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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여행자
류시화 지음, 크리스토퍼 코어 그림 / 연금술사 / 2019년 6월
평점 :
십몇 년 전에 친구가 일본으로 워킹 떠나기 전에 류시화 시인의 여행 에세이 『지구별 여행자』를 줬다. 아마도 집에 있는 책 정리 목적으로 내게 줬겠지만, 책을 주면서 함께 건네준 글이 빼곡히 적힌 엽서 한 장으로 나는 읽기도 전에 이 책이 좋았다. 그리고 읽어보니 더 좋았다. 책이 당시에 너무 재밌어서 여러 번에 걸쳐 읽었었고, 그런 만큼 책 곳곳의 인상 깊은 구절들이 지금도 또렷이 기억난다. 또 이 책은 나의 고정관념이랄지, 편견이랄지 나의 그릇된 생각도 깨부쉈다. 시인이라는 '직업'과 시인의 시적인 '이름'만 가지고 사람을 판단하면 안 된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 이 책은 시적이기보다 웃기고 재밌다.
나에게 각별한 책, 이번에 새롭게 나왔다고 해서 기대하는 마음으로 읽어 보았다. 예전과 내 마음이 같을지. 혹은 새로운 느낌을 받을 것인지.

예전에는 『지구별 여행자』를 김영사에서 출판했는데 이번에 '연금술사'라는 출판사에서 출간했다. 내가 출판사의 시스템에 대해 잘 모른다. 좀 큰 출판사의 경우, 출판사 안에 새끼 출판사(?)를 두기도 하던데 김영사와 연금술사 간에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냥 계약 기간이 끝나서 새 출판사에서 새롭게 낸 건지. 일단 이번에 나온 연금술사 버전의 출판정보를 보면 1판 1쇄라 되어 있다. 이것만 보면, 연결고리 없이 아예 다른 출판사인 것 같다.
내용은 예전 책과 똑같다. 다만 차이점은 몇몇 에피소드 끝에 각주로 저자의 설명이 적혀 있다. 처음 에세이를 적었을 때와 지금 달라진 점을 설명해 놓은 것. 새롭게 각주가 달린 이야기 중에 슬픈 내용도 있다. 저자의 인도 친구 중 한국 관광객이나 일본 관광객을 상대로 가짜 목걸이를 파는 친구가 있었다. 사기를 치긴 치지만 사람이 순수하고 착해서 거의 손해 보고 사기를 치는 사람 중에 한 명이다. 이 사람은 워낙 가난해서 집을 단단한 벽돌이 아닌 흙으로 지었고, 그래서 인도에 우기가 지면 그 사람의 집 한 쪽 벽이 허물어진다. 친구의 사정이 안타까웠던 저자는, 돈을 빌려주어 벽돌을 사게 했는데 벽돌 운반비가 너무 많이 비쌌다. 그래서 친구는 손수 벽돌을 지고 날랐다. 하루에 10장씩. 몇 달을 매일 갠지스강을 건너 벽돌을 지고, 날랐는데 어느 날 또 갠지스 강의 물이 범람했고 몇 달이 노력이 한순간에 사라지고 말았다는 이야기. 그 친구는 자기 사정보다, 자기를 걱정해 주는 저자를 더 걱정하며 위로해주었다. 이 에피소드는 읽을 때마다 가슴이 먹먹하고, 마음이 아렸는데 이번에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번에 새로 읽으며 더 안타까웠던 건 저자가 추가로 적어 놓은 각주였다. 몇 해 전 이 친구가 갠지스 강에 발을 헛디뎌 정말로 갠지스 강 너머로 갔다는 이야기. 새삼 삶이란 무엇인지, 우리들의 노력은 무엇인지, 우리들의 운명은, 우리들의 꿈은 무엇인지 여러 생각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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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는 누구나 여행자다. 우리 모두 이 세상에 여행을 온 것이다. 더 배우고, 더 경험하고, 더 성장하기 위해. 이 여행을 마치고 떠날 때, 나는 신 앞에 서서 이것 하나만은 말할 수 있다. 나 자신이 여행자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노라고. 그래서 늘 길 위에 서 있고자 노력했다고. 내 배움은 학교가 아니라 길에서 얻어진 것이라고. (19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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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류시화 씨가 매년 인도 여행을 하며 겪었던 재미난 이야기나 깨달음의 순간들을 담고 있다. 깨달음이 꼭 진지하거나 엄숙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면 알 수 있다. 어이없거나 웃긴 에피소드 속에서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여행과 인생은 닮았다. 우리 모두, 류시화 씨처럼 지구별 여행자다. 우리가 류시화 씨처럼 어떤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우리도 인도로 떠나야 할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깨달음을 얻지 못하는 건 인도 여행을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어떤 질문이나 화두가 없어서가 아닐까. 삶의 의문이나 화두를 품고 있다면 일상의 어떤 마주침도 깨달음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본다. 그러면 이 책의 재미와 유익함처럼 우리 인생도 더 이상 지루하지 않고, 재미와 신비로움, 유익함으로 다가올 것이라 믿는다.
우리의 배움 역시 학교가 아니라 길, 위에서 얻어진다. 그리고 일상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