완서 작가님의 글을 오마주한 글들이 많이 실려 있다. 작가마다 다른 내용으로, 다른 느낌으로, 다른 흐름으로. 확실히 시대 변화에 따라 등단한 작가들의 문투, 어휘도 달라지며 시대 인식도 다른 게 확 느껴진다. 우리 문학사로도 의미 있는 작업과 출판이었다 본다. 다만, 박완서 작가님의 글을 뛰어넘는 글을 만나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


글 쓰는 '펜'과 시대를 읽는 '정신'을 날카롭게 벼리고, 박완서 작가님의 작품처럼 영면에 든 후에도 계속 읽힐 수 있는 완성도 있는 작품으로 만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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