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트가 버린 사람들 - 그들이 진보에 투표하지 않는 이유
데이비드 굿하트 지음, 김경락 옮김 / 원더박스 / 2019년 11월
평점 :
절판


영국에서 왜 브렉시트 사태가 일어났는지 그 원인을 파악하고 분석하는 책이다.


개인적으로 국내 뉴스보다 해외 뉴스를 좋아하고, 미국과 영국 문학 작품이나 영화를 자주 접하다 보니, 그들의 역사, 문화, 정치에도 관심이 있는 편이다. 그래서 현재 영국 상황을 자세히 설명해 놓은 이 책이 상당히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영국 브렉시트 및 양극화 현상에 관심 있는 분께 추천한다.




───   영국의 대분열


2016년 브렉시트 찬반 투표로 영국이 분열적 상태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사람들은 브렉시트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실제로는 투표 결과 발표 직전 여론 조사 때 브렉시트 찬반은 엇비슷한 지지를 보였다).


언론과 지식인 층에서는 난리가 났다. 그들은 분노한 늙은이들이나 저학력, 저소득층 영국 노동자들이 이민자들을 고깝게 여기고 분노해서 브렉시트 찬성에 표를 던졌다고 성토했다. 영국 엘리트들은 저소득층 백인 노동자들을, 영국 경제에 이로움은 생각하지 않고 옛 대영제국의 영광만 생각하는 반동주의자에 인종차별주의자라는 딱지를 붙였다. 그런데 그 딱지가 과연 옳은 것일까?



   ───   애니웨어 vs 섬웨어


이 책의 저자 데이비드 굿하트는 영국의 분열적 사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애니웨어와 섬웨어를 잘 들여다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잠깐, 저자가 말하는 애니웨어와 섬웨어는 무엇일까.


애니웨어 : 대학 공부를 위해 나고 자란 지역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주했고, 대학 졸업 후에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여러 곳을 이동하며 일을 하는 엘리트층. 신자유주의의 수혜를 받으며, 본인의 정체성을 영국 토박이 보다 '세계 시민'으로 인식한다.


섬웨어 : 나고 자란 지역에 계속 머물며 그곳에서 노동을 하는 저학력, 저소득층. 지역 및 국가 개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 책을 쓴 데이비드 굿하트도 원래는 애니웨어였다. 고학력자에, 기자로 생활하며 영국뿐만 아니라 유럽 및 세계 여러 나라를 오갔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도 많이 만났다. 그는 대학에 진학한 순간 고향과의 인연을 끊고, 경계를 뛰어넘어 보다 방대한 지역을 누비며 살았다.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과 함께 공부하고 일하며 인종 차별 의식도 없다.


하지만 그는 어느 순간 자각한다. 자신이 속해 있는 애니웨어들은 본인들이 도덕적 감수성이 우수하고, 정의를 아는 깨인 사람처럼 인식하지만, 그들은 오로지 자신이 믿고 생각하는 것만 바라보는 사람들이라고. 애니웨어는 자아도취, 자만심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기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의 말은 전혀 듣지 않는다고. 이런 자각이 들어서 그는 애니웨어에서 섬웨어로 전향한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그는 애니웨어와 섬웨어 중간에서 그들을 관찰하고 연구하기를 즐기는 것 같다)


   ───   섬웨어들은 정말 인종차별주의자에, 

포퓰리즘에 열광하는 반동주의자들일까?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여론 조사 결과 섬웨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인종차별적이지 않고, 동성애에 대한 인식도 유화적이다. 옛날, 1950년대 60년대의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난민이나 이민에 대해서도 크게 반대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들이 반대하는 것은 너무 갑작스럽게 너무 많은 이민자들이 영국 사회로 들어오는 것이다. 그들은 고 숙련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기계의 톱니바퀴처럼 언제나 다른 노동자로 교체될 수 있다고 두려워한다. 실제로 영국 정부는 직업 교육 예산을 대폭 삭감하고, 이미 자국에서 전문 교육을 받은 동유럽, 남유럽 이민자들을 저임금 노동에 투입하고 있다(영국 정부 입장에선 직업 교육비가 전혀 들지 않는다). 이에 영국 저소득층 노동자들이 불만을 품고 있는 것이다.


언론인 등, 영국 엘리트들은 섬웨어들이 인종 차별주의자에 도덕적 감수성이 떨어진다고 하지만, 섬웨어들은 난민들이나 해외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공감하며 충분한 지지를 보낸다. 그들이 난민을 위해 내는 기부금은, 소득에 비했을 때 오히려 엘리트 애니웨어보다 더 많이 낸다고 한다.


섬웨어들이 불만스러워하는 것은 자신들이 투표도 하지 않은 애니웨어(엘리트)들이 고위직 자리에 머물거나전문가로서 섬웨어의 목소리는 대변하지 않은 채 오로지 애니웨어의 시각대로, 뜻대로, 마음대로, 하는 것에 불만을 품고 있는 것이다. 섬웨어들은 애니웨어처럼 전국, 전 세계를 누비지 않는다. 그래서 지역과 나라에 대한 감수성이 크다. 그러나 애니웨어는 지역과 나라에 대한 감수성이 크게 떨어진다. 그래서 애니웨어들은 독단적으로 세계 시민을 표방하며, 난민 정책을 그들 마음대로 짜는 것이다.


───   애니웨어들은 나쁜 걸까? 


일단 저자는 애니웨어의 독단적인 모습을 비판한다. 그들은 확증편향이 너무도 강해서 자신과 다른 생각이나 의견은 듣지 않는다고. 브렉시트 사태나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애니웨어들이 놀랐던 것은 어쩌면 그들이 섬웨어에 귀를 닫고, 그들의 존재 자체를 깡그리 잊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목소리를 듣고 놀랐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애니웨어들이 나쁜 걸까. 그렇지 않다. 다만, 너무 자기 세계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그동안 애니웨어들이 모르고, 혹은 무시했던 것을 유일하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발굴하고 부각시켰다. 많은 엘리트들이 섬웨어들을 무식하고 분노한 저소득층 백인들이라 깎아내리지만, 그들도 엄연한 사회 구성원이고, 그들이 왜 화가 났는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저자 말대로, 애니웨어들은 스스로에 대한 자긍심, 성취 지상주의에 도취된 그들은 왜 저소득 하층민들이 그 계층 사다리를 타지 않고, 하층민으로 머물러 있는지 이해하지를 못한다. 애니웨어들이 나쁜 것은 아니다. 다만, 시야가 너무 좁은 것이 문제, 그들 세계밖에 모르는 것이 문제, 그들이 옳다는 것만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그동안 애니웨어들은 자기들이 옳다고 생각한 것만 너무 행동으로 밀어붙였다. 자기 외의 다른 구성원의 생각은 듣지 않았다. 책 저자도 영국 의회에서 이들을 대변할 사람이 너무 없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소위 '포퓰리스트'들이 지지를 받고 있다고 한다. 예전에는 하원 의원이나 장관 중 노동자 출신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영국 '노동당'에서도 노동자 출신은 거의 없고 공부만 한 고학력의 애니웨어들이다. 그러니 저소득 노동자들이 목소리를 낼 여력이 부족했다. 저자의 말대로 그들을 대변할 사람이 필요하다.


───   앞으로 어떻게 될까,

또 어떻게 해야 할까


앞으로 영국이나 미국은 어떻게 될까. 브렉시트와 트럼프 대통령 당선으로 사회에 균열이 있다는 것은 알았다. 세상에는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과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산다. 원만한 사회 통합을 위해서는(당연히 '완전한' 사회 통합은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 '완전하다'는 것은 곧 파시즘을 의미하기 때문) 각 계층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할 수 있는 대표자를 선출하는 일이다. 대표자는 자신이 대변해야 할 사람들의 목소리를 의회에 잘 반영해야 할 것이다.


미국이나 영국 모두 이 시기를 어떻게 넘길지 모르겠다. 영국은 예전에도 이런 대분열의 시기가 있었지만, 강력하게 정책을 추진했던 마거릿 대처가 등장하자 이 문제를 봉합했다. (물론 대처 정부는 해당 문제만 봉합했을 뿐, 또 다른 문제의 씨앗을 뿌렸다)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 사뭇 궁금하다. 꾸준히 영국과 미국 뉴스에 관심을 기울여야겠다. 그들의 이야기가 곧, 현재 동남아 인구가 많이 유입되고 있는 우리들의 근미래 이야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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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초보를 위한 부동산 절세 교과서
전병억.황태연 지음 / 미래지식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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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이야기가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다니. 나는 자산(assets)이 없는 사람이라 국가가 꼬박꼬박 떼 가는 세금을 넋 놓고 바라보고만 있었던 사람이다. 내라 하면 내고, 때 되면 환급받고 그랬다(심지어 세금 내라는 말없이 대부분 처음부터 원천징수하여 가져간다). 그랬던 내가 늦었지만 부동산과 관심을 갖고 이것저것 알아보는 중에 '세금'도 중요하다는 걸 깨닫고 세금 공부 중! 부동산은 부동산 자체에 대한 공부도 중요하지만, 부동산은 워낙 금액이 큼으로, 1%의 세금도 그 액수가 어마 무시하다. 따라서 부동산 관련 세금 공부도 필수! 아직 내 명의의 부동산은 없지만, <지식과 상식>은 실행에 앞서는 것이 좋고, 공부는 항상 옳으니까 공부, 공부, 또 공부한다.


이 책의 저자는 현재 모 세무법인 회사의 대표 세무사다. 이 일에 종사한 지 올해로 17년 차. 전문직 종사 17년이면 이제 한창 자신의 분야에서 물오를 대로 물이 올랐다고 보면 될까. 저자는 세무 일뿐만 아니라 3년 전부터는 부동산 세미나에서 세무 관련 강연도 하신단다.

강연을 하셔서 그런지 이 책은 나같이 세금의 시옷(ㅅ) 자도 모르는 사람이 읽어도 이해 가능할 정도로 책이 쉽다.




저자는 많은 사람들이 부동산 계약서를 다 작성하고, 도장까지 꽝 찍고 난 후에 자신을 찾아와서 안타깝다고 한다. 이미 '절세'할 수 있었던 골든 타임을 놓치고, 법적으로 빼도 박도 못한 때가 되어서야 '아차' 싶어서 오시는 분이 많은 것이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집만 생각하는데, 계약서를 작성한 후에 '세금' 생각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요즘 집값이 올라 즐거운 비명을 지르는 분이 많지만, 사실 부동산은 가격이 오른 만큼 세금 폭탄 맞을 가능성도 매우 높아져서 절세를 하지 않으면 매매로 인한 차익은 세금으로 고스란히 반납해야 할 수도 있다. 요즘 집값이 워낙 올라서 가산세까지 붙으면 세금만으로 1억, 2억이 우습게 나올 수 있다. 부동산을 매입, 매도하시는 분은 필히 <부동산 세금> 공부는 필수인 것이다.



책의 목차다. 제목답게(왕초보를 위한), 기본적인 부동산 세금을 다루고 있다. 책에서 다루는 사례도 대부분 부동산 전문 투자자가 아니라, 한 생애 동안 누구나 될 수 있는 1세대 1주택자, 또는 1세대 2주택자를 주로 예로 든다.

나는 개인적으로 양도소득세 부분이 흥미로웠다. 1세대 1주택자는 양도시 비과세가 되어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세금 빵원! 그런데 1세대 2주택자의 경우 두 채 중 어떤 집을, 어떻게, 얼마 동안 소유했는지 그리고 언제 양도하는지에 따라 1억, 2억씩 세금을 물어야 할 경우가 발생했고, 반대로 영리하게 처분한 사람은 비과세를 받아 세금 한 푼 내지 않아도 되었다.

어떻게 절세 하느냐에 따라 세금 1~2억이 왔다 갔다 하는 사례들, 진짜 '절세의 마법'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책에도 나오지만, 저자의 말처럼 부동산은 매도가 아닌 매입하는 순간부터 항상 '세금'을 생각하고, 최대한 '절세'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대부분 사람들은 평소에 1, 2만 원도 아끼려고 하는데, 절차 상의 이유로 세금을 몇 억씩 더 내는 건 정말 부담스러운 일이니까.




세금은 제때 내자!!!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세금 관련해서 큰 관심이 없었다. 꼬박꼬박 떼이는 세금 외에 내가 크게 신경 쓸 만한 게 없었으니까. 그런데 이 책을 읽고, 그리고 절세의 마법(2억 원이 0원이 되는)을 보고 세금이란 어렵지만 상당히 흥미롭고, 꼭 알아야 할 분야로 생각되었다. 앞으로 세금 관련해서 공부할지도 모르겠다. 어렵지만, 알고싶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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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의 교향곡 - 음악에 살고 음악에 죽다
금수현.금난새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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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지휘자로 익숙한 금난새 님이 에세이집을 묶어 냈다. 친아버지의 에세이와 본인의 에세이를 묶어서. 금난새 아버지, 금수현 작곡가는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도쿄음악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하셨다. 한국으로 돌아와 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제자와 결혼한다. 장모님은 소설가이자 시인이셨던 김말봉 작가. 금수현 작곡가의 '그네'는 김말봉 작가의 '그네'를 읽고 작곡한 곡이라 한다. 이렇게 쟁쟁한 스펙만 놓고 보면 금수현 작곡가는 상당히 근엄하고 무서운 분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이 책에 실린 첫 에세이만 읽어보아도 그렇다. 우화집, 콩트집 같다. 재미나다. 글만 읽으면 근엄한 음악가라기보다는 해학과 위트를 아는 소설가처럼 느껴진다.





자식의 성정은 부모님을 닮는다. 특히 아버지가 미치는 영향은 클 것이다. 어머니는 무의식 깊숙이 영향을 주고, 아버지는 도드라지는 성격에 영향을 주는 것 같다. 금난새 지휘자가 따뜻하고 푸근하며 친근하게 느껴졌던 것은 아버지, 금수현 작곡가의 영향이 아니었을까.



책 들어가기에 보면 금난새 지휘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아버지는 굉장히 과묵한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디선가 약주 한 잔 드신 날이면 전혀 다른 분이 되시곤 했습니다. 이야기가 막힘없이 술술 나왔으니까요. 책을 많이 읽고 글 쓰는 걸 좋아하셨기에 평소 하실 말씀은 많았지만 참았다가 술기운을 빌려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으시는 것 같았습니다. 저희 형제들은 조용한 아버지보다 이야기꾼 아버지를 더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께서 약주를 드신 날은 밤늦도록 이야기꽃을 피우곤 했습니다. 우스갯소리로 만약 도둑이 우리 집에 들어온다면 '이 집 사람들은 왜 잠도 안 잘까?' 고민하면서 지쳐 포기하고 다른 집으로 가 버릴 거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10-11쪽

이 책에 실린 금수현 작곡가의 이야기들은 정말 거침없고 재밌어서 위의 발췌문에 쓴 대로 실제로 약주 한 잔 걸치시면 정말 이야기가 쉴 새 없이 나오고 다른 사람들을 즐겁게 해줬을 것 같다.


특히 기억에 남는 이야기.


금수현 지휘자는 장화홍련전을 싫어하셨단다. 이유인즉슨, 제 자식, 남편 전처의 자식을 계모라도 그렇게 아이들을 학대했을까라며. 그리고 링컨을 예로 든다. 링컨도 계모가 키웠다. 그리고 그 계모가 링컨을 일하도록 만들었다. 우리나라 사람이었으면, 계모라서 링컨을 일하게 시켰다는 말이 나왔을 거라고. 링컨은 일을 했고, 그래서 노예들이 받는 대우도 봤기 때문에 노예해방을 주장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금수현 지휘자가 덧붙이는 말씀. 자식들이 완전히 어려움 없이 살기를 바라지 말라고. 어려움 속에서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리고 덧붙이는 말씀. "부모여, 그렇다고 아이를 일부러 내쫓지는 마시라."




재밌지 않은가.


금수현 작곡가의 에세이도, 뒤에 25편 추가된 금난새 지휘자의 에세이도 이렇게 톡톡 튀는 위트가 스며 있다. 글이 1~2장 짧아 읽기에 부담도 없고, 짧고 인상에 남는 글들이라 누구든 재밌게 읽을 수 있다.


금난새 지휘자가 어떻게 그렇게 따뜻하고 편안한 음악을 연출할 수 있는지 궁금하신 분이라면, 그 아버지인 금수현 작곡가의 글과 그분과 꼭 비슷한 글을 쓰는 금난새 지휘자의 글을 읽으면 알 수 있을 것 같다.


읽기 추천해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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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애의 도시 이야기 - 12가지 '도시적' 콘셉트 김진애의 도시 3부작 1
김진애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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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서 요거트 먹고 홈트 30~40분. 샤워 후에 단백질이 듬뿍 들어간 아침을 든든히 먹은 후 집을 나선다. 종종 내킬 때 집 바로 앞에 있는 스타벅스에 들러 커피를 마신다. 저녁에 집에 오는 길에 뚜레쥬르나 파리바게뜨, 던킨에 들러 빵을 사 온다. 집 바로 아래에 슈퍼도 있고 조금 걸어가면 마트도 있어서 차를 타고 장을 보러 갈 필요가 없다. 혼자 살아서 애초에 마트에서 많이 살 필요가 없다. 많이 사는 것은 오히려 부담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벤트로 받은 편의점 모바일 상품권으로, 집 근처 편의점에 자주 간다. 주말에 남자친구가 놀러 오면 종종 피자나 치킨 배달음식을 주문해 먹는다. 영화관이나 백화점도 가깝다. 걸어간다. 차를 타고 이동할 때라고는 가끔 기분 전환 삼아 가는 바다나 교외 지역에 갈 때뿐이다. 내가 가야 하고, 내가 가고 싶은 곳은 대체로 다 걸어갈 수 있다. 내가 사는 이곳은 도심, 내 앞 집, 내 옆집에도 나처럼 혼자 사는 사람들이다. 예전에는 이것이 가족 해체에, 사회를 위협하는 적신호라 여겨졌지만 요즘에는 오히려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나는 이런 생활이 편하고, 지하철은 거의 안 타지만, 역세권에 살면서 누리는 이점이 너무 많아서 앞으로도 나는 이사를 간다고 해도 지하철 근처에 살 것 같다. 집에 들어갈 돈이 없으면, 집의 규모를 줄이고 편의를 줄이더라도, 도시 속 점점이 구심점 역할을 하는 역 근처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다. 내가 태어난 곳은 도시이며, 내가 앞으로 살아갈 곳도 도시이며, 그 도시에서도 생활하기 편한 곳에서 앞으로도 계속 살고 싶다.



남자친구는 전라도, 전라도에서도 도시가 아닌 시골 출신이다. 예전에 남자친구 집에 놀러 갔을 때 본인의 어렸을 적 사진을 보여준 적이 있다. 집 툇마루 앞에서 지게를 지고 웃고 있는 사진이었다. 남친이 6살 때인가 7살 때라고 했다. 그 사진을 보고 이 친구를 어떤 일이 있어도 미워할 수는 없겠다고 생각했다. 남친은 보릿고개도 넘어 봤고 너무 배가 고파서 집 벽으로 만든 흙을 파서 여동생이랑 나눠 먹기도 했단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 꼭 할머니 어렸을 적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아서 기묘하고도 흥미롭다.



다만 이렇게 유년시절을 보내온 '공간'이 달라서 트러블이 생길 때가 있다. 인간의 뇌는 유년시절을 기억하고, 뇌를 형성하는지 모르겠지만 그의 소망은 어느 정도 돈 모으고 나이가 차면 시골로 내려가 농사짓고 살겠다는 것이다. 시골은 공기도 맑고, 물도 깨끗해서 살기 아주 좋다는 것이다. 부산처럼 하수구 냄새가 나지 않는다고.



나는 반대 의견을 내놓는다. 일단 시골은 무섭다. 방범이 취약하다. 화성연쇄살인사건 같은 일들이 무의식중에 떠오른다. 그리고 부산이 하수구 냄새가 난다면, 시골은 가축의 분뇨 냄새로 가득하며, 간혹 있는 공장들이 뿜어내는 매연도 독하다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편의 시설이 흔치 않다. 이것이 제일 불만이다. 그리고 요즘에 급격히 발달한 모바일 상품권들. 시골에서는 무용지물, 가격이 0으로 수렴한다. 모바일 상품권도 도시에 있을 때나 쓰일 곳이 있고, 그렇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



물론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무의미하다. 나는 결혼 생각이 없고, 익숙한 도시 생활을 계속 영유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는 도시가 좋고, 이 도시에 난 길들처럼 가로로 세로로 교차하는 이야기들, 때로는 복잡한 골목처럼 어디로 이어질지 알 수 없는 도시의 이야기들이 나는 좋다. 한적하고 큰 이야깃거리가 없는 시골보다, 북적북적 사람들과 이야기로 들끓는 도시가 좋은 것이다.




뜨끈하게 전기요 온도 올려놓고 김진애 도시건축가의 책을 읽었다.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았다. 도시를 사랑하는, 도시 이야기로 읽혔다. 우리 도시에 대해서 도시 관련 학자들은 많이들 비판한다. 그리고 해외여행을 좀 다녀본 사람들도 우리나라 도시를 비난, 비하하기 일쑤다. 하지만 나는 우리나라 도시의 독특한 모습이 좋다. 세상 어느 도시에 가도, 우리 도시 같은 곳은 없으리라.




우리 도시들은 '잡종성'이 강하다. 혼성이라고 해도 좋다. 유럽처럼 원조를 자처하며 순종을 내세우는 문화, 미국처럼 혁신을 앞세워 신종을 지향하는 문화와는 달리 우리는 순종을 품고 신종을 지향하되 그 무엇이든 품에 안는 잡종의 문화다. 


왜 잡종성이 강해졌을까? 급격한 사회적 충격과 낯선 문물의 습격을 받아들이고 적응시키고 숙성시키는 과정을 스스로의 힘으로 감당하기 힘들었던 근대기의 험난한 역사가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127쪽


아마도 나는 우리나라 도시의 이런 '잡종성'에 매력을 느끼는 건지도 모르겠다. 특히 내가 자라고, 지금도 살고 있는 부산은 일제강점기를 거쳐, 한국전쟁 당시 임시수도로서 우여곡절을 겪었고, 폭발하는 피난민들에 의해 도시가 급격하게, 그리고 카오스적으로 팽창했다. 다른 대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즉흥성, 지역성이 이곳에 있다. 그리고 사회기반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채 도시가 커졌기 때문에 어느 정도 하수도 냄새가 나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산 중턱에 집들이 즐비하고, 아주 좁은 산 도로를 일반 시내버스가 곡예운전하듯 아슬아슬하게 다니는 것은 부산 아니면 보기 힘들 것이다. (가끔 차들이 남의 집 지붕 위에 처박히기도 한다)




스토리텔링의 힘


스토리텔링은 그래서 필요하다. 여행이라는 단속적 체험을 이어주는 것이 스토리의 힘이다. 점을 이으면 스토리가 되고 스토리 속에서 점 하나하나는 더욱 빛나게 된다. 스토리는 확장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으며 확장은 하나의 스토리텔링으로부터 시작된다. 많은 사람들이 스토리를 공유하게 만드는 것이 스토리텔링의 힘이다. 


163쪽


부산이라는 스토리 많은 도시에서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도시를 이만큼 사랑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런더너, 뉴요커 등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부심을 나는 알 것 같다. 비록 서울만큼 완전 큰 도시는 아니지만, 복잡다단하고, 많은 이야기가 스며 있고, 또 무엇보다 바다가 있는 도시라서 나는 부산을 사랑한다.



하지만 부산도 권력과 욕망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 책에서도 부산 엘시티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간 말 많고 탈 많았지만 이렇게 얼토당토않은 비리가 있을 줄은 몰랐다. 특히나 이번에 부동산 제한이 부산에서 일제히 해제되는 바람에 부산 부동산 가격이 들썩이고 있다. 나는 이게 마냥 좋지 않고, 반대로 박탈감 느껴진다. 그와 맞물려 부산 시청의 고위 공직자에 대한 구설수와 검찰 조사로 시끄러운데 모든 게 의심쩍게 느껴진다.




그래서 도시는 '머니 게임'의 핵심 공간이 된다. 이 현상은 욕망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 대하여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낳는다. 욕망이란 나쁘기만 한가? 어디까지가 건강한 욕망이며 어디부터가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을까? 탐욕이 파국으로 치달을 위험이 크다면 사회는 어느 정도로 또 어떤 방식으로 탐욕을 제어할 수 있는가? 과연 도시에 그런 능력이 있는가? 


210쪽


이번에 훌쩍 오른 집값, 그래도 나는 여기서 살기 싫다고 살 수 없다고 이 도시를 버리고 외곽으로 시골로 떠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 어쨌거나 이곳은 내가 살 곳. 그렇다면 나는 남들의 탐욕에 꼬리를 잡고 그 탐욕의 위로 올라갈 방법밖에 없는 게 아닐까 싶다. 그럴 수밖에. 이곳에 살고 싶다면, 탐욕과 욕망도 복사하여 내 내면에 심어두어야 한다.



도시는 편리의 공간, 익명의 공간, 이야기가 있는 공간, 탐욕이 있는 공간이다. 내 남자친구처럼 누군가는 이러하기 때문에 도시를 떠나고 싶어 하지만, 도시는 늪과 같아서 한 번 발을 내디디면 빠져나가기가 힘든 곳이 아닐까 싶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도시를 사랑하게 된다. 어느 정도, 저자의 도시에 대한 마음이 내 마음처럼 느껴졌다.



도시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롭다. 이 책도 재밌게 잘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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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 오늘의 젊은 작가 24
김기창 지음 / 민음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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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긴밀히 이어져 있으며, 부처의 '인연과보'의 법칙이 떠오른 소설이었다.

현실적이면서도 '소설 같은' 소설, 그럼에도 오늘의 나를 돌아보게 한 소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중심 인물은 총 7명.

군수업체 하청 기업을 운영하는 윤사장. 남편이 죽고 혼자 회사를 일으켜 세운다고 고생이 많았다. 책임감 때문에 회사를 운영하지만 그녀에게 제일 소중한 것은 아들인 정우와 딸인 정인이다. 윤사장의 장남인 정우는 미국에 유학 갔다가 '섬머'라는 여성과 사랑에 빠졌다. 정인은 피아니스트 유망주 성장한다. 윤사장은 음악을 무척 사랑해서, 정우보다 정인을 더 좋아한다. 그녀의 바람은 어서 은퇴하고 정인의 순회 공연을 따라다니며 그녀를 케어하는 것이다.

무난한 성격을 가진 윤사장 아들 정우. 우연히 들어가게 된 동물보호 협회에서 '섬머'를 만나고, 그녀의 당당함과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에 이끌려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윤사장의 딸, 정인. 젊은 피아니스트로 성장 가능성 높은 피아니스트로 알려졌다. 윤사장의 자랑. 성격도 좋고, 아름다운 외모. 특히 손이 예쁘다. 정인은 잘못한 게 없었지만 훙의 잘못된 생각과 복수심으로 그녀의 꿈, 그녀의 일상은 산산조각난다.

베트남 출신의 불법체류 노동자, 훙. 돈을 벌기 위해 러시아 어선을 탔다가 더 오래 머물면 죽을 것 같아서 잠깐 한국에 정박했을 때 도망친다. 흘러흘러 윤사장 회사에 들어가게 되었고, 손재주가 좋고 손놀림이 빨라 섬세한 작업에 자주 동원되었다. 작업 물량이 많았던 날, 부탁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잔업하다가 손가락 3개를 잃게 된다. 평소 사장 딸인 정인을 흠모하였다.

벤, 퇴역한 미군. 꽤 많은 연금으로 넉넉히 생활하며 천사의 도시로 불리는 방콕에서 방탕한 생활을 한다. 그곳에서 예쁘고 아름다운 와이를 만나 동거중이다.

섬머, 벤의 딸. 열렬한 동물 보호자. 동물보호협회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일한다. 그 때문에 동남아 상아 밀수업자들에게 협박을 당한다. 정우와 사랑에 빠진다.

와이, 태국 방콕에서 돈 많고 나이 많은 외국인 한 명을 만나 여생을 편하게 사는 것이 그녀의 소망이다. 본인이 창녀라는데 자격지심이 심하고, 벤에 대한 집착이 크다.

린, 태국에서 훙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미스터리하지만, 믿음직하고 매력적인 훙에게 빠져들지만 그의 과거와 본모습을 알게 되고 그를 떠난다.


신자유주의가 맹위를 떨치고 세상의 모든 사람, 모든 것들은 자기도 모르게 세상 반대편과 긴밀히 이어지게 되었다. 지금 우리가 입고 있는 옷, 지금 우리 손에 들려 있는 핸드폰, 우리가 먹고 있는 것 거의 대부분이 지구 반대편 어딘가에서 온 것이다. 이런 세상에서 갑과 을의 관계가 연쇄적으로 형성되며, 피해를 입고 앙심을 품은 을은 간혹 잘못된 대상을 향해 복수를 한다.

이 소설에서는 '훙'은 잘못된 방향으로 복수를 한 乙로 나온다. 윤사장은 그가 불법체류자임에도 불구하고 입원비와 월급을 넉넉히 줬으니 자신이 할 도리는 다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훙은 자신이 인간으로서 제대로된 대우를 받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윤사장에게 앙심을 품는데 여기서 비극이 발생했다. 훙은 윤사장에 대한 복수심을 그녀의 딸, 정인에게로 돌렸다.

그런데 과연 복수심 때문이었을까. 나중에 밝혀지지만 훙이 손가락을 잃기 전에도 성폭행 가해자로서의 시각으로 그의 욕망을 자기 일기장에 빼곡히 적어 놓았다. 그의 복수는 그가 평소에 하던 망상을 실행에 옮기게 한 하나의 계기였을 뿐이다.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듯, 훙의 복수는 여러 잘못된 결과를 자초한다. 그와 아무런 관련 없는 벤의 죽음, 린의 떠남, 정인의 사고, 마지막에 그의 죽음까지.

신자유주의로 세상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일이 어떤 파급효과를 가지고 다른 나라,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건 필연의 법칙에 따라 반드시 어떤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우리들은 원인과 결과를 알 수 없게 서로 복잡하게 엉켜있지만 이윽고 내 잘못에 대한 과보는 기어코 나에게 돌아오며, 그 죗값은 피할 수 없다.

오랜만에 부처의 '인연과보'의 사상이 떠오른다. 그리고 지금의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나는 오늘 누군가의 마음에 상처를 줬는데 그 상처는 언젠가 돌고 돌아 나에게 돌아올 것이다. 인과 연의 법칙에서 나는 결코 벗어날 수 없는데 그걸 알면서도 나는 어리석게도 나쁜 행동을 했다. 그런데 이 역시 그 상대방이 지은 원인 때문에 그 결과로 인한 행동이었다. 이렇게 계속 끝없이 윤회를 반복한다. 나는 언제쯤 이 비극적인 윤회를 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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