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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버그 - 보이지 않는 적과의 전쟁
맷 매카시 지음, 김미정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2월
평점 :
슈퍼버그란 인간이 만든 강력한 항생제로 죽지 않고 성장도 멈추지 않는 무적의 박테리아를 뜻한다. 1960년대 이전에는 슈퍼버그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지구 어느 귀퉁이에서 산발적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지금은... 세계 무수한 곳에서 슈퍼버그에 감염된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으며, 암울한 전망이지만 수년 후에는 3초에 1명씩 인류가 슈퍼버그로 사망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의사들의 항생제의 무분별한 처방으로 인해서 박테리아는 항생제에 자주 노출되었고, 그 결과 박테리아는 변이를 통해 항생제를 무력화시키기 시작했다. 항생제가 세상에 나온 지 불과 반세기도 안 돼서 일어난 일이다. 슈퍼버그에 감염된 사람은 보통, 우리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괴로움 속에서 살다가 온몸에 박테리아가 다 퍼지고 나면 죽는다. 이 책, 『슈퍼버그』에는 박테리아에 감염된 환자들이 많이 나오는데, 그들이 얼마나 괴로울지는 사실 상상조차 가지 않는다. 감염 전문의이자 이 책의 저자인 맷 매카시도 환자들을 묘사하면서 많이 괴로워하고 힘들어한다. 그만큼 슈퍼버그에 감염된 사람은 고통스럽다.

이 책의 저자 맷 매카시는 뉴욕 프레스비테리안 병원, 감염 전문의다.
그는 박테리아를 주로 다루는데 박테리아, 즉 세균은 단세포 생물로서 땅과 물, 공기 같은 외부환경에서도 살며, 사람의 장기 등 생물체의 몸속에 기생하며 발효나 부패를 일으키는 병원체가 되기도 한다. 바이러스와 박테리아(세균)의 다른 점은 외부환경에서 번식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다. 바이러스는 외부환경에서 생존 가능하나 번식은 할 수 없고, 박테리아는 외부환경에서 생존은 물론이고 번식도 가능하다. 번식할 수 있는 장소는 달라도 바이러스나 박테리아나 모두 병원체로 몸속에 들어올 경우 위험하다.
사람이 걸리는 질병 대부분이 미생물 때문이다. 제1차 세계대전 때도 총에 맞아 즉사한 사람보다 상처 부위가 병균에 감염되어 죽은 사람이 더 많다. 우연히 '기적의 약물'인 페니실린을 찾아낸 알렉산더 플레밍. 1941년 최초로 인간에게 페니실린을 투여했고, 그 결과는 기적과 같았다. 제2차 세계대전 때 페니실린 상용화에 성공한 후 1944년부터는 민간에도 본격적으로 사용되었다. (플레밍은 1945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함)
그리하여 1950년 대는 항생제 개발의 황금기였다.
대부분의 박테리아 감염은 간단하고 효과적이며 저렴한 비용으로 치료할 수 있다. 세균성 질환의 사망률과 이환율은 매우 낮아서 더 이상 의료계가 풀지 못한 가장 중요한 숙제가 아니게 되었다. - 1953년, 빈의 미생물학자 어니스트 자웨츠의 말 (맷 매카시, 『슈퍼버그』, 35쪽)
하지만 그의 생각은 틀렸다. 항생제는 박테리아로부터 생명을 구할 수 있었지만 인체 모든 장기에 손상을 가져올 수도 있고, 또 항생제가 맞지 않는 사람에게는 치명적일 수도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박테리아는 인간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변이, 진화하며 항생제를 분해하고 파괴할 수 있는 수천 가지 효소를 만들어 냈다. 또 항생제를 아예 자신의 세포 밖으로 보내는 방법을 터득해 항생제가 아예 말을 듣지 않도록 한다. 슈퍼버그에 감염된 환자는 항생제를 맞아도 전혀 효과가 없는 항생제를 투여받는 것이다.
박테리아의 변이는 너무나 빨라서, 제아무리 대단한 항생제 신약이라도 박테리아의 변이를 따라갈 수 없다. 언제나 따라잡힌다. 그래서 제약 분야에서 수익성 없는 분야로 항생제 개발을 꼽기도 한단다. 개발을 해도 박테리아는 변이를 해서 새로운 항생제를 무력화 시킬 테니까.
그럼에도, 감염 전문의들은 감염으로 고통받는 환자를 구하기 위해 수많은 방법을 강구하고, 매일매일 최선을 다한다. 이 책은 병원 일선에서 박테리아와 싸우며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노력하는 저자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페니실린의 우연한 발견, 박테리아를 정복했다는 인간의 오만함, 박테리아의 역습, 그럼에도 환자를 위해 위태위태하게 신약을 개발하고, 임상실험을 하는 이야기이다. 감염 분야 일선에서 일하는 의사들은, 결국 인간이 박테리아에 질 것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싸운다. 그럼에도 희망을 놓지 않고, 환자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전투를 치르는 전사 같기도 하고 이 시대의 진정한 영웅 같기도 하다.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것은, 제약회사나 개발자들이 약을 뚝딱뚝딱 만들기 어렵고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는 것도 어려우며 특히나 박테리아를 죽이기 위해 환자가 얼마만큼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지 그것을 놓고 고민하는 의사들의 심경이었다. 의사들에게는 매번 힘든 선택의 연속이며, 심사숙고 끝에 내린 최선의 선택이 꼭 최선의 결과를 가져오지도 않았다. 허탈감, 박탈감.... 생명을 구한다는 소명 의식 없이는 힘들 것이다.
저자인 맷 매카시뿐만 아니라, 이 책에서 중요한 인물로 나오는 맷 매카시의 멘토 '톰 월시'도 인상적이었다. 의사는 정말로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었다.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거의 패닉 상태에 빠져있다. 그뿐만 아니라 21c 들어 닭이나 돼지 인플루엔자가 유행하고, 사스 메르스 등 코로나바이러스도 극성이다. 오만한 인간에게 바이러스와 박테리아가 본때를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싶다.
우리가 낯선 박테리아 한 종류에 자원을 쏟아붓는 동안 신경쓰지 않았던 다른 박테리아들이 은밀히 힘과 민첩함을 키워가는 것이 마치 두더지잡기 게임을 하는 형국이었다. (맷 매카시, 『슈퍼버그』, 176쪽)
이 책은 인간이 어떤 방법을 찾아내든, 박테리아와 바이러스는 또 다른 방법으로 인간을 역습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희망이나 좌절을 이야기하는 책이 아니다. 지극히 '현실'을 보여주는 책이었다. 언제나 개체와 미생물이 싸워왔다는 것을. 완전한 승리도, 완전한 패배도 없다. 맷 매카시가 임상시험하는 '달바' 역시 언젠가 미생물에게 무력화될 테지만 그럼에도 우린 싸워야 한다. 우리 몸 안의 면역체계가 그러하듯이 말이다. 生 그리고 모든 것을 포괄하는 우리의 자연은 이것과 저것의 경계선에서 부단히 싸우는 터전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