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의 기억
줄리언 반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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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게 인생에서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지. 우리 모두 그저 안전한 장소를 찾고 있을 뿐이야. 만일 그런 곳을 찾지 못하면, 그때는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배워야만 해."

나는 이게 절대 내 문제가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인생은 너무 꽉 차 있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거니까. (- 74쪽)


"(...) 어쨌든 절대 잊지 마세요, 폴 도련님. 모든 사람에게는 자기만의 사랑 이야기가 있다는걸. 모든 사람에게. 대실패로 끝났을 수도 있고 흐지부지되었을 수도 있고, 아예 시작조차 못 했을 수도 있고, 다 마음속에만 있었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진짜에서 멀어지는 건 아니야. 때로는, 그래서 더욱더 진짜가 되지. 때로는 어떤 쌍을 보면 서로 지독하게 따분해하는 것 같아. 그들에게 공통점이 있을 거라고는, 그들이 아직도 함께 사는 확실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어. 하지만 그들이 함께 사는 건 단지 습관이나 자기만족이나 관습이나 그런 것 때문이 아니야. 한때, 그들에게 사랑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야. 모두에게 있어. 그게 단 하나의 이야기야." 

나는 대답하지 않는다. 꾸지람을 들은 기분이다. 수전에게 꾸지람을 들었다는 게 아니다. 인생에게 꾸지람을 들었다는 거다. (- 76쪽)


19살 대학생과 48살 주부가 만남, 그들은 서로 사랑했고 각자의 가정에서 빠져나와 살림을 차렸고, 한때같이 살았으나, 어느 순간 헤어졌고, 드문드문 만나다가 결국 영원히 헤어지는 이야기다. 


어쩌면 이 책의 화자(화가자 1인칭이 됐다가, 3인칭이 됐다가 바뀌지만)가 위에 발췌한 수전이 한 이야기를 그대로 답습하는 소설이다. 19살이었던 화자는 젊었고, 어른들에 대한 청년 특유의 삐딱함이 있었고, 부모님의 정갈하고 단순한 삶을 비웃고 싫증을 냈으며,  본인은 또래 친구들과 다르다고 믿었다. 일종의 허세. 청년기의 허세가 가득한 사람이었다. 


부모님의 기대와 가치관을 비꼬기 위해 어머니의 권유대로 '테니스 클럽'에 가입했는데, 기쁘게도 그곳에서 부모님의 기대를 부술 만남을 가진다. 바로 부모님 또래의 여성(수전)과 사랑에 빠진 것이다. 그냥 단순히 부모님에게 반항하기 위해 수전을 만난 건 아니다. 화자는 정말 수전을 사랑했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부모님의 가치관을 전복하고, 친구들은 너무 무모해서 결코 하지 않을 사랑을 자기는 한다고 우쭐한 기분에 젖는다.




수전과 함께 살림을 차린 건 좋았다. 그렇게 독립을 하자, 그의 앞에 '현실'이란 무게가 툭 던져진다. '현실'은 바로 '돈'이다. '돈'에 대해 미쳐 생각지 못했던 그제야 미래(라 쓰고 직업이라 읽는)를 생각하게 된다. 그는 변호사가 되기로 한다. 대학에서 법률을 선택하고 본격적으로 공부를 하려고 하는데,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수전과 삐긋거리기 시작한다. 그녀가 술을, 그렇게나 증오하던 술을 마시기 시작한 것이다. 


수전은 처음에 그냥 몰래몰래 마셨다. 그다음엔 조금씩 대놓고 마시기 시작한다. 그다음엔 아예 정신줄을 놓고 마신다. 화자는 학업을 이어가면서 수전의 알코올중독 증세를 호전시키기 위해 노력하는데, 그게 마음대로 잘 안된다. 여전히 사랑하지만 조금씩 버거워진다. 환각과 환청으로 무장 강도가 침입했다고 경찰에 신고하고, 그녀의 기억력은 점차 감퇴된다. 


수전을 불쑥, 화자와 공유할 수 없는 옛날 일을 꺼낸다. 수전에게는 그녀만의 '연애의 기억', 단 하나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화자는 수전과 만나고 함께 살면서 '연애의 기억', 역시나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이야기를 이어나가고 있다. 


수전의 알코올중독 증세가 점점 심해지자, 화자는 다른 여자친구를 사귀기도 하고 나중에 해외에서 일할 땐 결혼하고 싶어 하는 여성도 만나기도 한다. 하지만 늘 어긋났다. 그 이유는, 화자만이 가지고 있는 '사랑의 이야기(수전과 관련해서)'가 있었고, 상대방 여성이 가지고 있는 단 하나의 이야기(그녀만의 사랑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서서히 수전과 화자는 늙어갔다. 수전은 술로 인해 거의 미치광이가 된 상태에서 죽었고(수전이 그렇게도 싫어하던 남편처럼 모자란 남자를 답습하게 된다. 최고의 남자는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난다), 화자는 비웃고, 싫어하던 부모님의 삶을 언젠가부터 만족스러워하며 그대로 답습한다. 그렇게 어른이, 기성세대가, 늙은이가 되어 간다. 화자가 젊었을 때 경멸하고 시비를 걸었던 늙은 운전자의 모습이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젊었던 화자는, 그 늙은 운전자에게도 그 사람만의 사랑 이야기가 있었을 줄은 몰랐을 것이다. 자신이 늙은 후에야, 그때 그 사람에게도 단 하나의 이야기가 있었을 거라고 깨닫는다. 수전에게도, 조운에게도, 고든 매클라우드에게도, 그런 이야기가 있었다고. 


수전은 처음부터 폴(화자)에게 말했었는데, 젊을 때는 그런 말이 전혀 와닿지 않지. 그 나이가 되어봐야 알게 되는 것이 있다. 그런 면에서,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모든 젊은이는 서로 닮았고, 모든 나이 든 사람들도 서로 닮았다. 



달콤쌉사름한 연애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연애를 넘어 한 개인의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이자, 누구나에게 공통되는 지독히 사적인 이야기였다. 그래서 위에 발췌해 놓은 문구를 잠시 까먹으면, 책 속 행간에서 길을 잃고 헤매기 쉬운 소설이다. 


저자는 언어유희를 많이 해서, 번역하신 분이 많이 힘들었을 것 같다. 우리 말에 맞춰 번역하신다고 고생하셨다. 근데 문득문득 등장하는 욕설은, 뭐랄까 평이하고 단조로운 문체에서 뭔가 단절되고 불쑥 도드라지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강렬하거나, 뜬금없거나, '또 시작이냐 성난 젊은이여', 이런 느낌이 들었다. 



쉽게 읽히진 않지만, 계속 읽게 되는 그런 소설. 

누가,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정말 다양하게 읽힐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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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정록 - 조선군 사령관 신류의 흑룡강원정 참전기 서해문집 오래된책방 22
신류 지음, 계승범 옮김 / 서해문집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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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룡강원정과 『북정록』


2018년 올해로부터 정확히 380년 전, 2차 흑룡강원정(나선정벌)이 있었다. 청나라가 러시아와 싸우는데 조선군 출병을 요구한 것이다. 인조의 '삼전도 굴욕'이 있은 지 21년 후였다. 이때 조선에서는 청에 대한 불벌 운동의 절정기였는데, 하지만 조선이 청을 아무리 미워하고 이를 갈아도 약했던 조선은 청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1654년에 1차 흑룡강원정, 뒤이어 4년 후인 1658년에 2차 흑룡강원정을 하게 된다.

 

사실 '흑룡강원정'보다 '나선정벌'이란 말이 더 익숙하다. 학교 다닐 때 기계적으로 외운 말인데, 이번에 『북정록』 읽다가 정확한 뜻을 몰라 검색해 보니, '나선'은 17세기 부동항과 모피를 찾아서 동쪽으로 이동해 온 러시아인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한다(이 와중에 '나제동맹'은 왜 떠올랐지? >ㅁ<ㅋㅋ). 그래서 나선정벌(흑룡강원정)은 동남진하던 러시아인을 정벌하기 위해 나섰던 전쟁을 일컫는다. 


이번에 읽은 『북정록』은, 1658년에 청의 요구에 따라 흑룡강 원정에 나섰던 조선군 사령관, 신류가 원정 중에 남긴 일기다.  


『북정록』은 『징비록』이나 『난중일기』에 비하면 상당히 생소하고 낯설다. 사실 『북정록』은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세상에 알려지지 않다가 1980년이 되어서야 민간에 알려졌다고 한다. 오랫동안 신류 집안에서 내려오다가 고서 수집가의 소장서로, 그다음 역사학자 박태근 선생의 손에 건너간 후에야 번역, 출간됐단다. 현재 세상에 단 한 권밖에 없는, 2차 흑룡강원정의 1차 사료다.  



  오래된책방, 『북정록』


『북정록』은 조선군 사령관 신류가 출병을 나간 4월 6일부터, 조선으로 돌아오는 8월 27일까지 그 매일매일이 기록되어 있다. 『북정록』은 군사 일지로서만이 아니라, 청과 조선의 역학적 관계의, 부패한 청 사령관, 조선의 탐관오리(아픈 자를 굳이 징병해 보냄)에 대한 기록이고, 당시 청과 러시아의 배와 무기에 대한 설명과 묘사도 꼼꼼하다. 


어느 시대고 전쟁이라는 것은 비참하고 비극적이며 어느 면에서는 희극적인 블랙 코미디의 느낌도 난다. 사회 모순과 어리석은 인간의 모습은 적나라하여 정말 웃프고, 인간성의 민낯은 분노와 연민을 자아낸다. 예를 들어 청 사령관이 러시아 배 안에 있는 모피가 탐 나서 불을 지르지 않았다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는지. 청 사령관도 놀란 나머지 자신의 명령을 번복하는 그 모습이란. 그리고 같은 청나라 사람이긴 하나 북경(베이징)에서 온 부원수가 바른말을 하고, 청 사령관을 꾸짖을 땐 일견 통쾌하기도 했다. - 아마 신류도 부원수의 말에 통쾌함을 느껴서 그의 말을 상당히 자세히(영화로 치면 클로즈업해서) 남겼을 것이다. 


신류의 『북정록』은 1980년 이전엔 가문 대대로 내려왔을 뿐 세상에 크게 알려지지 않았었다고 한다. 조선 때 배시황이 남긴 《북정일록》이 있었다고 한데, 배시황이란 이름은 원정 관련 어떤 자료에도 없단다. 그래서 역사학계에서는 이 책을 위서라 보고, 국문학계에서는 소설로 본다. 조선 후기 사람들은, 객관적인 역사 자료로 흑룡강원정을 접한 게 아니라, 《북정일록》 등 역사 소설을 통해 접했을 것으로 추측한다. 


소설도 역사 사료로 어느 정도 가치가 있지만, 또 그에 못지않게 사람의 입맛에 맞춰 쓴 부분도 있다. 그런 면에서 신류의 『북정록』은 날것 그대로의 역사다. 그 당시 전투 방식과 무기, 청과 조선의 역학 관계, 당시 생활상 및 그 일대 토착민에 대해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생생한 기록, 『북정록』


『북정록』은 아주 얇고, 짧은 군중일기지만 다시 상황을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다. 출정 당시 기록, 청군과의 엇박자, 청군과의 만남, 이동, 포로였다가 풀려난 사람들의 말, 갖가지 다양한 소문과 믿지 못할 소문, 그로 인한 신류의 갈등, 청과 러시아의 무기와 그들의 배에 대한 자세한 기록, 청 사령관의 탐욕, 북만주 일대의 지세와 지리, 그곳 사람들의 풍속 등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 전쟁사와 문화사, 지리, 이 지역 역사 등 유익한 내용이 많다. 


『북정록』은 사실 청에 대한 반감이 제일 절정일 때 청을 위해 출정한 기록이라 위에 적은 기록 못지않게 많은 것들이 담겨 있다. 머리말에서 계승범 교수님이 적으셨듯, 청에 대한 조선 사령관 신류의 감정이 녹아들어있다. 신류의 감정적인 부분은, 후반부로 갈수록 많이 드러나는데 당시 상황을 생생히 알 수 있어 흥미로우면서도, 청의 쓸데없는 딴지와 늑장 대처에 나도 많이 답답하고 분통이 터졌다. 


『북정록』을 읽으면, 정벌의 대상이었던 러시아인에 대한 반감보다 청에 대한 반감이 커진다. 처음 출병할 때 청과 삐걱거린다. 연락이 어긋나는 건 다반사, 청군은 계속 조선군에 재촉한다. 그래서 빨리 도착하면 청군은 아직 오지도 않았다. 그리고 청은 항상 조선군을 탓한다. 힘 있는 자의 핑계는, 다른 무엇도 아니고 언제나 힘없는 자이다. 


그리고 요구하는 것도 많다. 청의 성주는 신류에게 '고두례'를 올리도록 한다. 고두례는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땅에 댄 다음, 땅에 이마를 세 번 조아리는 인사법이다. 보통 중국 황제나 황제의 칙서에 고두례를 하는데, 일개 성주에게 고두례를 요구하는 것은 예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한다. 당시 청 황제의 권세가 막강하다 보니, 지방 성주도 기고만장하다. 



  러시아와의 전투


출병한 지 2달이 지나 드디어 흑룡강에서 만난 러시아군. 러시아군은 당시 총 11척의 배를 갖고 있었다. 전투를 시작 후 먼저 승세를 잡은 연합군이 러시아 배를 불태워 가라앉히려 했다. 그런데 청 사령관은 그 배를 태우지 말라고 명한다. 배에 실린 모피 같은 재물이 탐났기 때문이다. 러시아군이 반격을 가하자, 조선군과 청군에서도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아차 싶었던 청 사령관은 뒤늦게 러시아 배를 태우라 명한다. 그렇게 7척은 불타고, 3척은 부서진다. 


이때도 우여곡절 많았다. 연합군이 공격하기 위해 배를 비운 사이 러시아군이 연합군의 배를 탈취해 도망가고, 잡으러 가고 난리였다. 어쨌든 초기에 단번에 끝내지 못했던 전투의 결과는 정말 참혹했다. 


그 나머지 적의 무리들은 배 속에서 불에 타 죽거나 강가 언덕에 뛰어내렸지만, 총탄과 화살에 맞아 죽은 시체들이 서로서로 베고 누워 있거나 엎드려 있었다. (- 56쪽, 6월 10일 일기)

조선군에서도 많은 사람이 죽었다. 우리 풍속을 모르던 청 사령관은 러시아 배를 줄 테니 그 나무를 태워 조선군 시신을 화장시키라 명한다. 신류는 조선에서 시신을 화장하는 풍속이 없고, 또 시신을 조선으로 거둬 갈 수도 없으니 고향 사람들끼리 모아 언덕 위에 묻어주었다고 한다. 


멀리 이역까지 왔는데, 모래나 자갈밭에 해골을 내버려 두려니 애처롭고 가엾기만 하다. 

(- 57쪽, 6월 11일 일기)

이 구절을 읽고 좀 눈물이 났다. 집 근처에 동래읍성이 있어서, 예전부터 종종 왜란 때 왜군에게 처참하게 살해되었을 옛 동래 사람들을 상상해 보곤 했는데 그 상상이 떠올라 좀 울컥했다. 



  탐관오리, 청 사령관


사상자가 많이 났지만 어쨌든 전투는 끝났고, 신류는 어서 조선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청 사령관은 차일피일 미뤘고 계속 조선군을 잡아둔다. 신류가 추측하기로, 청 사령관이 러시아 재물이 탐나 배를 태우지 않았고, 또 이것과 마찬가지로 조선에서 보낼 군량미가 탐나 조선군을 귀국하지 못하게 막은 것이라고. 


또 군량미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 신류는 일기에 여러 날에 걸쳐 군량미를 걱정했다. 드디어 군량미가 부족해지자 신류는 청 사령관에게 군량미를 꿀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여름인지라, 쌀이 썩었다. 아예 먹지도 못할 지경이라 신류가 통관에게 여러 번 간청해 사령관한테 알려달라고 해도 조선인 출신 통관들은 들은 척도 안 한다. 


신류가 하다못해 다른 사람을 통해 청 사령관에게 뇌물을 주고 군량을 변통한다. 뇌물을 받고서야 청 사령관은 이렇게 말했다. 


과연 썩어 문드러져 먹기 힘든 쌀이라면, 어떻게 만 리 먼 길을 온 사람들에게 억지로 참고 먹으라고 할 수 있겠소? 이런 뜻을 대통관에게 전달해 이야기하고 나에게 말을 전했다면, 마땅히 변통해 주었을 것이오. (- 80쪽, 7월 16일 일기, 청 사령관의 말)

어이없음! 이렇게 재물만 탐내는 탐관오리, 그리고 그 중간에서 농간을 부리는 통관들. 예나 지금이나 이런 병폐는 여전하다 싶었다. 통관은 모두 조선인 출신이었는데 이렇게 조선군에게 농간을 부리는지! 조선인이라 해도 통관은 경계선에 있는 직업인인지라 통관들이 조선인에게 어떤 억하심정이 있었던 건지 모르겠지만 『북정록』을 읽으면서 많이 답답했다. 




어젯밤 <아시아의 아마존, 아무르강>이라는 KBS 글로벌 다큐멘터리를 봤다.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아무르 강, 즉 흑룡강은 너무나 아름답고, 매혹적이었다. 이 다큐를 보면서 '신류가 저토록 아름다운 저 길을, 저 숲을, 저 강을 건넜을까?', '일찍 찾아오는 그곳의 추위와 험난한 지형에 많은 조선인들이 고통받으며 죽었겠구나' 싶었다. 


한반도 바로 위에 있는 흑룡강과 그곳에서 싸우고 죽은 조선군의 이야기가 왜 이렇게 낯설고 멀게만 느껴지는지. 오히려 지구 반대편인 유럽과 미국은 왜 이렇게 가깝게 느껴지는지. 반성하게 된다. 역사에 대한 무지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번에 『북정록』을 읽고, 우리 역사와 나라 간 힘의 역학, 인간 탐욕의 민낯에 대해 새삼 생각해 본다.


역사가나 작가가 쓴 정제된 역사 책도 좋지만, 어렵게 느껴지더라도 옛 원서를 역주한 책을 읽는 것은 정말 중요하고 유익하다. 예전에 『징비록』을 읽었을 때도 그랬고, 이번에 『북정록』을 읽을 때도 느낀 점인데 이런 책들은 어려울 것 같지만 막상 읽으면 그렇게 어렵지 않다. 역주하시는 분이 요즘 사람의 어휘와 역사 지식에 맞게 풀어쓴다. 


한반도를 둘러싸고 세계정세가 급박하게 돌아갈 때 신류의 『북정록』을 읽어 감회가 좀 남다르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지만, 우리가 북한, 중국, 러시아와 육로로 직접 교류하게 된다면 그때 나선정벌이 벌어졌던 흑룡강에 가보고 싶다. 중국에는 헤이룽강, 러시아에게 아무르강 그리고 우리에게 흑룡강인 바로 그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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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사 챈스의 외출
저지 코진스키 지음, 이재경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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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단절된 채 오직 저택의 정원만 가꾸던 사람이 있었다. 그는 저택 정원에 갇혀서 한평생 꽃과 나무들만 보살폈다. 학교를 다닌 적이 없다. 친구도 없다. 부모도 없다. 그의 출생 서류도, 사회보장번호도 아무것도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는 사회화 과정을 겪지 않았고, 그래서 청소년기도, 아동기도 없었다. 글을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른다. 그는 그냥 까마득히 어렸을 때부터 정원사였던 것이다. 인생에서 거의 모든 기회(chance)를 박탈당했던 이 사람의 이름은, 아이러니하게도 챈스(chance)였다. 

챈스는 아주 어렸을 때 부모를 잃고, 상당히 능력 있고 부유한 변호사 집에서 살게 된다. 어르신은 챈스에게 정원을 돌보도록 시켰다. 그리고 사회와 단절 시킨 채 정원에서만 일하게 한다. 어르신은 자기가 이끌던 로펌도 있었던 만큼 법에 정통한 사람인데 챈스에게 임금을 준 일도 없고, 고용 계약서를 작성한 일도 없다. 그는 어떤 계약서도 쓰지 않았고, 챈스를 증명할 만한 서류는 단 한 장도 만들어주지 않았다. 그러니까 서류로만 따지자면, 챈스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은 사람인 것이다.  변호사가 한 사람의 정상적인 사회화를 가로막고, 교육받을 권리를 박탈하고, 인원 유린과 노동 착취를 한 것이다. 




하지만 챈스는 아무런 불만이 없다. 어르신이 시키는 일만 묵묵히 했다. 그는, 자신이 가꾸는 식물들처럼 식물화된 인간이었다. 자극이 있으면 반응은 하지만, 주도적으로 무언가를 하거나 깊은 호기심을 가진 적이 없다. 

그러다 노환이 온 어르신이 죽었다. 저택에 고용되었다는 아무런 서류 흔적이 없었던 만큼,  챈스는 무일푼으로 강제퇴거를 당하게 된다.

사람들이란 보는 이가 없으면 존재하지 않는 법이다. TV 속 인물들처럼, 사람들도 누군가 그들에게 눈길을 던질 때에야 존재하기 시작한다. 그제야 누군가의 마음에 자리할 수 있다. 물론 새로운 이미지들에 밀려 지워질 때까지만. 챈스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도 봐주는 사람들이 있을 때에야 분명해지고, 열리고, 펴졌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흐릿하게 번지다가 사라지는 것을 뜻했다. 챈스는 사람들을 TV로 보기만 할 뿐 그들이 그를 보는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어쩌면 그는 많은 것을 놓치고 있었다. 어르신이 죽었으니 이제 그는, 이제껏 그를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내보일 수 있게 됐다. 그는 이 생각에 흐뭇했다. (- 24쪽)
챈스는 길을 걷다가 고급 승용차에 부딪혀 다리를 다친다. 승용차 주인은 챈스에게 의사들이 상주해 있는 자신의 집으로 가자고 제안하고, 마침 갈 곳 없었던 챈스는 그녀의 제안에 응한다. 이때부터 챈스의 본격적인 세상 나들이가 시작한다. 

챈스가 가게 된 집은 대통령까지 이 집에 들러 인사를 하고 갈 정도로 거물급 금융인이다. 집주인과 대통령의 심각한 경제 토론에, 챈스는 단 한마디도 이해할 수 없었으나 식물의 생장과 사멸, 부활의 순리를 이야기한다. 챈스는 그냥 있는 그대로의 자연 현상을 말한 것뿐인데, 대통령과 집주인은 경제에 관한 은유적 표현으로 받아들이고, 챈스를 대단한 사람으로 인식한다. 

챈스가 이 자리에서 했던 은유를, 대통령이 모 연설에서 인용해 말한다. 그때부터 챈스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경제인 및 대통령 고문으로 소문이 나기 시작한다. 그래서 티비에 출연해 미국이 당면한 경제 상황에 대해 말할 기회를 얻고, 세계 각국 외교 인사들이 모인 자리에서도 결코 의도하지 않았지만, 교양이고 지적이며 깊은 통찰력 있는 사람으로 모두 받아들이게 된다. 게다가 챈스는 무척 잘생겼는데, 그래서 그에게 관심을 갖고 다가오는 사람은 여자는 물론이고, 남자까지도 있었다. 

하지만 챈스는 자신이 어떤 입장에 놓인지 잘 알지 못한다. 그냥 정원일 외의 시간에 봤던 TV 속 사람들이 행동하던 대로 따라 할 뿐이다. 그는 신비에 싸인 거물급 인사가 되고, 미국과 러시아가 서로 끌어들이려는 하고 급기야 부대통령 후보로까지 거론되면서 소설은 끝난다.
이 소설은 1970년에 출간되었는데, 읽었을 때 느낌은 19세기 말이나 20세기 초에 쓰인 소설 같았다. 소설 속에서 TV 이야기만 없었다면 그렇게 믿을 것이다, 나는. 책의 전체적인 느낌은 상당히 클래식한데, 너새니얼 호손과 허먼 멜빌이 떠올랐다. 

이야기의 흐름은 우화처럼 단순하고 극적이며, 문체는 간결하고 깔끔하다. 주인공이나 주변의 인물들이 전형적이면서도 개성적이어서 더욱 그렇게 느낀 듯하다. 

어렸을 때부터 사회와 단절된 채 살며 TV만 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이 세상으로 걸어 나오면 어떻게 될까. 그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며, 무슨 생각을 할까. 알 수 없지. 그 당사자가 되지 않는 한. 

저자, 저지 코진스키는 이 소설로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사람들은 챈스의 말은 제대로 듣지 않고, 추측과 단정으로 챈스를 이상화한다. 이렇게 피상적으로 세상과 사람을 판단하고 받아들이는 현대인을 비판한 게 아닐까. 현대인의 깊이 알려고 노력하지 않은 채, 그 사람의 형이상학적인 몇 마디에 열광하고, 아름다운 외모에 넘어가는 모습 말이다. 챈스는 어리석지 않다. 오히려 챈스의 겉만 보고 지레짐작과 단정으로 챈스를 오해하는 사람들이 어리석다. 코진스키는 사람들의 이런 모습을 비판하려 했던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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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죽재전보 클래식그림씨리즈 4
호정언 지음, 김상환 옮김, 윤철규 해설 / 그림씨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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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인지 모르겠지만 판화가 좋다. 왜 좋은지 그 이유는 나도 몰라. 그냥 좋아. 아마 십 년도 더 된 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판화 전시를 한다고 해서 당일로 부산에서 서울로 전시 관람을 하고 온 적이 있다.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그때 봤던 판화 작품들은 씻은 듯 깨끗이 내 기억 속에서 사라졌지만 당시 전시 내용이 무척 좋았고 만족스러웠던 기억은 생생히 난다. 기차 삯 10만 원이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뭘 봤는지 지금은 기억나지 않아도)


나랑은 정말 안 맞다 싶은 일본 문화도, 그들의 전통 판화인 우키요에만은 정말 좋다. 그림이 단순하지만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매력이 뿜뿜. 톤 다운된 따뜻하고 부드러운 색감도 내 마음을 끄는 요소 중 하나. 현대 판화 작품도 마냥 좋다. 현대 작품은 판화라는 티가 별로 안 나서 회화인지 판화인지 나로서는 구분을 잘 못하겠지만, 그냥 좋구나 싶어서 찾아보면 판화다.


판화가 좋은 이유는 판화 특유의 기법 때문에 자연스레 선이 간결하고 가볍다는 것, 그래서 깔끔하게 보이는 것이 매력인 것 같다. 뭐, 판화 종류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대체로 판화의 깔끔함에 매료된다. 활자도 마찬가지다. 요즘 인쇄된 글자는 대체로 작아서 느낌이 별로 안 나지면, 조선시대 이전의 책만 봐도 정성스레 디자인하고 주조한 활자 인쇄본은 어딘지 사람을 홀리는 매력이 있다. 


이번에 호정언의 『십죽재전보』를 봤는데 좋았다. 처음 우키요에를 봤을 때 느꼈던 감정을 느꼈다.



물론 우키요에와 느낌이 다르고, 공법도 다르고, 시대도 다르지만 색감에서 우선 우키요에를 떠올리게 했다. 중국 그림에서 이런 색감을 볼 줄이야. 그동안 중국 그림이라 하면 선으로 빈틈없이 꽉 차고, 빨갛고 강렬한 코발트 색감에 참으로 질린다는 느낌을 갖고 있었다. 동양미술사 책에 나오는 중국 그림은 남과 북의 그림 화풍은 완전히 다르지만 대체적으로 이질적이고, 질리는 느낌이 강했다. 그랬는데 『십죽재전보』를 보고 지금까지의 내 편견이 깨졌다.



그림보다도 여백이 더 많은 책이지만, 호정언이 『십죽재전보』를 완성하는데 그토록 오랜 시간이 걸린 게 이해가 된다.



그림의 소재는 주로 중국의 역사적 사실이나 사건, 유명 인물의 일화나 상징적 사물, 혹은 집에 수집해 놓은 골동품이나 꽃나무, 돌, 술병 등이다. 편지나 시를 적은 종이에 들어가야 하므로 그림의 크기도 대체로 작은데, 그럼에도 그림의 선이나 색면을 보면, 제작에 보통 노력이 들어간 게 아님이 느껴진다.



호정언은 중국 명나라 말기, 문인이자 문인화가였다. 관직에 있다가 내려와서 서재 딸린 집 주위에 십여 그루의 대나무를 심고 그 집의 이름을 '십죽재(十竹齋)'라고 지었다. 


'전(箋)'은 편지나 시를 적는데 쓰인 종이를 뜻한다. 아주 옛날 중국은, 종이가 귀해 꼭 써야 할 말만 간략하고 짧게 적어 편지를 주고받았다고 한다. 그러다 종이 생산량이 늘어나고, 시를 즐기는 사람이 많아지자 전(箋)에 시도 쓰기 시작한다. 또 제지 기술이 향상되어 종이를 물들이거나 문양을 찍는 기술도 보다 정교해졌고, 종이를 물 들이거나 문양을 찍어 편지나 시를 쓴 종이를 시전지(詩箋紙)라고 부르게 됐다.


시전지의 역사는, 9세기 전반에 시작해 유서가 깊은데 그 정점을 찍은 것이 바로 호정언의 『십죽재전보』라고 한다. 여기서 마지막 글자, 보(譜)는 여러 시전지를 묶었단 의미다. 


출판업을 하게 된 호정언은, 직접 그림도 그리고 교우하던 문인이나 화가의 글과 그림을 받아 본떠가며 화집이나 시전보를 간행했다. 그의 집에는 당시 각공이 십여 명이 고용돼 있었다는데 호정언과 사이가 좋았고, 서로 좋은 영향을 주고받고 성장하며 제작했다고 한다. 


나는 그림이나 판화에 문외한이지만, 정성 들여서 만든 것이 느껴진다.






   두판에는 세 가지 어려움이 있으니, 그림은 모름지기 우아해야 하고 대로는 눈동자를 빠져들게 하는 것, 이것이 제일의가 된다. 그 다음은 새길 때에 거칠고 경박함을 꺼리고 미련하고 노둔하여 본래 원고의 신채를 쉬이 잃는 것을 더욱 싫어한다. 그 다음은 인쇄할 때에 이전에 완성된 방법에 구애되어 자신이 깨우쳐 마음으로 판단하지 못하거 천연의 운치를 손상시킬까 두려운 것이다. 


   그 세 가지 하자를 제거하고 여러 아름다움을 갖춘 뒤에야 크게 공교로운 것이 나올 수 있다. 이에 마음을 비우고 기운을 고요히 하며 재물을 가벼이 하고 능력에 맡겨야 한다. 주인의 정신이 홀로 이 세 가지 위에서 터득하여 그 사이에서 힘차고 넓게 흘러간 것이 바로 이 전보이다.


- 56쪽,  이극공이 쓴 「십죽재전보서」 中


실제 호정언이 어떤 사람이 알 수는 없으나, 이 구절만 읽어 보면 호정언은 출판을 하면서 몸과 마음을 닦고 자신과 인쇄 기술의 한계를 보다 확장시킨 것 같다. 유교 문화권이라 출판과 인쇄 일에서도 자기수양의 의미가 깃들어 있고, 그래서 중국 시전지 역사상 가장 정교하고 훌륭한 인쇄 기법이 적용된 책으로 인정받는가 보다.



책은 시전지 역사와 명나라 말기 때 활동한 출판업자 호정언, 그리고 『십죽재전보』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과 전보 머리말, 십죽재전보서가 실려있고 그 뒤로 『십죽재전보』에 실린 그림과 그 그림에 대한 설명이 담겨 있다. 동양의 여백의 미를 잘 살려서 만든 책(그림책)으로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무엇보다 그림 소재와 색감이 마음에 들었다. 그림 그릴 때 따라서 그려도 좋고, 색감 공부나 여백 배치 공부에도 좋을 것 같다. 무엇보다 그림 보는 안목과 감각이 늘 것 같다. 


동양화나 중국 미술사, 편지 문화에 관심 있는 사람이 봐도 좋고, 그림 그리는 사람 특히 디자인하는 사람들에게도 좋을 것 같다. 종종 그림책을 보는데, 이런 그림책은 처음이라 색다르고 좋았숑. +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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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비주얼 클래식 Visual Classic
제인 오스틴 지음, 박희정 그림, 서민아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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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 고전은 고전이다. 읽을 때마다 새로운 느낌, 새로운 감상이 든다. 

- 학생 때는 이 책을 읽는 게 어려웠다. 『오만과 편견』은 그냥 연애와 결혼에 관한 책으로, 결코 내용은 어렵지 않지만 어렸을 땐 참 버거웠다. 당시만 해도 한자에 정통한 번역가들의 작품이 많았고, 일상에서 내가 쓰는 말들과 너무 달라서 대체로 알쏭달쏭무지개였다. 사실, 이 작품이 19세기 초 영국에서 쓰인 작품이라 지금 우리 언어 실정에 최대한 맞게 번역한다 해도 어느 정도 고루하고, 이해하기 힘든 문체가 있다. 가령, '도의심을 아는 고결한 성품' 같은 말들. 지금은 뭔 뜻인지 알지만, 어렸을 땐 이런 말들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 몰라 읽기 힘들었다.

- 좀 커서 읽었을 땐, 이 책 속의 영국 상류층 사람들을 비웃으며 읽었다. 다들 예의범절을 따지고, 품위나 고상함, 친절, 매력 등을 언급하지만 남이 실수하면 고소해 하고 비꼬며, 무엇보다 기분 나쁠 정도로 다른 사람을 관찰하는 모습이 상당히 무례하게 느껴졌다. 또 엘리자베스가 다아시나 제인의 표정 변화를 관찰하는 모습이 참 이해할 수 없었고, 이게 바로 예의가 없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며 당시 영국 상류층의 위선과 연극적 행동들을 비웃으며 참 재밌다고 생각했다. 제인 오스틴도 대단하다고 느꼈는데, A4용지 대여섯 줄이면 다 설명할 수 있는 이야기를, 두툼한 책 한 권으로 만드는 문장력이 실로 대단하게 느껴졌다. 


- 이번에 위즈덤하우스의 신간, 『오만과 편견』을 읽었다. 이번에 이 책을 읽고 제인 오스틴의 통찰력을 발견하고, 좀 새롭게 놀랐다. 예전에 『오만과 편견』을 읽고 비웃었던 요소 하나하나가 실은 제인 오스틴의 통찰력, 관찰력으로 빗어낸 것이고, 그녀가 묘사한 사람들의 성격은 여전히 우리 주변에서 너무나 쉽게 볼 수 있다는 점에 좀 놀랐다. 시대가 아무리 흘렀다 해도, 서양이 아닌 동양 사람이 읽는다고 해도, 공감되는 요소가 많다.


제인처럼 사람들의 좋은 점만 보려는 사람이 있으며, 엘리자베스처럼 본인이 똑똑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고, 메리처럼 공부에만 몰입하거나 키티나 리디아처럼 남자들과 함께 어울리고, 남자가 자길 좋아하는 그 자체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 또 베넷 씨처럼 만사 냉소적인 태도로 비꼬지만 그래도 도리를 알고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있으며 베넷 부인처럼 본인이 누리는 것은 당연하게 여기고 남에게 관심받길 바라며 매사 불평불만으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 

빙리처럼 우유부단해서 친구의 의견에 좌지우지되는 사람, 다아시처럼 자존심 때문에 말과 행동을 그르쳐 다른 이들의 오해를 사는 사람, 빙리의 여동생처럼 질투 때문에 누군가를 헐뜯고, 있는 사실과 없는 사실 엮어 말을 만드는 사람, 위컴처럼 외모는 출중하고 성격도 서글서글해서 좋은데, 도박에 빠져 빚에 허덕이고 항상 남의 호의에 의지해 살아가는 사람, 꿈을 꾸기보단 현실에 안주하는 샬럿 같은 사람(나쁘다는 게 아님), 크게 개성은 없지만 돈과 신분의 후광으로 사람들의 찬사를 받는 다아시 여동생 같은 사람, 최상류층 사람으로 '내가 낸데' 하며 온갖 오지랖과 대장질을 일삼는 캐서린 드 버그 같은 사람, 인자하고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을 주는 좋은 친척인 가드너 외삼촌 외숙모 같은 사람, 좋긴 하지만 말실수가 잦고 좀 경망스러운 데가 있는 친척인 필립스 이모 같은 사람 등. 


고전이 고전일 수 있는 건, 그 시대를 비롯해 지금 우리 시대까지 관통하는 '무언가'의 존재 유무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은 당시 19세기 초 상류층 사회를 보여주고, 사교 문화나 연애/결혼관을 잘 담아냈지만 무엇보다 인간 유형을 재밌게, 적나라하게, 이해하기 쉽게 잘 담아냈기 때문이 아닐까. 


이번에 읽은 『오만과 편견』은 위즈덤 하우스에서 나온 '비주얼 클래식'. 박희정 작가님의 일러스트가 책 군데군데 삽입되어 있다. 그림체에서 느낄 수 있듯 '비주얼 클래식' 시리즈는 젊은 층을 타깃으로 세계 고전 문학을 출판하고 있다. 그래서 문체도 상당히 요즘 문투다. 예전 번역본보다 읽기가 상당히 수월하다. 특히 베넷 가의 못 말리는 막내딸 '리디아'의 대사는 진짜 요즘 애들 말투.

표지나 안에 삽입된 그림에 대한 호불호는 좀 있을 것 같다. 이 책도 좀 그렇지만, 『인간실격』은... ㅋㅋㅋ (표지를 보니 안에 어떤 그림이 그려져 있을지 넘나 궁금하다.)


책의 맨 마지막 장은, 표지 그림이 컬러 포스터로- 

초판 1쇄 본이라 오탈자 몇 개(한 대여섯 개쯤)가 눈에 띄었지만, 두툼한 두께에 비하면 그리 많지는 않았다. 속독을 한다면 눈에 띄지 않을 정도. 하지만 책에 오탈자는 없어야겠죠. 2쇄에서는 다 교정됐으면 좋겠다. 

오랜만에 읽는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다른 작품도 읽고 싶네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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