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랑콜리 해피엔딩
강화길 외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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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작가의 콩트집, 『나의 아름다운 이웃』 개정판 출간 기념으로 우리 문단의 신진, 중견 작가들이 박완서 작가님의 작품을 오마주한 짧은 글들이 실려있다. 모르는 작가분도 있었지만, 대체로 인지도 있는 작가분들이다.


그래서 작가님의 개정판과 더불어 출판된 것이 기쁜데 그러면서도 이 책을 읽을 때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박완서 작가님의 글을 먼저 읽고 읽었던 터라 작품의 질 차가 현격히 느껴졌다. 글의 내용, 문장, 어휘 등 이런 건 둘째치고 기본적으로 퇴고도 안 한 듯한 작품이 하나 눈에 들어왔다. 그 글을 쓴 작가가 진심 퇴고도 안 하고 출판사에 보냈는지 나로선 알 수 없지만 어쨌건 읽다가 너무 충격을 받았다. 일단 기본적으로 문장이 너무 길고, 작가가 일부러 의도한 것인지 주어와 술어의 호응이 안 맞다. 뭐가 뭐의 주어이고, 뭐가 뭐의 술어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나의 독서 인생에서 이런 문장은 어디에서도 보기 힘들었고 오직 글쓰기 관련 책에서 '잘못된 글쓰기의 사례'로 드는 글 수준이라 아직까지 충격에서 못 빠져나오는 중이다. 사실 내가 난독증이 되게 심한데, 나의 난독증 때문일까 싶어 재독을 해보았다. 그런데 재독을 해도 읽기가 영 힘들었다. 사실 작가와 독자의 문장 호흡이 잘 맞아야 한다. 이번에 읽을 때 단순히 그 작가와 나의 호흡이 안 맞아서 그랬던 건지, 아니면 원래 이상한 문장으로 쓰였던 건지 잘 모르겠다. 아리송. 이 책의 제목처럼 멜랑꼴리해졌다. 슬프기도 하고, 불쾌하기도 하고. 웬만한 책 읽고도 이런 이야기는 서평에 잘 안 쓰는데 그 정도가 심하기에 쓴다. 암튼, 박완서 작가님 글 읽고 정말 기쁘고 설레고 좋았었는데 그 좋은 기운을 비문 투성이의 글을 읽고 푹 꺾인 게 씁쓸하다. 이 책이 청출어람의 파티이길 바랐는데...



가방에 텀블러와 같이 넣어다니다가 표지가 찍혔다. 내 심장도 찍힌 듯 많이 아프다. ㅠㅅㅠ


어쨌든 여러 작가가 참여한 작품집이니, 실망한 글도 있었지만 재미나게 읽은 글도 있었다. 그중 두 개 소개한다.


│김종광, 「쌀 배달」


세상에는 수많은 여왕이 있지만, 아내는 어떤 여왕의 타이틀도 갖지 못했다. 그래서 어느 날 여왕의 타이틀을 달게 되는데, (그것도 자진해서) 어떤 여왕이었냐 하면 바로 '무능력의 여왕'이다. 무능력의 여왕은, 무능력의 왕인 남편이 즉흥적으로 저지르게 된(?), 아니 가입하게 된 자원봉사 활동에 따라가게 되었고 먹고살기 힘든 사람들이 모여있는 동네에 쌀 배달이를 시작한다(여왕의 남편은 중간에 봉사활동에서 은근슬쩍 빠짐). 그 동네에서 무능력의 여왕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자원봉사를 싫어하면서도 맡은 바 아니 맡기지도 않은 일도 열심히 한다. 드디어 무료 봉사활동이 끝나고, 돈을 내며 봉사활동을 하게 된 때에 그만둔다. 그리고 이때 무능력의 여왕은 하나의 깨달음을 얻는다.


진정 봉사하고 사시는 분들이 얼마나 훌륭하신 분들인지 깨달았어. 우리 같은 범인은 범접 못 할 성인들이셔.- 75쪽


나도 동의- ㅋㅋ

김종광 작가님의 위트와 해학이 잘 묻어있는 콩트였다. 달동네에 사는 분들의 이야기 때문에 마냥 재미난 콩트라곤 할 순 없지만, 웃음 지어진 글이었다.




백수린, 「언제나 해피엔딩」


꿈 많았던 소녀는 꿈이 꺾이고 꺾이며 흐르고 흘러 모 대학 철학과 계약직 행정 조교로 일하게 된다. 이름은 민주. 어느 날 학교 축제 때문에 모든 강의가 휴강되었다. 그런데 박 선생님이라는 분은 그것도 모르고 무거운 백팩을 메고 강의하러 출근했다. 갑자기 시간이 비게 된 박 선생님과 사무실에서 차를 마시게 된 민주. 둘은 잠깐 대화를 하게 된다. 대화는, 전혀 현실적이지 않아 보이는 박 선생이 젊을 때 영화관에서 알바했다는 이야기가 나왔고 그 선생이 그 알바를 할 때 제일 좋았던 점을 말하는 데서 정점을 찍는다.


"공짜 영화를 볼 수 있었나요?"


장점이 무엇인지 크게 관심은 없었지만 민주는 대화를 이어나가기 위해 질문했다. 그러자 박 선생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것도 그렇지만 모든 영화의 결말을 미리 본다는 점이었어요. 영화가 끝나면 문을 열고 손님들에게 출구를 안내해야 하니까 끝나기 직전에 상영관 안에 들어가 있어야 했거든요."


"결말을 알아버리면 나쁜 거 아니에요?"


민주가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그 시절에는 뭐가 그렇게 인생에 불안한 게 많았던지. 영화만이라도 결말을 미리 알고 싶더라고요. 그러면 나는 해피엔딩인 영화만 골라 볼 수 있잖아요." (119-120쪽)


이후 박 선생은 과 사무실을 떠나고, 홀로 남은 민주는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남자친구에 대한 걱정과 고민은 접고 온전히 그 시간, 그 순간에 집중하게 된다.


전형적인 콩트(혹은 단편소설) 형식으로 쓰였고, 잘 쓴 작품이었다.


이 외에도 박완서 작가님의 글을 오마주한 글들이 많이 실려 있다. 작가마다 다른 내용으로, 다른 느낌으로, 다른 흐름으로. 확실히 시대 변화에 따라 등단한 작가들의 문투, 어휘도 달라지며 시대 인식도 다른 게 확 느껴진다. 우리 문학사로도 의미 있는 작업과 출판이었다 본다. 다만, 박완서 작가님의 글을 뛰어넘는 글을 만나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


글 쓰는 '펜'과 시대를 읽는 '정신'을 날카롭게 벼리고, 박완서 작가님의 작품처럼 영면에 든 후에도 계속 읽힐 수 있는 완성도 있는 작품으로 만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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