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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와 나오키 1 - 당한 만큼 갚아준다 ㅣ 한자와 나오키
이케이도 준 지음, 이선희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19년 6월
평점 :
그래, 당한 만큼 갚아줘야지! 생산적 복수!!
일본 명문, 게이오 대학에서 졸업을 앞둔 한자와 나오키('한자'와 '나오키'가 아니고 그냥 한 명의 이름이 '한자와 나오키다'). 한자와는 제조업 공장을 운영했던 아버지를 보면서, 기업과 은행의 관계에 깊은 인상을 받고 금융계에 결심을 한다. 때는 마침 일본이 버블 경제의 최정점을 찍었던 때다. 활황이다 보니 취업 준비생들은 갈 데도 많았고, 오라는 데도 많았다. 하지만 넘쳐나는 일자리에도 양질의 일자리엔 경쟁률이 높다. 특히 은행 자리가 그랬는데, 그럼에도 한자와 나오키는 목표가 뚜렷했기 때문에 무난하게 은행에 취직한다.
시간이 흘렀고 한자와는 융자 과장이 되었다. 결혼을 해서 아내와 아이도 있다. 그런데 그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마음에 들진 않지만 지점장이 막무가내로 대출을 해 주라던 회사(서부오사카철강)에 뒤늦게 분식회계가 있다는 소식.
한자와는 처음부터 서부오사카철강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점장이 한자와에게 이 회사의 사장을 만나고 오라고 해서 갔던 첫날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직원들이 빈둥빈둥 놀거나 담배를 피우고 있고, 어디선가 계속 전화 울리는 소리가 들리지만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아 벨소리만 날카롭게 울린다. 직원이 한자와를 대하는 태도도 영 마음에 안 든다. 간단한 인사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다. 어쨌거나 상사인 지점장의 지시가 있고 하니, 사장을 만나 대출 관련 대화를 하는데 이 사장의 태도도 기고만장이다. 은행원이라고 무시하고, 한자와가 담당 직원이 준 명함을 그 자리에서 찢어버린다. 그럼에도 교묘하게, 대출을 완강하게 거절하는 기색은 없다. 은행원들의 기는 팍, 죽이면서도 대출받을 수 있는 여지는 두는 것이다.

어쨌거나 지점장이 닦달하여 한자와는 서부오사카철강에 대출을 해준다. 대출하기 전에 융자 과장인 한자와가 해당 회사의 회계 자료를 꼼꼼히 검토해야 하는데 한자와가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지점장이 날림으로 결재하고 넘긴 것이다. 한자와는 화가 났지만 그냥 넘어갔다. 그러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분식회계 증거가 드러났고, 한자와가 백방으로 뛰어다녔지만 해당 회사의 사장은 교묘하게 피해 다닌다. 그러다 이 회사는 부도가 났다.
한자와는 회계 장부를 조작하고 5년 전부터 회사 경영이 악화되었음에도 이를 속이고, 큰소리를 떵떵 친 사장에게 화가 났다. 하지만 더 화가 난 것은, 모든 걸 지점장이 독단으로 밀어붙였으면서 철강 회사가 부도를 내자 모든 일을 한자와의 책임으로 돌린 것이다. 지점장은 지점장인 만큼 인맥이 두툼했다. 또 자리가 높다 보니, 권세가 있는 사람을 두루 알고 있었고 여러 방면에서 한자와의 목을 죈다.
모든 게 한자와의 책임으로 흘러갔다. 한자와는 억울했다. 야근도 밥 먹듯 했다. 집에 가면, 많은 것을 희생하고 같이 전근을 따라온 아내가 날카로운 질문 공세를 펼쳤고 한자와는 집에서도 마음이 편치 못하다. 어쨌거나 모든 화살은 자기에게로 겨누워져 있고, 이를 한자와 스스로 타개해야 했다.
이때부터 이야기는 장르가 탐정물 혹은 형사물처럼 된다. (물론 주인공의 직업이 탐정이나 형사가 아니므로 그 결이 좀 다른데... 그럼 이 장르물을 뭐라고 해야 하지? 은행원물?! 대출물? @ㅅ@)
한자와는 처음부터 이상했던 철강 회사의 사장의 뒤를 캐기 시작하고, 또 나중에는 사장과 연결되어 있는 또 다른 인물에 대해 파고든다. 하나씩 드러나는 사건의 전말! 한자와는 자신의 억울함을 풀고, 의도적으로 부도를 낸 사장과 공범을 찾을 수 있을까!!! (당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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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저자 이케이도 준은 게이오 법대를 졸업했고, 버블 시기에 미쓰비시 은행에서 일을 했다. 7년 동안 은행에서 근무한 뒤 창업을 했고 이후 책의 집필에 힘을 쏟았다. 미스터리 장르를 평소 좋아해서, 자신이 은행에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한 편의 미스터리 장르물을 만든 것이다. (하지만 완전히 미스터리 장르는 아니다. 치열한 직장인의 하루하루의 일과는 날것 그대로의 것이라, 신비함과 모호함을 자아내는 미스터리의 속성을 완벽히 지닐 수 없는 것이다.)
그래도 저자의 의도는 좋았고, 책도 군더더기 없이 굉장히 잘 쓰였다고 본다. 이야기의 짜임새도 쫀쫀! 원작이 탄탄하다 보니, 동명의 일본 드라마 <한자와 나오키>가 대 성공을 거둔 듯하다.
은행의 대출 업무와 관련해서 생각보다 자세히 묘사되어 있으나 저자는 독자의 눈높이에 맞춰 잘 풀어썼고, 크게 어려운 점은 없었다. 모르는 부분은 그냥 아, 이런 게 있구나 하며 넘어가면 된다. 이야기 흐름에서는 지엽적인 부분이 중요한 게 아니니까. 핵심은 이 부도가 의도적이냐 아니야, 그렇다면 사장은 돈을 빼돌렸냐 아니냐, 또 그에게 공범이 있을랑가, 혹 그 사장이나 공범에게 약점이 될 건 무엇이냐 이런 것-
이 책을 읽고 흥미로웠던 게 많았는데, 이야기 자체도 물론 흥미롭고 재밌었지만 그 외의 다른 문화적인 부분... 이것도 참 인상 깊었다. 이 책을 읽고 깨달은 바, 어느 회사나 비슷하다- 우리나라 회사나 일본 회사나 똑같구나. 상사는 옳은 소리는 잘하지만 막상 실천은 잘 못하고, 성과에 집착하여 부하 직원들을 닦달하면서 어떤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면 책임을 부하 직원들에게 전가하는 태도. 그래요, 조직은 조직인 것이죠. 조직은 비슷한 면이 있는 것이다. 특히 상하 관계가 뚜렷한 관료제는 뭔가 판에 박은 듯 비슷하다.
어쨌거나 사건의 전말은 이 책에서 다 밝혀졌다. 그런데 『한자와 나오키』는 총 4권이란다. 그럼 다음 권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1권의 마지막을 읽으면, 한자와가 학생일 때 어려웠던 아버지 회사에 등을 돌린 은행 직원에 대한 복수극이 펼쳐질 것 같다. 이 인물은 1권에서도 잠깐 나오는데, 이때도 한자와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과연, 한자와는 앞으로 어떻게 복수를 할지, 궁금하다. 완전히, 제대로, 복수하면 좋겠는데. 상대방에게 해코지하는 복수는 반대다. 대신에 복수하는 사람이 비약적인 성장을 해서 상대방을 완전히 기(氣)로 제압하는 복수를 좋아한다. 마음으로 굴복할 수밖에 없는 복수! 과연 이런 복수극이 펼쳐 질는지, 사뭇 기대됨. 2권도 필히 읽어야겠다. +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