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모험 - 인간과 나무가 걸어온 지적이고 아름다운 여정
맥스 애덤스 지음, 김희정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7월
평점 :
품절


언제였더라, 5년은 더 된 것 같다. 어느 날 티비를 봤는데 식물을 다룬 다큐를 방송하였다. 제작사는 아마도 BBC였던 것 같다. 식물의 조상, 식물의 태동, 식물의 진화를 다룬 다큐멘터리였는데 내용이 정말 놀라웠다. 내게는 식물이 그냥 땅에 붙박혀 자라는 그 무엇일 뿐으로, 아니 평상시에는 살아있는 생물로도 잘 여기지 않는다. 머리로는 분명 살아있는 생명체라는 걸 알지만, 보통은 자갈이나, 바위, 건물이 있는 것처럼 그냥 유형의 무생물체로 인식할 때가 많다. 식물을 좋아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식물을 키우거나 함께 벗하는 사람 외에는 대부분 나처럼 생각하지 않을까. 늘 이렇게만 생각했던 나인데, 어느 날 그 식물 다큐멘터리를 보고 내 생각이 완전히 180도로 바뀌었다. 기존의 인식이 완전히 바뀌었달까.

그 다큐에서 식물은 동물만큼, 아니 어쩌면 동물보다도 더 치열하게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머리를 써서 전략을 세우고, 때론 각자도생, 때로는 식물들끼리 힘을 합하거나 개미나 기타 곤충, 다른 식물들과 공존공생하며 지구에서 살아가는 존재였다. 머리가 쾅! 너무 놀랍고, 너무나 이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산다는 사실이 눈물겹도록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래서 식물에 관심은 있었지만, 식물도 생물학의 분과 학문이어서 어렵거나 딱딱했다. 그 다큐처럼 나같이 식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도 이해하기 쉽고, 흥미롭게 다가갈 수 있는 작품을 보고 싶었다. 이번에 식물을 말랑말랑하게 다룬 신간으로 나와 반가운 마음으로 읽어 보았다.

저자는 고고학자 맥스 애덤스. 영국 사람으로 고고학자이면서 숲 전문가이다. 이 책을 읽어보면, 고고학자라기보다는 식물 전문가, 나무 심기의 달인 같은 인상이다.

주제가 '나무'인데, 에세이처럼 나무에 관해 말랑말랑하게 이야기를 쓰고 있다. 저자가 지금 말하는 나무가 어떻게 생긴 나무인지 전혀 감이 안 잡힐 때도 있지만, 꼭 그 나무에 대해 모르더라도 충분히 읽을 수 있는 수준(모르면 바로 인터넷 검색 고고). 전반적으로 저자의 식물에 대한 가벼운 생각이나, 식물의 놀라운 능력, 영국에서 자생하는 소나무 이야기, 나무 심어야 할 때 알아두어야 할 것 등등을 다루고 있다.

내가 제일 흥미롭게 읽은 부분은 역시나 <식물의 놀라운 능력>

나무가 먹성 좋은 코끼리와 기린과 대결하는 것이 흥미롭다. 우선, 아프리카에 사는 나무는 코끼리나 기린같이, 키는 큰데 엄청난 먹성을 자랑하는 초식 동물이 골치다. 이들이 하루에 먹어치우는 양은 정말로 어마어마하다. 뇌나 감각 기간이 없는 나무는, 어떻게 신기하게도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나무는 일단 높이높이 키를 키웠다. 그래도 코끼리와 기리는 냠냠. 그러자 코끼리 코와 기린의 입이 닿는 부분은 딱딱하고 날카로운 가시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기서 끝이냐, 결코 끝이 아니다. 나무들은 우리가 볼 때 언제나 그 자리에 죽은 듯 서 있는 것처럼 보이고, 그래서 나무들끼리 아무런 대화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나무들은 코끼리와 기린이 나타나면, 잡아먹히는 나무가 살신성인의 자세로 어떤 화학물질을 뿜어낸다. 그 물질은 바람을 타고, 나무들에게 전달되는데 이 화학물질을 받은 나무들은 코끼리와 기린이 먹기 힘들게 나뭇잎의 맛을 변형시킨다. 독이라고 할까. 여기서 또 재밌는 건 기린은 이런 화학물질을 거부감 없이 먹을 수 있도록 진화되었다. 진화가, 진화와 진화로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영특한(?) 나무는 개미를 이용해 코끼리와 기린을 쫓아 버린단다. 코끼리와 기린이 떴다 하면 나무가 특정 물질을 분비해 개미 떼가 나무를 온통 뒤덮도록 한다. 개미가 까맣게 덮고 있어서 코끼리와 기린이 나뭇잎을 먹지 못하고 돌아간다고. 정말 놀랍지 않나.

뇌와 감각기관은 없지만 나무는 우리와 완전히 다른 그 무언가로 세상을 느끼고, 세상과 소통하며,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정말 놀라움. 이런 놀라운 지식을 하나씩 알아갈 때 왠지 모르게 세상을 살아갈 힘이 나고, 나도 열심히 그리고 치열하게 살고픈 마음이 든다. 참 좋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왕초보 유튜브 부업왕 - 소소한 용돈부터 월세 수익까지 현직 유튜버의 영업비밀 대공개!
수다쟁이쭌(문준희) 지음 / 진서원 / 201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즘은 거의 혼자 밥을 먹으니 종종 유튜브를 본다. 그러다가 우연히 #해그린달 님의 유튜브 #브이로그 를 보았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색감과 영화 못지않은 퀄리티여서 며칠간 홀린 듯 해그린달 님의 영상을 보았다. 매 에피소드마다 주제가 다르지만 대체로 집에서 요리하고, 홈 카페하고 살림 사는 이야기다. 소재는 일상적이지만, 구성이나 디테일이 전문가 수준을 뺨친다. 직업적으로 영상을 제작하시는 분들도 처음부터 끝까지 1인으로 구상하고, 대본 쓰고, 촬영하고, 편집하라고 하면 이런 고퀄의 결과를 내기 힘들 것 같다.

그리고 해그린달 님의 브이로그의 좋은 점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이 편안해지게 만든다는 매력이 있고, 그래서 그런지 해그린달 님처럼 일상을 그렇게 편하고, 여유롭고 정갈하게 살고 싶은 마음을 자극한다. 꼭, 따라 하고 싶게 만드는 뭔가가 있다. 그래서 해그린달 님 영상 몇 개 보고, 나도?! 이런 생각을 잠시 했었다. 마침 독립한 지도 얼마 안 됐고, 누구의 눈치도 볼 것 없이 내 하고 싶은 거 영상으로 담고, 그걸로 부수입까지 만들면 참 좋지 않을까 싶었던 것!

하지만 현실은 또르르... 본래 유튜브도 잘 보지 않고, 영상은커녕 영혼 없는 밥 사진이나 인증 사진 말고는 사진도 잘 안 찍는데. 그래서 포기. 그래도 뭐랄까, 좀 미련은 있었다. 내가 포기한 데에는 무엇보다 막막함이 컸던 것 같고, 내가 제일 먼저 접한 유튜브 브이로그가 전문가 못지않은 퀄리티를 내는 해그린달 님의 영상이었던 게 심리적 진입장벽을 상당히 높였던 것 같다. 그러다가 책 카페 서평단 모집에서 『왕초보 유튜브 부업왕』이 있는 걸 보고 신청하게 되었다.




제목대로 유튜브로 부수입 창출하고 싶은 마음만 있지 실제 유튜브에 대해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을 위한 책이다.

우선 유튜브의 성격을 소개한다. 유튜브는 단순히 영상 공유 사이트가 아니라 커뮤니티라는 것.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특정 소재를 가지고 만든 창작물을 올리면, 그 소재에 관심 있는 사람이 그 영상을 보고 하나둘씩 모여 결국 하나의 커뮤니티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유튜브가 장소를 마련해 주면, 그 장소에서 유튜버는 이야깃거리나 관심사를 제공하고 모여든 시청자들은 하나의 커뮤니티를 만든다. 그래서 저자는 유튜버가 시청자들이 쓴 댓글에 덧글을 다는 게 중요하다고 하며, 시청자의 의견이나 생각을 잘 피드백해 다음 제작에 참고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이 책은 구독자 수별로 수익 단계를 소개하며 우리 같은 왕초보들은 큰 욕심내지 말고, 그냥 일주일에 3분 정도의 짧은 영상을 2~3회 꾸준히 올릴 것을 추천한다. 처음에는 구독자가 0이겠지만, 꾸준히 영상을 올리면 구독자가 조금씩 늘다가 어느 순간 팍 늘 수 있다고.

유튜브로 부수입을 얻는 사람은 크게 세 종류. 우선 직장인으로 부업으로 유튜브를 하는 사람, 어느 분야에 전문 지식을 쌓은 분들이 노후 준비를 하기 위해 유튜브를 하는 사람, 창업 준비로 유튜브 하는 사람. 여기서 세 번째 창업 준비로 유튜브 하는 사람은, 창업이 우선이기보다는 취미 생활을 유튜브로 공유하다가 창업하는 케이스가 실렸다.

이외에도 실용적인 내용이 많이 담겨 있다. 직장생활하면서 부업으로 유튜브 하기가 쉽지 않은데, 이 책은 전업이든 부업이든 유튜브를 할 수 있는 하루 계획부터 점검하고, 아이템 선정, 기획, 제작, 업로드까지 망라한다. 책 제목에 '왕초보'가 들어가는 만큼, 유튜버가 되고 싶은 분께 여러 번 당부하는 말은 처음부터 큰돈 쓰지 말라는 것. 있는 핸드폰으로 촬영하면 되고, 영상에 들어갈 사진이나 음악은 저작권에 구애 없는 무료 사이트에서 사용하면 된다고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조언을 한다.

진짜 기본 of 기본을 다룬 책. 개인적으로 영상 편집 프로그램에 대해 하나도 모르는데, 이에 대한 부분이 좋았다.

유튜브로 부업 하고 싶은 분은 참고해도 좋을 책.

보통 유튜브 크리에이터라고 하면, 먹방하는 유튜버나 뷰티, 여행, 리뷰하는 분들을 많이 생각하지만 이 외에도 무궁무진한 소재를 가지고 유튜브를 할 수 있다. 아이디어만 있다면 그 무엇이든 영상으로 만들어 올릴 수 있고, 누구든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합법적이어야 하며, 누군가를 불쾌하거나 곤혹스럽게 하지 않는 선에서. 나는 무슨 아이템을 찾아 볼끄낭. ㅎㅎ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열세 살의 여름
이윤희 지음 / 창비 / 201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러스트레이터이자 만화가, 이윤희 작가의 신작. 『열세 살의 여름』


1998년 초등학교 6학년인 '해원'이는 아버지가 출장 중이신 바닷가로 온 가족이 휴가를 떠난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해수욕장을 벗어나, 좀 더 멀리 한적한 바닷가로 간 해원이네. 해원이는 바다에서 노는데, 은연중에 그곳에 놀러 온 연인들이 신경 쓰인다. 그곳에서 계속 헤엄치며 놀다가 어느 으슥한 갯바위에서 같은 반 남자아이인 '산호'를 보게 된다. 허겁지겁 언니에게로 도망친 해원. 평상시 알은척도 하지 않던 산호인데 이때부터 계속 신경 쓰인다.


휴가임에도 아버지 일은 계속 바빴고 화가 난 어머니는 다시 서울로 돌아가려고 하신다. 바다가 한 번 더 보고 싶었던 해원이는, 부모님께 부탁해서 다시 바닷가로 갔다. 그러다 갑자기 바람이 불어 해원이의 모자가 날아갔다. 모두 포기를 하고 있을 때 산호가 해원이의 모자를 들고 나타났다. 서로 부끄러워하는 해원이와 산호. 그렇게 사랑이 인사하며 찾아온 순간, 열세 살의 여름...


이후의 이야기는 개학을 하고 나서 이야기다. 해원이의 학교에서, 등하굣길에서, 집에서의 일들이 이어진다.


학교에서 만난 산호와 해원은 여전히 서먹서먹하다. 둘 다 친한 친구와 대화하는 편으로 평소에는 말수가 적다. 그래도 항상 서로를 신경 쓴다. 내색하지 않고. 열세 살, 그때의 사랑의 방식이었다.



이 작품의 배경은 1998년. 그 시대의 많은 모습이 담겨 있다. 한창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공포물, 남자아이들이 여자아이들 괴롭히고 놀리던 광경, 단골 분식집이 없어지고 새로 들어선 편의점, 비디오, 공중전화. 추억이 곧 하나의 작품이 된다. 그리고 자세히 묘사되어 있진 않지만, IMF 직후라 아버지들이 실직을 많이 했고, 먹고살기 위해 어머니들이 직장 생활에 뛰어든 모습도 열세 살의 시각에서 그려진다. '우리 집에 어떤 변화가 생겼다'라고.


열세 살은 어떤 시기일까.


어린이에서 청소년으로 변화되는 시기다. 처음 해원이가 바닷가에서 즐겁게 노는 연인들을 봤을 때 그 표정. 아마 어렸을 때는 그런 모습이 눈에 보여도,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의 풍경이었을 텐데 열세 살인 해원이에겐 눈에 띄는 모습이었을 것이다. 느닷없이 눈에 들어온 연인처럼, 느닷없이 해원이에게 존재감이 생긴 산호. 그렇게 이성이 신경 쓰이는 사춘기가 다가온 것이다. 아직 완전한 사춘기는 아니지만 그 중간 어디쯤에 있는.


생각만 하면 설레고, 일상의 아주 작은 일들까지도 다 이야기하고 싶고, 편지에 담아 주고 싶은.


산호는 아버지가 계신 바다로 완전히 내려간다. 그 이후로 해원이와 산호는 다신 만나지 못한다. 그러나 산호에게 편지가 왔고, 해원이는 산호에게 말해주고 싶은 것들을 편지에 쓸 생각에 설렌다. 그러고 끝이 나는데, 그렇다면 이 작품은 열린 결말로 보아도 될까. 보통의 경우, 편지가 점점 뜸해지다가 각자의 장소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사랑을 하게 되고, 또다시 각자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어쩌면 그래서 해원이가 선택했던 곡인 엘가의 '사랑의 인사'는 마음이 편안하고 기분 좋은 느낌이 있지만, 중반 이후로는 슬픈 느낌이 감도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회자정리.


중요한 것은, 그때 그 만남과 그 만남으로 인한 우리의 감정일 것이다. 풋풋한, 설레는, 긴장되는, 그리고 정말로 기쁘고 슬픈. 이 작품은 그 시절, 그때 우리 마음을 해원이와 산호로 잘 표현해 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철학이 필요한 순간 - 삶의 의미를 되찾는 10가지 생각
스벤 브링크만 지음, 강경이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읽고서, 이 책을 읽는 순간순간이 바로 철학이 필요한 순간이 아닐까 싶었다. 철학에 대한 정의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스스로 생각하는 것'을 철학이라고 했을 때 이 책은 첫 장을 펼친 순간부터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각까지 나 스스로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이 책은 나를 철학하게 했고, 때로는 더욱 강한 철학을 원하게 했다. 이유인즉슨, 저자의 생각과 내 생각이 달라서였다. 저자의 생각에 내가 전적으로 동의했다면 철학이 들어설 여지는 없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나는 저자의 의견에 반대하며 출발했다.

책은 우디 앨런의 말에서부터 시작한다. 2014년 우디 앨런은 영화 <매직 인 더 문라이트>를 발표하고 기자회견을 했다. 거기에서 우디 앨런은 '삶은 의미 없다'고 말했다. '삶의 의미 없음'을 뒷받침하기 위해 현대 천체물리학의 이론을 갖다 쓴다. 우주는 엔트로피 법칙에 지배받으며 끊임없이 무너지고 있다고. 결국에는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으리라고. 이런 사실은 사람을 울적하게 만들고, 허무주의로 빠질 수 있게 하며 이런 허무주의는 도구주의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목적으로서의 삶이 아닌 도구로서의 삶으로 연결한다고 한다.

저자는 목적은 좋아하나, 도구는 싫어한다. 현대 자본주의 시대는 철학의 시대였던 고대 그리스 시대와 사뭇 다르며, 삶의 거의 모든 것들을 도구화한다고 한다. 그래서 무엇이든 돈으로 교환 가능한 세상이라고. 나, 너, 우리 등 관계를 비롯해 모든 것들을. 이런 삶에서 어떤 진정한 기쁨이 있을지 반문한다.

그러므로 도구화를 극복하고, 목적으로서의 삶이나 쓸모없음의 쓸모를 지향하는 삶이 옳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자신의 주장에 힘을 실어줄 10명의 철학자를 소개하고, 그들의 철학 이론을 이야기한다.




이 책을 읽고 나는 정말 '철학했다'. 문장 하나하나 읽을 때마다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고, 그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헤집었고, 의문도 들었으며, 동의도 했고, 결국엔 결론에 이르지 못하고 알 수 없음이란 마침표를 찍었다. 철학의 하나하나의 이론을 떠나서 과연 철학이란 무엇이냐는 생각도 들었다. 철학자 개개인의 혼자 생각인 걸까. 과연 학문으로서 정당성이 있는지 의문스러웠다. 철학자와 그 사람이 남긴 저서를 추종하거나 인정하는 무리가 있어, 철학사에 그 사람의 견해나 주장을 편입시키면 하나의 철학이 되는 것인지 의문스러웠다. 호응을 받으면 '철학이 되는 것'이고, 호응을 받지 못하면 '철학이 아닌 것'이 되는지. 자의적인 느낌이 다분하다. 어쩌면은 서양 철학의 특성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철학에 대해 잘 모르지만, 서양 철학은 고대 그리스 시대 철학의 전통을 이어, 철학자 개인의 의문이나 가설을 먼저 상정하고 그에 대한 자신의 논리와 생각을 펼친다. 그래서 세상을 꿰뚫고 통찰하지 못하고, 논고에서 맨 처음 상정한 '그 세계, 그 논리' 안에서만 수용이 되는 그런 것이 아닐까 싶었다. 자의적이고, 이것과 저것이 너무나 뚜렷이 나뉜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 책의 맨 처음 나오는 우디 앨런의 말도, 나는 전혀 허무적이거나 도구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여기서 희망을 보았고, 그 자체로 삶은 의미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우디 앨런이 말한 문장을 읽고서 저자와 나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한 것이다. (진짜 이런 마주침의 순간이야말로, '철학이 필요한 순간'이 아닐까!)

본문에서도 역시 마찬가지다. 저자는 최대한 쉽게 말을 하지만 군데군데 어려웠고, 잘 돌아가지 않는 머리로, 이해를 해보려고 했을 때 저자의 생각에 동의하기보다는 반박하고 싶은 논쟁하고 싶은 생각이 많이 들었다. (뭔가 이렇게 상대방이 주장하고 싶어서 근질거리게 만드는 사람이야말로 철학자라 생각하는데, 이런 의미에서 저자는 진정한 철학자인 듯하다)

삶을 목적으로 사는 삶은 어떤 삶인지, 도구로서 사는 삶은 어떤 삶인지. 또 그런 삶은 틀린 삶일까. 삶에 너무 많은 인위적인 의미를 부여할 때, 삶이 나를 집어삼킬 수도 있다고 믿는다. 어쨌거나 시간의 흐름 속에 나와 우리는 살아간다. 생각의 마주침, 생각의 순간이 우리에게 철학의 순간일 터. 중요한 것은 책 속의 말이나 저자의 생각이 맞냐 아니냐 보다,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 중요한 일일 것이다.

저자가 이 글을 쓴 의도와는 전혀 다른 방향이겠지만, 이 책을 읽고 난 철학을 했고, 매 순간 철학이 필요했다. 이 책에 실린 철학자들처럼, 나 스스로 생각한 것이다. 그것으로 됐다고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적 생활의 설계 - 넘치는 정보를 내것으로 낚아채는 지식 탐구 생활
호리 마사타케 지음, 홍미화 옮김 / 홍익 / 201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공부를 시작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영어 단어 외우고, 불어 공부하고, 나의 로망 수학까지 공부하고 있다. 시작한 지 열흘 정도. 요즘 재테크에 관심이 생겨 네이버 모 카페에 가입했는데, 여기에 공부 인증 메뉴가 있다. 다들 일상이 바쁜데도 하루 10분씩 짬을 내어 공부하는 분들이 많았고, 그 모습이 정말 멋져 보였다. 내가 바라는 모습. 그래서 나도 따라 하기 시작! 공부한 지 10일, 긴 시간은 아니지만 아직까지 하루도 빼먹지 않고 요행도 부리지 않고 공부하고 있다. 어떤 행동이 습관이 되는 데엔 21일이 걸린다고 하던데 앞으로 열흘 정도 더 하면, 완전히 습관 되겠지. 그날이 어서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사실 내가 하는 일과 영어/불어/수학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 영어와 불어를 안다면 조금은 도움이 되겠지. 그래도 직접적인 관련은 없다. 더군다나 수학은 진짜 아무런 상관이 없는 학문이다. 그래도 하고 있다.

고등학교 때 친구 집에 놀러 갔더니 책상 위에 미적분이 풀어진 종이뭉치가 널브러져 있었다. 궁금해서 친구에게 물어보니 친구의 형님이 시간 날 때마다 취미로 미적분 문제를 푼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 당시 친구의 형님은 중견기업을 운영하는 사장이었다.

'아! 삶의 멋이라는 게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나를 압도했다. 지금도 나는 '멋진 과학'도 그날 종이 위에 깔끔한 연필로 풀어진 정확한 미적분 문제의 해답처럼 삶의 멋이 느껴져야 한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

이기진, 『맛있는 물리』, 홍익출판사, 2010, (10쪽)
어쩌면 예전에 읽은 이기진 교수의 책의 문장이 내 마음 깊은 곳에 있어서인지도?! 수학이 취미라니, 정말 멋진 취미 아닌가.

수학 공부하려고 몇 번 벼루다가 매번 흐지부지되었다. 혼자 공부하는 것은 역시 녹록지 않다. 이번에는 카페에 인증을 하니, 같은 공부를 하는 건 아니지만 함께 공부하는 분들이 있어 힘도 나고, 자극도 받고 여러모로 좋다. 앞으로도 꾸준히 한다면 나도 언젠가 위 발췌글 속 중견기업 사장처럼 복잡하고 어려운 수학 문제를 한껏 깔끔하고, 쉽게 풀이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그렇게 나를 증명하고 싶다. 누군가를 위한 게 아니라, 단지 나의 지적 유희와 만족을 위해서.



지적 생활을 위한 가이드북 같은 책이다. 제목의 '지적 생활'과 '설계'가 확 와닿지 않을 것이다. 뭔지는 알겠는데, 확실히는 모르겠는 것.

이 책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의 <1만 시간의 법칙>에 대해 먼저 말할 필요가 있다. <1만 시간의 법칙>이란 무엇이든 하루 3시간씩 10년 동안 공부, 자료 수집이나 연습을 하면 그 분야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법칙이다. 이 법칙의 핵심은, 일정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양'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의미. '양'을 쌓으면, '질'은 따라 올라간다는 것이다.

저자인 호리 마사타케는 자신의 예를 들었는데, 어느 날 '왕은 죽었다! 폐하 만세! (The king is dead, long live the king)'이라는 글이 인상 깊었고, 이 글이 계기가 되어 중세 프랑스 왕권에 대한 수많은 책들을 탐독하는 한편, 이 같은 표현을 사용한 기사를 15년이 넘게 수집하고 있단다. 단지 관심이 생겨서 시작했을 뿐인데, 시간이 흐르고 자료가 축적되자 이제는 에세이 한두 편 쓸 정도는 되었다고 한다.

이런 생활을 지적 생활이라 할 수 있고, 이런 지적 생활을 위해 일상을 어떻게 '설계'해야 하는지 알려 주는 것이 이 책의 목표다.

불확실한 세상에서 미래의 삶을 더 지혜롭고 풍요롭게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나는 그 해답이 '지적 생활'을 설계하는 사고방식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책에는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10년 후를 목표로 지금 할 수 있는 무엇'을 정리했습니다. 

그 첫 번째 열쇠는 '지적 생활'입니다. 지적 생활이란 한 마디로 말해서 우리가 정보와 마주하는 방식입니다. (...) 새로운 정보의 축적이 어떤 방식으로든 개입된다면 그것이 바로 '지적 생활'입니다. 

한 권의 책이나 새로운 정보와의 만남을 즐기다가 그것이 축적되면 자신의 삶을 어디로 향하게 할지 방향성을 의식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우리는 단순히 정보를 허비하는 일상이 아니라 하루하루를 성장하는 여정으로 바꿀 수 있게 됩니다. 

다른 하나의 열쇠는 '설계'입니다. 일주일에 한 권 읽는 생활과 두 권을 읽는 생활은 단기적으로 보면 별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3년, 5년 후면 커다란 차이를 만듭니다. 따라서 미래의 목표를 향해 얼마의 속도로 정보를 모을지 계획하고 하루하루 지적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일상의 설계라는 관점을 의식하는 일은 아주 중요합니다. (9-10쪽)

일상의 취미 생활을 단순히 시간을 보내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앞으로 자신을 이끌 '라이프 워크'로 성장시키는 것, 생활 속에서 쌓은 지식과 경험을 일하는 데 필요한 발상과 통찰로 쌓는 것, 이렇게 쌓아올린 나만의 개성을 무기 삼아 인생을 장기적으로 개척해가는 것, 이것이 바로 이 책이 이루려는 목표입니다. (14쪽) 

책의 앞부분에는 지적 생활이란 무엇인지, 여러 예가 나오고 책의 후반부에는 구체적으로 지적 생활을 실천할 수 있는 행동이나 설계 방향을 다룬다.

이 책에 '스톱워치를 활용하라'라는 내용이 있어 실생활에 바로 적용! 3일 전부터 스톱워치로 내 일상의 시간들을 기록하고 있다. 항상 시간이 모자란다고 생각했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뭘 하든 시간이 오래 걸렸다. 설거지 무려 35분~ 기절. >ㅁ< 어쩐지... 아무리 아끼려고 해도 수도 요금이 많이 나오더라. 시간도 낭비, 물도 낭비, 돈도 낭비. 설거지와 샤워 시간 줄이려고 노력 중.

이렇게 충분히 줄일 수 있는 시간을 아껴서, 저자가 말하고, 말콤 글래드웰이 말했던 1만 시간의 법칙을 나도 증명해 볼까 한다. 10년이라는 시간... 긴 것 같으면서도 짧다. 충분히 해볼 만한 시간이다. 지금 2019년에서 2009년을 되돌아보면 그렇지 않은지.

『지적 생활의 설계』를 읽고 가장 떠오른 사람은 다산 정약용이었다. 다산 선생이야말로, 지적 생활을 제대로 영위한 분이시다. 유배지에서 500권이 넘는 책을 저술할 수 있었던 것도 학문에 뜻을 두고, 그 뜻에 따라 책을 읽으면 필요한 부분을 그때그때 발췌했고, 그 발췌문들을 유배지에서 엮었기 때문에 짧은 시간 동안 그토록 많은 책을 펴내실 수 있었던 거다.

내가 다산 선생님만큼은 안 되겠지만, 그래도 내 나름 흡족할 만한 어떤 결과는 10년 동안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일단 해보는 거다!


+ 『지적 생활의 설계』를 읽고, 내가 애정하는 책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읽었다. 좋았음. +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