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스물 셋, 지금부터 혼자 삽니다
슛뚜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5월
평점 :
혼자 살기 전까지, 나는 집이라는 공간이 가지고 있는 힘을 몰랐다. 현관문 하나만 닫으면 복잡하고 시끄러운 세상과 떨어져, 오로지 나만을 위한 공간으로 변하는 집. 여기에서는 내가 대장이다.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아나고 싶을 때 일어나는 건 기본. 내가 좋아하는 색으로 집을 가득 채우고, 나만의 기준으로 가구를 배치한다. 조금 우습게 보이거나 일반적이지 않아도 괜찮다. 여긴 '내 집'이니까. 바깥에서 받는 스트레스와 사람들 사이에 섞여 들어갈 때 쓰는 약간의 가면은 현관을 들어서며 신발과 함께 벗어둔다. 나만이 볼 수 있는 진정한 나의 모습을 모두 보여도 괜찮다. 여긴 나만을 위해 존재하는 '나의 집'이니까.
혼자만의 공간에서 4년. 나는 때로 혼잣말을 했고, 때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말을 하지 않으면 집은 하루 종일 적막이었다. 어느 날은 하루가 아침부터 밤까지 쉴 새 없이 바쁘게 돌아갔고 어느 날은 해가 뜨고 지는 내내 커튼을 쳐놓고 잠만 자기도 했다. 때로는 우울했고, 때로는 행복에 겨웠다. 지겹도록 들리는 매미 울음소리 아래, 더위에 지쳐 선풍기와 에어컨을 틀어놓고 침대에 늘어져있던 날들이 있었고 샤워를 하고 나오면 온몸의 피부로 느껴지는 서늘함에 서둘러 두꺼운 샤워가운을 걸치던 나날도 있었다.
이 책에는 어쩌다 반려견 베베와 단둘이 살게 된 그 4년의 일상들이 담겨 있다. 아주,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나는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어 무던히 애를 써왔다. 그리고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에만 집중하며 살아가는 요즘, 나는 행복하다. (- 프롤로그 中)

유튜브 vlog로 유명한 슛뚜 님의 첫 책. 전에 슛뚜 님의 유튜브로 책을 쓰고 편집한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그 책이 아마 이 책인 듯싶다. 슛뚜 님의 감성이 묻어나면서, 유튜브보다는 현실적이고 사실적이며 보다 가깝게 느껴진다. 유튜브는 감성적인 면이 강해서, 나와는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처럼 멀게 느껴지는데 『스물 셋, 지금부터 혼자 삽니다』는 보통의 우리가 하는 고민을 슛뚜 님도 함께 하고, 작은 것에 기뻐하고 만족감 느끼는 것 같아 친근하다.
슛뚜 님은, 위에 발췌 글에도 있듯이 4년 전에 독립을 했다. 슛뚜 님의 반려묘를 가족이 상의도 없이 다른 분에게 줬고 그 때문에 크게 싸웠다고 한다. 그 길로 슛뚜 님은 같이 살던 반려견 '베베'를 안고 집을 나왔다. 친구 집을 며칠 전전하다가, 다음 학기 등록금으로 모아둔 돈을 깨서 집을 마련했다(물론 집을 산 건 아니고, 세입자로 들어간 것). 그때부터 슛뚜 님은 집을 돌보기 시작했고, 그러자 자기 자신도 돌봐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슛뚜 님의 유튜브나 책을 보면 슛뚜 님의 집 사랑이 대단하다. 집 사랑이라는 한글 표현보다 '집에 대한 애착'이라는 한자 표현이 느낌적으로 더 적절한 표현. 이불, 베개커버, 커튼, 시계, 싱크대 벽에 걸어 놓은 머그컵까지 작은 물품에도 고민과 신중한 선택이 스며 있다. 집주인이 인테리어와 작은 소품까지 신경을 쓰고, 청소까지 말끔히 하는 집이 어떻게 좋게 보이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런 좋은 느낌이 스며 있는 집은, 다른 사람까지 기분 좋게 한다. 그뿐만 아니라 집을 돌보고 가꾸는 본인에게도 긍정적 피드백이 지속적으로 되돌아온다. 이게 집의 힘이자, 장소와 공간의 힘이다.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이 글을 쓰기 위해서는 연간 500파운드의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비단 글을 쓰기 위해서만 일정한 수입과 자기만의 공간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정신적 독립을 위해서도 일정한 수입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 자기만의 공간에 오롯이 혼자이게 될 때,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눈을 뜨게 된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내가 무엇을 싫어하는지, 내가 얼마나 부지런하고 게으른지, 나에게 돈을 얼마나 필요하고, 그 돈은 어디에 쓸 것인지 이런 것들이 피부로 느껴지고, 그것이 '나'라는 하나의 덩어리로 다가온다. 다른 사람과 함께 살면 결코 알지 못할 나의 새로운 모습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건 용기를 내어 온전히 자기 자신을 책임질 때 알 수 있다.
경제적 독립, 공간의 독립.
나는 독립한 지 2개월로 접어들고 있다. 여전히 독립한 게 좋고, 매일매일이 즐겁다. 오늘은 어떻게 보낼지, 또 내일은 어떻게 보낼지 생각하고 고민하는 게 즐겁다. 나도 슛뚜 님처럼 가족과의 마찰로 집을 나왔으니, 그 마찰이 없는 지금이 정말 행복하다. (물론 재정적 압박은 있지만, 이런 경제적 문제는 독립하기 전이나 독립한 후나 늘 따라다니는 문제이고, 오히려 독립한 이후 내 돈이 온전히 나 자신에게만 쓰인다는 게 만족스럽고 좋다. 이전에는 내 돈이 엄한 데 쓰일까 봐 항상 전전긍긍)
『스물 셋, 지금부터 혼자 삽니다』는 저자 슛뚜가 어떻게 독립하게 되었고, 독립한 공간에서 어떤 하루를 보내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누구와 함께 사는지(베베~), 혼자 살며 무엇을 할 줄 알게 되었고, 무엇을 좋아하고, 본인에게 어떤 취향이 있는지 그 알아가는 과정과 결과를 담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집, 자신의 공간이 슛뚜 님 본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써놓았다.
공감이 많이 되었다. 이 책의 홍보 문구이기도 한,
"세 평짜리 방 하나가 전부였던 내게 집이 생겼다
집을 돌보니 내가 돌봐졌다"
라는 말이 진심으로 와닿는다. 나도 나만의 공간에서 집을 돌보며 나를 돌보고 있다. 지금 이 순간들이 좋음을 알게 되었다.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한 분이나 이미 자기만의 공간이 있으신 분이라면 누구라도 읽으면 좋을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