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지휘자로 익숙한 금난새 님이 에세이집을 묶어 냈다. 친아버지의 에세이와 본인의 에세이를 묶어서. 금난새 아버지, 금수현 작곡가는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도쿄음악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하셨다. 한국으로 돌아와 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제자와 결혼한다. 장모님은 소설가이자 시인이셨던 김말봉 작가. 금수현 작곡가의 '그네'는 김말봉 작가의 '그네'를 읽고 작곡한 곡이라 한다. 이렇게 쟁쟁한 스펙만 놓고 보면 금수현 작곡가는 상당히 근엄하고 무서운 분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이 책에 실린 첫 에세이만 읽어보아도 그렇다. 우화집, 콩트집 같다. 재미나다. 글만 읽으면 근엄한 음악가라기보다는 해학과 위트를 아는 소설가처럼 느껴진다.

자식의 성정은 부모님을 닮는다. 특히 아버지가 미치는 영향은 클 것이다. 어머니는 무의식 깊숙이 영향을 주고, 아버지는 도드라지는 성격에 영향을 주는 것 같다. 금난새 지휘자가 따뜻하고 푸근하며 친근하게 느껴졌던 것은 아버지, 금수현 작곡가의 영향이 아니었을까.
책 들어가기에 보면 금난새 지휘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아버지는 굉장히 과묵한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디선가 약주 한 잔 드신 날이면 전혀 다른 분이 되시곤 했습니다. 이야기가 막힘없이 술술 나왔으니까요. 책을 많이 읽고 글 쓰는 걸 좋아하셨기에 평소 하실 말씀은 많았지만 참았다가 술기운을 빌려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으시는 것 같았습니다. 저희 형제들은 조용한 아버지보다 이야기꾼 아버지를 더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께서 약주를 드신 날은 밤늦도록 이야기꽃을 피우곤 했습니다. 우스갯소리로 만약 도둑이 우리 집에 들어온다면 '이 집 사람들은 왜 잠도 안 잘까?' 고민하면서 지쳐 포기하고 다른 집으로 가 버릴 거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10-11쪽
이 책에 실린 금수현 작곡가의 이야기들은 정말 거침없고 재밌어서 위의 발췌문에 쓴 대로 실제로 약주 한 잔 걸치시면 정말 이야기가 쉴 새 없이 나오고 다른 사람들을 즐겁게 해줬을 것 같다.
특히 기억에 남는 이야기.
금수현 지휘자는 장화홍련전을 싫어하셨단다. 이유인즉슨, 제 자식, 남편 전처의 자식을 계모라도 그렇게 아이들을 학대했을까라며. 그리고 링컨을 예로 든다. 링컨도 계모가 키웠다. 그리고 그 계모가 링컨을 일하도록 만들었다. 우리나라 사람이었으면, 계모라서 링컨을 일하게 시켰다는 말이 나왔을 거라고. 링컨은 일을 했고, 그래서 노예들이 받는 대우도 봤기 때문에 노예해방을 주장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금수현 지휘자가 덧붙이는 말씀. 자식들이 완전히 어려움 없이 살기를 바라지 말라고. 어려움 속에서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리고 덧붙이는 말씀. "부모여, 그렇다고 아이를 일부러 내쫓지는 마시라."

재밌지 않은가.
금수현 작곡가의 에세이도, 뒤에 25편 추가된 금난새 지휘자의 에세이도 이렇게 톡톡 튀는 위트가 스며 있다. 글이 1~2장 짧아 읽기에 부담도 없고, 짧고 인상에 남는 글들이라 누구든 재밌게 읽을 수 있다.
금난새 지휘자가 어떻게 그렇게 따뜻하고 편안한 음악을 연출할 수 있는지 궁금하신 분이라면, 그 아버지인 금수현 작곡가의 글과 그분과 꼭 비슷한 글을 쓰는 금난새 지휘자의 글을 읽으면 알 수 있을 것 같다.
읽기 추천해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