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했다 - 50명의 과학자들이 알려주는 과학의 생각법
에른스트 페터 피셔 지음, 전대호 옮김 / 해나무 / 2019년 5월
평점 :
절판


과학에 관심은 많지만 관심만으로는 과학을 제대로 이해하기가 너무 어렵고 난해하다. 그래서 즐겨 있는 것이 과학史 책과 과학사의 변곡점에 서 있는 '과학자' 이야기들이다. 시간의 흐름으로 쓰인 과학史와 개성 만점인 과학자의 이야기들은 일반인에게도 쉽고 재밌고, 흥미롭다. 물론 지엽적으로 파고들거나, 방대한 내용을 다룬 책은 어려운데 그래도 일반인들이 과학에 접하기에 제일 쉬운 분야다.

이 책도 이런 맥락에서 읽었다. '어려운 과학, 하지만 알고 싶은걸~' 하는 마음으로. ㅋㅋ

이 책은 과학을 여러 분야로 나눠서 그 분야에서 꼭 다뤄야 하는 과학자들을 소개하고, 그들의 업적이나 생애, 특기할 만한 사항을 서술해 놓았다. 과학 외에 '수학과 정보학', 그리고 과학과 상관없어 보이는 인물도 다룬이 것이 좀 독특했다. 특히 '안톤 체호프'가 제일 의외의 인물이었다. 체호프의 본디 직업이 '의사'여서 깍두기처럼 끼워 넣은 걸까나...

이런 유의 책들이 대체로 그렇듯, 천문학과 물리학자의 분량이 제일 많다. 과학자들은 물리학과 천문학을 과학의 제일 기본으로 생각하기 때문일 터. 갈릴레오 갈릴레이부터 케플러, 뉴턴, 막스 프랑크, 아인슈타인, 닐스 보어, 오펜하이머, 리처드 파인만 등이 다뤄지는데 개인적으로 리처드 파인만이 반가웠다. 워낙에 그의 에세이를 좋아해서 그렇다. 그런데 에세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쓴 글에서 만나는 리처드 파인만은, 내가 알던 사람의 다른 모습을 본 것 같아 기분이 조금 묘했다. 낯섦. 파인만의 에세이를 읽으며 그만큼 내가 감정이입을 많이 했나 보다. 다른 사람이 서술하는 리처드 파인만은 재밌고 매우 똑똑하지만 건방지다. >ㅁ< 근데 똑똑하고 재밌으면 건방진 것도 용서가 된다. 어차피 내 분야 사람도 아닌데 뭐 ㅋ.


책 속 인상적이었던 몇 부분.

예컨대 1930년 베를린에서 열린 한 라디오 박람회 개막 연설에서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했다. "기분 좋게 풀을 뜯어 먹는 소가 그 풀의 식물학을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과학과 기술의 경이로운 성과들을 이해하지 못한 채로 아무 생각 없이 사용하는 사람들은 모두 부끄러움을 느껴야 마땅합니다." (아인슈타인 / 80쪽)
이 문장에서 이 책의 제목을 뽑지 않았을까 싶다. 아무튼 아인슈타인의 저 말에 약간의 반감도 느껴지지만 어쨌든 그는 과학자고, 그것도 인류사를 바꿔놓은 과학자이므로 그의 견해를 존중한다. 내가 모르는 과학의 뭔가를 아인슈타인은 잘 알 것이기 때문. 아인슈타인 님, 과학과 기술의 경이로운 성과들을 저도 이해해보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ㅠ

"미래를 가린 장막을 들춰서 다가오는 세기들에 우리 학문에서 이루어질 진보를 들여다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우리 중에 누가 있겠습니까! 미래의 인류 수학자들은 어떤 목표들을 추구하게 될까요? 드넓고 풍요로운 수학적 사유의 장에서 새로운 세기들은 어떤 새로운 방법들과 사실들을 발견하게 될까요?"

힐베르트는 역사적 연설의 의미와 생기는 굳은 그의 굳건한 기본 태도, 곧 '모든 각각의 수학 문제를 풀 수 있다는 확신'에서 나온다. 그 확신이 그의 연구를 부추겼다. "우리는 내면에서 끊임없는 외침을 듣습니다. 문제가 존재한다. 해답을 찾아라. 너는 순수한 사유를 통해서 그 해답을 발견할 수 있다. 수학에는 '우리는 앞으로도 모를 것이다'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그는 거듭 강조했다. (힐베르트 / 159쪽)
힐베르트의 말이 너무 멋있어서 발췌했다. 역시나 한가닥 하는 사람은 생각하는 거나, 말하는 것도 참말 멋있구나.
그 책이 다윈의 주저 『종의 기원』인데, 이 작품은 제목이 약속하는 바와 달리 종들의 기원을 전혀 설명해주지 못한다. (찰스 다윈 / 204쪽)
이 부분은 웃겨서 발췌했다. 『종의 기원』을 읽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전혀 종의 기원을 설명해주지 못하고 있구나. ㅋㅋ 종의 기원보다는 종의 적응과 변이가 더 적절한 걸까. (그런데 종의 적응과 변이로부터 새로운 종이 기원하는 게 아니던가? 그렇다면, 책의 제목이 틀렸다고 할 순 없겠다.)
(닐스) 보어가 델브뤼크에게 일러준 바에 따르면, 물리학적 세계상의 전복이 성취된 이유들 가운데 중요한 것 하나는, 정말 단순한 시스템이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 시스템은 양성자 하나와 그 주위를 도는 전자 하나로 이루어진 수소 원자다. 그렇게 단순한 수소 원자 덕분에 과학자들은 추측하고 더듬으면서 새로운 법칙들에 접근할 수 있었다. (델브뤼크 / 260-261쪽)
델브뤼크는 분자생물학의 개척자인데, 잠시 닐스 보어 밑에 있었다. 거물 밑에서 배우면, 사고의 깊이와 폭이 엄청나게 확장한다. 델브뤼크는 닐스 보어 밑에 있을 때 강렬한 인상을 받았고, 후에 분자생물학을 열었다. 분자생물학은 그 분야 특유의 환원주의로 비판받기도 하지만 이렇게 단순한 원리, 기본 구조를 찾으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우리가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뭔가가 드러날 수 있다.

또 위 발췌한 문장이 좋았던 점은, 하나의 깨달음을 주기 때문이다. 한 분야의 통찰력은 완전히 다른 분야를 열어젖힐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기도 한다는 것. 같은 맥락으로 이 책의 다른 쪽에 실려 있던 문장이 떠오른다.

화학만 아는 사람은 화학도 모른다.
자연과학만 아는 사람은 자연과학도 모른다.

224쪽

위의 말은 18세기 인물인 게오르크 크리스토프 리히텐베르크가 한 말이다. 델브뤼크와 닐스 보어의 일화와 리히텐베르크의 말이 1:1로 대응하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관련 다른 분야도 잘 알고 이해해야 자기 분야의 이해도가 높아진다는 것. 곱씹고 명심해야 하는 말이다. 한 분야에만 갇혀 있으면 안 된다. 한 분야를 위해서, 다른 분야도 접하고 알아야 한다.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했다』의 저자 에른스트 페터 피셔도 과학을 전공한 사람이다. 독일 쾰른 대학에서 수학과 물리학을 전공하고, 과학사 교수로 오랫동안 학생들을 가르쳤다. 1947년 생으로 연세가 꽤 되시는데 그래서인지 이 책에 언급된 과학자와 교류했다는 이야기도 실려있다. '바버라 매클린톡'이라고 생소한 여성 과학자인데 1983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옥수수 과학자라고 한다. 저자는 저자는 이 분과 같이 산책을 같이 했었는데, 짧은 만남이었지만 굉장히 인상 깊었다고 서술한다. 어쨌든 한 분야에 특출나고, 게다가 노벨상까지 받은 분이면 뭔가 분위기나 대화에서 남다른 인상을 받을 것 같다. (그래서 자기 분야에서 어떤 성취를 해 낸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봐야 한다)

이전에 저자의 『밤을 가로질러』라는 책보다 좀 더 수월하게 읽혔다. 저자도 독자층을 중고생과 일반인을 잡고 글을 쓴듯하다. 군데군데 사견도 좀 섞인 듯한 느낌적인 느낌. 교과서처럼 딱딱한 책은 아니므로, 과학자의 생애에 관심 있는 분들은 가볍게 읽어보면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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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 셋, 지금부터 혼자 삽니다
슛뚜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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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자 살기 전까지, 나는 집이라는 공간이 가지고 있는 힘을 몰랐다. 현관문 하나만 닫으면 복잡하고 시끄러운 세상과 떨어져, 오로지 나만을 위한 공간으로 변하는 집. 여기에서는 내가 대장이다.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아나고 싶을 때 일어나는 건 기본. 내가 좋아하는 색으로 집을 가득 채우고, 나만의 기준으로 가구를 배치한다. 조금 우습게 보이거나 일반적이지 않아도 괜찮다. 여긴 '내 집'이니까. 바깥에서 받는 스트레스와 사람들 사이에 섞여 들어갈 때 쓰는 약간의 가면은 현관을 들어서며 신발과 함께 벗어둔다. 나만이 볼 수 있는 진정한 나의 모습을 모두 보여도 괜찮다. 여긴 나만을 위해 존재하는 '나의 집'이니까. 

   혼자만의 공간에서 4년. 나는 때로 혼잣말을 했고, 때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말을 하지 않으면 집은 하루 종일 적막이었다. 어느 날은 하루가 아침부터 밤까지 쉴 새 없이 바쁘게 돌아갔고 어느 날은 해가 뜨고 지는 내내 커튼을 쳐놓고 잠만 자기도 했다. 때로는 우울했고, 때로는 행복에 겨웠다. 지겹도록 들리는 매미 울음소리 아래, 더위에 지쳐 선풍기와 에어컨을 틀어놓고 침대에 늘어져있던 날들이 있었고 샤워를 하고 나오면 온몸의 피부로 느껴지는 서늘함에 서둘러 두꺼운 샤워가운을 걸치던 나날도 있었다. 

   이 책에는 어쩌다 반려견 베베와 단둘이 살게 된 그 4년의 일상들이 담겨 있다. 아주,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나는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어 무던히 애를 써왔다. 그리고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에만 집중하며 살아가는 요즘, 나는 행복하다. (- 프롤로그 中)



유튜브 vlog로 유명한 슛뚜 님의 첫 책. 전에 슛뚜 님의 유튜브로 책을 쓰고 편집한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그 책이 아마 이 책인 듯싶다. 슛뚜 님의 감성이 묻어나면서, 유튜브보다는 현실적이고 사실적이며 보다 가깝게 느껴진다. 유튜브는 감성적인 면이 강해서, 나와는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처럼 멀게 느껴지는데 『스물 셋, 지금부터 혼자 삽니다』는 보통의 우리가 하는 고민을 슛뚜 님도 함께 하고, 작은 것에 기뻐하고 만족감 느끼는 것 같아 친근하다.


슛뚜 님은, 위에 발췌 글에도 있듯이 4년 전에 독립을 했다. 슛뚜 님의 반려묘를 가족이 상의도 없이 다른 분에게 줬고 그 때문에 크게 싸웠다고 한다. 그 길로 슛뚜 님은 같이 살던 반려견 '베베'를 안고 집을 나왔다. 친구 집을 며칠 전전하다가, 다음 학기 등록금으로 모아둔 돈을 깨서 집을 마련했다(물론 집을 산 건 아니고, 세입자로 들어간 것). 그때부터 슛뚜 님은 집을 돌보기 시작했고, 그러자 자기 자신도 돌봐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슛뚜 님의 유튜브나 책을 보면 슛뚜 님의 집 사랑이 대단하다. 집 사랑이라는 한글 표현보다 '집에 대한 애착'이라는 한자 표현이 느낌적으로 더 적절한 표현. 이불, 베개커버, 커튼, 시계, 싱크대 벽에 걸어 놓은 머그컵까지 작은 물품에도 고민과 신중한 선택이 스며 있다. 집주인이 인테리어와 작은 소품까지 신경을 쓰고, 청소까지 말끔히 하는 집이 어떻게 좋게 보이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런 좋은 느낌이 스며 있는 집은, 다른 사람까지 기분 좋게 한다. 그뿐만 아니라 집을 돌보고 가꾸는 본인에게도 긍정적 피드백이 지속적으로 되돌아온다. 이게 집의 힘이자, 장소와 공간의 힘이다.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이 글을 쓰기 위해서는 연간 500파운드의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비단 글을 쓰기 위해서만 일정한 수입과 자기만의 공간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정신적 독립을 위해서도 일정한 수입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 자기만의 공간에 오롯이 혼자이게 될 때,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눈을 뜨게 된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내가 무엇을 싫어하는지, 내가 얼마나 부지런하고 게으른지, 나에게 돈을 얼마나 필요하고, 그 돈은 어디에 쓸 것인지 이런 것들이 피부로 느껴지고, 그것이 '나'라는 하나의 덩어리로 다가온다. 다른 사람과 함께 살면 결코 알지 못할 나의 새로운 모습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건 용기를 내어 온전히 자기 자신을 책임질 때 알 수 있다.


경제적 독립, 공간의 독립. 

나는 독립한 지 2개월로 접어들고 있다. 여전히 독립한 게 좋고, 매일매일이 즐겁다. 오늘은 어떻게 보낼지, 또 내일은 어떻게 보낼지 생각하고 고민하는 게 즐겁다. 나도 슛뚜 님처럼 가족과의 마찰로 집을 나왔으니, 그 마찰이 없는 지금이 정말 행복하다. (물론 재정적 압박은 있지만, 이런 경제적 문제는 독립하기 전이나 독립한 후나 늘 따라다니는 문제이고, 오히려 독립한 이후 내 돈이 온전히 나 자신에게만 쓰인다는 게 만족스럽고 좋다. 이전에는 내 돈이 엄한 데 쓰일까 봐 항상 전전긍긍)

『스물 셋, 지금부터 혼자 삽니다』는 저자 슛뚜가 어떻게 독립하게 되었고, 독립한 공간에서 어떤 하루를 보내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누구와 함께 사는지(베베~), 혼자 살며 무엇을 할 줄 알게 되었고, 무엇을 좋아하고, 본인에게 어떤 취향이 있는지 그 알아가는 과정과 결과를 담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집, 자신의 공간이 슛뚜 님 본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써놓았다.

공감이 많이 되었다. 이 책의 홍보 문구이기도 한,

"세 평짜리 방 하나가 전부였던 내게 집이 생겼다
집을 돌보니 내가 돌봐졌다"

라는 말이 진심으로 와닿는다. 나도 나만의 공간에서 집을 돌보며 나를 돌보고 있다. 지금 이 순간들이 좋음을 알게 되었다.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한 분이나 이미 자기만의 공간이 있으신 분이라면 누구라도 읽으면 좋을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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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메뉴는 제철 음식입니다 - 박찬일 셰프의 이 계절 식재료 이야기
박찬일 지음 / 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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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화는 인간을 인간에게로만 소외시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자연으로부터도 소외시켰다. 어젯밤 하늘에 뜬 달이 보름달인지 초승달인지도 모르고 잠자리에 든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사람들이 하늘을 올려다보고 달의 변화를 인지해야 할 필요성이 현대에는 거의 없어졌기 때문이다. 비단, 하늘에 뜬 달만이 아니다. 우리의 계절 감각도 마찬가지다. 계절마다 제각기 다른 먹을거리가 땅에서 나는데, 이제는 재배 기술이나 보관 기술이 발달해 4계절 언제든 자기가 먹고 싶은 나물을 구할 수 있다. 나무가 수개월의 시간을 머금고 맺은 열매까지, 계절의 경계선은 흐릿해졌다. 수온에 따라 이동하는 물고기들은 오죽할까. 물속에 있어서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물고기들. 물고기들은 수온에 따라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데, 이제는 양식이 워낙 잘 되어있고 하다못해 외국에서 수입하면 되므로 계절 따지지 않고 사시사철 먹고 싶은 물고기를 먹을 수 있다.

산업화와 도시화는 인간을 해방시킨 동시에 인간과 자연으로부터 인간을 소외시켰다. 사람들은 계절감을 잃게/잊게 되었고, 그래서 더욱 계절을 느끼기 위해 계절을 찾아 전국을 헤매고 있다. '봄에는 무엇',이라며 봄의 특산물이 나는 지역으로 우르르 몰려가고, 여름이 되면 '여름에는 무엇',이라며 또 여름 특산물을 찾아 우르르 몰려간다. 하지만 이것도 10년, 20년 이내에 사라지지 않을까. 이런 먹자 관광도 계절감을 그나마 향수로 느끼고 있는 40~50대 이상의 아재와 아지매들이 이끌고 있으니까. 또 한 번 세대가 바뀌면 이런 풍경도 머나먼 옛 기억으로 남을지도 모르겠다. 가까운 미래에는 계절에 대한 향수도 없이 한자리를 맴돌며 모든 먹거리를 식탁 위에 올릴지도. 어쨌거나 우리는, 계절을 잃고 있다. 오로지 냉방과 난방, 그 사이를 왔다 갔다 할 뿐이다.


제철을 잃어가는 우리에게 박찬일 셰프가 제철을 느낄 수 있는 제철 음식들을 턱하니 내놓았다.


책의 구성은 봄/여름/가을/겨울, 총 4부분으로 각 부분에는 각 계절에 나는 제철 음식들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읽고 놀랐던 것은 내가 제철을 제대로 아는 게 드물었다는 것이다. 생선에 제철이 있을 줄 전혀 생각지 못했다. 그나마 제철을 알고 있는 건 과일이나 나물인데, 문제는 내가 알고 있는 제철과 이 책에서 설명하고 있는 제철이 달랐다는 것. 오호통재라... 나에겐 계절이란 없구나. 어쨌거나 이 책을 읽고 충격에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산업화나 도시화로 인해 고도화된 분업화는 우선 나에게 계절을 앗아갔구나 싶다. 나중에는 마케팅을 위한 행사가 우리에게 계절을 알려주는 지표가 될지도 모르겠다.

예전엔 늦봄부터 시장 과일전이 대단했다. 딸기로 시작해서 자두가 나오면 여름이구나 했다. 딸기는 그 향이 얼마나 진했는지 벌이 몰려들었다. (...) 이제 딸기의 철은 도망갔다. 언젠가부터 딸기 제철이 헷갈린다. 11월이 '제철'이라는 신문 기사도 보았다. 아닌 게 아니라 맞을 수도 있다. 매년 호텔에서 딸기축제 같은 판촉행사를 하는데 보통 3월이던 것이 이제는 1월에 몰렸다. 

"시설 재배는 11월부터 3, 4월까지 출하됩니다. 노지는 5, 6월에 나올 테고요. 추촉성 재배라고, 훨씬 더 빨리 촉성, 그러니까 촉진해서 키우는 품종과 기술이 나와서 그래요."

안면도 유일의 딸기농장 주인 정광훈 씨의 말이다.

박찬일, 『오늘의 메뉴는 제철 음식입니다』, 197-198쪽

책에는 제철에 맞는 각 음식재료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생선이나 나물, 과일의 생태, 습성, 어떻게 먹으면 맛있는지, 때로는 저자의 경험담이나 혹은 취재차 만난 분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재밌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고, 문학적이기도 하고, 아재 냄새 폴폴 나는 농담도 버무려져 있다.

우선 재밌다는 건, 하나하나 알아가는 재미인 유익함이 있다는 것이다. 저자가 식재료에 정통한 셰프여서 그런지 내가 모르는 이야기가 참 많다. 그리고 내가 기억하기로는 박찬일 셰프가 기자 출신이던가 그런 줄 아는데(예전에 읽었던 어느 책에서 기자였다가 요리사로 전향했다고 읽었다. 물론 내가 잘못 기억하는 것일 수도) 그래서, 파고드는 것이 예사롭지 않다. 글만 보면 셰프라기보다는, 미식가이거나 음식 평론가 같다. 식재료에 대한 지식이나, 애정이 듬뿍 묻어나 글에 신뢰가 간다.

씁쓸하다는 것은 위에 말한 대로 계절을 잃어가는 우리들이 안타깝고, 갈수록 씨가 말라가는 물고기들과 변해가는 자연환경이다. 많이들 알겠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사랑하는 명태는 이제 우리 바다에서 잡을 수가 없다. (한두 해 전인가, 명태가 동해에 나타났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과연 얼마 동안 한반도 앞바다를 찾을지 미지수다.) 무지와 욕심으로 인한 남획과 환경 오염의 이야기들. 그래서 달라지는 우리 식탁 사정이 참 씁쓸했다.

문학적이라고 한 것은, 문학 작품의 한 소절이 중간중간에 들어 있다. 가령 가을의 메밀. 메밀 하면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빠질 수 없지. 당연히 「메밀꽃 필 무렵」의 백미가 이 책에 실려 있다. 그리고 박찬일 셰프의 글이 좋다. 약간 뭐랄까. 감자의 전분같이 점도 있어서 천천히 읽힌다. 단순 지식을 전하는 글이 아니므로, 빨리 읽기보다는 저자의 흐름에 따라 천천히 읽을 때 읽는 맛이 있다.

아재 냄새 폴폴 나는 농담이 있다는 것은, 음... 읽어보면 아시겠지요. 그래도 심하진 않다. 쪼오금 있을 뿐(개인적으로 독일의 '한스' 어린이 이야기는... 재미가 없...ㅋㅋ).

///

이 책은 제철 요리에 관한 책이 아니다. 그래서 레시피 같은 건 없다. 또 계절 따라 전국을 유랑하는 식도락을 위한 맛집 소개 책도 아니다. 물론 거의 매 이야기마다 맛있는 집 이야기가 빠짐없이 나오지만 가게 이름(실제로 정말 있는 곳인지 긴가민가한)만 스쳐 지나가 듯 언급될 뿐이다. 그 지역에 살며, 그곳이 단골인 분들은 살짝살짝 언급되는 가게 이름이 반가울 테고, 나처럼 타지의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에게는 어딘가 아스라하고 미스터리한 이름처럼 다가온다.

단지 한 권의 책이지만 많은 것이 담겨 있다. 단순 지식을 원하는 사람에겐 그냥 보통의 제철 음식에 관한 책일 수 있겠지만 우리 땅에서 난 먹을거리를 사랑하시는 분들에겐 맛도 음미하며, 우리 먹거리에 대한 의미 있는 생각을 가져볼 수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경계선이 많이 흐려지고, 사라졌지만 아직도 나는 우리 땅에서 나는 우리 것이 좋다.

(+ 추가. 오랜만에 '신토불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이 말도 매 계절 제철 음식을 찾아 전국을 다니는 무리와 마찬가지로 한때의 유행이었던가.)


│인상 깊었던 부분│

8, 9월은 포도 철이다. 노지 제철이다. 제철이란 노지 재배, 즉 하우스 시설을 갖추지 않고 기르는 걸 말한다. 제철은 '맛있고, 싸고, 풍성하다'는 의미다. 포도로 유명한 옥천에 갔다. 국내 유일의 포도연구소가 옥천에 있다. 나는 포도를 참 좋아한다. 이탈리아에서 포도농장 체험을 하다가 딴 포도가 너무 맛있어서 먹어치우곤 했다. 주인이 보고는 깜짝 놀랐다.

"그 한 송이가 와인이 되면 100유로가 넘을 거요."

웃으면서 말했지만 가시가 있었다. 고급 와인용 포도를 먹어 치우는 사람이라니. 로마네콩티라는 와인은 한 병에 몇 천만 원한다. 포도 1.5킬로그램 정도면 한 벙이 나온다. 식후에 두어 명이 포도를 양껏 먹으면 수천만 원어치가 될 수 있다. 괜히 웃음이 났다. (117-1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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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입한 딸기는 빨리 먹기보다 하루쯤 서늘한 데서 숙성한 후 단시간 차갑게 하여 먹는 게 좋다. 설향 등의 품종은 냉기를 쐬면 신맛이 두드러지게 느껴지기도 한다. 딸기는 숙성해서 맛이 좋아지는 과일이 아니라고 알려져 있는데, 꼭 그렇지도 않다. 딸기 상태를 봐가며 상온에서 익히거나, 냉장고에 며칠 놓아두면 맛이 한결 부드러워지고 신맛이 중화되는 걸 느낄 수 있다. (2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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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랩에 잘 싸여 마트에 진열된 고기를 사들이기 때문에 더 많은 살생이 일어난다. 그냥 편리하게 사서, 과식하게 되고, 냉동실에서 썩어나고, 음식쓰레기로 버려지는 고기가 좀 많은가. 직접 돼지를 잡게 되면, 그 일 자체가쉽지 않으므로 가급적 덜 죽이려고 한다. 자기가 먹을 가축을 직접 죽이는 일은 그래서 '비교적' 더 윤리적이라고 보기도 한다. 미국에서 이런 셀프 도살이 은근히 퍼져나가고 있다는데, 페이스북 창립자도 그 멤버라고 한다. (2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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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듦의 심리학 - 비로소 알게 되는 인생의 기쁨
가야마 리카 지음, 조찬희 옮김 / 수카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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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으로 대체할 수 없는 요직이 아니더라도, 현재의 IT 기술과 그 기술을 이용한 업무를 따라가지 못하더라도, 혹은 경제적 사정이 절박하지 않더라도 여성 또한 지금 다니는 직장에서 정년까지 일할 수 있다. 


여성이 일을 하는 것, 일하고 싶어하는 것은 '미안해할 일'도 아니고 '부끄러운 일'도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주 훌륭한 일도 아니다. 이는 그저 '당연한 일'이다. 


나 또한 대학과 병원에서 '이제 정년입니다'라는 말을 듣는 그날까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내 자리에 꼭 붙어 있을 것이다. 


가야마 키라, 『나이 듦의 심리학』, 44



나이가 들어 제일 먼저 떠올리는 문제는 바로 생계가 아닐까 한다. 학교를 마치고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우리가 생을 마감할 때까지 생계 문제는 우리를 떠나지 않는다. 혈기왕성하게 일하고 돈을 모아 생활의 기반을 마련하는 청년기를 지나, 어느덧 중년이 되고 정년을 생각해야 할 때가 되어도 우리에게 제일 중요한 문제는 먹고사는 문제인 생계 문제가 제일 중요하다. 여기에 나이의 문제와 남녀의 문제는 있을 수 없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먹고살아야 하니까. 그리고 더 나아가, 경제 활동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돈을 버는 것을 넘어서 정신적인 문제와도 이어져 있다. 사람들은 먹고살기 위해 일을 한다지만, 자신의 일에 본인의 자존감, 삶의 의미, 정체성 등을 자신도 모르게 투사하는 것이다. 일이란 자신의 생계를 해결해 주는 것이자, 자신의 정체성을 이루는 무엇이다. 따라서, 먹고살기 위해 일을 하면서도 자신의 정체성과 정신을 위해서라도 꼭 해야 하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정신과 의사로서 현재 릿쿄대학 현대심리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현재 57세, 정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두근두근 걱정! 그나마 다행인 것이라면, 저자가 의사로서 교수를 그만둔 후에도 어디 한적한 시골로 내려가 개업의로 지내면 정년에 구애 없이 경제활동을 계속할 수 있는 것이랄까(저자의 친구들은 이걸 부러워한다고 합니다). 실제로 저자가 정년 후 어떤 선택을 할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지만, 의사 직업을 가진 저자도 보통의 우리들과 같은 생계 걱정과 정년 이후의 삶을 고민하는 것이 친밀하게 느껴졌다. 또 저자는 57세 비혼으로서, 부모님과 동생 외에 스스로 꾸린 가정은 없는데 여기서 오는 여러 가지 고민을 하는데 아, 몇 십 년 후의 나의 고민이 될랑가 싶어 마음이 알딸딸했다(지금은 내가 젊으니까 그렇다 쳐도 늙어서 나 혼자 일 때 누가 나와 함께할 것인지. 눈물 ;ㅅ;).


보통 이런 유의 책은, 독자들에게 조언을 하거나 심리학 용어나 실험을 예로 들며 독자들을 가르치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나이 듦의 심리학』은 저자 스스로의 고민과 갈등하고, 방황하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때론 똑 부러지게 자신의 결단을 말하기도 하며, 때로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보통 사람들이 흔히 그러는 것처럼 유보하기도 한다. (선택에 정답이란 없으니 잘 모르겠는 건 모르겠다고 말하고 넘어가는 게 현명한 선택!)


이 책은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중년의 저자가, 본인 나이에 들어서서 맞게 된 변화나 생각,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나 자기 검열, 중년의 성과 연애, 노화에 대한 불안 등 여러 가지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문체는 고압적이거나 딱딱하지 않고 부드럽다. 이야기의 흐름은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전개된다. 지극히 저자 개인적인 생각이나 경험, 혹은 내원한 환자의 이야기 등이 곁들여져 있는데 크게 남일 같지 않아서 함께 고민하고, 생각하며 읽었다. (내 부모님이 떠올라서 그랬고, 몇 십 년 후 내 이야기일 거라 또 그랬음)


이 책을 읽으며 제일 현실적으로 와닿았던 건 위에 언급한 경제 활동 문제였다. 그다음으로 인상적이었던 건 중년의 성(性)이었다. 아직 한 번도 중년의 성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고(사실 생각하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 관심이 없었는데 이 책을 읽고 이 나이 대의 사람들은 이런 고민을 하는구나 싶었다.



정신과의사가 도덕가는 아니기 때문에, "선생님, 솔직히 말씀드리면 남편이 아닌 남자랑 섹스했어요"라고 털어놓는 여성에게 "그러면 안 돼요. 당장 그만두세요"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환자들은 그 사실을 털어놓으면서도 자신이 아직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기쁨 때문에 눈물을 글썽이고 볼이 빨개진다. "이곳에 처음 왔을 때의 우울했던 기분까지 싹 사라졌어요"라고 말하는 여성에게 나는 의사로서 "건강해지셨으니 다행이네요"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가야마 리카, 『나이 듦의 심리학』, 126


이 부분을 읽으며 생각난 것은 미국드라마 <The good wife>였다. 이 드라마를 보고, 40~50대 부부나 연인에게도 성적 긴장감은 중요하구나 싶었다. 기본적인 욕구 충족을 넘어, 자기만족, 정체성, 자신감 등 성 문제는 다각도로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정체성을 형성하는구나 싶어서였다. 벼랑 끝에 섰던 여자 주인공이, 어떤 일을 하나씩 해결해 나가자 주위 사람들의 생각이 달라지고 어떤 남성은 호감을 보인다. 여성은 바스러지고 사라질 뻔한 자존감과 자신감을 추스르고 점점 자신감이 넘치고, 일은 더 잘하고, 매력적인 여성으로 거듭난다. 여기서 '매력'은 여러 가지를 내포하는데 그중 성적 매력도 포함된다.


우리나라 드라마도 어려움에 처한 여주들이 꼭 등장하나, 이 여성에게 도와주는 남성은 여성에게 성적 매력보다는 연민이나 애틋함, 성격적 매력에 끌리는 모습을 연출하는데 미국드라마에서는 성적 매력도 빠트리지 않고 연출해 <The good wife>를 보며 꽤나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불과 100년 전만 해도 가임기가 끝나는 시기부터 여성은 곧장 할머니로 접어들어 손주들을 돌보며 죽음을 준비했다. 지금은 우리 모두 느리게 늙어가고 있다. 정신뿐만 아니라 육체도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천천히 늙어간다. 그런 만큼 성에 대해서도 지금까지와 다른 새로운 가치관이 필요한 게 아닐까 싶다. 그리고 세상이 개인화되고, 파편화되어간다지만 이 책을 읽고 느낀 것은, 개인의 시간과 공간도 필요하되 타인과 함께하는 시간과 공간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년을 몇 년 앞두지 않은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학 교수의 말랑말랑한 책이다. 뭔가 똑 부러지는 조언을 듣기보다는 스스로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보고 싶은 분께 추천한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다양한 생각이 나무가 줄기를 뻗듯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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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선물하는 남자 (리커버 에디션) - 남다른 생각은 어디에서부터 나오는가?
김태원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2010년에 출판된 『생각을 선물하는 남자』 리커버 버전.

9년 전 책 표지는 저자 김태원 씨가 전면에 있다. 그 당시 유행하던 표지. 요즘에도 이런 표지를 내는 곳이 있긴 하지만 요즘엔 대체로 일러스트(?)로 표현하는 듯하다. 그러면서도 내 어릴 때 유행하던 그림체 같기도 하고.. 약간 뉴트로의 느낌이 든다. 어쨌든 리커버는 환영이에요. 10년 전 표지는 확실히 지금 보니 올드한 느낌이 든다.

책 내용은 고려대를 졸업하고 구글에 입사한 젊은 형(?), 젊은 오빠가 방황하고 고민하는 대학생의 멘토가 되어 그들에게 유익한 조언을 주는 듯한 느낌으로 쓰여 있다.


2010년, 지금으로부터 9년 전.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이라는, 작지만 놀라운 기계로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다. 아이폰 출시 이후 2~3년 만에 세상은 거의 완전히 바뀌었고 세상은 새로운 사람, 새로운 조언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조언을 말해 줄 수 있는 사람으로 한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연륜 있는 분이었지만, 이제는 IT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아주 젊은 사람이 되었다. 상전벽해. 하지만 이 분야는 워낙 시간이 빨리 흐르다 보니, 젊다고 해도 IT 발전 속도에 맞춰 보면 젊은 사람이라 해도 결코 경험이나 지식, 지혜가 설익다고는 할 수 없다. 뭐든 그 분야의 시간에 맞춰 바라봐야 한다.

사회는 신기하게도 어떤 분기점에 접어들면 항상 '창의력', '상상력'을 중시한다.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발칵 뒤집었을 때도 우리 사회 화두는 '창의력'과 '상상력'이었다. 거의 모든 학부모와 신문지 상의 칼럼들은 천편일률적이고 주입식 한국 공교육이 문제라며 들끓었다. 이 책은 그래서 당시 사람들이 요구하던 바에 맞춰 쓰였다.





남다른 생각은 어디에서부터 나오는가?

그래요, 남다른 생각은 어디에서부터 나오는 것이죠?

인터넷 유저들이 어떤 UI를 접하느냐에 따라 행동이 달라지거든요. (...) 세상이 점점 더 온라인으로 옮겨갈수록 우리는 의사결정을 할 때 UI 영향을 많이 받게 됩니다. (- 18쪽) 

우리는 UI를 바꾸기보다는 UI에 순응하거나 이끌려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UI가 우리의 행동에 영향을 끼쳤다면, 반대로 여러분이 원하는 방향으로 행동할 수 있게 UI를 적극적으로 바꿔보는 것은 어떨까요? (- 19쪽)

우리가 어떤 프레임, 어떤 구성에 노출되느냐에 따라 우리의 의식과 선택은 달라진다. UI도 그렇고 똑같은 그래프 자료라 하더라도, 앞 위 어떤 맥락에 놓느냐에 따라 우리의 자료 해석은 180도 달라질 수 있다.

책의 초반에 저자가 UI에 대해서 먼저 말하는 것이 의미심장한데, 우리 인간은 익숙한 것을 좋아하고 낯선 것을 싫어한다. 뇌는 도전보다 안주하기를 좋아하고, 늘 알던 것만 알기를 원한다. 새로운 것은 그만큼 에너지 소비가 크기 때문이다.

어제와 똑같은 하루, 오늘과 똑같을 내일.

뇌에게는 이것만큼 안온하고 평화로운 선택은 없다. 하지만 이렇게 지내도 되던 시대는 이미 오래전에 끝났다.

이 책의 핵심은, <상관 없어 보이는 이것과 저것의 연결이다>. 새로운 생각이나 기발한 아이디어는 뭔가 엄청나고 새로운 영감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다만 기존의 것들을 연결해서 새로운 의미를 뽑아내는 것이다. 저자가 이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말하고자 하는 것도 이와 관련된 것들이고, 이 책에서도 잠깐 언급되지만 스티브 잡스가 IT와 인문학의 만남을 말한 것도 이와 상통한다. 기존에 존재하는 이것과 저것의 '만남'. 그리고 '연결'. 바로 여기에서 창의력과 상상력이 탄생한다. 창의력 지수는 어쩌면 기존의 것을 새롭게 연결하는 지능 지수일지도 모르겠다.

또 이 책에서는 데이터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도 주요 화두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데이터를 해석하는 대로 받아들일 것인가, 조금 달리 볼 것인가를 화두로 던진다. 이는 김태원 씨가 구글이라는 검색 엔진 회사에 다녀서 더욱 와닿았다. 하루에도 어마어마하게 쌓이는 검색어들. 이 검색어들만 모아두고 통계를 내도 이 사회의 많은 부분을 해석하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책이 나온 지도 9년. 이 9년 동안 빅데이터가 엄청나게 발달했고, 시너지 효과로 인공지능이나 사물 인터넷 분야도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다. 이제는 정말 데이터를 어떻게 다루고, 어떻게 의미 있게 재활용할 것인지가 진짜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9년 전보다도 더. (근데 이것도 위에 말한, '이것'과 '저것'의 연결을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든 산다. 살아있으면 어떻게든 살아간다. 문제는 정말 '어떻게' 살 것인가가 중요하다. 이 책에도 잠깐 나오지만 많은 사람들이 잘 나가는 사람, 멋진 사람을 동경하면서도 그 사람처럼 멋있기 위한 실제적인 노력은 크게 하지 않는다. 김태원 씨가 이 책을 쓰고 조금 특별한 위치에서 많은 사람들의 멘토가 되고 있는 것은 바로 '실행력'이 아닐까 한다. 사실 김태원 씨가 이 책에서 말 그대로 '생각을 선물하기 위해' 많은 방법을 알려주고, 본인이 일상에서 어떻게 하는지 그 비법을 친절히 가르쳐 주는데 문제는 그 비법을 따라 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이 책의 초반에 언급되는 UI 문제로 다시 되돌아간다. 사람들은, 자극을 받아도 쉽게 변하지 않는 것은 자극도 일순간이기 때문이다. 익숙한 UI, 익숙한 본인의 삶의 패턴으로 곧장 돌아가기 때문에 늘 비슷한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사는 것이다. 그리고 이 문제는 본인 혼자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대를 이어간다. 싫다던 부모처럼 본인이 살고 있고, 마음에 들지 않는 본인의 모습 그대로 자식들이 사는 것이다. 우리 뇌는 충분히 다른 가능성은 알지만, 보이는 대로 익숙한 대로 살기를 택한다. 그러므로 가볍지만 각고의 노력으로 자기만의 익숙한 UI를 바꿔야 한다. 정말 별것 아닌데, 뇌의 저항이 만만치 않다. 이럴 경우 뇌에 당근을 줘가며, 변화를 주는 건 재미난 게임과 같다고 달래고 얼러야 한다. 어떻게 보면 엄청 힘든데, 어떻게 보면 재밌는 게임처럼 가볍고 즐거운 변화로 뇌에 인식시켜야 한다.

어쨌거나 이 책을 읽고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실행'임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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