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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ㅣ 비주얼 클래식 Visual Classic
제인 오스틴 지음, 박희정 그림, 서민아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7월
평점 :
『오만과 편견』 │ 고전은 고전이다. 읽을 때마다 새로운 느낌, 새로운 감상이 든다.
- 학생 때는 이 책을 읽는 게 어려웠다. 『오만과 편견』은 그냥 연애와 결혼에 관한 책으로, 결코 내용은 어렵지 않지만 어렸을 땐 참 버거웠다. 당시만 해도 한자에 정통한 번역가들의 작품이 많았고, 일상에서 내가 쓰는 말들과 너무 달라서 대체로 알쏭달쏭무지개였다. 사실, 이 작품이 19세기 초 영국에서 쓰인 작품이라 지금 우리 언어 실정에 최대한 맞게 번역한다 해도 어느 정도 고루하고, 이해하기 힘든 문체가 있다. 가령, '도의심을 아는 고결한 성품' 같은 말들. 지금은 뭔 뜻인지 알지만, 어렸을 땐 이런 말들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 몰라 읽기 힘들었다.
- 좀 커서 읽었을 땐, 이 책 속의 영국 상류층 사람들을 비웃으며 읽었다. 다들 예의범절을 따지고, 품위나 고상함, 친절, 매력 등을 언급하지만 남이 실수하면 고소해 하고 비꼬며, 무엇보다 기분 나쁠 정도로 다른 사람을 관찰하는 모습이 상당히 무례하게 느껴졌다. 또 엘리자베스가 다아시나 제인의 표정 변화를 관찰하는 모습이 참 이해할 수 없었고, 이게 바로 예의가 없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며 당시 영국 상류층의 위선과 연극적 행동들을 비웃으며 참 재밌다고 생각했다. 제인 오스틴도 대단하다고 느꼈는데, A4용지 대여섯 줄이면 다 설명할 수 있는 이야기를, 두툼한 책 한 권으로 만드는 문장력이 실로 대단하게 느껴졌다.
- 이번에 위즈덤하우스의 신간, 『오만과 편견』을 읽었다. 이번에 이 책을 읽고 제인 오스틴의 통찰력을 발견하고, 좀 새롭게 놀랐다. 예전에 『오만과 편견』을 읽고 비웃었던 요소 하나하나가 실은 제인 오스틴의 통찰력, 관찰력으로 빗어낸 것이고, 그녀가 묘사한 사람들의 성격은 여전히 우리 주변에서 너무나 쉽게 볼 수 있다는 점에 좀 놀랐다. 시대가 아무리 흘렀다 해도, 서양이 아닌 동양 사람이 읽는다고 해도, 공감되는 요소가 많다.
제인처럼 사람들의 좋은 점만 보려는 사람이 있으며, 엘리자베스처럼 본인이 똑똑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고, 메리처럼 공부에만 몰입하거나 키티나 리디아처럼 남자들과 함께 어울리고, 남자가 자길 좋아하는 그 자체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 또 베넷 씨처럼 만사 냉소적인 태도로 비꼬지만 그래도 도리를 알고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있으며 베넷 부인처럼 본인이 누리는 것은 당연하게 여기고 남에게 관심받길 바라며 매사 불평불만으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
빙리처럼 우유부단해서 친구의 의견에 좌지우지되는 사람, 다아시처럼 자존심 때문에 말과 행동을 그르쳐 다른 이들의 오해를 사는 사람, 빙리의 여동생처럼 질투 때문에 누군가를 헐뜯고, 있는 사실과 없는 사실 엮어 말을 만드는 사람, 위컴처럼 외모는 출중하고 성격도 서글서글해서 좋은데, 도박에 빠져 빚에 허덕이고 항상 남의 호의에 의지해 살아가는 사람, 꿈을 꾸기보단 현실에 안주하는 샬럿 같은 사람(나쁘다는 게 아님), 크게 개성은 없지만 돈과 신분의 후광으로 사람들의 찬사를 받는 다아시 여동생 같은 사람, 최상류층 사람으로 '내가 낸데' 하며 온갖 오지랖과 대장질을 일삼는 캐서린 드 버그 같은 사람, 인자하고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을 주는 좋은 친척인 가드너 외삼촌 외숙모 같은 사람, 좋긴 하지만 말실수가 잦고 좀 경망스러운 데가 있는 친척인 필립스 이모 같은 사람 등.
고전이 고전일 수 있는 건, 그 시대를 비롯해 지금 우리 시대까지 관통하는 '무언가'의 존재 유무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은 당시 19세기 초 상류층 사회를 보여주고, 사교 문화나 연애/결혼관을 잘 담아냈지만 무엇보다 인간 유형을 재밌게, 적나라하게, 이해하기 쉽게 잘 담아냈기 때문이 아닐까.
이번에 읽은 『오만과 편견』은 위즈덤 하우스에서 나온 '비주얼 클래식'. 박희정 작가님의 일러스트가 책 군데군데 삽입되어 있다. 그림체에서 느낄 수 있듯 '비주얼 클래식' 시리즈는 젊은 층을 타깃으로 세계 고전 문학을 출판하고 있다. 그래서 문체도 상당히 요즘 문투다. 예전 번역본보다 읽기가 상당히 수월하다. 특히 베넷 가의 못 말리는 막내딸 '리디아'의 대사는 진짜 요즘 애들 말투.
표지나 안에 삽입된 그림에 대한 호불호는 좀 있을 것 같다. 이 책도 좀 그렇지만, 『인간실격』은... ㅋㅋㅋ (표지를 보니 안에 어떤 그림이 그려져 있을지 넘나 궁금하다.)
책의 맨 마지막 장은, 표지 그림이 컬러 포스터로-
초판 1쇄 본이라 오탈자 몇 개(한 대여섯 개쯤)가 눈에 띄었지만, 두툼한 두께에 비하면 그리 많지는 않았다. 속독을 한다면 눈에 띄지 않을 정도. 하지만 책에 오탈자는 없어야겠죠. 2쇄에서는 다 교정됐으면 좋겠다.
오랜만에 읽는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다른 작품도 읽고 싶네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