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무게는 우리를 짓누르기도 하지만 이 무게가 우리를 지탱해주기도 한다. 부모가 된 엄마, 아빠는 일이 힘들고, 일과 얽힌 사람과 관계가 힘들어도 아이와 가족을 생각해 경솔하게 행동하지 않는다. 삶의 무게, 책임감 때문에 포기해야 하는 것도 많지만 그보다 얻게 되는 소중한 것이 더 많기 때문이다. 삶의 무게는 그렇게 우리를 지탱하고, 우리를 이끌어 준다.
중력도 마찬가지다. 처음 바다에서 뭍으로 올라온 생명들이 온전히 받고 견뎠어야 할 중력의 힘은 어마어마했을 것이다. 물의 부력 덕분에 자유자재로 자유롭게 노닐 수 있었지만, 부력을 버리고 처음 땅을 내디뎠을 때 그들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그들은 무엇을 보았을까. 부력이 주는 자유로움은 버렸지만, 다른 자유... 광활하고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는 곳을 어떻게 채울까 하는 그런 자유와 설렘을 맛보지 않았을까.
어쩌면 우주로 나아가려고 하는 지금 인류가, 태초에 바다를 떠나 육지로 올라왔던 그 생물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은 기자 출신 권기태 작가가 13년간 준비하고 쓴 소설이다. 십여 년 전 '대한민국 최초 우주인' 이야기로 떠들썩 했던 우리나라. 우리나라 최초 우주인 프로젝트에 모티브를 얻어 쓴 소설로 이 소설엔 실제 있었던 일이 많이 반영되어 있지만, 결코 사실 그대로의 글이 아니며 작가님의 상상이 많이 가미되어 있다.
소설은 주요 화자인 '이진우'의 시각으로 그려진다. 그는 생태보호연구원에서 식물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식물연구원이라고 하니, 그냥 식물 접붙이기 뭐 이럴 걸 할 느낌이지만 그보다는 생물 활동 기저, 세포나 그 밑 단계를 연구하는 학자다. 말하자면 과학자.
이진우는 일반 직장인으로 생활하다가, 어느 날 우주인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자연스럽게 응모했고 국내 테스트를 모두 무사히 통과한다. 그리고 러시아 우주 센터로 가게 된 마지막 4인 중 한 명이 된다. 이진우는 기존 직장에서 많이 힘들었었다. 새로 온 상사와의 트러블이 컸고, 그 때문에 인사고과가 매우 안 좋았다. 그는 묵묵히 연구하는 사람이었는데, 직장에서는 그냥 연구만 열심히 한다고 해서 인정받는 곳이 아니었다. 연구보다는 인맥이, 실력보다는 찍히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어쨌거나 우여곡절 끝에 이진우는 러시아 우주 센터로 와서 열심히 훈련을 받는다. 하지만 그가 러시아에서 겪게 되는 건 한국 직장에서 겪었던 '그것'이었다. 러시아 우주 센터에서도 파벌이 존재했고, 힘 있고 권력 있는 사람에게 '찍히지 않아야' 자신의 꿈인 우주인이 될 수 있었다.
파벌, 경쟁, 견제, 질투, 서열...
이 책 속에서 화자를 비롯해 주요 인물 4명은 서로 경쟁하고, 그들(러시아인들)이 말하는 '복잡한 문제' 때문에 서로 엎치락뒤치락하다가 단 한 명만 우주인으로 선발되어 우주에 갔다가 지구로 돌아온다.
어릴 때 생각하는 꿈은 대체로 두루뭉술하고, 희망차고 멋져 보이는 것들이다. 커서 느끼는 꿈은, 꿈을 이룬다는 것은, 이 책에서 다루는 것처럼 어쩌면 이런 것들인지도 모르겠다. 꿈이 현실에, 현실에 꿈이 있으면 고상했던 꿈은 현실로 뚝 떨어져 지리멸렬한 문제들과 맞닥뜨리게 된다. 서로 얽힌 사람들은 때로는 알면서 외면하고, 때로는 잘 모르면서 지레짐작으로 상대방을 떠보기도 하고 엉뚱한 소문을 퍼트리며 심리싸움과 감정싸움을 이어간다. 그래서 꿈이 무엇인지 상당히 모호해진다. 고상하고 멋진 것과는 거리가 멀게 된다.
그럼에도, 이 꿈이라는 것이 중력과 비슷한 게 아닐까 싶다. 삶의 무게. 우리를 짓누르기도 하지만 지탱하고 이끌어주기도 하는.
천체의 운행처럼 우리 삶은 홀로 마음먹는다고 꿈을 다 이룰 수 있는 게 아니고 수많은 것들과 연결되어 영향을 받고, 영향을 준다.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우리로서는 알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어떤 일이 일어나든 어떻게 받아들이냐가 아닐까.
소설 속 화자는 꿈이 좌절되지만 희망 차고 긍정적으로 끝을 맺는다. 삶의 무게를 우리를 짓누르는 것으로 볼 것인지, 우리를 지탱하는 것으로 볼 것인지, 어느 쪽에 더 비중을 둘 것인지 우리의 '선택'이 더 중요한 것이다. 부력이 주는 익숙한 자유를 버리고, 제약이 크지만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선택했던 태초의 육지 동물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