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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살의 여름
이윤희 지음 / 창비 / 2019년 7월
평점 :
일러스트레이터이자 만화가, 이윤희 작가의 신작. 『열세 살의 여름』
1998년 초등학교 6학년인 '해원'이는 아버지가 출장 중이신 바닷가로 온 가족이 휴가를 떠난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해수욕장을 벗어나, 좀 더 멀리 한적한 바닷가로 간 해원이네. 해원이는 바다에서 노는데, 은연중에 그곳에 놀러 온 연인들이 신경 쓰인다. 그곳에서 계속 헤엄치며 놀다가 어느 으슥한 갯바위에서 같은 반 남자아이인 '산호'를 보게 된다. 허겁지겁 언니에게로 도망친 해원. 평상시 알은척도 하지 않던 산호인데 이때부터 계속 신경 쓰인다.
휴가임에도 아버지 일은 계속 바빴고 화가 난 어머니는 다시 서울로 돌아가려고 하신다. 바다가 한 번 더 보고 싶었던 해원이는, 부모님께 부탁해서 다시 바닷가로 갔다. 그러다 갑자기 바람이 불어 해원이의 모자가 날아갔다. 모두 포기를 하고 있을 때 산호가 해원이의 모자를 들고 나타났다. 서로 부끄러워하는 해원이와 산호. 그렇게 사랑이 인사하며 찾아온 순간, 열세 살의 여름...

이후의 이야기는 개학을 하고 나서 이야기다. 해원이의 학교에서, 등하굣길에서, 집에서의 일들이 이어진다.
학교에서 만난 산호와 해원은 여전히 서먹서먹하다. 둘 다 친한 친구와 대화하는 편으로 평소에는 말수가 적다. 그래도 항상 서로를 신경 쓴다. 내색하지 않고. 열세 살, 그때의 사랑의 방식이었다.
이 작품의 배경은 1998년. 그 시대의 많은 모습이 담겨 있다. 한창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공포물, 남자아이들이 여자아이들 괴롭히고 놀리던 광경, 단골 분식집이 없어지고 새로 들어선 편의점, 비디오, 공중전화. 추억이 곧 하나의 작품이 된다. 그리고 자세히 묘사되어 있진 않지만, IMF 직후라 아버지들이 실직을 많이 했고, 먹고살기 위해 어머니들이 직장 생활에 뛰어든 모습도 열세 살의 시각에서 그려진다. '우리 집에 어떤 변화가 생겼다'라고.
열세 살은 어떤 시기일까.
어린이에서 청소년으로 변화되는 시기다. 처음 해원이가 바닷가에서 즐겁게 노는 연인들을 봤을 때 그 표정. 아마 어렸을 때는 그런 모습이 눈에 보여도,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의 풍경이었을 텐데 열세 살인 해원이에겐 눈에 띄는 모습이었을 것이다. 느닷없이 눈에 들어온 연인처럼, 느닷없이 해원이에게 존재감이 생긴 산호. 그렇게 이성이 신경 쓰이는 사춘기가 다가온 것이다. 아직 완전한 사춘기는 아니지만 그 중간 어디쯤에 있는.
생각만 하면 설레고, 일상의 아주 작은 일들까지도 다 이야기하고 싶고, 편지에 담아 주고 싶은.
산호는 아버지가 계신 바다로 완전히 내려간다. 그 이후로 해원이와 산호는 다신 만나지 못한다. 그러나 산호에게 편지가 왔고, 해원이는 산호에게 말해주고 싶은 것들을 편지에 쓸 생각에 설렌다. 그러고 끝이 나는데, 그렇다면 이 작품은 열린 결말로 보아도 될까. 보통의 경우, 편지가 점점 뜸해지다가 각자의 장소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사랑을 하게 되고, 또다시 각자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어쩌면 그래서 해원이가 선택했던 곡인 엘가의 '사랑의 인사'는 마음이 편안하고 기분 좋은 느낌이 있지만, 중반 이후로는 슬픈 느낌이 감도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회자정리.
중요한 것은, 그때 그 만남과 그 만남으로 인한 우리의 감정일 것이다. 풋풋한, 설레는, 긴장되는, 그리고 정말로 기쁘고 슬픈. 이 작품은 그 시절, 그때 우리 마음을 해원이와 산호로 잘 표현해 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