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고전’에 관심이 많다. 현재는 ‘문학’에 비중이 크지만 점차 인문, 사회, 철학, 과학 등 다양한 분야로 넓혀가고 싶은 욕심이 있다. 왜 고전을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검증된 조언’이라고 하고 싶다.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언제나 크고 작은 문제들을 맞이한다. 혼자 끙끙거리기도 하고 주변에 도움을 청하기도 하지만 모든 소리를 듣고 있다 보면 오히려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경우도 생긴다. ‘고전’은 그런 모든 조언을 하나로 응집시켜주는 최후 선택의 결정적 역할을 해 준다. 수많은 세월을 지나 현재의 나를 만나기까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받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삶은 누구에게나 호락호락하지 않다.하지만 모든 상황은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대처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책 표지와 문구가 ‘고전’을 대하는 이유를 명확하게 나타내 주는 것 같다. 고전의 의미를 명확하게 꿰뚫고 실천하는 저자의 생활 모습을 본받고 싶다.
뒤를 돌아봐. 가끔은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를 등 뒤에서 찾을 수 있어 ‘인생의 터닝포인트’라늗 말이 곧잘 쓰인다. 그것을 경험하는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나 역시도 그랬다. 내 의지에 의한 건 아니었지만 결론은 그것이 터닝 포인트가 되어 새로운 일을 하며 살고 있다. 책에서도 말하지만 회사를 그만두고 세계 일주를 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상황은 아무것도 없다. 어쩌면 돌아갔을 때 아무런 일도 위치도 보장되어 있지 않음에 불안이 더 가중 될지도 모른다. 그 불안을 상황을 감내하면서도 무언가 바꾸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기에 인생을 건 도박을 감행하는 것이다. 어느 날, 문득 앞을 보니 아무런 것이 보이지 않는다면 잠시, 뒤를 돌아보며 생각의 정리를 가져보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저자처럼 꼭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을 가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일상에서 잠시 한 발짝 물러서서 자신의 삶을 관찰해 보는 것이다. 타성에 젖어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다면 곁을 두고 관찰해 보라. 일상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한 내면의 소리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 믿는다. 자신의 인생을 한 번 점검하고 싶다면 낯선 환경에 가 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무언가 새로운 도전이 필요한 젊은이, 인생의 후반을 정비해야 하는 중년, 누구라도 여행기를 읽듯 가벼운 마음으로 접하며 자신을 위한 계획도 세워보기 적합한 책으로 추천하고 싶다. 더불어 여행 에세이 답게 곳곳의 이국적인 풍경은 이 책을 한층 더 돋보이게 해 주고 있다
행복을 찾아 중국에서 한국으로 왔으나 이십 대 초반의 이른 결혼으로 꿈 많은 청춘의 시절을 육아로 보내야 했고, 이방인으로서의 차별을 이겨내야 했던 조선족 여성의 성장 에세이다. p33'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어?' '조선족은 위험한 존재야?''외국 사람이면 친구가 될 수 없는 거야?'P59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조건 없이 나에게 손을 내밀어 주고 연고지가 없는 마음에 버팀목이 되어 주고, 내 나라 내 땅이 아니라서 마음이 헛헛할 때 세심한 배려를 보내준 고마운 인연들, 그 인연들 덕분에 오늘의 나는 이방인이 아니다.p118나는 공부를 시작했다. 처음부터 새롭게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초. 중. 고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고등학교 공부를 마쳤다는 생각에 한이 어느 정도 풀린듯했다. 그러나 여기서 끝내고 싶지 않았다. 이왕 시작한 공부, 대학 생활을 해 보고 싶었다.P146'이봐, 해 보기나 했어?'라는 말이 생각난다.이 말은 도망치고 싶은 나의 마음을 되돌리는 마법 같은 말이 되었다.읽을수록 저자의 긍정적인 마인드에 감탄을 하게 된다.힘든 일 앞에서는 자꾸 '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찾게 된다. 외국인이었기에 조금 더 힘들었을 부분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피하려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피하고 싶은 마음을 독추 세웠고, 결국에 도전하고 이루어내는 근성을 가진 사람이다. 이런 사람 옆에 있으면 덩달아 긍정의 힘이 생기는 건 당연한 이치다. 이런 마인드는 본인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좋은 영향력으로 전파되었음이 분명하다.
북극성은 ‘맨눈으로도 잘 보일 만큼, 비교적 밝은 별들 가운데 하늘의 북극에 가장 가까운 별을 지칭하는 북반구 문화권의 관습적 명칭’이라고 한다. 무언가 지표를 삼을 때 우리는 ‘북극성’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사람들에게 자신만의 북극성은 무엇일지 물어봤다. 부모님, 하느님 말씀, 가족 등 대답이 다양했다. 나의 북극성은 무엇일지 곰곰이 생각하다가 ‘나 자신’이라고 대답하기로 했다. 어둠 속에서 방황하는 것도 ‘나’이고, 그 방황에서 탈출하는 것도 ‘나’이다. 결국은 ‘나’로부터 나온다고 생각하기에 흔들리는 자아는 얼마든지 괜찮지만 부러지지는 않는 내가 되어 보기로 한다. 북극성을 다른 곳에서 찾는 것보다 내 안에서 찾는 것이 잃어버릴 염려가 없는 확실한 저장소이다. 흔하게 볼 수 있는 자기 계발서의 한 종류에서 ‘별똥별’이 돋보이는 건, 흥미진진한 소설 한 편을 읽은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잔잔하게 읽어 내려가다 예상치 못한 반전 스토리까지 더해져 강한 몰입감에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주인공과 노 교수의 대화 속에서 던져주는 질문들 또한 읽다가 멈춰 자신의 상황을 반추하게끔 한다. 흔한 말이지만 ‘재미와 교훈’이라는 말을 확실하게 전달해 주는 글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연령에 상관없이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이 힘들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별똥별’을 적극 추천해 본다. 또한 지금 아무 문제가 없는 사람일지라도 한번 읽어 보길 권한다. 인간의 망각의 동물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주기적으로 동기부여가 필요하기에 곁에 두고 한 번씩 꺼내 보면 나를 일으키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