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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랑
최은미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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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문학동네 가제본 서평단에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1. 최은미 작가의 작품을 접한 것은 처음.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는 작품이라는 얘기를 듣고는 첫 만남에 대한 기대치는 한껏 더 높아졌는데… 첫 단편 <상리>를 한 번 읽고, 돌아가서 다시 읽고, 다시 또 한 번 훑은 후에 든 생각은 “이게 뭐야”였다.
#2. 첫 세 작품(<상리>, <무장하는 날>, <정선>)의 경우에는 습도가 높고, 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밀림의 숲을 헤쳐 나가는 듯한, 유쾌하다기보다는 불쾌한 느낌에 가까웠다. 그래서 중간중간 그냥 내려놓아 버릴까 하는 유혹에 시달리기도 했는데, 또 다른 단편은 어떤 이야기일까가 궁금해 끝내는 계속 읽어 내려가게 만들어 버린다. 매력을 넘어서는 이 마력은 뭘까?
#3. 이 느낌은 사실 마지막 단편인 <고별>까지도 일관되게 이어진다. 유독 작가의 글은 전사(全史)가 있는 이야기의 한복판에 나를 내던지는 느낌이다. 이야기의 맥락을 찾으려다 보면 어느 순간 끝. 여기까지 오기까지 이런 일들이 있었겠거니, 그리고 앞으로 이야기는 이렇게 풀리겠거니 상상하게 되는 것은 온전히 독자의 몫이다. 그러니 작가와 독자가 함께 완성해 나가는 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고. 또 읽어 내려가는 독자마다 각기 다른 결말을 낼 것 같아 상대의 결론은 나와 어떻게 다를까 궁금하기도 하다.
#4. 소설집에 실린 단편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단편을 고르라면 역시 <김춘영>이다. 운탄고도에 사는 김춘영의 구술을 들으러 찾아가는 면담자의 시점의 글인데 운탄고도의 풍경과 심리극처럼 서늘한 인물들에 대한 묘사는 작가의 글맛이 이런 것이구나 감탄하게 되는 지점들이 있다. 글을 읽는 중에 정자세를 하게 되고 읽고 난 후에 손에 땀이 흥건하게 배는 느낌, 꽤 오랜만인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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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호랑이
네주 시노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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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서평단에 선정되어 작품 지원받아 작성된 글입니다.

'의붓아버지로부터 어린 시절 강간을 당한 저자의 담담하면서도 격정적인 기록.'

이 작품의 한 줄 요약. 하지만 이 것이 전부일까?

이 작품을 읽어가면서 고통스러웠던 지점은 전반부에 묘사된 학대의 기록이 아니라 오히려 그 이후의 얘기들 때문이었다. 가령 아래와 같은 대목.

"폭력의 순환이 학대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사회가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사회가 학대자 역시 피해자였다는 사실을 정상 참작의 요인으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며, 많은 피고인이 자기네가 어린 시절에 겪은 일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p. 122)

"그런 범죄를 저지른 건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는 모범적인 성실성을 지닌 사람이라고, 신실한 남자라고, 착한 아들이라고, 의리 있는 친구라고, 악착스러운 일꾼이라고, 용기를 가지고 일하는 사람이라고, 때로 산속에서나 위급 상황에서 구조 활동에 나서기도 하는 영웅적인 사람이라고 말하기 위해 온 것이었다." (p.155)

끔찍한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가해자의 서사를 설명하는 이야기들을 마주하게 된다. 그가 어린 시절 학대를 당했다고 해서, 불우한 가정환경을 갖췄다고 해서 혹은 가난했다고 해서 그가 벌인 일들이 용서되지 않는데 가해자의 서사를 그리도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그 배경은 무엇일까?

그러니 "범죄자들 대다수는 자기네가 겪은 일을 용서받을만한 것으로 만드는 이야기들을 지어"(p.34) 내게 되고 우리는 그 서사를 필요 이상으로 소비해 주면서 그들과 공범이 되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 가해자는 떳떳해지고 피해자는 되려 스스로를 자책하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그들이 자기네 행위의 심각성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없는 것은 어쩌면 정상일지도 모른다. 만약 그들이 진정으로 그렇게 할 수 있었다면 아마도 자살을 했을 것이다. 아이를 강간한 자에게는 그게 단 하나의 명예로운 탈출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야말로 죽도록 수치심을 느끼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그들은 자살하지 않는다(자살하는 쪽은 대개 성폭력의 피해자들이지 가해자들이 아니다)."(p.208),

"말하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많은 것을 잃을 준비를 해야 한다. 말하고 나면, 당연히 가족을 잃는다. 마을도 잃고, 어린 시절도, 어린 시절의 추억도 잃는다. 그 대가로 무엇을 얻을까? 그건 잘 모르겠다. 진실을 얻기는 하지만, 진실이란 과연 무엇일까? 그 물음에 답하기는 쉽지 않다."(p. 296)

피해자는 용기를 내어 진실을 말하지만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것은 그가 무결점의 인간이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러니 우리는 많은 경우 피해자들이 착실한 가장이었으며, 착한 딸이었고, 자비로운 엄마였으며 듬직한 아들이었다고 포장한다.

여기서 드는 의문 하나. 세상에 강간 당해도 마땅하고, 백주대낮에 살해 돼어도 무방한 사람이 있기나 한 것인가? 그런데 왜 우리는 마치 착실하고 착하며 자비롭고 듬직한 인물이어야만 하는 것처럼 구는가?

저자는 "자기가 보호받고 있음을 알 때, 그러니까 사람들이 자기를 저버리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 때는, 그렇게 쉽게 희생자가 되지 않는다."(p.61)고 말한다. 이 말은 모두에게 적용돼야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 우리가 은연 중에 내뱉는 '우리 아이는 그런 애가 아니예요.'라는 말에는, 그 일을 '당해도 싼'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에 대한 구분이 포함돼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런 말들이 또 한 명의 피해자를 양산하고 있다는 것을 뼈아프게 받아 들여야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생각했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대할 때 중요한 것은 가해와 피해라는 사실뿐이지, 그 뒤에 숨겨진 그 어떤 서사도 중요하지 않다고. 하지만 과연 우리는 그렇게 행동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으니 이 작품을 읽어내는 시간이 괴로움의 연속이었겠다.

#열린책들 #슬픈호랑이 #네주시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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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록
듀나 지음 / 래빗홀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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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나 작가의 오랜 팬들은 열광했겠으나 처음 접한 독자들에게는 아쉬움으로 기억될 작품. 그 격차는 생각보다 꽤 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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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만들기 - 성형외과의의 탄생
린지 피츠해리스 지음, 이한음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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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전선의 한 간호사는 이렇게 표현했다. <치유의 과학은 파괴의 과학 앞에서 어찌할 줄 몰랐다.>

107
그녀는 매우 예리하게 간파했다. <수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계 대전은 간접적으로 수백만 명의 목숨을 구하기도 했다.>

192
세균학자는 군복을 입고 우르르 몰려다니는 군인들을 가리키면서 전시의 의학이 무엇인지를 냉정할 만큼 단순하게 요약했다. 「여기 있는 우리, 너와 나는 생명을 파괴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 틈에서 생명을 구하는 일을 하는 거야.」

218
대다수의 종군 기자는 얼굴 손상을 <전쟁에이 줄 수 있는 가장 야만적인 타격>이라고 했다. 밖으로 드러나는 사람의 정체성을 앗아가기 때문이다.

1. 역사상 가장 많은 사상자가 나온 전쟁이 1차 세계 대전이다. 기관총, 탱크, 독가스 등의 무기 등이 이때 처음 쓰였다.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많은 사람을 죽일 수 있을까에 몰두하던 시절이었다. 그런 야만스런 시절의 한복판에서도 어떻게 하면 사람을 살릴 수 있을까를 고민했던 인물들이 있었다. 그러니 < 인류에게 닥치는 모든 악은 언제나 어느 정도 선을 동반하기 마련이다.>라는 말과 사람은 생각보다 훨씬 잔인하고 또 무척이나 다차원적인 존재란 얘기에 공감할 수밖에 없는 거다.
2. 성형이란 말을 들으면 미용의 측면에서만 성형을 떠올리지 의료 차원에서의 성형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차라리 팔다리가 잘려나가는 게 낫지 코가 날아가고 뺨이 찢기는 부상에 세상이 무너지듯 반응하는 것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을 테다. 그런 사람에게 성형수술이란 새생명을 부여받는 것과도 같았으리라. 성형에 대한 나의 편협함과 무지함을 이 기회에 반성하게 된다.
3. 책 중간에 실제 환자의 수술 전후 사진이 나오는데 110년 전에 찍힌 사진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만큼 수술 전 당사자가 느낀 좌절감이나 주위 사람의 공포의 크기도 컸겠고.
4. 1차 대전 즈음에 마취와 수혈 기술도 엄청난 발전을 했다고 한다. 많은 사람이 죽어나간 시기에 또 훗날 수많은 사람을 살려낼 기술들이 발전했다는 역설 안에는 그만큼 많은 임상이 가능했었단 무시무시한 사실이 숨어 있다.
5. 많은 번역서가 그렇지만 이 책 역시 중간에 눈에 띄는 번역 오류가 보인다. '스펜서'를 그 다음 줄에선 '스펜스'라고 하거나, 에이브럼의 약칭을 '에이비'라고 해놓거나, 아마도 원문에서 이등병을 뜻하는 'private'을 썻을 것으로 추정되는 단어를 '사병'이라고 번역해 놓는 것 등이 그것이다. 사소해 조금 더 신경 썼으면 한다. 10점을 줄 수도 있었던 책이 거기서 몇 점은 손해를 보니까.

이 글은 열린책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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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매
황석영 지음 / 창비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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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제라는 마을의 600년 넘은 팽나무 '할매'의 시작부터 그 나무를 스쳐지나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그들의 삶 속에 병인박해, 동학 농민운동, 새만금 개발사업 등의 사건들이 녹아 들면서 우리 시대를 관통하는 이야기가 된다.
#2. 모두가 화려한 팝아트 같은 작품들을 써내는 시대에 수묵화 같이 묵직한 느낌의 글을 오랜만에 만났다. 세월이 가고 유행이 변해도 우직하게 자기 자리를 지키고 선 거장의 글은 작품 속 '할매'와도 닮았다. 호불호는 갈리겠지만 새 작품을 계속 써내려 간단 건 존경의 영역. 이 시대에 황석영 작가와 같은 장인들의 새 작품은 그래서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3. 게다가 산과 나무, 새, 갯벌의 모습을 표현하는 작가의 글은 마치 한 편의 도감을 읽는 느낌이었다. 이리 방대하고 꼼꼼하게 쓸 수 있는 건 재능의 영역인가 아니면 노력의 영역인가?
#4. 다만 단편적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들이 때로는 분절적이게 느껴졌고 후반부의 새만금은 소설의 주요 배경이 되는 하제와 엮으려다 보니 조금은 작위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200 페이지 조금 넘는 분량의 작품에 너무 많은 얘기를 담으려고 한 것도 같고.
#5. 또 인혁당사건 등의 배경을 알지 못하면 쉽게 이해하기가 쉽지 않을 수 있겠다 싶기도 하고. 작가가 읽어 주었으면 하고 바랐을 연령대의 독자층에게 얼마나 소구할 수 있을까가 궁금해지는 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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