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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뇌, 미래의 뇌
김대식 지음 / 해나무 / 2019년 7월
평점 :
1.5kg의 작은 덩어리가 나를 비롯하여, 내가 바라보는 온 세상을 인식하고 이해한다. 이 1.5kg의 덩어리는 물로 채워진 작고 어두운 공간에 둥둥 떠있다. 이 덩어리는 스스로 먹고, 마시질 못한다. 혼자 움직일 수도 없고, 날카로운 것이 제 피부에 닿아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며 그 사실을 알지도 못한다. 그래서 고대 이집트 시대 미라 만드는 장인들은 이 덩어리가 몸에서 아무 쓸모 없는 것인 줄 알았다. 사자(死者)의 코를 통하여 이 덩어리를 긁어 파내었다. 그들의 믿음과 반대로 영혼은 잠시 떠났다가, 덩어리를 파내는 순간 파라오의 영혼은 순삭되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말한 1.5kg의 작은 덩어리는 바로 우리 몸에서 제일 중요한 '뇌'이다.

김대식 교수님이 '뇌'에 관한 책을 갖고 돌아오셨다. 그동안 역사, 책에 관한 책 등 분야를 막론하고 다양한 책들을 많이 내셨다. 이번에는 오랜만에 전공분야로 돌아오심! 개인적으로 반가웠다. 직업이 교수인 분들이 쓰는 책은 뭐니 뭐니 해도 전공분야의 책이 제일 재밌는 법. 이 책도 너무 재밌어서 단숨에 읽었고, 서평을 쓰기 위해 한 번 더 읽었다.
그런데... 읽을 땐 고개 끄떡끄떡 재밌게 읽지만, 돌아서면 다 까먹는 사실. 내가 기억력이 나빠서 그런가?! 노노. 내가 이 책을 읽고 다 까먹는 이유는 이 책에 다 설명되어 있다. 내 기억력이 나빠서라기보다는, 뇌 과학 분야가 나에게 낯선 분야이다 보니, 이 내용을 저장한 뇌 신경세포가 서로 연결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그렇다. 빠밤. 내가 알고 있는 다양한 지식들과 서로 잇고, 연결 지으면 훨씬 기억이 잘 날 것이며, 이걸 바탕으로 난 창의적인 생각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아직 뇌에 관해 잘 모르니까 돌아서면 까먹는다. 그래도 뇌의 어느 한 구석에 내가 읽고 이해한 내용들이 저장되겠지.
김대식 교수는 인공지능을 연구하시는 분인데, 인공지능을 제대로 연구하기 위해 우리 뇌를 공부하고 학위를 따셨다. 그래서 이 책도 우리 뇌와 인공지능에 대한 이야기가 종횡무진 이어진다. 하나만 전공하셨다면, 책 내용이 이렇게 풍부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우선 책은, 우리의 작은 뇌가 어떤 녀석인지 그 실체를 파헤친다. 아까 맨 위에 적었듯이 뇌는 우리 몸의 모든 요소를 다 컨트롤하면서 정작 자기 자신은 아무것도 보지도, 느끼지도 못한다. 눈 없고, 입 없고, 귀 없는 어떤 실체다. 대신에 다른 신체 요소들로부터 정보를 취합하여 하나의 세상을 창조해 낸다.
우리가 지금 눈 뜨고 바라보고 있는 이 세상이 진짜 이 세상 그대로의 세상일까. 김대식 교수는 알 수 없다고 말한다. 우선 우리가, 눈에 들어온 그대로를 보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뇌는 몇 가지 트릭을 써서, 우리에게 불필요한 정보들은 완전히 제거해 버린다. 우선 눈알 속에 들어있는 핏줄이나 기타 여러 가지 장애 요소들을 지워버린다. 분명 눈은 눈 속 핏줄들을 보지만, 뇌가 그 이미지를 지워버리기 때문에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맹점이라 불리는 눈 안의 거대한 구멍은, 아무것도 볼 수 없다. 하지만 뇌는, 맹점 주위의 세포들로 받아들인 이미지들을 복사해 가상 이미지들로 매워버린다. 시각뿐만 아니라 후각, 청각, 촉각 등 다 그렇다. 우리가 느끼는 모든 것은, 실제 하는 것이기보다는 뇌가 만든 것이다. 물론 아무것도 없는 데서 뇌가 만든 것은 아니다. 뭐랄까, 뇌 자체가 시뮬라시옹이라고 할까.
책에는 놀랍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다. 우리가 믿었던 것들이 진짜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으며 나의 생각이 진짜 나의 생각이 아닐 수 있음도 깨달았다(왼쪽 뇌, 오른쪽 뇌의 이야기 / 정당화하기 좋아하는 스토리텔링가 강한 우리 뇌).
우리 뇌에 대해서, 그리고 나아가 인공지능에 대해서 알고 싶은 분들께 추천한다. 글은 상당히 쉽고 재밌다. 어려울 수 있는 내용도 저자는 매우 쉽게 풀어 설명한다. 그만큼, 김대식 교수가 상당한 이해를 가지고 글을 썼다는 방증이다. 제대로 이해했다면 설명은 쉽게 할 수 있어야 하므로. 추천한다.
덧붙임 > 신경세포 간 연결을 해야 한다. 연결이 제일 중요! 창의력과 기억력은 '연결'이 관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