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교토의 오래된 가게 이야기 - 세월을 이기고 수백 년간 사랑받는 노포의 비밀
무라야마 도시오 지음, 이자영 옮김 / 21세기북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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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대로 천년의 도시, 교토의 오래된 가게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책의 저자 무라야마 도시오는 1953년 생으로, 젊은 시절 당시 일본인으로서는 드물게 한국에 관심을 갖고 한국어를 공부했고, 이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여러 가지 일을 많이 했다. 저자는 관심사가 다양하고 많아서 이종 다양한 주제를 갖고 저술활동을 하고 있다. 그중 한국에 관한 책도 많다. 그중 몇 권은 일본인을 위한 한국에 대한 책이다. 반면, 이번에 국내 출판된 『천년 교토의 오래된 가게 이야기』는 한국인을 위한 일본에 대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 핫플레이스 지역의 젠트리피케이션도 문제지만, 젠트리피케이션이 지난 후 을씨년스럽게 완전히 망해버린 곳이 많다. 우리나라는 유행에 민감하다지만, 이렇게 상권까지 떠들썩하게 떴다가 쫄딱 망해버리면 그 지역이 오래도록 건전하게 발전할 수 없다. 우린 왜 이렇게 빨리 떴다가, 빨리 망해버리는 건지 궁금했다. 국민성 문제일까, 사회 시스템의 문제일까, 행정의 문제일까. 그럼 다른 나라(특히 일본)는 어떠할까 등등 여러 가지 이유로 이 책을 읽었다.


기차 타고 여행하는 기분 내며 읽었또요. 


일본에서 수십 년, 수백 년에 걸쳐 가업을 잇는 가게를 '노포(老舗 しにせ)'라고 한다. (찾아보니 우리 국어사전에도 '노포'가 등재되어 있다. 하지만 이렇게 대를 잇는 가게가 우리나라에 드물기 때문에 낯설게 느껴지는 걸까)


이 책은 일본의 천 년 고도인 '교토'에 자리한 노포를 총 10곳을 취재하고 소개한다. 가게 종류는 다양하다. 고등어구이 전문인 음식점에서부터 목욕탕, 술도가, 베이징요리, 게스트 하우스, 찻집, 사탕 가게, 도장가게, 서점, 소바 가게를 다룬다. 가게 종류는 천차만별이지만,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데는 공통된 이유가 있었다. 각 가게마다, 그 가게만의 정신이랄까 자부심, 책임감이 있었다.


가게 주인은 일을 설렁설렁하지 않는다. 고객을 위해 최선을 다하며, 납품 업체와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한다. 주인은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는데, 부모의 이런 모습을 보고 자란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본인이 가게의 후계자가 될 것임을 깨닫고, 부모의 모든 일거수일투족을 허투루 보지 않고 잘 배운다.


'나의 게으름 때문에 가문을 욕되게 할 순 없다. 반드시 최선을 다하여 가게를 꾸리고, 선대의 유지를 받들겠다' 이런 마음이 깊이 밴 듯하다.


그래서 음식은 맛이 한결같이 좋고, 디스플레이에서는 장인 정신이 느껴질 만큼 예술적 완성도가 높다. 상품을 파는 가게도 마찬가지다. 상품 질이 우수하고, 서비스는 한결같다. 그래서 한 번 찾은 손님은, 두 번 찾고, 두 번 찾은 손님은 한 평생 손님이 되며, 그 손님의 자식까지 대를 이어 단골이 되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정신'이 아닐까 싶었다. 진심 어린 마음, 최선을 다하겠다는 마음... 선대의 정신과 노력을 후대에 물려주겠다는 책임감과 자부심.


요즘 우리나라 재벌 3세들의 마약 스캔들과 골목마다 심각한 젠트리피케이션을 보면서 씁쓸한 마음으로 이 책을 읽었다.


우리도 이제 먹고 살만 해졌으니 당장에 먹고 살 걱정보다는 멀리 내다보고, 어떤 '큰 맥락 속'에서 본인의 몸가짐과 행동거지를 봐야 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선대와 자식들 보기에 부끄럽지 않은 삶, 떳떳한 삶을 살도록 노력하며, 남들이 기꺼이 돈을 지불할 만큼 가치 있는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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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레스트 검프
윈스턴 그룸 지음, 정영목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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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세상에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어리석고 바보 같은 사람들이 많다. 겉으로는 그럴싸하게 꾸미고 다니지만 뒤에서는 무슨 어리석고 나쁜 짓을 많이 하고 다니는지. 인간 같잖은 짓을 무슨 경쟁이라도 하는 듯 너무나 많이 벌인다. 앞에서는 그럴듯한 직업과 권력을 가지고 칭송받고, 뒤에서는 그 힘을 이용해 나쁜 짓 해서 즐겁거나 삶이 좀 만족스럽습니까? 비단 권력이나 인기를 가진 사람뿐만 아니라, 우리 주위에도 넘친다. 단순히 많은 정도가 아니라, 너무나 많아서 발에 차일 정도다. 어느 조직, 어느 모임에도 있다. 보통 이런 사람들을 나쁘다고 하지만, 내가 볼 땐 어리석고도 어리석어서 그렇다고 본다. (내가 불교를 믿는 건 아니지만, 철학자로서의 싯다르타라는 분을 상당히 존경하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인간이 무지하고 어리석어서 병폐와 폐단이 끊임없이 일어난다고 생각하며, 우리 자신이 스스로 무지하고 어리석었다는 것만 '깨달아도' 우린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


어쨌거나 세상의 바보들에게, 너희들 진짜 바보에다 어리석다고 대놓고 놀리고 조롱할 수 있는 매체가 바로 '소설'이다. 이 소설은 어리석은 사람을 놀리고 욕해도 괜찮다. 비속어를 섞어가며 욕을 해도 '표현의 자유'와 '창작의 자유'의 헌법적 권리로 보호받는다. 다만, 놀리는 대상을 정확히 딱 꼬집어 지칭하지 않는 한에서. 가명만 써도 되니 이 얼마나 좋은 매체인지. 실명만 아니면 얼마든지 양파 까듯 깔 수 있고 비속어와 욕설을 해도 된다. 소설 속에 욕설을 대신해 주거나 상대방의 어리석음을 보여 줄 '캐릭터'만 만든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 이 캐릭터의 입으로 대신하여 어리석은 대상에 대한 욕과 비난, 희화화를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어리석은 사람들과 세상을 마음껏 조롱하고 풍자하고 희화화한 책으로 여러 작품이 있지만, 그중 이 책도 꼽을 수 있다. 바로 윈스턴 그룸의 『포레스트 검프』




사실 우리에게 『포레스트 검프』는 원작인 소설보다, 영화가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영화는 순수하고 착한 마음을 가진 포레스트 검프가 부조리한 세상 속에서 좌충우돌 뭔가를 경험하면서 배워가는 전반적으로 따뜻한 영화다. 반면에, 원작은 소설은 따뜻함보다는 풍자와 희화화가 있는 '블랙코미디'에 가깝다.


우선 포레스트 검프 자체가 순둥순둥하지 않다. 물론 영화에서처럼 지능이 어린아이 수준(일상생활에 관해서만! 수학이나 물리학, 운동신경, 음악적 재능은 보통 사람들보다 월등히 뛰어나다)이어서, 음흉한 생각도 꽤 많이 하고 욕도 잘하며, 사람에 대한 호불호도 강해서 모든 인간에게 호의적으로 잘해 주는 건 아니다.


포레스트의 엄마도 마찬가지. 영화에서는 뭔가 강한 엄마의 이미지이지만, 책에서는 강한 엄마의 면모도 있지만 대부분 눈물로 밤을 지새우거나, 구빈원에 들어가 신교도와 도망가고 그런 삶을 산다. 포레스트가 좋아하는 여자친구도 마냥 훌륭하고 이상적인 여성은 아니다. 그냥 평범하달까. 첫 남자친구를 만나는 것에서부터, 그 남자친구와 한 일, 그리고 그 이후로도 무수히 많이 겪었던 실패한 사랑 이야기는 이상적인 여성이라기보다, 흘러가는 대로 살다가 '호기심', 혹은 '남자에 대한 막연한 낙관'으로 실수를 저지르는 평범한 여성이다.


주인공, 포레스트 또한 이런 캐릭터의 연장이다. 단지 일상생활을 하는 데에 어린아이 수준의 지능을 가졌다고 하지만, 본인 스스로 어리석은 사람이 되는 걸 택하기도 했다(그럴 때마다 여자친구가 떠나거나 경찰한테 잡혀 감).


셰익스피어가 리어왕과 그 주위 일당들의 어리석고 욕심 많은 모습을, '광대 혹은 바보'로 번역되는 '백치'로 비꼬고 폭로했듯, 『포레스트 검프』는 포레스트 검프라는 '백치'로 당시 미국 사회의 어리석은 모습과 베트남 전쟁의 참혹함, 비인간성을 블랙코미디 형식으로 풀어낸다. (소설 『포레스트 검프』 안에서도 「리어왕」이 언급되며, 포레스트 검프가 「리어왕」 속 '글로스터 백작'을 연기하다가 실수로 세트장에 불을 내는 에피소드도 있다)


원작자는 자신이 이 작품으로 하고 싶었던 말을, 작품 맨 마지막에 배치했다. 세상의 온갖 웃기고 어리석고 가지각색의 병폐로 꽉 찬 사회 구조와 흐름 속에서, 이 세상의 어리석음의 흐름을 따라 살면서도 그래도 옳은 일을 하려고 애써야 한다는 것. 이 말은 참말 맞는 말이다.


그치만 이 얘긴 해야겠어. 때때로 밤에 별을 올려다보면, 글고 거기 쫙 펼쳐져 있는 하늘을 보면, 나도 내 인생을 죄다 기억하진 못한단 생각이 들어. 난 아직도 딴 사람들과 똑같이 꿈을 갖고 있어. 글고 요렇게 했으면 조렇게 달라졌을 텐데 하는 생각도 많이 해. 근데 갑자기 난 마흔, 쉰, 예술 살이 돼버렸어. 알아? 


음, 그게 어떻다는 거야? 난 백치야. 그치만 대부분, 어쨌든 간에 난 옳은 일을 하려고 했어. 글고 꿈은 그냥 꿈이야. 안 그래? 따라서 딴 건 어떤지 몰라도, 난 이거 하난 생각해. 난 언제든지 내 인생을 되돌아보면서 말할 수 있다는 거. 적어도 난 지겨운 인생은 살지 않았다고.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어? 


윈스턴 그룸, 『포레스트 검프』, 미래인 (p. 336-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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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로운 우주 - 낭만적이면서도 과학적인 시선으로 본 우리의 우주
브라이언 콕스.앤드루 코헨 지음, 박병철 옮김 / 해나무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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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잘 쓴 우주 과학 교양서로, BBC에서 방영된 과학 다큐멘터리 <경이로운 우주>를 책으로 옮긴 것.


이 책을 읽기 전 내가 <경이로운 우주>를 봤는 줄 알았는데 책을 보니 안 본 게 확실하네. 평소 우주 다큐멘터리를 즐겨 보고, 브라이언 콕스도 티비에서 본 적이 있어서 잘못 생각했다. 어쨌든 다큐 보고 이 책을 읽어도 참 좋을 것 같고, 나처럼 다큐를 안 본 사람이라도 우주에 관심이 있다면 상당히 재밌게 이 책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이 책은 우주의 탄생과 종말을 빅스토리 형식으로 설명한다. 그리고 우주의 생의 주기를 우리 인류와 인간, 자연의 주기와 연관시켜서 설명하는데, 그래서 우주에서 벌어지는 일이 우리와 전혀 무관하지 않은, 이 지구와 우리 인류 모두와 완전히 이어진 일이라고 설명한다. 우리는 우주이자, 우주는 바로 우리.


뭔가 이런 말이 이단 같고, 사이비 같지만 과학적으로 옳은 말이다. 우주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우리'가 엄청나게 거대한 별이 마지막에 빵!!하고 터졌을 때 우주로 쏟아져 나온 원소들의 집합이라는 것을 알 것이다. 우리가 지금 발 딛고 서 있는 지구의 지각도, 지구를 가득 메운 바닷물도, 우리가 지금 코로 마시고 있는 산소도, 지금 손가락에 끼고 있는 금반지도, 밥 먹을 때 쓰는 은수저도, 요리할 때 요긴하게 쓰는 철이나 구리 프라이팬도 모두가 동일하게 초신성별이 터졌을 때 우주로 쏟아져 퍼진 것들이다. 이때 쏟아져 나온 무수한 원소들이, 우연 혹은 필연으로 뭉치게 되었고 그것이 우리 태양을, 우리 태양계를, 그리고 우리 지구를 이루게 된 것이다.


이렇게 책은 우주의 탄생(빅뱅)과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우주가 형성되기까지 과정과 앞으로 있을 우주의 종말을 빅스토리 형식으로 쉽고 재밌게 설명해준다. 사실 이런 유의 다큐멘터리와 책이 많은데, 그 작품들 중에서도 브라이언 콕스의 『경이로운 우주』가 최고 아닐까 싶다. 정말로 쉽게 잘 쓰였다. 단순히 쉽기만 한 게 아니라, 과학적 설명도 정말 잘 해놓았다. 물론, 뒤로 갈수록 어렵긴 어렵다. 열역학 부분은, 브라이언 콕스가 아무리 쉽게 잘 설명했어도 보통 사람은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이라 잠시 유체이탈한 후 돌아왔다.


또 이 책을 번역하신 분이 과학을 전공(박사) 한 후, 현재 번역과 저술 활동을 하시는 분이라 번역도 흠잡을 데가 없다. 아마 언어를 전공하신 분이 이 책을 번역하셨으면 많이 힘드셨을 테고, 필히 감수도 받았어야 했을 것이다. 『경이로운 우주』는 문장도 매끄럽고 좋고, 역주도 훌륭하다(개인적으로 '시간이 지난다'라고 번역하지 않고, '시간이 흐른다'라고 번역하셔서 참 좋았다).



편집자 역시 꼼꼼하게 교정을 하신 듯 초판본인데도 오탈자가 하나도 없다. 내가 놓친 게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오탈자는 글을 아무리 꼼꼼하게 읽어도 꼭 놓치고 발견 못하는 게 있다.), 내가 읽기로는 하나도 없었다.


BBC 제작진과 진행자였던 브라이언 콕스도 상당히 공을 들였고, 이 책을 국내 출간한 출판사와 번역자 분도 상당히 공을 들인 게 느껴진다. 사실 이렇게 공들인 책을 만나면 상당히 기분이 좋다. 이쪽에 관심 있으신 분께는 꼭 추천해 드리고 싶고. 추천, 강추해요!!


​///


+ 개인적으로 예전에 상당히 우울한 시기를 보내던 때, 그때 우울의 늪에서 벗어나게 해 준 게 몇 개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우주'였다. 매일 밤, 우주 다큐멘터리를 보며 경이로운 우주를 보고 느꼈고, 때로 산이나 문득 바라본 하늘을 보며 감동하며 마음의 힘을 내던 때. 지금도 요즘 마음이 무척 힘든데, 이 책을 읽고 많은 위로를 받았다. 내가 존재하기 전의 세상, 내가 지금 존재할 수 있는 이유, 앞으로의 세상... 그 모든 게 경이롭고 마음 속 깊이 나를 흐믈흐믈 거리게 하는 감동이 있다.


햐, 질서 정연한 세상은 끊임없이 질서가 무너져 보다 높은 무질서로 향하고 있다. 그럼에도 엄청나게 낮은 확률로 우리 은하와 태양계, 지구 그리고 '나'가 태어났다. 우주에 내가 태어날 확률은 아마도, 타노스에게 어벤저스가 이길 확률인 1/14000605 보다 훨씬 작았을 것이다. 거의 0에 무한히 가까운 확률에서도 내가 태어났으니, 우울하며 힘들게 살기보다는 이 경이로움을 마음껏 즐기고 행복하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 이 삶을, 온전하게.


『경이로운 우주』는 우주에 대한 책이지만, 철학적 질문... 아니 철학이란 이름표도 무겁다. 떼버리자.

이 책의 맨 마지막 장, 맨 마지막 마침표 끝에는, '나'와 '우리'를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오늘을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떤 마음으로, 무엇을 하며, 누구와.... 이런 생각이 책의 맨 끝에 떠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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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나 읽을걸 - 고전 속에 박제된 그녀들과 너무나 주관적인 수다를 떠는 시간
유즈키 아사코 지음, 박제이 옮김 / 21세기북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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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즈키 아사코,


일본 소설가. 도쿄에서 태어나 릿쿄대 불문학과 졸업. 저자가 쓴 작품을 원작으로, 일본에서 TV 드라마로 제작까지 되었다니 일본 인기 작가인가 보다. (으윽, 난 이제 알았다요-) 유즈키 아사코의 책은 현재 국내에 총 8권이 소개되었다. 네이버 '책' 기준. 책마다 리뷰 개수에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리뷰가 많은 편으로 우리나라 팬도 꽤 있는듯하다.




이 책은 저자가 연재한 독서 기록이다. 음, 서평 책은 아니고, 독후감도 아니며 그렇다고 책을 소개하는 책도 아니다. 대부분의 글 시작은 저자의 일상이나 소소한 생각에서 출발하고, 이어 관련된 책 제목을 언급한 뒤 이 책의 줄거리와 캐릭터 성격, 본인이 이 책과 캐릭터에 느끼는 애정을 쓰고 있는데 독서 에세이라고 해야 할까. 그래, 에세이에 가깝다.


그렇다고 저자의 일상이나 생각이 듬뿍 묻어는 것도 아니다. 저자는 자신이 다루는 책은 물론, 독자와도 거리를 어느 정도 둔다. 선을 그은 느낌. 책을 소개해야 하니까 소개하는 그런 느낌. '아, 이 책 정말 정말 재밌게 읽었어요. 나 혼자 읽기엔 너무 아까워, 너무 아쉬워. 우리 함께 읽어요!' 이런 느낌이나 '이 책은 말입니다, 여러분. 프랑스 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작품이에요. 그리고 제 여린 심장에도 한 획을 그은 책이에요. 이 책 위로 똑똑 떨어진 제 피가 보이시나요? 이 책을 읽기 전의 나와 이 책의 읽고 난 후의 나는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었습니다' 뭐 요런 느낌도 없다. 음, 속마음을 내비치기 싫어하는 전형적인 일본 사람이 책 소개하는 책이랄까.


문체나 문장에서 저자가 거리를 두고 있는 느낌이지만 그렇다고 유익하지 않은 건 아니다. 나 같이 책 고픈 사람에게 이런 독서 에세이는 언제나 훌륭한 색인 같은 존재다.


이 책은 총 4장으로 나뉜다. 첫 장은 프랑스 소설, 두 번째 장은 일본 소설, 세 번째 장은 영국 소설, 네 번째 장은 미국 소설이다. 일본 소설은 모리 마리를 제외하고 생판 처음 보는 작가들이라, 작가들도 생경하고 소개된 책도 생경하였다. 또 몇 권을 제외하고 대부분 국내 번역되지 않아 읽을 수도 없다. 그런데 일본 소설 장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우리에게도 익숙한 고전 작품이 나온다.


요즘 고전 읽고 현대 작품 읽고, 고전 읽고, 현대 작품 읽고 번갈아가며 읽다. 햐, 이렇게 독서하다 보니 확실히 고전의 진가가 느껴진다. 현대 작품만 읽을 땐 몰랐었는데, 일단 고전과 현대 작품을 비교했을 때 문장력의 수준도 많이 차이 나지만 무엇보다 시대를 꿰뚫어보는 통찰력이 고전에는 흔히 찾아볼 수 있지만 현대 작품에서는 보기 힘들다. 좋은 책을 읽고 싶거들랑, 우선 살아남은 고전을 읽어야 한다! 시간의 제약으로 우린 세상 모든 책을 다 읽을 순 없으니, 오랜 시간에 걸쳐 거르고 걸러진 선별된 고전을 읽는 건 여러모로 경제적이고 유익하다.


이 책에서 일본 소설을 제외하고 저자가 소개하는 책들은 거의 대부분 우리에게도 익히 알려진 작품들인데, 이 책을 길라잡이로 삼아 프랑스, 영미 문학으로 퐁당 빠지는 것도 재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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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노보노, 오늘 하루는 어땠어?
이가라시 미키오 지음, 고주영 옮김 / 놀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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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없는 곳. 바다와 숲, 강과 절벽이 있고, 매일매일 잔잔하지만 소박한 행복이 있는 그곳. 바로 #보노보노 와 #포로리, #너부리 와 그의 친구들이 사는 곳. 나도 이곳에 놀러 가고 싶고, 그 친구들과 함께 살고 싶다. 철썩철썩 파도치는 소리에 아침잠에서 깨고, 해안 절벽 아래 시원히 펼쳐진 바다 뒤로 노랗게 떠오르는 태양. 조개밥을 먹고 숲에 놀러 가, 나무속에서 나뭇잎 이불을 덮고 자는 포로리를 만나고, 포로리와 한참 놀다가 '취미라는 게 뭔지', '왜 우린 걷는 걸 좋아하지' 등 의문이 생기면 포로리처럼 나무속에 사는 너부리에게 물으러 가고. 셋이 머리를 한참 맞대고 궁리하다가 그래도 모르겠으면 똑똑하고 차분한 야옹이형네 굴에 놀러 가고 그래도 모르겠으면, 너부리 아버지나 보노보노 아버지에게 물어보고, 때때로 숲에서 처음 만난 친구에게 물어도 보고 그러고 싶다.


가끔은 우연히 생각났지만 그게 뭔지 잘 생각이 안 나는 그것이 뭔지 고민고민해보기도 하고, 때로는 어렸을 적에 내가 좋아하던 것도 떠올려 보고, 또 그것일 간직해 두던 장소도 생각해 보며 하루를 지내고, 때로는 너무 맛없는 음식에 충격을 받아서 그 충격을 또 한 번 느껴보고자 계속 맛보며 충격받아보고, 때로는 꿈이란 게 왜 이상한지 궁리하며 친구들과 토론해 보고, 우연히 발견한 친구들의 사소한 습관에 즐거워하고, 몇 년에 한 번 걸린 독감을 미워하고, 미워하고 끝까지 미워해서 몸이 타들어가듯 뜨거워질 때까지 감기를 미워해서 그 감기가 오줌이 되어 나오도록 해보고, 살면서 한 번쯤 나와 똑같이 생긴 사람을 찾으러 모험을 떠나고, 그렇게 정말 우연히 나와 똑같이 생긴 사람을 만나 반가워하고, 그 사람과 나의 차이점을 또 발견해서 놀라거나 즐거워하고, 가끔은 외출한 가족의 빈자리를 느끼며 새로운 감각 속으로 빠져들기도 하고, 소박해게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나의 취미란 무엇인지 생각하며 별일 없이 소소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싶다.


매일 소소한 별일이 일어나는 곳, 보노보노와 그 친구들이 사는 곳에 나도 같이 살고 싶다.





『보노보노, 오늘 하루는 어땠어?』는 1984년부터 현재까지 연재되고 있는 『보노보노』 시리즈 중에서 원작자인 #이가라시미키오 씨가 엄선한 18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35년간 연재된 무수히 많은 이야기 중 작가가 뽑은 이야기인 만큼, 보노보노의 진수가 느껴지는 베스트 에피소드라고 해야 할까.


피식, 웃음이 나오는 에피소드가 있다. '나에게 취미란?' '나에게 소중한 것이란?' 등 나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하는 에피소드가 있다. 가족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에피소드가 있다. 친구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에피소드가 있다. 맛있는 음식이란 무얼까 생각하게 하는 에피소드가 있다. 그 외에도 많은 것들을 담고 있다.


『보노보노』를 철학적인 만화라고 하는데, 음, 철학적이라고 하면 너무 무겁게 느껴져 표지를 펼쳐 보지 않을 수 있으니까 철학적이라고 하기보단 '여백이 있는 만화'라고 하면 어떨까.


『보노보노』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휙휙 봐도 재밌다. 때로는 보노보노와 보노보노 친구들이 던지는 질문을 따라가며 나도 그 답을 찾는 과정에서 '생각'을 하게 되는데, 이 '생각'을 하게 되는 지점은 저자가 던져놓은 '여백'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이 여백을 채우는 건 순수하게 독자의 몫이다. 이 여백이 독자의 깊은 생각을 도출해 철학으로 채울 수 있고, 그냥 재미난 잡생각을 떠올리게 할 수도 있고, 또는 아무 생각 없이 봐도 무방하니까.



나는 이번에 『보노보노, 오늘 하루는 어땠어?』를 여러 날에 걸쳐 자기 전에 읽었는데 읽으니 자기 전에 차분해지고 좋았다. 『보노보노』는 대부분의 그림이 칸 안에 다 그려져 있다. 아주 넓은 자연이 그려진 것도, 숲도, 나무도, 보노보노의 얼굴이 클로즈 업된 부분도 몽땅 칸 안에 있어서 만화 자체가 느릿하고 빈 공간이 많다는 느낌이 든다. 이 칸과 저 칸을 넘나드는 만화와는 사뭇 다른 느린 호흡을 가지고 있는데, 그래서 밤에 읽기에 좋았다. 몸도 마음도 차분해지면서, '와, 나도 이곳에 이 친구들과 함께 근심 걱정 없이 살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이 친구들도 이 친구 나름대로 고민거리가 있지만) 몸도 마음도 노곤해지면서, 느릿느릿, 아무려나 다 좋다, 이런 느낌...


온 신경을 곤두세운 채 스트레스를 받으며 일상을 보내는데, 그 속에서 만난 느림 템포의 보노보노와 그 친구들 이야기는 가빠진 내 호흡을 가다듬고, 곤두선 신경을 누그러 뜨려 주었다.


『보노보노, 오늘 하루는 어땠어?』를 읽으며, 보노보노의 친구들처럼 나 역시 하나의 질문을 내게 던졌는데 그 질문은 바로,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뭘까' 였다. 아직 이 질문의 답은 찾아가고 있는 중인데, 나도 이 친구들처럼 이 방법, 저 방법 찾아 궁리하며 나만의 답을 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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