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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은 순례길이다 - 지친 영혼의 위로, 대성당에서 대성당까지
김희곤 지음 / 오브제 / 2019년 4월
평점 :
건축가 김희곤의 산티아고 순례를 담은 기행문.
예수의 12 사도 중 최초로 신앙을 위해 순교한 사도 야고보. 그의 무덤이 스페인 산티아고 대성당에 위치한다. 산티아고는 사도 야고보의 스페인 식 말이다. 이 산티아고 대성당으로 가는 길을 '산티아고의 길'이라고 부르는데 흔히 '산티아고 순례길'로 불린다.
9세기, 산티아고 대성당으로 향하는 순례길이 처음 생겼다. 이 길은 시간이 흐를수록 차츰차츰 길어져 어느덧 프랑스 파리까지 닿게 되었다. 이후 많은 순례자들이 이 '프랑스의 길'을 따라 산티아고 대성당으로 떠났다. 그중 많은 사람들이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당시에 길이 험해 서기도 하고, 시대가 험했었기 때문일 것이다. 정말 모든 걸 다 내려놓고 떠나는 길이었다.
스페인은 우리가 보기에는 그냥 유럽의 나라로 생각되지만, 그 지리적 위치와 역사 때문에 유럽에서도 스페인은 상당히 독특한 면모를 지니고 있다. 유럽인 데다가, 보통의 유럽보다 더 보수적인 유럽이면서 이슬람 문화와 정서 또한 상당히 가지고 있다. 오랜 기간 이슬람에 지배 당하면서 쌓여온 악심과 원한, 국토 회복의 염원 때문에 유럽의 어느 곳보다도 가톨릭 색채가 짙으면서 또한 이슬람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는지라 다층적인 면을 지니게 된 것이다.
프랑스 파리나 영국의 런던, 독일의 베를린 같은 유럽 중심 도시의 화려한 건축에만 익숙한 분이라면 순례길 위의 건물들이 대체로 투박해 보일 것이다. 이 책에 소개된 거의 대부분의 성당이나 건물도 그렇다. 가끔 '대'성당이라고 이름 붙여진 건물들만 화려하다.
어쨌거나 대체로 스페인은 투박하다. 세련된 유럽 중심과 동떨어진 변두리에 위치하고, 또 한때는 이슬람의 변두리이기도 했던 데다가 사막과 바다가 있어 세련미는 크게 갖추지 못했다. 하지만 느닷없이 마주치게 되는 유서 깊은 대성당이랄지, 유명 건축가가 지은 현대 건축을 만날 때면 갑자기 시공간을 초월한 듯 어리둥절하다가 곧 경외감을 느끼게 된다.

김희곤 교수는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에서부터 출발한다. 차츰차츰 프랑스를 내려와 스페인에 도착하고, 산티아고 대성당을 둘러본 후 유라시아 대륙의 끝 피스테라로까지 여정을 지속한다.
이 프랑스 길을 따라 떠나는 산티아고 순례길은 다층적 시간과 공간의 만남이다. 중세와 현재의 만남이며, 유럽 대륙이 굽이굽이 다양하게 주름진 길의 만남이기도 하다. 유럽은 대체로 유물과 유적은 그대로 보존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수 세기 전의 성당이나 성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물론 그동안 증축과 개보수는 지속되었다. 유럽의 성당이나 성은 어떤 면에서는 나무 테라고 해야 할지, 조개껍데기의 늘어나는 주름이라고 해야 할지 시간의 다층성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따라서 건축을 전공한 저자에게 이 산티아고의 순례길이 얼마나 좋았을까. 각 지역과 성당에 대한 간단한 역사와 건축적 특징을 설렘으로 설명한다. (건축가에겐 산티아고 순례길이 천국의 길이 아닐까) 그런데 건축에 대한 소양이 별로 없는 나로서는 저자의 말을 완벽히 잘 이해하진 못했다. 다만, '이 성당에는 이런 특성이 있고 그래서 유의미하구나', 체크하며 넘어갔다. 건축에 나름 관심이 있어 K-MOOC로 건축 강의도 들었는데 일반인에게는 건축이 역시나 어렵다. 하긴, 고도의 전문 분야가 아닌가.
이 책은 단순히 순례길 위의 여행담이 아니다. 여행에 관한 이야기는 많이 적다. 대신에 산티아고 순례길 위에서 만날 수 있는 건축에 대한 이야기와 그 역사에 대해 많이 소개한다. 순례길을 떠나고자 하시는 분, 그 길에서 자신이 보는 건물이 어떤 건물인지 어떤 양식인지 등을 알고 싶은 분께 유익할 듯하다. 뭐든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