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애의 도시 이야기 - 12가지 '도시적' 콘셉트 김진애의 도시 3부작 1
김진애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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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서 요거트 먹고 홈트 30~40분. 샤워 후에 단백질이 듬뿍 들어간 아침을 든든히 먹은 후 집을 나선다. 종종 내킬 때 집 바로 앞에 있는 스타벅스에 들러 커피를 마신다. 저녁에 집에 오는 길에 뚜레쥬르나 파리바게뜨, 던킨에 들러 빵을 사 온다. 집 바로 아래에 슈퍼도 있고 조금 걸어가면 마트도 있어서 차를 타고 장을 보러 갈 필요가 없다. 혼자 살아서 애초에 마트에서 많이 살 필요가 없다. 많이 사는 것은 오히려 부담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벤트로 받은 편의점 모바일 상품권으로, 집 근처 편의점에 자주 간다. 주말에 남자친구가 놀러 오면 종종 피자나 치킨 배달음식을 주문해 먹는다. 영화관이나 백화점도 가깝다. 걸어간다. 차를 타고 이동할 때라고는 가끔 기분 전환 삼아 가는 바다나 교외 지역에 갈 때뿐이다. 내가 가야 하고, 내가 가고 싶은 곳은 대체로 다 걸어갈 수 있다. 내가 사는 이곳은 도심, 내 앞 집, 내 옆집에도 나처럼 혼자 사는 사람들이다. 예전에는 이것이 가족 해체에, 사회를 위협하는 적신호라 여겨졌지만 요즘에는 오히려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나는 이런 생활이 편하고, 지하철은 거의 안 타지만, 역세권에 살면서 누리는 이점이 너무 많아서 앞으로도 나는 이사를 간다고 해도 지하철 근처에 살 것 같다. 집에 들어갈 돈이 없으면, 집의 규모를 줄이고 편의를 줄이더라도, 도시 속 점점이 구심점 역할을 하는 역 근처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다. 내가 태어난 곳은 도시이며, 내가 앞으로 살아갈 곳도 도시이며, 그 도시에서도 생활하기 편한 곳에서 앞으로도 계속 살고 싶다.



남자친구는 전라도, 전라도에서도 도시가 아닌 시골 출신이다. 예전에 남자친구 집에 놀러 갔을 때 본인의 어렸을 적 사진을 보여준 적이 있다. 집 툇마루 앞에서 지게를 지고 웃고 있는 사진이었다. 남친이 6살 때인가 7살 때라고 했다. 그 사진을 보고 이 친구를 어떤 일이 있어도 미워할 수는 없겠다고 생각했다. 남친은 보릿고개도 넘어 봤고 너무 배가 고파서 집 벽으로 만든 흙을 파서 여동생이랑 나눠 먹기도 했단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 꼭 할머니 어렸을 적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아서 기묘하고도 흥미롭다.



다만 이렇게 유년시절을 보내온 '공간'이 달라서 트러블이 생길 때가 있다. 인간의 뇌는 유년시절을 기억하고, 뇌를 형성하는지 모르겠지만 그의 소망은 어느 정도 돈 모으고 나이가 차면 시골로 내려가 농사짓고 살겠다는 것이다. 시골은 공기도 맑고, 물도 깨끗해서 살기 아주 좋다는 것이다. 부산처럼 하수구 냄새가 나지 않는다고.



나는 반대 의견을 내놓는다. 일단 시골은 무섭다. 방범이 취약하다. 화성연쇄살인사건 같은 일들이 무의식중에 떠오른다. 그리고 부산이 하수구 냄새가 난다면, 시골은 가축의 분뇨 냄새로 가득하며, 간혹 있는 공장들이 뿜어내는 매연도 독하다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편의 시설이 흔치 않다. 이것이 제일 불만이다. 그리고 요즘에 급격히 발달한 모바일 상품권들. 시골에서는 무용지물, 가격이 0으로 수렴한다. 모바일 상품권도 도시에 있을 때나 쓰일 곳이 있고, 그렇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



물론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무의미하다. 나는 결혼 생각이 없고, 익숙한 도시 생활을 계속 영유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는 도시가 좋고, 이 도시에 난 길들처럼 가로로 세로로 교차하는 이야기들, 때로는 복잡한 골목처럼 어디로 이어질지 알 수 없는 도시의 이야기들이 나는 좋다. 한적하고 큰 이야깃거리가 없는 시골보다, 북적북적 사람들과 이야기로 들끓는 도시가 좋은 것이다.




뜨끈하게 전기요 온도 올려놓고 김진애 도시건축가의 책을 읽었다.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았다. 도시를 사랑하는, 도시 이야기로 읽혔다. 우리 도시에 대해서 도시 관련 학자들은 많이들 비판한다. 그리고 해외여행을 좀 다녀본 사람들도 우리나라 도시를 비난, 비하하기 일쑤다. 하지만 나는 우리나라 도시의 독특한 모습이 좋다. 세상 어느 도시에 가도, 우리 도시 같은 곳은 없으리라.




우리 도시들은 '잡종성'이 강하다. 혼성이라고 해도 좋다. 유럽처럼 원조를 자처하며 순종을 내세우는 문화, 미국처럼 혁신을 앞세워 신종을 지향하는 문화와는 달리 우리는 순종을 품고 신종을 지향하되 그 무엇이든 품에 안는 잡종의 문화다. 


왜 잡종성이 강해졌을까? 급격한 사회적 충격과 낯선 문물의 습격을 받아들이고 적응시키고 숙성시키는 과정을 스스로의 힘으로 감당하기 힘들었던 근대기의 험난한 역사가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127쪽


아마도 나는 우리나라 도시의 이런 '잡종성'에 매력을 느끼는 건지도 모르겠다. 특히 내가 자라고, 지금도 살고 있는 부산은 일제강점기를 거쳐, 한국전쟁 당시 임시수도로서 우여곡절을 겪었고, 폭발하는 피난민들에 의해 도시가 급격하게, 그리고 카오스적으로 팽창했다. 다른 대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즉흥성, 지역성이 이곳에 있다. 그리고 사회기반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채 도시가 커졌기 때문에 어느 정도 하수도 냄새가 나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산 중턱에 집들이 즐비하고, 아주 좁은 산 도로를 일반 시내버스가 곡예운전하듯 아슬아슬하게 다니는 것은 부산 아니면 보기 힘들 것이다. (가끔 차들이 남의 집 지붕 위에 처박히기도 한다)




스토리텔링의 힘


스토리텔링은 그래서 필요하다. 여행이라는 단속적 체험을 이어주는 것이 스토리의 힘이다. 점을 이으면 스토리가 되고 스토리 속에서 점 하나하나는 더욱 빛나게 된다. 스토리는 확장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으며 확장은 하나의 스토리텔링으로부터 시작된다. 많은 사람들이 스토리를 공유하게 만드는 것이 스토리텔링의 힘이다. 


163쪽


부산이라는 스토리 많은 도시에서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도시를 이만큼 사랑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런더너, 뉴요커 등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부심을 나는 알 것 같다. 비록 서울만큼 완전 큰 도시는 아니지만, 복잡다단하고, 많은 이야기가 스며 있고, 또 무엇보다 바다가 있는 도시라서 나는 부산을 사랑한다.



하지만 부산도 권력과 욕망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 책에서도 부산 엘시티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간 말 많고 탈 많았지만 이렇게 얼토당토않은 비리가 있을 줄은 몰랐다. 특히나 이번에 부동산 제한이 부산에서 일제히 해제되는 바람에 부산 부동산 가격이 들썩이고 있다. 나는 이게 마냥 좋지 않고, 반대로 박탈감 느껴진다. 그와 맞물려 부산 시청의 고위 공직자에 대한 구설수와 검찰 조사로 시끄러운데 모든 게 의심쩍게 느껴진다.




그래서 도시는 '머니 게임'의 핵심 공간이 된다. 이 현상은 욕망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 대하여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낳는다. 욕망이란 나쁘기만 한가? 어디까지가 건강한 욕망이며 어디부터가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을까? 탐욕이 파국으로 치달을 위험이 크다면 사회는 어느 정도로 또 어떤 방식으로 탐욕을 제어할 수 있는가? 과연 도시에 그런 능력이 있는가? 


210쪽


이번에 훌쩍 오른 집값, 그래도 나는 여기서 살기 싫다고 살 수 없다고 이 도시를 버리고 외곽으로 시골로 떠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 어쨌거나 이곳은 내가 살 곳. 그렇다면 나는 남들의 탐욕에 꼬리를 잡고 그 탐욕의 위로 올라갈 방법밖에 없는 게 아닐까 싶다. 그럴 수밖에. 이곳에 살고 싶다면, 탐욕과 욕망도 복사하여 내 내면에 심어두어야 한다.



도시는 편리의 공간, 익명의 공간, 이야기가 있는 공간, 탐욕이 있는 공간이다. 내 남자친구처럼 누군가는 이러하기 때문에 도시를 떠나고 싶어 하지만, 도시는 늪과 같아서 한 번 발을 내디디면 빠져나가기가 힘든 곳이 아닐까 싶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도시를 사랑하게 된다. 어느 정도, 저자의 도시에 대한 마음이 내 마음처럼 느껴졌다.



도시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롭다. 이 책도 재밌게 잘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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