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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메뉴는 제철 음식입니다 - 박찬일 셰프의 이 계절 식재료 이야기
박찬일 지음 / 달 / 2019년 5월
평점 :
도시화는 인간을 인간에게로만 소외시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자연으로부터도 소외시켰다. 어젯밤 하늘에 뜬 달이 보름달인지 초승달인지도 모르고 잠자리에 든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사람들이 하늘을 올려다보고 달의 변화를 인지해야 할 필요성이 현대에는 거의 없어졌기 때문이다. 비단, 하늘에 뜬 달만이 아니다. 우리의 계절 감각도 마찬가지다. 계절마다 제각기 다른 먹을거리가 땅에서 나는데, 이제는 재배 기술이나 보관 기술이 발달해 4계절 언제든 자기가 먹고 싶은 나물을 구할 수 있다. 나무가 수개월의 시간을 머금고 맺은 열매까지, 계절의 경계선은 흐릿해졌다. 수온에 따라 이동하는 물고기들은 오죽할까. 물속에 있어서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물고기들. 물고기들은 수온에 따라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데, 이제는 양식이 워낙 잘 되어있고 하다못해 외국에서 수입하면 되므로 계절 따지지 않고 사시사철 먹고 싶은 물고기를 먹을 수 있다.
산업화와 도시화는 인간을 해방시킨 동시에 인간과 자연으로부터 인간을 소외시켰다. 사람들은 계절감을 잃게/잊게 되었고, 그래서 더욱 계절을 느끼기 위해 계절을 찾아 전국을 헤매고 있다. '봄에는 무엇',이라며 봄의 특산물이 나는 지역으로 우르르 몰려가고, 여름이 되면 '여름에는 무엇',이라며 또 여름 특산물을 찾아 우르르 몰려간다. 하지만 이것도 10년, 20년 이내에 사라지지 않을까. 이런 먹자 관광도 계절감을 그나마 향수로 느끼고 있는 40~50대 이상의 아재와 아지매들이 이끌고 있으니까. 또 한 번 세대가 바뀌면 이런 풍경도 머나먼 옛 기억으로 남을지도 모르겠다. 가까운 미래에는 계절에 대한 향수도 없이 한자리를 맴돌며 모든 먹거리를 식탁 위에 올릴지도. 어쨌거나 우리는, 계절을 잃고 있다. 오로지 냉방과 난방, 그 사이를 왔다 갔다 할 뿐이다.
제철을 잃어가는 우리에게 박찬일 셰프가 제철을 느낄 수 있는 제철 음식들을 턱하니 내놓았다.
책의 구성은 봄/여름/가을/겨울, 총 4부분으로 각 부분에는 각 계절에 나는 제철 음식들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읽고 놀랐던 것은 내가 제철을 제대로 아는 게 드물었다는 것이다. 생선에 제철이 있을 줄 전혀 생각지 못했다. 그나마 제철을 알고 있는 건 과일이나 나물인데, 문제는 내가 알고 있는 제철과 이 책에서 설명하고 있는 제철이 달랐다는 것. 오호통재라... 나에겐 계절이란 없구나. 어쨌거나 이 책을 읽고 충격에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산업화나 도시화로 인해 고도화된 분업화는 우선 나에게 계절을 앗아갔구나 싶다. 나중에는 마케팅을 위한 행사가 우리에게 계절을 알려주는 지표가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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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엔 늦봄부터 시장 과일전이 대단했다. 딸기로 시작해서 자두가 나오면 여름이구나 했다. 딸기는 그 향이 얼마나 진했는지 벌이 몰려들었다. (...) 이제 딸기의 철은 도망갔다. 언젠가부터 딸기 제철이 헷갈린다. 11월이 '제철'이라는 신문 기사도 보았다. 아닌 게 아니라 맞을 수도 있다. 매년 호텔에서 딸기축제 같은 판촉행사를 하는데 보통 3월이던 것이 이제는 1월에 몰렸다.
"시설 재배는 11월부터 3, 4월까지 출하됩니다. 노지는 5, 6월에 나올 테고요. 추촉성 재배라고, 훨씬 더 빨리 촉성, 그러니까 촉진해서 키우는 품종과 기술이 나와서 그래요."
안면도 유일의 딸기농장 주인 정광훈 씨의 말이다.
박찬일, 『오늘의 메뉴는 제철 음식입니다』, 197-1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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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는 제철에 맞는 각 음식재료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생선이나 나물, 과일의 생태, 습성, 어떻게 먹으면 맛있는지, 때로는 저자의 경험담이나 혹은 취재차 만난 분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재밌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고, 문학적이기도 하고, 아재 냄새 폴폴 나는 농담도 버무려져 있다.
우선 재밌다는 건, 하나하나 알아가는 재미인 유익함이 있다는 것이다. 저자가 식재료에 정통한 셰프여서 그런지 내가 모르는 이야기가 참 많다. 그리고 내가 기억하기로는 박찬일 셰프가 기자 출신이던가 그런 줄 아는데(예전에 읽었던 어느 책에서 기자였다가 요리사로 전향했다고 읽었다. 물론 내가 잘못 기억하는 것일 수도) 그래서, 파고드는 것이 예사롭지 않다. 글만 보면 셰프라기보다는, 미식가이거나 음식 평론가 같다. 식재료에 대한 지식이나, 애정이 듬뿍 묻어나 글에 신뢰가 간다.
씁쓸하다는 것은 위에 말한 대로 계절을 잃어가는 우리들이 안타깝고, 갈수록 씨가 말라가는 물고기들과 변해가는 자연환경이다. 많이들 알겠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사랑하는 명태는 이제 우리 바다에서 잡을 수가 없다. (한두 해 전인가, 명태가 동해에 나타났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과연 얼마 동안 한반도 앞바다를 찾을지 미지수다.) 무지와 욕심으로 인한 남획과 환경 오염의 이야기들. 그래서 달라지는 우리 식탁 사정이 참 씁쓸했다.
문학적이라고 한 것은, 문학 작품의 한 소절이 중간중간에 들어 있다. 가령 가을의 메밀. 메밀 하면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빠질 수 없지. 당연히 「메밀꽃 필 무렵」의 백미가 이 책에 실려 있다. 그리고 박찬일 셰프의 글이 좋다. 약간 뭐랄까. 감자의 전분같이 점도 있어서 천천히 읽힌다. 단순 지식을 전하는 글이 아니므로, 빨리 읽기보다는 저자의 흐름에 따라 천천히 읽을 때 읽는 맛이 있다.
아재 냄새 폴폴 나는 농담이 있다는 것은, 음... 읽어보면 아시겠지요. 그래도 심하진 않다. 쪼오금 있을 뿐(개인적으로 독일의 '한스' 어린이 이야기는... 재미가 없...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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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제철 요리에 관한 책이 아니다. 그래서 레시피 같은 건 없다. 또 계절 따라 전국을 유랑하는 식도락을 위한 맛집 소개 책도 아니다. 물론 거의 매 이야기마다 맛있는 집 이야기가 빠짐없이 나오지만 가게 이름(실제로 정말 있는 곳인지 긴가민가한)만 스쳐 지나가 듯 언급될 뿐이다. 그 지역에 살며, 그곳이 단골인 분들은 살짝살짝 언급되는 가게 이름이 반가울 테고, 나처럼 타지의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에게는 어딘가 아스라하고 미스터리한 이름처럼 다가온다.
단지 한 권의 책이지만 많은 것이 담겨 있다. 단순 지식을 원하는 사람에겐 그냥 보통의 제철 음식에 관한 책일 수 있겠지만 우리 땅에서 난 먹을거리를 사랑하시는 분들에겐 맛도 음미하며, 우리 먹거리에 대한 의미 있는 생각을 가져볼 수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경계선이 많이 흐려지고, 사라졌지만 아직도 나는 우리 땅에서 나는 우리 것이 좋다.
(+ 추가. 오랜만에 '신토불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이 말도 매 계절 제철 음식을 찾아 전국을 다니는 무리와 마찬가지로 한때의 유행이었던가.)
│인상 깊었던 부분│
8, 9월은 포도 철이다. 노지 제철이다. 제철이란 노지 재배, 즉 하우스 시설을 갖추지 않고 기르는 걸 말한다. 제철은 '맛있고, 싸고, 풍성하다'는 의미다. 포도로 유명한 옥천에 갔다. 국내 유일의 포도연구소가 옥천에 있다. 나는 포도를 참 좋아한다. 이탈리아에서 포도농장 체험을 하다가 딴 포도가 너무 맛있어서 먹어치우곤 했다. 주인이 보고는 깜짝 놀랐다.
"그 한 송이가 와인이 되면 100유로가 넘을 거요."
웃으면서 말했지만 가시가 있었다. 고급 와인용 포도를 먹어 치우는 사람이라니. 로마네콩티라는 와인은 한 병에 몇 천만 원한다. 포도 1.5킬로그램 정도면 한 벙이 나온다. 식후에 두어 명이 포도를 양껏 먹으면 수천만 원어치가 될 수 있다. 괜히 웃음이 났다. (117-1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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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입한 딸기는 빨리 먹기보다 하루쯤 서늘한 데서 숙성한 후 단시간 차갑게 하여 먹는 게 좋다. 설향 등의 품종은 냉기를 쐬면 신맛이 두드러지게 느껴지기도 한다. 딸기는 숙성해서 맛이 좋아지는 과일이 아니라고 알려져 있는데, 꼭 그렇지도 않다. 딸기 상태를 봐가며 상온에서 익히거나, 냉장고에 며칠 놓아두면 맛이 한결 부드러워지고 신맛이 중화되는 걸 느낄 수 있다. (2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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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랩에 잘 싸여 마트에 진열된 고기를 사들이기 때문에 더 많은 살생이 일어난다. 그냥 편리하게 사서, 과식하게 되고, 냉동실에서 썩어나고, 음식쓰레기로 버려지는 고기가 좀 많은가. 직접 돼지를 잡게 되면, 그 일 자체가쉽지 않으므로 가급적 덜 죽이려고 한다. 자기가 먹을 가축을 직접 죽이는 일은 그래서 '비교적' 더 윤리적이라고 보기도 한다. 미국에서 이런 셀프 도살이 은근히 퍼져나가고 있다는데, 페이스북 창립자도 그 멤버라고 한다. (25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