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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노보노, 오늘 하루는 어땠어?
이가라시 미키오 지음, 고주영 옮김 / 놀 / 2019년 2월
평점 :
인간이 없는 곳. 바다와 숲, 강과 절벽이 있고, 매일매일 잔잔하지만 소박한 행복이 있는 그곳. 바로 #보노보노 와 #포로리, #너부리 와 그의 친구들이 사는 곳. 나도 이곳에 놀러 가고 싶고, 그 친구들과 함께 살고 싶다. 철썩철썩 파도치는 소리에 아침잠에서 깨고, 해안 절벽 아래 시원히 펼쳐진 바다 뒤로 노랗게 떠오르는 태양. 조개밥을 먹고 숲에 놀러 가, 나무속에서 나뭇잎 이불을 덮고 자는 포로리를 만나고, 포로리와 한참 놀다가 '취미라는 게 뭔지', '왜 우린 걷는 걸 좋아하지' 등 의문이 생기면 포로리처럼 나무속에 사는 너부리에게 물으러 가고. 셋이 머리를 한참 맞대고 궁리하다가 그래도 모르겠으면 똑똑하고 차분한 야옹이형네 굴에 놀러 가고 그래도 모르겠으면, 너부리 아버지나 보노보노 아버지에게 물어보고, 때때로 숲에서 처음 만난 친구에게 물어도 보고 그러고 싶다.
가끔은 우연히 생각났지만 그게 뭔지 잘 생각이 안 나는 그것이 뭔지 고민고민해보기도 하고, 때로는 어렸을 적에 내가 좋아하던 것도 떠올려 보고, 또 그것일 간직해 두던 장소도 생각해 보며 하루를 지내고, 때로는 너무 맛없는 음식에 충격을 받아서 그 충격을 또 한 번 느껴보고자 계속 맛보며 충격받아보고, 때로는 꿈이란 게 왜 이상한지 궁리하며 친구들과 토론해 보고, 우연히 발견한 친구들의 사소한 습관에 즐거워하고, 몇 년에 한 번 걸린 독감을 미워하고, 미워하고 끝까지 미워해서 몸이 타들어가듯 뜨거워질 때까지 감기를 미워해서 그 감기가 오줌이 되어 나오도록 해보고, 살면서 한 번쯤 나와 똑같이 생긴 사람을 찾으러 모험을 떠나고, 그렇게 정말 우연히 나와 똑같이 생긴 사람을 만나 반가워하고, 그 사람과 나의 차이점을 또 발견해서 놀라거나 즐거워하고, 가끔은 외출한 가족의 빈자리를 느끼며 새로운 감각 속으로 빠져들기도 하고, 소박해게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나의 취미란 무엇인지 생각하며 별일 없이 소소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싶다.
매일 소소한 별일이 일어나는 곳, 보노보노와 그 친구들이 사는 곳에 나도 같이 살고 싶다.

『보노보노, 오늘 하루는 어땠어?』는 1984년부터 현재까지 연재되고 있는 『보노보노』 시리즈 중에서 원작자인 #이가라시미키오 씨가 엄선한 18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35년간 연재된 무수히 많은 이야기 중 작가가 뽑은 이야기인 만큼, 보노보노의 진수가 느껴지는 베스트 에피소드라고 해야 할까.
피식, 웃음이 나오는 에피소드가 있다. '나에게 취미란?' '나에게 소중한 것이란?' 등 나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하는 에피소드가 있다. 가족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에피소드가 있다. 친구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에피소드가 있다. 맛있는 음식이란 무얼까 생각하게 하는 에피소드가 있다. 그 외에도 많은 것들을 담고 있다.
『보노보노』를 철학적인 만화라고 하는데, 음, 철학적이라고 하면 너무 무겁게 느껴져 표지를 펼쳐 보지 않을 수 있으니까 철학적이라고 하기보단 '여백이 있는 만화'라고 하면 어떨까.
『보노보노』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휙휙 봐도 재밌다. 때로는 보노보노와 보노보노 친구들이 던지는 질문을 따라가며 나도 그 답을 찾는 과정에서 '생각'을 하게 되는데, 이 '생각'을 하게 되는 지점은 저자가 던져놓은 '여백'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이 여백을 채우는 건 순수하게 독자의 몫이다. 이 여백이 독자의 깊은 생각을 도출해 철학으로 채울 수 있고, 그냥 재미난 잡생각을 떠올리게 할 수도 있고, 또는 아무 생각 없이 봐도 무방하니까.

나는 이번에 『보노보노, 오늘 하루는 어땠어?』를 여러 날에 걸쳐 자기 전에 읽었는데 읽으니 자기 전에 차분해지고 좋았다. 『보노보노』는 대부분의 그림이 칸 안에 다 그려져 있다. 아주 넓은 자연이 그려진 것도, 숲도, 나무도, 보노보노의 얼굴이 클로즈 업된 부분도 몽땅 칸 안에 있어서 만화 자체가 느릿하고 빈 공간이 많다는 느낌이 든다. 이 칸과 저 칸을 넘나드는 만화와는 사뭇 다른 느린 호흡을 가지고 있는데, 그래서 밤에 읽기에 좋았다. 몸도 마음도 차분해지면서, '와, 나도 이곳에 이 친구들과 함께 근심 걱정 없이 살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이 친구들도 이 친구 나름대로 고민거리가 있지만) 몸도 마음도 노곤해지면서, 느릿느릿, 아무려나 다 좋다, 이런 느낌...
온 신경을 곤두세운 채 스트레스를 받으며 일상을 보내는데, 그 속에서 만난 느림 템포의 보노보노와 그 친구들 이야기는 가빠진 내 호흡을 가다듬고, 곤두선 신경을 누그러 뜨려 주었다.
『보노보노, 오늘 하루는 어땠어?』를 읽으며, 보노보노의 친구들처럼 나 역시 하나의 질문을 내게 던졌는데 그 질문은 바로,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뭘까' 였다. 아직 이 질문의 답은 찾아가고 있는 중인데, 나도 이 친구들처럼 이 방법, 저 방법 찾아 궁리하며 나만의 답을 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