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버그 - 보이지 않는 적과의 전쟁
맷 매카시 지음, 김미정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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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버그란 인간이 만든 강력한 항생제로 죽지 않고 성장도 멈추지 않는 무적의 박테리아를 뜻한다. 1960년대 이전에는 슈퍼버그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지구 어느 귀퉁이에서 산발적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지금은... 세계 무수한 곳에서 슈퍼버그에 감염된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으며, 암울한 전망이지만 수년 후에는 3초에 1명씩 인류가 슈퍼버그로 사망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의사들의 항생제의 무분별한 처방으로 인해서 박테리아는 항생제에 자주 노출되었고, 그 결과 박테리아는 변이를 통해 항생제를 무력화시키기 시작했다. 항생제가 세상에 나온 지 불과 반세기도 안 돼서 일어난 일이다. 슈퍼버그에 감염된 사람은 보통, 우리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괴로움 속에서 살다가 온몸에 박테리아가 다 퍼지고 나면 죽는다. 이 책, 『슈퍼버그』에는 박테리아에 감염된 환자들이 많이 나오는데, 그들이 얼마나 괴로울지는 사실 상상조차 가지 않는다. 감염 전문의이자 이 책의 저자인 맷 매카시도 환자들을 묘사하면서 많이 괴로워하고 힘들어한다. 그만큼 슈퍼버그에 감염된 사람은 고통스럽다.




이 책의 저자 맷 매카시는 뉴욕 프레스비테리안 병원, 감염 전문의다.


그는 박테리아를 주로 다루는데 박테리아, 즉 세균은 단세포 생물로서 땅과 물, 공기 같은 외부환경에서도 살며, 사람의 장기 등 생물체의 몸속에 기생하며 발효나 부패를 일으키는 병원체가 되기도 한다. 바이러스와 박테리아(세균)의 다른 점은 외부환경에서 번식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다. 바이러스는 외부환경에서 생존 가능하나 번식은 할 수 없고, 박테리아는 외부환경에서 생존은 물론이고 번식도 가능하다. 번식할 수 있는 장소는 달라도 바이러스나 박테리아나 모두 병원체로 몸속에 들어올 경우 위험하다.


사람이 걸리는 질병 대부분이 미생물 때문이다. 제1차 세계대전 때도 총에 맞아 즉사한 사람보다 상처 부위가 병균에 감염되어 죽은 사람이 더 많다. 우연히 '기적의 약물'인 페니실린을 찾아낸 알렉산더 플레밍. 1941년 최초로 인간에게 페니실린을 투여했고, 그 결과는 기적과 같았다. 제2차 세계대전 때 페니실린 상용화에 성공한 후 1944년부터는 민간에도 본격적으로 사용되었다. (플레밍은 1945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함)


그리하여 1950년 대는 항생제 개발의 황금기였다.


대부분의 박테리아 감염은 간단하고 효과적이며 저렴한 비용으로 치료할 수 있다. 세균성 질환의 사망률과 이환율은 매우 낮아서 더 이상 의료계가 풀지 못한 가장 중요한 숙제가 아니게 되었다. - 1953년, 빈의 미생물학자 어니스트 자웨츠의 말 (맷 매카시, 『슈퍼버그』, 35쪽)


하지만 그의 생각은 틀렸다. 항생제는 박테리아로부터 생명을 구할 수 있었지만 인체 모든 장기에 손상을 가져올 수도 있고, 또 항생제가 맞지 않는 사람에게는 치명적일 수도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박테리아는 인간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변이, 진화하며 항생제를 분해하고 파괴할 수 있는 수천 가지 효소를 만들어 냈다. 또 항생제를 아예 자신의 세포 밖으로 보내는 방법을 터득해 항생제가 아예 말을 듣지 않도록 한다. 슈퍼버그에 감염된 환자는 항생제를 맞아도 전혀 효과가 없는 항생제를 투여받는 것이다.


박테리아의 변이는 너무나 빨라서, 제아무리 대단한 항생제 신약이라도 박테리아의 변이를 따라갈 수 없다. 언제나 따라잡힌다. 그래서 제약 분야에서 수익성 없는 분야로 항생제 개발을 꼽기도 한단다. 개발을 해도 박테리아는 변이를 해서 새로운 항생제를 무력화 시킬 테니까.


그럼에도, 감염 전문의들은 감염으로 고통받는 환자를 구하기 위해 수많은 방법을 강구하고, 매일매일 최선을 다한다. 이 책은 병원 일선에서 박테리아와 싸우며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노력하는 저자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페니실린의 우연한 발견, 박테리아를 정복했다는 인간의 오만함, 박테리아의 역습, 그럼에도 환자를 위해 위태위태하게 신약을 개발하고, 임상실험을 하는 이야기이다. 감염 분야 일선에서 일하는 의사들은, 결국 인간이 박테리아에 질 것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싸운다. 그럼에도 희망을 놓지 않고, 환자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전투를 치르는 전사 같기도 하고 이 시대의 진정한 영웅 같기도 하다.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것은, 제약회사나 개발자들이 약을 뚝딱뚝딱 만들기 어렵고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는 것도 어려우며 특히나 박테리아를 죽이기 위해 환자가 얼마만큼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지 그것을 놓고 고민하는 의사들의 심경이었다. 의사들에게는 매번 힘든 선택의 연속이며, 심사숙고 끝에 내린 최선의 선택이 꼭 최선의 결과를 가져오지도 않았다. 허탈감, 박탈감.... 생명을 구한다는 소명 의식 없이는 힘들 것이다.


저자인 맷 매카시뿐만 아니라, 이 책에서 중요한 인물로 나오는 맷 매카시의 멘토 '톰 월시'도 인상적이었다. 의사는 정말로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었다.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거의 패닉 상태에 빠져있다. 그뿐만 아니라 21c 들어 닭이나 돼지 인플루엔자가 유행하고, 사스 메르스 등 코로나바이러스도 극성이다. 오만한 인간에게 바이러스와 박테리아가 본때를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싶다.


우리가 낯선 박테리아 한 종류에 자원을 쏟아붓는 동안 신경쓰지 않았던 다른 박테리아들이 은밀히 힘과 민첩함을 키워가는 것이 마치 두더지잡기 게임을 하는 형국이었다. (맷 매카시, 『슈퍼버그』, 176쪽)


이 책은 인간이 어떤 방법을 찾아내든, 박테리아와 바이러스는 또 다른 방법으로 인간을 역습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희망이나 좌절을 이야기하는 책이 아니다. 지극히 '현실'을 보여주는 책이었다. 언제나 개체와 미생물이 싸워왔다는 것을. 완전한 승리도, 완전한 패배도 없다. 맷 매카시가 임상시험하는 '달바' 역시 언젠가 미생물에게 무력화될 테지만 그럼에도 우린 싸워야 한다. 우리 몸 안의 면역체계가 그러하듯이 말이다. 生 그리고 모든 것을 포괄하는 우리의 자연은 이것과 저것의 경계선에서 부단히 싸우는 터전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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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습니다 I LOVE 그림책
제프 뉴먼 지음, 래리 데이 그림 / 보물창고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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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시절, 지금 돌아보면 철이 없던 시절이지만 그럼에도 어린 나이지만 문득문득 외로움도 느끼고, 애정도 갈구하고, 마음 붙일 곳도 필요했던 시기였다. '엄마'와의 유대는 조금씩 느슨해지고, 점차 '생각'이라는 걸 하게 되고 나는 독립된 개체가 되어 갔지만 그럴수록 마음은 외로워졌다. 독립은 거의 항상 외로움을 수반한다. 이럴 때 나를 위로해 주고, 내 곁에 든든한 존재가 되어 주었던 것이 바로 나의 반려견들이었다.


지금까지 여러 마리의 반려견과 함께 살았다. 내 인생의 2/3 정도는 늘 반려견과 함께였다. 지금까지 개들과 단 한 번도 '언어'로 대화한 적 없지만, 그것이 나와 반려견 사이에 장애물이 된 적은 없었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말을 아예 하지 않아도 반려견과 나는 대체로 언제나 잘 통했고 반려견이 무엇을 원하는지, 반대로 반려견은 내 감정이 어떠한지 서로 항상 잘 알아채곤 했다.


?진실되고 믿음 있는 사이는 '언어가 필요 없다'는 것을 반려견과 함께 살면서 깨닫게 된 것이다. 지금도 나는 사람보다도 강아지를 더 잘 이해하고, 나 역시 사람 아닌 강아지에게 더 잘 이해받는다고 생각한다. 영화도 유성영화보다는 아주 옛날의 흑백 무성영화를 더 좋아한다. 언어는 인간이 타인과 관계 맺기에 꼭 필요한 도구이지만, 이 세상 무엇보다도 인간관계를 망치는 건 단연코 언어가 아닐까 싶다.


?진심과 진실은, 말이 아닌 마음으로 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글자 없는 그림책 ─


글자가 하나도 없는데, 다 보고 나면 주인공의 마음이 너무나 잘 이해가 되어 가슴이 먹먹해진다. 책 역시 '언어'가 다가 아니다. 그림으로 보이는 대로, 내가 보는 대로 주인공의 마음이 너무나 잘 이해가 된다. 말이 없어서 더 잘 주인공의 마음이 더 내 마음에 와닿는다.





사랑하는 반려견을 잃어버린 주인공.

비가 오는 날,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쏟아지는 빗속에서 춥고 배고파 보이는 강아지를 발견했다.





주인공은 빗속에서 안돼 보였던 강아지를 집으로 데리고 온다.

둘 다 비를 많이 맞아서 옷과 털에서 빗물이 뚝뚝.


주인공은 함께 살던 강아지를 잃어버린 터라

빗속에 있던 강아지에게 정을 붙이고 싶지 않았지만

강아지가 함께 놀자고 하고, 함께 잠자자고 하여

주인공도 강아지에게 조금씩 마음을 연다.





함께 뒹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드디어 집에서 함께 살기 위해

강아지를 위한 물건도 산다.


주인공이 강아지에게 마음을 연 것이다.


하지만...





길에서 우연히, 빗속에서 만난 강아지를 찾는다는 포스터를 보게 되고





마음이 아프지만,

너무나 아프지만

원래 주인에게 강아지를 데려다준다.


왜냐하면 주인공은 반려견을 잃어버린 심정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렇게 강아지를 데려다주고 쓸쓸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오던 때,




유기견 쉼터 앞을 지났다...





유기견 쉼터에서 본 강아지의 뒷모습인 듯한 강아지.

이 강아지가 기분 좋게 집안을 달리는 모습으로 『찾습니다』는 끝을 맺는다.



///


이 그림책은 글자 없는 그림책이지만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줄거리이다. 무성영화처럼, 마치 반려견과 사람 사이처럼, 대화가 등장하지 않지만 보는 사람들은 전후 맥락을 이해하고 주인공과 강아지의 감정을 느낀다. 그래서 말로 들었을 때보다, 글로 읽었을 때보다 그림으로 읽는 이야기가 더 가슴에 여운이 남는다.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서는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글자 없는 그림책, 『찾습니다』는 '중요한 것은 언어가 아니어도 이해할 수 있다'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그림만 보고도 이해할 수 있듯이, 반려견의 행동만 보고도 우리가 반려견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듯이, 우리의 표정과 행동만 보고도 반려견이 우리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듯이.


외로움의 쓸쓸함과 함께하는 따쓰함이 

같이 깃든 그림책, 『찾습니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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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 그들이 만든 세계사 - 역사를 뒤바꾼 결정적 순간들
이내주 지음 / 채륜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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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평생 전염병은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인플루 때도, 사스와 메르스 때도... 나는 아무런 걱정, 두려움 없이 살았다. 그때만 해도 나는 어렸고, 부모님은 지금보다 젊으셨고 두 분 다 큰 지병이 없으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재 창궐하고 있는 코로나19는 지금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두려움을 느끼게 했다. 전염병 때문에 전전긍긍하기는 이번이 처음. 내가 바이러스의 숙주가 되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하고 있다(물론 집콕하며 매일 밤 태평스레 두 발 뻗고 잠도 잘 자지만).


불안한 시국, 전 세계적으로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상할 수 없을 때(과연 내일 우리나 미국, 유럽 증시가 어떻게 될지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아무도 없을 것이다) 제일 필요한 것이 '역사 책 읽기'가 아닐까 한다.


역사는 하나의 흐름이다. 강물처럼 시간을 따라서 어떤 선을 그리며 나아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 역사의 물줄기는 반듯하게 일직선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마치 계곡물이나 강물처럼 혹은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구불구불 거리며 다양한 방향으로 나아간다. 방향이 달라지는 지점을 보통 '변곡점'이라고 하는데 인간 역사의 변곡점에는 항상 [영웅]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영웅'이라는 단어를 안 좋아한다. 한국식 민주주의에 완전히 젖어있는 나로서는, 흠결 없는 영웅이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며, 무언가를 우상화하는 것에도 반감을 가지고 있다. 세상에는 특출나고 대단한 사람이 있을 수 있으나 영웅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인류사에 한 획을 그은 사람들을 부르는 명칭은 있어야 하고, 통상 [영웅]이라 부르는 것을 인정한다. 이 책의 저자도 그러한 것 같다.


이 책의 제목은 『영웅, 그들이 만든 세계사』이지만, 저자는 주요하게 다루고 있는 인물들을 미화하거나 영웅시하지 않는다. 다만, 이 책 속의 영웅들을 역사라는 물줄기의 물꼬를 튼 사람들로 설명한다.


영웅들이 바꾼 역사사, 세계사에서 그들의 의미, 역사에 미친 그들의 영향 등등 저자는 여러 질문을 던져가며 본인의 질문에 답을 찾아가듯 이야기를 서술하는데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역사의 시기는 달라도, 모두 인간의 이야기들이고, 인간의 선택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일까. 재미나고 유익하게 읽었다.


지금 우리 시기가 참 힘든 시기인 것 같은데, 역사를 되짚어보면 그렇지는 않다. 전염병이 돌고, 두려움 혹은 분노가 느껴지는 시대이지만 그래도 옛날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이 책을 보고 또 들었다. 그래서 이 시대에는 영웅이 없고, 그뿐만 아니라 영웅도 필요치 않은 시대라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먼 훗날, 오늘날의 누군가 중 영웅으로 기억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흠결이 없는 사람이기보단, 역사의 변곡점을 바꾼 사람으로 기억될 누군가. 그 사람은 누구일까. 나는 그 사람을 알아볼 수 있을까...



* 저자분이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시고, 또 이 책 속 글들이 국방일보에 연재된 글이기 때문에 군사 이야기가 나오는데 군사 일알못인 내가 읽어도 전혀 어렵지 않고 재미있었다. 저자분이 글을 참 일목요연하게 잘 쓰시는 듯. 역사적 인물 중심의 짧은 이야기를 읽고 싶은 분께 추천한다. 또 인물뿐만 아니라 역사적 배경 이야기를 아는 데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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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 The Power
나오미 앨더만 지음, 정지현 옮김 / 민음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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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니 아주 오래전, 아마도 10년도 더 전에 읽었던 소설책이 떠올랐다. 오래되어 책의 자세한 줄거리는 기억나지 않지만 몇몇 충격적인 장면은 지금도 생생하다. 소설의 배경은 1946년에서 1954년에 있었던 프랑스-베트남 전쟁(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베트남 독립 전쟁)이었다. 평범한 프랑스인이었던 주인공은 베트남 파병 후 전쟁의 참화 속에서 점점 미쳐간다. 무기도 없는 힘없는 마을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학살하는가 하면, 어린 소녀와 임신부를 강간하는 것도 모자라 시간(屍姦)... 즉 머리 없는 여성의 시체를 간음하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저자는 점점 미쳐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전쟁의 비인간성과 폭력성, 야만적인 면을 폭로한 것이리라.


이 책 덕분에 전쟁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국가 간의 전쟁이든, 국가 내의 전쟁인 내전이든, 그 어떤 전쟁이든 전쟁은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힘의 불균형, 불안과 공포, 죽음에의 두려움은 인간을 극한으로 몰아붙이고, 이런 상황 속에서 강자든 약자든 모두가 '패배한 존재'가 된다. 전쟁에서 승자가 있을 수 있을까. 승리한 나라는 있을지 몰라도, 승리한 사람은 없다.




나오미 앨더만의 『파워』를 읽고 아주 예전에 읽었던 프랑스 소설책이 떠오른 이유는... '힘을 가진 자와 힘이 없는 자의 관계가 역전되어도 힘의 불균형이 존재하는 한, 세상은 여전히 불합리하고 인권유린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선 『파워』의 줄거리는 대략 이러하다.


{가모장제 사회}가 완전히 뿌리를 내린 현대, 남류 소설가 '닐'은 문단 권력자 '나오미'에게 자신이 쓴 소설을 한 편 보낸다. 닐의 소설 배경은, 아직 여성에게 힘이 없던 수천 년 전이다. 이때만 해도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피지컬적으로 약했기 때문에 '남성 의존적' 삶을 살고 있었다. 사회 고위층은 남성들로만 채워졌고, 중동 지역 여성들은 남성들에게 완전히 종속되어 있었으며, 동유럽에 위치한 '몰도바'에서는 여성들이 순전히 남성의 성 노리개를 위해서 인신매매가 극성이던 시기.


그러던 어느 날, 나이 어린 소녀들부터 시작해 점점 나이 든 여성들의 손에서 '전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어깨에 있는 '타래'라는 것 덕분인데 간단히 말해서 '전기뱀장어'가 전기를 만들어 다른 생물체에게 충격을 가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여성들에게 '전기', 즉 power가 생기면서 남성과 여성의 관계는 역전된다. (나오미 앨더만은 'power'를 중의적 의미로 사용한 듯하다. 이 책에서 power는 '전기'와 '힘', '권력' 모두를 포괄한다)


그동안 여성에게 억압적이었던 중동 지역 국가와 인도에서는 여성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시위를 하고, 국가를 전복시킨다. 그리고 온실 속의 화초 같았던 영부인은 대통령인 남편을 죽이고 여성만의 공화국을 세운다. 이 공화국의 군대는 여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여군들은 아까 프랑스 소설 속 군인이 했던 것과 똑같은 행동을 한다. 난민촌에 습격해 반반하게 생긴 남자들을 골라 옷을 벗기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강간한 후에 죽인다(전기 충격을 가해 죽이는데, 피해자의 몸은 활처럼 뒤집어지고 경직된 채로 죽는데 참혹하기 그지없다). 동료 (여)군인들은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며 농담을 하거나 시시덕거리며 웃는데, 이런 행동들은 기존 전쟁과 약탈 속에서 남자 군인에 의해 자행되었던 비인간적인 행동과 동일했다.


'여성이 그럴 리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몇 년 전 이라크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에서 있었던 수감자 학대 사건을 보면, 미국 여군들도 이슬람 수감자들에 대한 고문, 잔혹 행위에 적극 가담했다고 알려져 있다(나체로 있는 피해자 옆에서 해맑게 웃으며 찍은 사진들이 인터넷상에 상당히 많다). 결국, 성별 그 자체의 문제이라기보다는 권력과 힘의 불균형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따라서 나오미 앨더만의 『파워』는 페미니즘 문학에 국한하지 않고, 이 범주를 뛰어넘는다. 단순히 '성별'의 문제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문제는 '힘의 불균형'이라고 보여준다. 힘을 가진 자가 힘없는 자를 괴롭히고, 약탈하고, 희롱을 일삼는 것은 남성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힘을 가진 사람이라면 성별을 떠나서 누구나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소설을 읽고 또 한편의 소설이 떠올랐다.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 이야기』와 『증언들』이다. 나오미 앨더만의 『파워』는 여성과 남성의 역전 관계를 보여주며 이 세상의 불합리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반해서,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 이야기』는 여성이 억압받는 사회를 극한의 모습으로까지 밀고 가 이 세상의 불합리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증언들』에서 권력의 핵심 조력자('리디아 아주머니')가 기존 권력과 조직을 붕괴시키고, 세상을 전복시킨다.


얼핏 보면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 이야기』와 『증언들』 그리고 나오미 앨더만의 『파워』는 성별의 문제를 다룬 소설로 비치지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권력의 불균형 문제'를 다룬 수작인 것이다. 좋은 작품은 이렇게 현시대의 권력 불균형, 사회 구조의 불합리한 모습을 보여준다.



나오미 앨더만의 『파워』을 읽고 한동안 머리가 얼얼했다. 완독한 지 며칠 됐는데 그래서 이제야 서평을 쓴다. 책을 읽고 난 후 생각은 생각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생각은 의문을 낳았으며, 의문은 답을 찾아 나서도록 나를 이끌었다. 아직 그 답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답을 찾아서 헤매고 있다. 얼얼, 얼떨떨.


'좋은 세상'이란 어떤 세상일까, '균형 잡힌 권력'이란? '우리가 목표로 해야 하는 바람직한 사회'는?!! 스스로 많은 질문을 던지게 하는 책, 나오미 앨더만의 『파워』였다.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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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의 힘 곤도 마리에 정리 시리즈 1
곤도 마리에 지음, 홍성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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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지금은 3월, 시작의 계절. 아이들은 유치원에 가고, 학생들은 학교로 가고, 어른들도 새 계절을 맞아 집안 정리하고, 업무도 새로 계획하는 시기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전염병의 습격으로 우리들의 몸과 마음은 겨울 끄트머리에 머물고 있으며 심리는 꽁꽁 얼어붙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갑자기 늘어난 2월 중순부터 우리나라 모든 것이 멈춰 서 있는 느낌...


그럼에도 시간은 끊임없이 흐르고 봄은 기어코 찾아온다.


집에 있기 깝깝해서 동네 근처 산책로를 걷는데, 분홍색의 예쁜 꽃이 나무에 화사하게 펴 있다. 그 꽃나무 아래를 지나가는 사람들은, 마스크로 눈 제외한 나머지 얼굴 모든 부분을 다 가렸지만 기쁜 듯한 눈빛으로 분홍의 봄꽃을 핸드폰 카메라에 담는다. 소생의 계절 봄은, 무심하면서도 긍정적인 무엇을 '툭'하고 인간에게 던져준다. 바로 '변화'


이 시대도, 내 마음도 심란하여 주변을 정리를 하고 싶었다. 주변이라 해봤자, 내 집. 내 옷, 내 책, 내 가구들에 한정되지만 말이다.




미니멀리스트의 대모이자, 정리의 여왕인 '곤도 마리에'의 신간 소식을 접하고 바로 신청해 읽었다. 결과는 만족.


이 책 속에서 뭔가 특별한 새로운 것이 있는 건 아니다. 평소 나는 정리에 관한 책이나 미니멀리즘 관련 책을 꾸준히 읽어서 이 책 속의 내용도 익숙하다. 또 곤도 마리에 씨의 책을 이미 여러 권 읽었었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고 다시금 뭔가 정리된 느낌을 받았다.


이 책에 적혀 있듯이 정리는 <의식의 문제>, 즉 '정신'에 크게 영향받기 때문이다.


정리는 마음가짐이 90퍼센트를 차지한다.

(중략)

그럼 정리에 대해 올바른 마음가짐을 갖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한 가지다. 올바른 노하우를 익히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정리를 위한 올바른 노하우는 물리적, 기술적 정리 수납 방법이 아니라, 올바른 마음가짐을 익혀 정리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법을 말한다. 

8쪽, 『정리의 힘』


그래서인지 이 책에는 정리 방법, 정리 노하우에 관한 사진이나 그림 설명이 없다. 오로지 '글'로만 표현되어 있다. 이 책은 정리에 관한 포괄적인 안내이지, '꼭 이렇게 정리해야 한다'라는 방법론을 담은 수납 실용서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PART2에서부터는 [버리기 원칙]이나 [물건별 정리법], [정리 순서] 같은 실용적인 조언이 나오나, 하지만 세밀하거나 구체적으로 설명해 놓지는 않았다. 개괄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고 해야 할까. 아마도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물건, 가구, 집의 구조, 함께 사는 가족 구성원 등이 다 다를 테니 이렇게 개괄적으로 설명하지 않았을까 싶다. 내 개인적으로 이런 개괄적 설명이 자세하고 구체적인 설명 보다 더 명확하고, 적확한 설명으로 느껴졌다.


책을 읽다 보면 곤도 마리에 씨는 '정리하는 걸 좋아하지만, 정리하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다. 나도 그런 편. 정리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하고, 시간 내서 정리하는 게 시간 아까워서 늘 바로바로 정리하는 편이다. 특히 부엌과 욕실이 깨끗하다. 꼭 필요한 물건, 평상시 늘 사용하는 물건만 있고 필요하지 않은 물건은 부엌과 욕실에 없다. 청소나 설거지도 바로바로 한다. 부지런해서가 아니라, 따로 시간 내서 정리하는 게 귀찮아서. 뭔가 아이러니하지만, 전혀 아이러니하지 않은 습관이라고 해야 할까.


다만 문제는 책상과 책장. 곤도 마리에 씨의 말처럼 <정리는 마음의 문제>라고 책은 내가 좋아하는 물건이지만, 동시에 내 심리를 압박하는 물건이기도 하다. 책이 내게 주는 불안과 강박 때문에 제대로 정리하지 않는 게 아닌지. 책과 책상 정리 목표를 세워도 늘 두루뭉술. 나 스스로도 뭔가 회피하고자 하는 게 느껴지지만 이런 마음까지 자주 외면한다.


흠, 그럼 지금은 밤이 깊었으니 내일 책장과 책상 몽땅 정리해 볼까.


과연 곤도 마리에 씨 말처럼 '정리'가 내게 자신감과 행복을 주고, 살까지 빼줄 수(?!! ㅎㅎ) 있을런지. 정리 후에 도래한다는 '진짜 인생'을 기대하며, 한번 해보겠다. 새로운 시작을 위해!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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