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호랑이
네주 시노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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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서평단에 선정되어 작품 지원받아 작성된 글입니다.

'의붓아버지로부터 어린 시절 강간을 당한 저자의 담담하면서도 격정적인 기록.'

이 작품의 한 줄 요약. 하지만 이 것이 전부일까?

이 작품을 읽어가면서 고통스러웠던 지점은 전반부에 묘사된 학대의 기록이 아니라 오히려 그 이후의 얘기들 때문이었다. 가령 아래와 같은 대목.

"폭력의 순환이 학대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사회가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사회가 학대자 역시 피해자였다는 사실을 정상 참작의 요인으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며, 많은 피고인이 자기네가 어린 시절에 겪은 일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p. 122)

"그런 범죄를 저지른 건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는 모범적인 성실성을 지닌 사람이라고, 신실한 남자라고, 착한 아들이라고, 의리 있는 친구라고, 악착스러운 일꾼이라고, 용기를 가지고 일하는 사람이라고, 때로 산속에서나 위급 상황에서 구조 활동에 나서기도 하는 영웅적인 사람이라고 말하기 위해 온 것이었다." (p.155)

끔찍한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가해자의 서사를 설명하는 이야기들을 마주하게 된다. 그가 어린 시절 학대를 당했다고 해서, 불우한 가정환경을 갖췄다고 해서 혹은 가난했다고 해서 그가 벌인 일들이 용서되지 않는데 가해자의 서사를 그리도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그 배경은 무엇일까?

그러니 "범죄자들 대다수는 자기네가 겪은 일을 용서받을만한 것으로 만드는 이야기들을 지어"(p.34) 내게 되고 우리는 그 서사를 필요 이상으로 소비해 주면서 그들과 공범이 되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 가해자는 떳떳해지고 피해자는 되려 스스로를 자책하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그들이 자기네 행위의 심각성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없는 것은 어쩌면 정상일지도 모른다. 만약 그들이 진정으로 그렇게 할 수 있었다면 아마도 자살을 했을 것이다. 아이를 강간한 자에게는 그게 단 하나의 명예로운 탈출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야말로 죽도록 수치심을 느끼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그들은 자살하지 않는다(자살하는 쪽은 대개 성폭력의 피해자들이지 가해자들이 아니다)."(p.208),

"말하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많은 것을 잃을 준비를 해야 한다. 말하고 나면, 당연히 가족을 잃는다. 마을도 잃고, 어린 시절도, 어린 시절의 추억도 잃는다. 그 대가로 무엇을 얻을까? 그건 잘 모르겠다. 진실을 얻기는 하지만, 진실이란 과연 무엇일까? 그 물음에 답하기는 쉽지 않다."(p. 296)

피해자는 용기를 내어 진실을 말하지만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것은 그가 무결점의 인간이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러니 우리는 많은 경우 피해자들이 착실한 가장이었으며, 착한 딸이었고, 자비로운 엄마였으며 듬직한 아들이었다고 포장한다.

여기서 드는 의문 하나. 세상에 강간 당해도 마땅하고, 백주대낮에 살해 돼어도 무방한 사람이 있기나 한 것인가? 그런데 왜 우리는 마치 착실하고 착하며 자비롭고 듬직한 인물이어야만 하는 것처럼 구는가?

저자는 "자기가 보호받고 있음을 알 때, 그러니까 사람들이 자기를 저버리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 때는, 그렇게 쉽게 희생자가 되지 않는다."(p.61)고 말한다. 이 말은 모두에게 적용돼야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 우리가 은연 중에 내뱉는 '우리 아이는 그런 애가 아니예요.'라는 말에는, 그 일을 '당해도 싼'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에 대한 구분이 포함돼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런 말들이 또 한 명의 피해자를 양산하고 있다는 것을 뼈아프게 받아 들여야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생각했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대할 때 중요한 것은 가해와 피해라는 사실뿐이지, 그 뒤에 숨겨진 그 어떤 서사도 중요하지 않다고. 하지만 과연 우리는 그렇게 행동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으니 이 작품을 읽어내는 시간이 괴로움의 연속이었겠다.

#열린책들 #슬픈호랑이 #네주시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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