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레스트 검프
윈스턴 그룸 지음, 정영목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9년 3월
평점 :
절판


세상에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어리석고 바보 같은 사람들이 많다. 겉으로는 그럴싸하게 꾸미고 다니지만 뒤에서는 무슨 어리석고 나쁜 짓을 많이 하고 다니는지. 인간 같잖은 짓을 무슨 경쟁이라도 하는 듯 너무나 많이 벌인다. 앞에서는 그럴듯한 직업과 권력을 가지고 칭송받고, 뒤에서는 그 힘을 이용해 나쁜 짓 해서 즐겁거나 삶이 좀 만족스럽습니까? 비단 권력이나 인기를 가진 사람뿐만 아니라, 우리 주위에도 넘친다. 단순히 많은 정도가 아니라, 너무나 많아서 발에 차일 정도다. 어느 조직, 어느 모임에도 있다. 보통 이런 사람들을 나쁘다고 하지만, 내가 볼 땐 어리석고도 어리석어서 그렇다고 본다. (내가 불교를 믿는 건 아니지만, 철학자로서의 싯다르타라는 분을 상당히 존경하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인간이 무지하고 어리석어서 병폐와 폐단이 끊임없이 일어난다고 생각하며, 우리 자신이 스스로 무지하고 어리석었다는 것만 '깨달아도' 우린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


어쨌거나 세상의 바보들에게, 너희들 진짜 바보에다 어리석다고 대놓고 놀리고 조롱할 수 있는 매체가 바로 '소설'이다. 이 소설은 어리석은 사람을 놀리고 욕해도 괜찮다. 비속어를 섞어가며 욕을 해도 '표현의 자유'와 '창작의 자유'의 헌법적 권리로 보호받는다. 다만, 놀리는 대상을 정확히 딱 꼬집어 지칭하지 않는 한에서. 가명만 써도 되니 이 얼마나 좋은 매체인지. 실명만 아니면 얼마든지 양파 까듯 깔 수 있고 비속어와 욕설을 해도 된다. 소설 속에 욕설을 대신해 주거나 상대방의 어리석음을 보여 줄 '캐릭터'만 만든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 이 캐릭터의 입으로 대신하여 어리석은 대상에 대한 욕과 비난, 희화화를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어리석은 사람들과 세상을 마음껏 조롱하고 풍자하고 희화화한 책으로 여러 작품이 있지만, 그중 이 책도 꼽을 수 있다. 바로 윈스턴 그룸의 『포레스트 검프』




사실 우리에게 『포레스트 검프』는 원작인 소설보다, 영화가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영화는 순수하고 착한 마음을 가진 포레스트 검프가 부조리한 세상 속에서 좌충우돌 뭔가를 경험하면서 배워가는 전반적으로 따뜻한 영화다. 반면에, 원작은 소설은 따뜻함보다는 풍자와 희화화가 있는 '블랙코미디'에 가깝다.


우선 포레스트 검프 자체가 순둥순둥하지 않다. 물론 영화에서처럼 지능이 어린아이 수준(일상생활에 관해서만! 수학이나 물리학, 운동신경, 음악적 재능은 보통 사람들보다 월등히 뛰어나다)이어서, 음흉한 생각도 꽤 많이 하고 욕도 잘하며, 사람에 대한 호불호도 강해서 모든 인간에게 호의적으로 잘해 주는 건 아니다.


포레스트의 엄마도 마찬가지. 영화에서는 뭔가 강한 엄마의 이미지이지만, 책에서는 강한 엄마의 면모도 있지만 대부분 눈물로 밤을 지새우거나, 구빈원에 들어가 신교도와 도망가고 그런 삶을 산다. 포레스트가 좋아하는 여자친구도 마냥 훌륭하고 이상적인 여성은 아니다. 그냥 평범하달까. 첫 남자친구를 만나는 것에서부터, 그 남자친구와 한 일, 그리고 그 이후로도 무수히 많이 겪었던 실패한 사랑 이야기는 이상적인 여성이라기보다, 흘러가는 대로 살다가 '호기심', 혹은 '남자에 대한 막연한 낙관'으로 실수를 저지르는 평범한 여성이다.


주인공, 포레스트 또한 이런 캐릭터의 연장이다. 단지 일상생활을 하는 데에 어린아이 수준의 지능을 가졌다고 하지만, 본인 스스로 어리석은 사람이 되는 걸 택하기도 했다(그럴 때마다 여자친구가 떠나거나 경찰한테 잡혀 감).


셰익스피어가 리어왕과 그 주위 일당들의 어리석고 욕심 많은 모습을, '광대 혹은 바보'로 번역되는 '백치'로 비꼬고 폭로했듯, 『포레스트 검프』는 포레스트 검프라는 '백치'로 당시 미국 사회의 어리석은 모습과 베트남 전쟁의 참혹함, 비인간성을 블랙코미디 형식으로 풀어낸다. (소설 『포레스트 검프』 안에서도 「리어왕」이 언급되며, 포레스트 검프가 「리어왕」 속 '글로스터 백작'을 연기하다가 실수로 세트장에 불을 내는 에피소드도 있다)


원작자는 자신이 이 작품으로 하고 싶었던 말을, 작품 맨 마지막에 배치했다. 세상의 온갖 웃기고 어리석고 가지각색의 병폐로 꽉 찬 사회 구조와 흐름 속에서, 이 세상의 어리석음의 흐름을 따라 살면서도 그래도 옳은 일을 하려고 애써야 한다는 것. 이 말은 참말 맞는 말이다.


그치만 이 얘긴 해야겠어. 때때로 밤에 별을 올려다보면, 글고 거기 쫙 펼쳐져 있는 하늘을 보면, 나도 내 인생을 죄다 기억하진 못한단 생각이 들어. 난 아직도 딴 사람들과 똑같이 꿈을 갖고 있어. 글고 요렇게 했으면 조렇게 달라졌을 텐데 하는 생각도 많이 해. 근데 갑자기 난 마흔, 쉰, 예술 살이 돼버렸어. 알아? 


음, 그게 어떻다는 거야? 난 백치야. 그치만 대부분, 어쨌든 간에 난 옳은 일을 하려고 했어. 글고 꿈은 그냥 꿈이야. 안 그래? 따라서 딴 건 어떤지 몰라도, 난 이거 하난 생각해. 난 언제든지 내 인생을 되돌아보면서 말할 수 있다는 거. 적어도 난 지겨운 인생은 살지 않았다고.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어? 


윈스턴 그룸, 『포레스트 검프』, 미래인 (p. 336-33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