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뇌, 미래의 뇌
김대식 지음 / 해나무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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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kg의 작은 덩어리가 나를 비롯하여, 내가 바라보는 온 세상을 인식하고 이해한다. 이 1.5kg의 덩어리는 물로 채워진 작고 어두운 공간에 둥둥 떠있다. 이 덩어리는 스스로 먹고, 마시질 못한다. 혼자 움직일 수도 없고, 날카로운 것이 제 피부에 닿아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며 그 사실을 알지도 못한다. 그래서 고대 이집트 시대 미라 만드는 장인들은 이 덩어리가 몸에서 아무 쓸모 없는 것인 줄 알았다. 사자(死者)의 코를 통하여 이 덩어리를 긁어 파내었다. 그들의 믿음과 반대로 영혼은 잠시 떠났다가, 덩어리를 파내는 순간 파라오의 영혼은 순삭되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말한 1.5kg의 작은 덩어리는 바로 우리 몸에서 제일 중요한 '뇌'이다.


김대식 교수님이 '뇌'에 관한 책을 갖고 돌아오셨다. 그동안 역사, 책에 관한 책 등 분야를 막론하고 다양한 책들을 많이 내셨다. 이번에는 오랜만에 전공분야로 돌아오심! 개인적으로 반가웠다. 직업이 교수인 분들이 쓰는 책은 뭐니 뭐니 해도 전공분야의 책이 제일 재밌는 법. 이 책도 너무 재밌어서 단숨에 읽었고, 서평을 쓰기 위해 한 번 더 읽었다.

그런데... 읽을 땐 고개 끄떡끄떡 재밌게 읽지만, 돌아서면 다 까먹는 사실. 내가 기억력이 나빠서 그런가?! 노노. 내가 이 책을 읽고 다 까먹는 이유는 이 책에 다 설명되어 있다. 내 기억력이 나빠서라기보다는, 뇌 과학 분야가 나에게 낯선 분야이다 보니, 이 내용을 저장한 뇌 신경세포가 서로 연결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그렇다. 빠밤. 내가 알고 있는 다양한 지식들과 서로 잇고, 연결 지으면 훨씬 기억이 잘 날 것이며, 이걸 바탕으로 난 창의적인 생각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아직 뇌에 관해 잘 모르니까 돌아서면 까먹는다. 그래도 뇌의 어느 한 구석에 내가 읽고 이해한 내용들이 저장되겠지.

김대식 교수는 인공지능을 연구하시는 분인데, 인공지능을 제대로 연구하기 위해 우리 뇌를 공부하고 학위를 따셨다. 그래서 이 책도 우리 뇌와 인공지능에 대한 이야기가 종횡무진 이어진다. 하나만 전공하셨다면, 책 내용이 이렇게 풍부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우선 책은, 우리의 작은 뇌가 어떤 녀석인지 그 실체를 파헤친다. 아까 맨 위에 적었듯이 뇌는 우리 몸의 모든 요소를 다 컨트롤하면서 정작 자기 자신은 아무것도 보지도, 느끼지도 못한다. 눈 없고, 입 없고, 귀 없는 어떤 실체다. 대신에 다른 신체 요소들로부터 정보를 취합하여 하나의 세상을 창조해 낸다.

우리가 지금 눈 뜨고 바라보고 있는 이 세상이 진짜 이 세상 그대로의 세상일까. 김대식 교수는 알 수 없다고 말한다. 우선 우리가, 눈에 들어온 그대로를 보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뇌는 몇 가지 트릭을 써서, 우리에게 불필요한 정보들은 완전히 제거해 버린다. 우선 눈알 속에 들어있는 핏줄이나 기타 여러 가지 장애 요소들을 지워버린다. 분명 눈은 눈 속 핏줄들을 보지만, 뇌가 그 이미지를 지워버리기 때문에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맹점이라 불리는 눈 안의 거대한 구멍은, 아무것도 볼 수 없다. 하지만 뇌는, 맹점 주위의 세포들로 받아들인 이미지들을 복사해 가상 이미지들로 매워버린다. 시각뿐만 아니라 후각, 청각, 촉각 등 다 그렇다. 우리가 느끼는 모든 것은, 실제 하는 것이기보다는 뇌가 만든 것이다. 물론 아무것도 없는 데서 뇌가 만든 것은 아니다. 뭐랄까, 뇌 자체가 시뮬라시옹이라고 할까.

책에는 놀랍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다. 우리가 믿었던 것들이 진짜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으며 나의 생각이 진짜 나의 생각이 아닐 수 있음도 깨달았다(왼쪽 뇌, 오른쪽 뇌의 이야기 / 정당화하기 좋아하는 스토리텔링가 강한 우리 뇌).

우리 뇌에 대해서, 그리고 나아가 인공지능에 대해서 알고 싶은 분들께 추천한다. 글은 상당히 쉽고 재밌다. 어려울 수 있는 내용도 저자는 매우 쉽게 풀어 설명한다. 그만큼, 김대식 교수가 상당한 이해를 가지고 글을 썼다는 방증이다. 제대로 이해했다면 설명은 쉽게 할 수 있어야 하므로. 추천한다.

덧붙임 > 신경세포 간 연결을 해야 한다. 연결이 제일 중요! 창의력과 기억력은 '연결'이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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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과 똑같은 고민을 하는 나에게 - 늘 같은 곳을 헤매는 나를 위한 철학 상담소
마리 로베르 지음, 김도연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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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어느 날 가구를 사러 이케아에 갔다. 설레고 신나는 마음으로 가구를 구경하던 저자는 어느 순간 문득 불쾌한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누군가 '톡' 하고 건드리면 폭발해 버릴 것 같은 심정. 그때 그녀는 이케아 매장 한구석에 스피노자를 소환한다. 스피노자가 자신에게 커피 한 잔 건네주는 모습을 상상하며 천천히 불쾌한 감정에서 벗어났다고 한다(스피노자는 욕망에 대해 철학 했다).

저자는 이케아 매장에서의 경험을 계기로, 철학을 일상으로 끌어오고 싶었다고 한다. 철학자가 우리 인생 문제의 상담자가 되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며.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 저자, 마리 로베르는 일상에 철학을 끌어온다. 철학은 상아탑 속에 갇힌 고매한 학문이 아니고, 우리 일생 속 고민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실용적인 학문이라 주장한다. 우리에게 위기가 닥치더라도 지혜로운 철학자들의 주요 철학 개념을 떠올리고 우리 삶에 적용한다면 우리 또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을 것이라며.

저자는 우리 고민을 해결해 줄 수 있는 12명의 철학자와 그들의 주요 저서와 철학 개념을 소개한다.




① 밀
- 친구에게 진심을 말할 수 있을까 없을까. 저자는 이 문제에 대해 공리주의자 '밀'을 소환한다. 그였다면 진심을 말했을 것이라고. 그런데 그는 거짓말도 용인하긴 한단다. 다만, 두 가지를 충족한다면. 이견 없는 상황일 것, 거짓말이 허용되는 범위를 구체적으로 정했다면. 뭐 확실한 건 모르겠지만, 밀이라면 최대한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충족하는 길을 택하지 않았을까 싶다. 진심을 말해서 많은 사람들이 만족하고 좋아한다면 진심을 말하는 것을 택하고, 그 반대라면 거짓말을 선택할 거라고. 밀의 공리주의는 지금 우리 세계에서 아주 중요한 개념이다. 그런데 문제는 과연 사람의 만족을 정량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지, 그리고 밀은 양적 쾌락보다 질적 쾌락을 더 중요시했다는데 과연 이 두 가지를 인간이 구분하고 측정할 수 있는지가 관건일 것이다. 어려운 문제.


② 에피쿠로스
- 철학자 중에 제일 오해받는 철학자가 에피쿠로스가 아닐까 싶다. 소위 '쾌락주의자'라는 명칭 때문인데, 이 명칭의 이미지 때문에 많이들 오해한다. 에피쿠로스가 말하는 '행복한 상태'는 흥청망청 놀고, 먹고, 마시며,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상태가 아니라 그와 반대인 잠잠한 상태를 뜻한다. 침묵하며, 사색하고, 자연과 벗하는 삶! 오히려 금욕주의에 가까운 철학이다. 에피쿠로스는 평화와 행복을 방해하는 것에 대해 깊이 숙고한다. 그는 심적 평화에 제일 큰 장애는 '두려움'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철학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두려움을 하나하나 부숴버림! 그의 글을 읽으면 '햐, 정말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네!'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까지도 부숴버리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그의 의견에 동의한다 해도 돌아서면 여전히 두려움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수양이 부족하기 때문일까) 어쨌거나 그가 행복을 위해 조언한 말과 삶의 방식은 유익하다.

{ 에피쿠로스가 가장 관심을 기울인 문제는 행복하지 않다는 두려움에 머무르는 것이었다. 이 두려움을 없애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외부 세계에 덜 의존하고, 적게 가졌더라도 자족하며 존재의 기쁨을 최대한 누리는 것이다. (...) 그의 야망은 오로지 단순한 욕구를 충족하며 살아가는 것, 가능한 한 가장 소박한 취향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었다. (40쪽) }

③ 아리스토텔레스
- 아리스토텔레스는 용기, 절제, 침착하게 생활하는 지혜를 갖추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라고 주장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이런 주장으로 아리스토텔레스가 어떤 분위기를 자아냈는지 상상이 가능하다. 침착하며, 말보다는 실천이 앞선 사람이었을 듯. 이로 인해서 아우라도 대단했을 것 같다. 올바르게 행동하려고도 많이 노력했을 테지. 그는 올바르게 행동하겠다는 의지를 계속 다지다 보면, 어느 순간 모든 행동들이 그 의지를 따라간다고 했단다. 그리고 의미심장한 말도 남겼다.

{ 우리가 꾸준히 반복하는 일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다. 그러므로 가장 좋은 것은 단 한 번의 행동이 아니라 습관이다. (재인용, 59쪽) }


④ 니체
- 명언 장인, 니체. 니체는 사람마다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면서, 그 에너지가 우리를 더 멀리 나아가게 하는 '힘을 향한 의지'라고 했단다. 무기력한 허무주의 보다는 '적극적인 허무주의' 지향!

{ 우리는 삶에서 승리하기 위해 게으름과 두려움을 극복해야 한다. (77쪽) }

이 두 가지가 극복하기 참 어렵죠. 사람은 마음에 안 들어도 늘 하던 대로 살기 쉬운 존재이므로.

⑤ 스피노자
- 저자가 이 책을 쓰는데 계기가 된 철학자, 스피노자. 스피노자는 '욕망'에 대해 천착했다. 그는 욕망, 욕구, 의지, 충동은 보편적 가치이자 우리의 본성, 코나투스라고 했다. 우리가 살아움직이는 것은 바로 이 욕망 때문이라고. 인간이라면 당연히 욕망이 있고, 이 욕망이 바로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해주는 지표가 된다고 한다. 음, 맞는 말인 듯. 때때로는 '베블렌 효과'처럼 왜곡되기도 하지만, 자신의 욕망을 제대로 아는 것은 중요하다. 과연 저자가 이케아의 한구석에 스피노자를 소환한 일은 잘한 일이었다.


⑥ 플라톤
- 『향연』, 에로스에 대한 대화들. 남자와 여자, 사랑에 대한 이야기. 그나저나 플라톤의 『향연』도 읽어봐야 할 텐데.

⑦ 파스칼
- 신과 대화.... 이 분야는 내가 관심이 없어서.

⑧ 레비나스
- '타자'에 대해 철학한 레비나스. 레비나스가 말하는 타인은, 결코 우리와 같지 않은 인간이다. 우리와 전혀 다른 존재. 그래서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 타자를 제대로 이해하고 인식할 때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올바르게 인식할 수 있다.

⑨ 하이데거
- 하이데거는 근심과 불안,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한다고 한다. '죽음'을 사유하기. 우리 삶이 '죽음' 없이 성립할 수 있을까. 성립할 수 없다. 그러므로 죽음에 대해 사유하기.

⑩ 칸트
- 칸트는 사람들이 사랑의 변화무쌍한 감정에 속았다가, 욕망이 어느 정도 충족되고 관계도 일상적으로 정착되면 사랑의 감정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고 했단다. 참된 사랑은 감정의 기복이 덜하고, 굳건하다며 경험 보다 성찰을 중시한다. 흠, 맞는 말이긴 하지만 경험도 중요하다. 경험이 없다면 성찰이고, 이성이고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⑪ 베르그송
- 아, 베르그송. 베르그송 하면 프랑수아즈 사강의 『슬픔이여 안녕』이 떠오른다. 소설 속 여주가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베르그송 글 몇 번 보다가 떼려치우고 요가를 하던 장면이 생각난다. 어쨌든, 그 책 속에는 베르그송의 철학이 상당히 어렵다고 표현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마리 로베르의 책 속에는 뭐라고 설명되어 있을까. 베르그송에 의하면, '일'은 매우 중요하다며, 일 덕분에 우리는 한층 더 높은 단계로 들어서고 생각지도 못한 능력을 끌어낼 수 있다고 한다. 흠, 뭔가 상당히 막스 베버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⑫ 비트겐슈타인
- 비트겐슈타인은 문화권을 역사와 관습에 따라 진화한 고착된 언어라고 보았다. 언어로서 문화권을 나눌 수 있다고. 사실 언어 하면 '비트겐슈타인'이 떠오를 만큼 이 분야의 강자(?)이신데, 그래도 그분의 주장이 내가 볼 땐 좀 아리송한 부분이 좀 있다. 그래도 언어가 인간 사고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고 동의하며, 어느 집단이나 사회에 스며들기 위해서는 우선 그 집단의 언어 규칙에 익숙해지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도 동의한다. 같은 언어라도, 어느 조직, 어느 집단이냐에 따라 언어 규칙이 다르기 때문이다.

///​

철학은 고매해 보이지만, 사실 우리 일상과 떼려야 뗄 수 없다. 왜냐하면 철학자들은 일상의 문제를 가지고 고뇌하고 숙고했기 때문이다. 다만, 그들이 쓴 글이 우리 일상과 멀어서일 뿐. 비트겐슈타인의 주장처럼 우리가 노력해서 그들의 언어 규칙에 익숙해지면 될 터. 철학을 공부하고, 인문학을 공부하는 것은 다 그런 언어 규칙을 습득하는 과정이 아닌가 싶다.

이 책의 제목 『1년 전과 똑같은 고민을 하는 나에게』는 책 속의 한 챕터 제목을 조금 변형한 것 같다. 아리스토텔레스 편의 소 제목이 <나는 왜 1년 전과 똑같은 실수를 하는 걸까?>이기 때문. 제목만 보고 이 책을 선택해 읽으면 기대와 사뭇 다를 수 있다.

이 책은 12명의 철학자들의 주요 개념을 소개하며 일상에서 부딪히는 고민을 해결하는 데 목표를 둔다. 아니, 고민 해결보다도 철학을 친근하게 소개하는 책이랄까. 기대와 달랐지만, 어려울 수 있는 철학을 쉽고, 가볍게 잘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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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여행자
류시화 지음, 크리스토퍼 코어 그림 / 연금술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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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몇 년 전에 친구가 일본으로 워킹 떠나기 전에 류시화 시인의 여행 에세이 『지구별 여행자』를 줬다. 아마도 집에 있는 책 정리 목적으로 내게 줬겠지만, 책을 주면서 함께 건네준 글이 빼곡히 적힌 엽서 한 장으로 나는 읽기도 전에 이 책이 좋았다. 그리고 읽어보니 더 좋았다. 책이 당시에 너무 재밌어서 여러 번에 걸쳐 읽었었고, 그런 만큼 책 곳곳의 인상 깊은 구절들이 지금도 또렷이 기억난다. 또 이 책은 나의 고정관념이랄지, 편견이랄지 나의 그릇된 생각도 깨부쉈다. 시인이라는 '직업'과 시인의 시적인 '이름'만 가지고 사람을 판단하면 안 된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 이 책은 시적이기보다 웃기고 재밌다.

나에게 각별한 책, 이번에 새롭게 나왔다고 해서 기대하는 마음으로 읽어 보았다. 예전과 내 마음이 같을지. 혹은 새로운 느낌을 받을 것인지.



예전에는 『지구별 여행자』를 김영사에서 출판했는데 이번에 '연금술사'라는 출판사에서 출간했다. 내가 출판사의 시스템에 대해 잘 모른다. 좀 큰 출판사의 경우, 출판사 안에 새끼 출판사(?)를 두기도 하던데 김영사와 연금술사 간에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냥 계약 기간이 끝나서 새 출판사에서 새롭게 낸 건지. 일단 이번에 나온 연금술사 버전의 출판정보를 보면 1판 1쇄라 되어 있다. 이것만 보면, 연결고리 없이 아예 다른 출판사인 것 같다.

내용은 예전 책과 똑같다. 다만 차이점은 몇몇 에피소드 끝에 각주로 저자의 설명이 적혀 있다. 처음 에세이를 적었을 때와 지금 달라진 점을 설명해 놓은 것. 새롭게 각주가 달린 이야기 중에 슬픈 내용도 있다. 저자의 인도 친구 중 한국 관광객이나 일본 관광객을 상대로 가짜 목걸이를 파는 친구가 있었다. 사기를 치긴 치지만 사람이 순수하고 착해서 거의 손해 보고 사기를 치는 사람 중에 한 명이다. 이 사람은 워낙 가난해서 집을 단단한 벽돌이 아닌 흙으로 지었고, 그래서 인도에 우기가 지면 그 사람의 집 한 쪽 벽이 허물어진다. 친구의 사정이 안타까웠던 저자는, 돈을 빌려주어 벽돌을 사게 했는데 벽돌 운반비가 너무 많이 비쌌다. 그래서 친구는 손수 벽돌을 지고 날랐다. 하루에 10장씩. 몇 달을 매일 갠지스강을 건너 벽돌을 지고, 날랐는데 어느 날 또 갠지스 강의 물이 범람했고 몇 달이 노력이 한순간에 사라지고 말았다는 이야기. 그 친구는 자기 사정보다, 자기를 걱정해 주는 저자를 더 걱정하며 위로해주었다. 이 에피소드는 읽을 때마다 가슴이 먹먹하고, 마음이 아렸는데 이번에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번에 새로 읽으며 더 안타까웠던 건 저자가 추가로 적어 놓은 각주였다. 몇 해 전 이 친구가 갠지스 강에 발을 헛디뎌 정말로 갠지스 강 너머로 갔다는 이야기. 새삼 삶이란 무엇인지, 우리들의 노력은 무엇인지, 우리들의 운명은, 우리들의 꿈은 무엇인지 여러 생각이 떠올랐다.

{ 우리는 누구나 여행자다. 우리 모두 이 세상에 여행을 온 것이다. 더 배우고, 더 경험하고, 더 성장하기 위해. 이 여행을 마치고 떠날 때, 나는 신 앞에 서서 이것 하나만은 말할 수 있다. 나 자신이 여행자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노라고. 그래서 늘 길 위에 서 있고자 노력했다고. 내 배움은 학교가 아니라 길에서 얻어진 것이라고. (19쪽) }

이 책은 류시화 씨가 매년 인도 여행을 하며 겪었던 재미난 이야기나 깨달음의 순간들을 담고 있다. 깨달음이 꼭 진지하거나 엄숙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면 알 수 있다. 어이없거나 웃긴 에피소드 속에서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여행과 인생은 닮았다. 우리 모두, 류시화 씨처럼 지구별 여행자다. 우리가 류시화 씨처럼 어떤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우리도 인도로 떠나야 할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깨달음을 얻지 못하는 건 인도 여행을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어떤 질문이나 화두가 없어서가 아닐까. 삶의 의문이나 화두를 품고 있다면 일상의 어떤 마주침도 깨달음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본다. 그러면 이 책의 재미와 유익함처럼 우리 인생도 더 이상 지루하지 않고, 재미와 신비로움, 유익함으로 다가올 것이라 믿는다.

우리의 배움 역시 학교가 아니라 길, 위에서 얻어진다. 그리고 일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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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값 높이기의 기술 - 죽도록 일만 하는 사람들은 모르는 25가지 커리어 관리의 비밀
존 에이커프 지음, 김정희 옮김 / 다산북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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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태도를 바꿔라"라고 말하지 않는다. 태도를 바꾸는 일은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다. 하지만 '선택'은 잠깐이면 된다. 내일 출근해서 좋은 태도를 선택하라. 냉소적으로 일을 대하지 않는 태도를 선택하라. 마치 회사에 호의를 베풀 듯 출근해준 게 어디냐는 식으로 행동하지 않는 태도를 선택하라. 매사에 불평하지 않는 태도를 선택하라. 동료의 성취에 박수를 보내는 태도를 선택하라. 당신을 찾은 사람을 늘 극진하게 대하는 태도를 선택하라. 그리고 마침내 그 태도가 당신 것이 될 때까지 매일 선택하라. (40쪽) }



새겨 들어야지, 저자의 경험에서 나온 말이니까. ㅋㅋ


이 책, 『몸값 높이기의 기술』은 제목이 자극적이긴 하나, 음, 제목 그대로의 책이다. 빼도 박도 못하게 책 내용 자체를 드러내는 제목이다. 진짜 몸값을 높이는 방법을 소개한다. 저자가 소개하는 4가지 방법은 <인맥>, <기술>, <인성>, <추진력>이다. 몸값을 높이기 위해 어떻게 이 네 가지 활용할지, 각 장별로 하나씩 뽑아서 상세히 설명한다.


내가 지금까지 읽은 자기계발서는 다 옳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틀린 이야기를 하는 책은 여태 읽어본 적이 없다. 옳은 이야기들의 홍수 속에서 자기계발서의 관건은 그 책의 내용이 자신에게 맞는지, 혹은 내가 정말 실천할 수 있는지, 아니 내가 진짜 실천할 마음이 있는지에 따라 책의 효과가 나뉘는 듯하다. 저자의 설득력이 관건이랄까. 이 책도 다 맞는 이야기를 한다. 이 책에 쓰인 내용에 얼마나 영향을 받았고, 얼마큼 실천을 하는지에 따라 이 책이 만족스러울 수 있고, 만족스럽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선택과 실천은 독자의 몫. 나 역시 마찬가지.





인상 깊었던 부분 발췌해 본다.


당신보다 나은 사람과 어울리면 어느새 당신도 그런 사람이 되어가고 있을 것이다. ( 74쪽, 워런 버핏의 말 인용 부분) 

워런 버핏이 한 말이라면, 무조건(아니 웬만하면) 따르겠다!



사소하고 하찮다고 느끼는 작은 기술이 모여 큰 경력을 만든다. 사소한 기술은 은행의 복리 이자다.  푼돈을 천천히 차곡차곡 모으는 건 시시해 보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이자가 쌓이기 시작하면 그 합은 생각보다 훨씬 크다. 우리가 평소에 무시하고 지나가는 사소한 기술도 마찬가지다. 이런 기술은 화려하지 않다. 대개는 재밌지도 않다. 하지만 작은 기술을 무시하고 크고 빛나는 기술에만 집착하면 두둑한 경력통장을 만들 수 없다. (133쪽)


동의한다. 요즘 유명한 유튜버들은 대단한 기술이나 놀라운 뭔가가 있기보다는 사소한 기술을 취미로 갈고닦은 사람들이다. 파워 블로거도 마찬가지. 평소 꾸준히 취미활동하고, 지식을 쌓고 활동하면서 전문가 뺨치는 아마추어로 성장한 사람들이다. 소소하게 취미로 했을 뿐인데, 경력과 수입으로 이어지는 사례도 많음! 그러니까 사소하고 하찮다 여겨지는 기술이나 취미도 잘 살려보자. 북유럽 사람들은 대부분 일찍 퇴근하고 취미활동해서 이 취미로 부수입 얻고, 은퇴 후 그 취미를 본업으로 삼는다고 들었다. 우리도 이렇게 하면 좋을 듯.


과거에 태어났따면 나는 아마 '모델 T'가 쌩쌩 달리는 도로 옆에서 브러시로 말의 털을 빗겨주고 있었을 것이다. 이런 태도는 삶을 받아들이는 태도 중에서 가장 불행한 접근법이다. 새로운 기술은 우리에게 수많은 멋진 기회로 통하는 문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148쪽)


모델 T와 말을 이야기하니까 왠지 확 와닿는다. 세상은 변하는 듯 변하지 않는 듯하지만 끊임없이 바뀌고 있고, 새로운 기술이나 변화에 민감해져야 한다.



새로운 기술을 배우면 우리의 일과 삶은 새로운 곳으로 옮겨간다. 그것이 바로 새로움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새로움은 우리를 단 한순간도 원래 있던 곳에 놔두지 않는다. 반대로, 새로운 것을 배우지 않으면 과거에 머물 수밖에 없다. (151쪽)


아, 명심해야지.



무언가를 처음 할 때 그 처음 몇 번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변할까. (...) 출장을 서너 번 다녀온 뒤에 나는 종이 한 장을 책상 위에 올려두고 여행 때마다 필요한 물건의 90퍼센트를 알아냈어야 했다. 한 시간 정도 집중하면 충분했을 것이다. 하지만 난 그 시간을 투자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매번 한 시간씩 짐을 쌌다. 거기에 지난 2년 동안 여행한 횟수 300번을 곱하면 나는 총 1만 8000분을 낭비한 셈이다. (182쪽)


이건 진짜 공감하는 이야기. 무언가를 파악하기 위해 일정 시간과 집중력을 발휘해야 하는데, 우리는 본능적으로 이런 시간을 거부한다. 왜냐면 우리 뇌는 가급적 에너지 쓰는 걸 안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뇌는 그런 식으로 움직인다. 여전히 빙하기 인류에게 맞춰져 있는 우리 몸은, 당을 소진하는 것은 생명을 위협받는 일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관성을 이겨내고, 귀찮고 뭔가 힘들어 보이는 것도 초반에 시간 투자를 해서 루틴화 시켜야 한다.


우리는 하루라는 소중한 시간의 일부를 허비하게 만드는 온갖 일상적인 활동을 제거해야 합니다. 보면 아시겠지만 전 회색이나 푸른색 정장만 입습니다. 무얼 먹을지 무얼 입을지 같은 건 경험하고 싶지 않아요. 그것 말고도 해야 할 결정이 너무 많으니까요. (183쪽. 버럭 오바마의 말 인용)


몸값을 올리려는 이유는, 조금이라도 만족스러운 삶을 살기 위해서다. 몸값이라는 말이 좀 자극적으로 다가오지만 이 책에 나와 있는 내용들 중에 나에게 맞을 만한 것들, 인상적이었던 부분들을 발췌해서 조금씩 실천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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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펙트 마더
에이미 몰로이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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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 읽었다. 읽기 전에는 제목 때문에 살짝 1960년 대 미국 중산층 엄마 이야기인 줄 알았다. 그 시절 미국은 주위의 평판과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어딘가 인위적이고, 작위적인 시대였기 때문이다. 성공지향, 어제 보다 더 나은 삶은 자신 대(代) 아니라, 자신의 아이들 대에서 나올 수 있도록 완벽한 엄마가 되어 자식들을 케어하는 백인 여성들.... 그래서 그런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완전 오산-


이 이야기는 지금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주인공들은 아기를 갓낳은 엄마들. (아이를 교육하는 엄마가 아니다) 출산 준비과정에서 출산에 대한 정보를 얻고, 소통하고자 5월에 분만 예정인 예비엄마들이 인터넷으로 <5월맘>이라는 모임을 결성한다. 처음에는 인터넷으로만 소통하다가 아기를 낳고, 오프라인 모임이 제안되어 거주지 인근 공원에서 거의 정기적으로 만나게 된다. 어느 모임이나 그렇듯이 그냥 한 번 나왔다가 영영 안 나오는 사람들, 초반에는 열성적으로 나왔는데 점점 흥미가 떨어져 더 이상 안 나오는 사람들, 이사 때문에 못 나오는 사람들, 누군가 미워하거나 꼴불견이라 생각하여 그 사람이 보기 싫어 안 나오거나 뜨문뜨문 나오는 사람들 등, 여러 사람이 있다. 역시 어느 모임이든 그렇듯 모임에 꼭 빠지지 않고 나오는 사람들이 있다. '프랜시', '콜레트', '넬' 등. 이 세 사람 외에 정말 중요한 <5월맘>의 멤버가 있는데 그 사람의 이름은 '위니'다.



위니는 키도 크고 늘씬하고, 얼굴도 좌우 대칭이 완벽한 정말로 아름다운 여성이다. 아이를 낳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붓기는 다 빠지고, 뱃살도 완벽하게 제 상태를 회복한다. 하지만 위니는 <5월맘> 모임에 나올 때마다 왜인지 근심 걱정이랄지, 우수에 젖어 있다. 또 아이와 함께 있을 땐 아이를 신경 쓰고, 아이와 함께 없을 땐 아이가 있는 침대를 비춰주는 CCTV를 핸드폰으로 보고 있다. <5월맘> 멤버들은 위니가 너무 우울한 듯 보여(산후우울증은 위험하니까), 위니의 기분 전환을 위해 하루 저녁 날 잡고 놀자고 한다.


위니는 처음엔 거절하지만, 모임 직전에 응하고, 아이를 콜레트가 소개해 준 베이비시터에게 맡긴 후 놀러 나온다. 하지만 그날, 그 저녁, 위니의 아이는 사라지고 만다.


이 유아 납치 사건으로 위니가 사실 십수 년 전에 유명했던 드라마 배우였다는 사실과 결혼하지 않고 혼자 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것이 알려진다. 그리고 어마어마한 부자라는 것도.


이 소설의 중심 이야기는, 위니 아이의 납치 사건을 두고 <5월맘> 핵심 멤버들의 심리와 상황을 잘 보여준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육아를 하면서 겪게 되는 고충이 생생히 묘사되었다. 그들은 제각각 경제 사정이 다르고, 직업도 다르다. 그에 따라 육아를 대하는 자세나 여유가 많이 다르다.


저자는 유아 납치를 스릴러 형식으로 보여주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각 엄마들의 육아 고충이 아니었을까 싶다. 남편의 태도, 납치 사건을 둘러싸고 대대적으로 매스컴을 타면서 그날 함께 있던 엄마들에게 쏟아지는 비난과 편견들.


가족을 우선시하고, 그래도 유교나 이슬람 문화권보다는 여성의 인권이 좀 더 존중된다는 미국에서도 엄마가 겪는 고충은 크다. 아이와 함께 있고 싶지만,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서 돈이 필요해 아이와 떨어져 돈을 벌어야 하는 역설적인 상황, 경제적 여유가 되고 아이만을 케어 하고 싶지만 유명 페미니스트의 딸이기 때문에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엄마, 돈과 외모 모든 걸 다 가진 엄마에게 쏟아지는 편견, 추태, 경제적 능력이 달리는 남편을 둔 여성의 고민 등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세상에 '완벽함'이 있을까.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엄마에게 '완벽'을 요구하는 것 같다. 아이에겐 더없이 자상하고, 남편 외조 잘하고, 그러면서도 경제적 능력이 출중해 돈도 잘 벌고, 당연히 살림도 잘하는. 이 모든 걸 잘하는 사람이 있을까. 물론 있다고 해도 그 사람도 남모르게 어떤 고충이나, 차별과 강박증 같은 게 있지 않을까.


한 아이를 키우는 건, 어떤 우주를 키우는 것과 같다. 하지만 완벽할 수는 없다. 어떤 이미지를 형성하고, 그 이미지를 엄마들에게 요구하거나 강요할 순 없는 일. 저자는 이런 메시지를 『퍼펙트 마더』로 던지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스릴러지만, 스릴러이기보다는 여성, '엄마'라는 존재를 조명하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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