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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지 백신 1 - 신천지의 실상을 알려주는 바른 계시록 신천지 백신 1
양형주 지음 / 두란노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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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지 백신1”을 읽고

박정원

 

 

백신의 중요성이 지금처럼 와닿은 때가 또 있을까 할 정도로 전세계가 코로나19백신의 등장을 갈망하고 있다. 아니, 백신은 차치하고라도 치료제라도 속히 나왔으면 하고 모두가 간절히 기대하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코로나19백신 못지 않게 꼭 필요했던 백신이 최근에 등장했다. 바로 신천지백신이다. 오랫동안 바이블백신으로 한국교회를 넘어 많은 영향력을 끼쳐온 양형주 목사님의 신간이다. 바이블백신과 마찬가지로 신천지백신또한 1,2권으로 구성되어 있고, 먼저 1권이 발간되어 얼른 책을 펼쳤다.

 

먼저 두 가지가 눈에 띄었다. 먼저는 4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이다. 그리고 또 곧 2권이 나온다니 저자의 수고와 노력이 정말 귀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이 분량을 언제 다 읽나 라는 생각도 있었지만, 생각보다 수월하게 책을 다 읽게 되었다.)

 

두 번째는 저자가 이 책을 집필한 목적이다. “이제 한국교회는 건강한 요한계시록에 대한 성경공부는 물론이거나와, 이단들의 요한계시록 해석을 반증할 준비를 해야 한다. ....(중략)... 이제는 교회마다 이단들의 계시록 해석을 올바르게 반증하고 바른 요한계시록 해석을 제시하여 건강한 신앙으로 세울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중략)... 이만희 씨가 주장하는 요한계시록 전 장 해설의 핵심을 요약하고, 이들의 해석과 실상계시가 과연 이치에 타당한가를 점검한 후, 이에 대한 바른 해석과 대안을 제시한다. 이번에 펴내는 <<신천지 백신>>요한계시록에 대한 치유력과 면연력을 기르는 것을 목표로 한다(p.14).”

덧붙여 저자는 세가지 목료를 제시하는데, 첫째, 치료제로서의 <<신천지 백신>>, 둘째, 신천지에 빠진 가족이나 친구들과 씨름하고 있는 이들에게 저항 할 수 있는 무기로서의 <<신천지 백신>>, 그리고 기성교회 성도들의 신앙 예방 차원으로서의 <<신천지 백신>>이 그것이다.

그러고 보면, 신천지의 사이비성이나 그들의 비성경적 포교방식이나 포교전략 등에 대한 정보는 한국교회가 많이 접했지만 신천지가 집중적으로 가르치고 있는 요한계시록, 그리고 그 강의의 핵심에 대해서는 한국교회가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나 또한 이 책을 읽으면서 비로소 신천지가 왜 그토록 비유풀이에 집착하는지, 그리고 비유풀이의 프레임에 미혹된 성도들을 가두어 두기 위해 애쓰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저자의 인용대로, 신천지 신자가 24만으로 추산되고 신천지의 미혹에서 벗어난 성도가 24만인 작금의 시대에, 한국교회는 교회안의 신천지와 교회밖의 신천지 그리고 교회로 돌아온 신천지 출신의 성도들에 대한 보다 확실하고 분명한 대비가 되어 있어야 함을 또한 이 책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물론, 요한계시록은 비단 신천지 뿐 아니라, 거의 모든 이단들이 곡해하여 문제를 양상하는 경우가 많기에 이번 기회에 이단들이 주장하는 요한계시록과 실제 성경적 요한계시록의 진리를 정리할 수 있는 것은 매우 중요한 예방 접종(백신)이 될 것이다.

책은 총 4부와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부록은 신천지가 주장하는 요한계시록의 핵심을 다루고 있는데 이 책을 이해하는 데 있어, 그리고 무엇보다 지피지기 백전불태의 의미에서 매우 유용한 자료가 될 것이다.

먼저, 1장은 신천지가 주장하는대로 과연 요한계시록이 봉함된 책인가의 질문으로 시작된다. 물론, 그들의 주장과 달리 요한계시록은 처음부터 봉함된 책이 아닐뿐더러, 예수님께서도 처음부터 이 책을 봉함하지 말라고 하셨다(.22:10). 그러나 신천지는 이 책이 봉해져 있어 아무도 그 진리와 실상을 알지 못했고, 이제 그들(특히, 이만희 씨)을 통해 드러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처음부터 어긋나 있는 것이다.

 

그들의 오류는 또한 환상계시,” 실상계시에 대한 몰이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환상으로 보여주신 것과 실상으로 보게 된 것들에 대한 자의적 해석과 견강부회, 아전인수격 해석이 결국은 성경의 진리와는 동떨어진 그들만의 교리가 되어 버린 과정을 이 책을 통해 여실히 볼 수 있다.

 

그들의 오류는 여러 이유에 기인하여 여러 곳에서 발견 되는데, 삼위일체에 대한 몰이해가 가장 크다. 예수님의 신성을 부정하고 성령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해석이 결코 바른 종착역으로 향할 수 없을 만큼의 탈선의 원흉이 된다. 또한 성경전체에 대한 올바른 이해 없이 부분을 해석하려는 성경 해석상의 오류, 지나치고 비성경적인 알레고릭적 해석이 많은 오류를 낳은 것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또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그들이 주장하는 배도-> 멸망 ->구원의 순서로 진행되지 않을뿐더러,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는 하나님의 역사와 그분의 일하심에 대해 조금이라도 바른 이해를 가지고 있다면 있을 수 없는 해석들에 많은 영혼들이 미혹되어 왔다는 것이 많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그렇다. 이 책의 유익은 이러한 실제성에 있다. 그간에 우리가 특정한 그림이나 씨, , 나무과 같은 특정한 표현들만 아는 등 신천지에 대해 피상적으로 알고 있었다면, 이 책을 통해 그들이 무엇을 주장하고 있고, 그 주장이 성경의 실상과는 어떻게 다르며, 그러한 해석의 오류가 어떻게 발생하였는지, 가령, 성경의 몰이해인지, 의도적 곡해에 의한 것인지, 혹은 과거를 지우기 위한 시도의 발로였는지 등을 알 수 있게 된 것은 이 책이 <<신천지 백신>>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는 것이 하나도 무리가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해준다.

 

저자는 먼저, 1부를 통해서 이러한 부분에 대한 선지식을 독자에게 제공하고, 2(4-11)을 통해서 요한계시록의 기록목적과 특별히 일곱 교회에 대한 부분을 해석하고 신천지 주장의 오류를 제시함으로 독자들에게 <<신천지 백신>>을 주입한다. 신천지가 애용(?)하는 미혹하는 해석의 기법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 주장들이 어떻게 모순되는지 등 실제적인 공부가 되는 것이 매우 유익했다. 특히, 지역과 역사적 배경이 매우 중요한 일곱교회에 보내는 편지 내용에 대한 신천지의 몰이해가 어떤 해석적 오류를 범하고 있는지 잘 제시해 주고 있어 백신으로서의 원기능에 충실하다.

 

2부 전체를 읽고 떠오른 생각이다. 아무리 금을 쇠라 우겨도 금이 쇠가 될 수 없고, 아무리 쇠를 금이라 우겨도 금이 될 수 없듯이 성경의 극히 일부분을 곡해하고,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하고 누군가를 미혹하는 수단으로 극히 일부분을 사용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결코 성경 전체를 그렇게 할 수는 없다. 어떤 거짓말도 진리를 뒤집을 만큼 완벽할 수는 없는 법이다.

 

3부와 4부는 일곱 인 심판과 일곱 나팔 심판에 대한 신천지의 주장과 이 주장이 어떻게 성경과 배치되고 왜곡되었는지를 다루고 있다. 저장에 의하면, 이 대목에서 그들이 오류를 범하는 가장 주된 이유는 시간적 흐름과 장소적 흐름을 구별하지 못했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 시간의 전환인지 장소의 전환인지를 분별하지 못해, 가령, 이 대목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장면 인지, 오히려 시간을 거슬러 올라 간 것인지, 아니면 전혀 다른 시간상의 사건인지를 분간하지 못해서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듯이 이제 여기쯤 되면 앞선 많은 주장들과 현실의 괴리를 맞추기 위해서는 곡해가 필요하고, 곡해가 또 다른 곡해를 낳게 되고, 결국은 이것도 맞지 않고, 저것도 틀려지는 결과가 발생된 것이다.

 

그리고 일곱 인을 다루는 대목에서 우리에게도 익숙한 인 맞은 144에 대한 그들의 주장과 그것이 왜 성경적으로 틀린 것인지에 대해 자세하게 볼 수 있다. 많은 것을 상징과 비유로 풀어가는 그들이 유독 숫자는 실제 숫자로 해석하려는 경향에 낳은 오류들도 쉽게 볼 수 있다.

 

1권은 여기까지다. 결국, 책을 읽으면서 두 가지 생각을 갖게 된다. 결국 우리가 더 성경을 올바로 이해하고 올바로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백신이 의미를 가지려면 면역력을 빼놓고는 이야기가 안 된다. 하나님의 말씀, 그 성경 말씀에 대한 올바른 자세와 사모함, 그리고 건강하고 성숙한 배움과 깨달음, 훈련이 우리의 건강한 면역력이 될 수 있도록 기초체력을 키우는 일, 즉 본질적인 것에 우리 모두는 더욱 집중해야 한다는 점이다.

 

또 한가지는 이 책의 유익에 대한 것이다. 이 책은 참으로 유익이다. 아무리 요한계시록에 정통한 신학자라 해도 신천지가 주장하는 요한계시록에 대해 알지 못하면 백신을 만들어 내기란 불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통해 대부분의 한국교회 목회자와 성도들이 접할 기회가 없었던 신천지의 계시록과 교리를 분명히 알게 된 것은 그 의미가 매우 크다. 얼마 전 한국 연구진에 의해 코로나19의 완벽한 유전자지도가 세계최초로 공개되었다는 기분 좋은 뉴스를 접했다. 모두가 아는 바와 같이 이 유전자지도가 있음으로 바이러스에 대한 치료제와 백신의 개발은 속도를 낼 수 있게 되었다. 바로 이 책의 유익이 이와 같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400페이지를 꼭 맞춘 1, 그리고 또 곧 출간된 2권에 이르기까지 저자가 기울인 노력과 수고는 한국 교회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많은 분들에게 실질적이고도 귀중한 유익들을 주게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저자의 바람대로 이 책이 신천지에 대한 백신이 되고 치료제가 되고 싸울 수 있는 무기가 될 것이다. 벌써, 2권이 기대되는 이유이다. 우리 모두가 함께 읽고, 치료가 필요한 분에게는 치료제로, 예방이 필요한 모두에게는 백신으로 이 책을 널리 활용하고 나눌 수 있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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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이 울다
데이비드 플랫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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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데이비드 플랫의 복음이 울다를 읽고

                                                                          박정원

래디컬, 카운터컬처의 명저서로 우리에게 큰 은혜와 도전을 주었던 데이비드 플랫의 신간 복음이 울다역시 이전 도서들을 능가하는 도전과 반향을 우리에게 주기에 충분한 것 같다. 카운터 컬처에서도 언급된 적도 있었던 내용인 히말라야 지역의 마을들의 어려운 상황에 대한 저자의 생생한 경험과 하나님의 음성이 이 책에는 고스란히 녹아 있다.

 복음의 현장에서 언제나 난제로 떠오르는 빵이 먼저인가 복음이 먼저인가에 대한 물음에 지혜롭고도 현실적인, 무엇보다 성경적인 해답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책의 시작은 저자의 통렬한 눈물이 배인 기도이다. 히말라야의 처참한 육적, 영적, 사회적 상황 가운데 저자의 처절한 절규에서 시작된 첫 장은 독자로 하여금 이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게 하는 강력한 도전이기도 했다.

 입양의 무산이 단초가 되어 시작된 히말라야 트레킹에서 저자는 상상도 못했던 상황들을 마주하게 된다. 간단한 약이 없어 눈을(시력이 아니라 눈 자체를) 잃어버린 사람과의 만남, 그리고 간단한 정수필터가 없어 가족과 친지, 마을 식구들 60명의 죽음을 무기력하게 봐야 했던 한 사람보호받고 사랑받아야 할 존귀한 존재이자 아직 미성년자인 여아들이 인신매매를 통해 그들의 존귀함과 아름다움을 처절히 짓밟혀야 하는 처절함, 한 생명으로서의 존귀함을 인정 받지 못하고 저주 받은 출생으로 여겨져 헛간에서 짐승들과 함께 살아가는 생명들에 이르기까지….

 그런 현실 앞에서 그는, 그리고 모든 독자는 묻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 왜 인가요? 하나님 보고 계시지 않으신가요?” 이 책은 그러한 질문을 품은 모든 자들에게 귀한 답을 제공해 주고 있다. 이 책을 읽고 있노라면 저자의 등반에 마치 함께 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만큼 저자의 필력과 위트 그리고 영감은 탁월하다.

육체적, 사회적 어려움만이 아니다. 그의 여정 가운데 듣게 되는 영적 전쟁과 심각한 영적 상황들은 가난한 것도 불공평해 보이는데 복음의 기회마저 닫혀 있고, 심지어 예수님을 믿는 다는 이유로 마을에서 배척 받아야 하는 영적 상황들에 더욱 무거운 마음을 느끼게 된다.

목회를 하다 보면 다양한 어려움에 처한 분들을 만나게 된다. 원래 나는 무력하고 부족하기 그지 없는 사람이지만,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고, 해 줄 수 없어 마음에 찢어지는 상황 들을 정말 많이 접하게 된다. 영적, 정신적, 재정적, 관계적, 사회적 등등 다양한 어려움에 처한 분들을 모두 돕기에도, 충분히 돕기에도 턱없이 부족하고 무력한 자신을 느낄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저자가 처한 상황과는 온도차가 크다해도, 누군가가 겪는 어려움에 대한 개인의 고통에는 차이가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우리가 처한 무기력과 아픔에 대한 해답을 줄 수 있을 것 같아 더욱 손에서 놓을 수 없어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311쪽에 이르는 책을 단숨에 읽을 수 있었던 이유다.

육체적 필요, 사회적 필요, 가정적 필요, 관계적 필요어떤 이름을 붙이더라도 정리하자면 삶의 필요, 즉 빵의 필요라 했을 때, 빵이 먼저냐 복음이 먼저냐에 대한 질문에 저자는 이렇게 답한다.
다시 말해, 육체적 필요도 중요하지만 이 장례 현장은 몸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때가 온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상기시켜 주었다. 그 후의 상황이야말로 진정 중요하다. …… (중략)….. 그리고 이것은 지금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영원히 중요하다.(p.108)”

정수필터가 아무리 도움이 된다 해도 누구 하나 천국에 보내 줄 수는 없습니다. 의약품이나 위생 시설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이 마을에 가장 필요한 것은 영생으로 가는 구원의 진리입니다(p.125).”

목사님은 그날 아침 무엇 때문에 산을 내려갔느냐고 물으셨죠? 답은 무엇이 아니라 누구입니다. 목사님, 그날 밤 하나님은 내 마음속에서 특별한 역사를 행하셨습니다. 그 역사로 인해 저는 산을 내려갔습니다. 하나님은 제 안에 이 사람들을 향한 사랑을 불어넣으셨습니다. 이 사람들에게 제 삶으로 그분의 사랑을 보여 드리려는 열정을 제 안에 탄생시키셨습니다. 이것이 제가 지금 여기 있는 이유죠(p.149).”

육체적 필요도 어마어마하지만 이 지역 주민들에게 가장 큰 필요는 영적 필요랍니다(p.185).”

그리고 저자는 가장 결정적인 대답을 성경말씀을 통해 깨닫고 있다. 저자의 여정 중에 저자가 읽던 매일의 성경 본문이 누가복음이었는데, 그 날의 해당 본문이 저자의, 그리고 독자의 고민과 질문에 가장 명쾌한 답이 되어 주는 것을 보며, 역시 답은 말씀에 있다는 확신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의 결론은 강력한 열린 질문으로 마무리 되는 저자의 마지막 질문에 녹아 있다.
그래서 간단한 질문 하나로 이 책을 마치고 싶다. 영적으로 육체적으로 절박한 세상을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당신의 삶에서 무엇이 변해야 할까? 이 질문을 고민하고 그 답에 따라 행동하라(P.311).”

저자가 그랬던 것처럼, 나 또한 책을 손에 놓아도 이 책의 등장인물도 그들의 상황이 내 마음속에 떠나지 않는다. 이 책의 원제, “무언가 변해야 한다라는 문구가 계속 머리속을 맴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용기를 얻는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비전. 이 세대를 위한 하나님의 위대한 비전을 위해 달려갈 용기, 그리고 달려가야 할 이유들을 다시 마음에 새기며 기대가 된다.

벌써 수십 명의 평신도 리더들에게 아직 출간 되지도 않은 이 책을 소개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다시 회복하고 싶은 분들, 그리고 그 꿈을 향해 달려가며 동력을 얻고자 하는 분들, 그리고 복음과 섬김 가운데 균형을 얻고 싶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책을 소개하고 싶다.

#복음이울다 #데이비드플랫 #두란노 #가제본리뷰단 #어게인래디컬 #SomethingNeedstoChange #Davidplatt#복음이울다 #데이비드플랫 #두란노 #가제본리뷰단 #어게인래디컬 #SomethingNeedstoChange #Davidpla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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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켈러의 인생 질문 - 예수를 만나야만 알 수 있는 진리!
팀 켈러 지음, 윤종석 옮김 / 두란노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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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켈러의 인생질문을 읽고

                                                                            박정원

몇 해 전 대통령의 글쓰기로 유명한 한 작가분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기대를 가지고 찾았던 강연인 만큼 참 많은 유익이 있었는데 유익 못지 않게 잊혀지지 않는 강연자의 이야기는 질문에 관한 것이었다. 요는 한국사람들은 질문을 잘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질문하고 묻고 의심하는 사고가 익숙할 수 없는 사회적 분위기를 작가의 고교시절 에피소드와 함께 재밌게 이야기 한 부분이 지금도 잔잔한 울림과 마치 도전처럼 기억되는 것은 여전히 우리의 삶에서, 또 개인적인 삶에서도 질문은 금기의 영역처럼 느껴질 때가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신앙생활에서도 이는 예외가 아니라서 한국사람은 덮어놓고 믿는 믿음에 익숙하다. 신앙에 대한 질문이 많을 수 밖에 없음에도 질문을 여간해서는 잘 하지 않는다. 이유야 모두가 짐작할 수 있으리라!

그런데 요즘 특히나 너무 흠모하는(?) 팀 켈러의 신간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제목이 인생질문이다. 물론 원제목은 “Encounters with Jesus(예수님과의 조우)”인데, 나는 한국판 제목이 더 와 닿는다.

요즘은 인생**이란 말이 유행이다. 인생사진, 인생맛집, 인생여행 등일생에 기억될 의미 있는 무언가에 대한 표현쯤으로 알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인생질문이란 제목은 조금도 가장되지도 그저 한낱 유행에 편승하지도 않은 인생제목이다.

예수님을 향한 질문그분에 대한 질문보다 우리의 인생에 더 중요한 제목이 있을까?

저자는 자신도 한때는 이러한 질문, 사실 회의를 품고 살았던 적이 있음을 고백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크리스천이었지만 예수님에 대한, 그분의 구주되심에 대한 회의와 질문이 그에게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일까? Part I. 의 제목이 예수와의 조우, 인생의 답을 얻다.”이다. 인생의 모든 방황과 질문은 예수님을 만날 때 해결된다. 물론 다 아는 이야기인데 사실 예수님을 만나기까지가 모두에게 그리 쉽지 않다. 특히 요즘과 같은 시대에 기독교나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도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에게 그리 흥미로운 주제가 아니며, 별로 마음 열고 듣고 싶은 이야기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러한 면에서 특별하고 유의미하다. 일단 흥미롭고 또한 실제적이며, 아주 논리적이면서도 무엇보다 성경적이기 때문이다. 흥미롭고 실제적이라 함은 이 책이 성경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칫 딱딱하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교리나 복음적 문구들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한 남성, 한 여인과 같이 우리 일상에 우리와 같은 인물의 등장과 그들과 예수님과의 대화는 독자와 청중에게 매우 흥미롭고도 실질적인 접근과 도전을 주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저자의 화려한 언변과 특유의 혜안과 전개는 이러한 흥미와 실제를 배가하기에 충분하다는 것은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을 정도이다.

물론, 이러한 설화적(내러티브적) 접근이 자칫 복음의 핵심을 충분히 다루지 못하거나, 한 낱 누군가의 이야기 정도로 끝날 공산이 클 수 있지만, 저자가, 화자가 팀 켈러라면 이야기는 완전 달라진다.

단순히 등장인물의 이야기나 대화를 서술하는 것을 넘어서 누구도 쉽게 찾아 낼 수 없는 본문의 정수와 설화체 본문을 마치 강화체 본문인양 풀어가는 저자의 능력은 놀람을 넘어 존경을 금치 못할 정도이다.

책은 모두 두 파트로 나누어져 있는데, Part I. 예수와의 조우, 인생의 답을 얻다. Part II. 영원한 삶을 위해 당신의 구주 예수를 만나라. 이다. 이 두 파트는 논리나 책의 전개상의 구분이기도 하겠지만 저자가 감사의 말에서 밝히는 대로, 첫 번째 파트는 옥스퍼드 타운홀에서 진행했던 강의를 바탕으로, 두 번째 파트는 하버드클럽에서 기업인 조찬 모임을 통해 이루어진 강의를 기초한 것으로 나누어진 것 같다.

Part 11. 회의론자:나다나엘, 2. 인사이더와 아웃사이더: 니고데모와 사마리아 여인, 3. 슬퍼하는 자매들: 마르다와 마리아, 4. 혼인잔치: 예수의 어머니, 5. 최초의 그리스도인: 막달라 마리아 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1장을 통해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 수 있는가?”라는 나다나엘을 태도를 인류의 본성이라 규정하며 기독교를 이런 편견과 조롱 섞인 시각으로 바라보려는 모든 이들을 위해 이 책이 존재함을 오히려 분명히 하고 있다. 그는 이런 멸시와 조소는 언제나 해로우며, 기독교는 그러한 회의론자들 조차 동의하고 품고 있는 많은 핵심 가치의 원뿌리임을 강조한다.

기독교가 다른 모든 종교나 사상 체계와 구별되는 차이점의 정수는 바로 복음이다. (중략) 그런데 기독교는 이와는 정반대로 말한다. 타종교와 철학은 스스로 무언가를 해야만 신을 만날 수 있다고 말한다. 반면에 기독교는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을 대신 하셨다고 말한다. 또 타종교와 철학은 중요한 의문들의 답을 찾으려면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기독교는 예수님이 그 모든 것의 이라고 말한다(p.37).”

이어 저자는 알래스매킨타이어의 덕의 상실이라는 책에 나온 내용을 인용한다.

사물의 목적을 모르고는 그것의 좋고 나쁨을 결코 분간할 수 없다. 인간이 지어진 목적이 없다고 믿으면서, “저 사람은 바르게 살지 않는다. 행실이 틀렸다.”라고 말하면 자가당착, 자기모순이다(p.44).”

저자의 명언이 이어진다. “그분은 우리를 밑바닥까지 꿰뚫어 보시면서도 온유하게 대하신다(p.45).”

2장은 니고데모와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님과의 대화를 바탕으로 구성되어 있다. 니고데모와 사마리아여인과 예수님의 만남을 별개로 봐서는 안되며 이들의 공통점을 통해 성경적 진리를 도출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과 이에 부합되는 전개는 매우 인상적이고 유익하다.

우리의 행복은 다 외부적인 조건에 의해 좌우되지만 저자는 그런데, 예수님은 그 어떤 외부 조건도 내면의 깊은 갈증을 채워 줄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p.57).”라고 명쾌히 선언한다.

먼저 우리는 대부분 영혼의 갈증을 재대로 알아차리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만족이 없는 이유를 그저 아직 목표를 이루지 못한 탓이라 생각한다(p.58).”

그렇다. 팀 켈러 특유의 간결하지만 깊고 풍성한 통찰력이 이 책에는 넘쳐난다. 지금까지 우리가 팀 켈러의 풍성한 강해설교를 접할 기회가 많았다면, 이번에는 그의 명쾌한 주제 설교, 혹은 원포인트 설교의 풍성함을 누릴 기회이다. 물론, 전자든 후자든 철저히 본문(성경) 중심인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1,2장의 예에서 보듯이 억지로 논리를 끄집어 내거나 견강부회 하지 않고, 독자의 흥미를 유발하면서도 본질적 진리에 접근할 수 있도록 저자는 우리를 돕고 있다. 참으로 탁월하다. 성경과 현실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면서도 또 공존하게 하며 길을 잃는 법이 없다.

죄란 하나님이 아닌 다른 데서 구원을 얻으려는 행위다. 마치 자신이 구주와 주님인 양 하나님 나라에 서있는 것이다(p.67).”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나 진리가 아닌데 새롭고, 단순한 듯 한데 심오하다.

저자는 2장의 두 등장 인물을 비교하며 결국, 우리가 보기에 도덕적인 사람, 비도덕적인 사람, 내부인과 외부인, 이런 기준이 중요한 것이 아니며, 모두가 동일한 죄인이기에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 함을, 그리고 그것이 바로 우리의 이야기임을 결론 내리고 있다.

이 책은 정말이지 너무나도 흥미로운 책이다. 그래서 단숨에 읽어 내려가고 싶은 충동이 컸지만, 그 마음을 억누리고 정말이지 행간을 읽고, 묵상하고 또 묵상하며 마라톤의 자세로 이 책을 읽었다. 저자의 한 문장 한 단어, 한 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책을 통해 만나게 되는 예수님은 단지 좋은 랍비로서의 예수님이 아니다. 사상가나 혁명가가 아니다. 그분은 스스로를 하나님의 아들, , 신적 존재라 천명하셨고, 우리는 이 사실을 믿고 받아들이는 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4장에서 저자는 예수님께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세상을 바로잡으려 하시는가?” 질문을 던진다. 그 해답은 다음과 같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기쁨을 가져다 주시기 위해 어떻게 하시는가? 자신의 기쁨을 모두 잃으신다. 아버지와 함께 사시던 하늘을 떠나신다. 일생을 오해 받으며 외롭게 사신다.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해 죽으신다(p.110).”

그렇다. 혼인잔치는 지금의 기쁨과 축제에 초점 맞춰진 것이 아니라 주님의 대속, 그 용서의 역사 없이는 일어날 수 없는 영원한 천국 잔치, 그 천국의 희열, 그리고 그 은혜를 우리에게 보여주시기 위한 그 날에 초점 맞추어 진 것이다. 우리가 주의 나라에 거할 그날을 바라보지 못한다면 현재의 축제도 우리에게 무의미 할 것이고, 현재의 고난도 넉넉히 이길 수 있다.

5장의 주인공은 막달라 마리아이다. 그녀를 최초의 그리스도인이라 명명한 저자의 위트가 또 한번 큰 깨달음으로 울림을 준다. 저자는 5장을 통해 부활의 생소함 그리고 진리, 오직 은혜와 전적인 은혜, 그리고 왜 그것이 우리에게 선물과 같은 은혜의 영역인지를 이야기 해 주고 있다.

책의 두 번째 파트는 카메라의 초점을 더욱 예수님께 맞추어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예수님은 누군가의 인생 모델이 되기 위해서나 인생 질문에 답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라 생명의 구주로 오셨고, 해답 자체이심을 저자는 다시 강조하고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책 전체의 모든 주옥 같은 그래서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은 명 문장들 중에 저자의 이 표현이 가장 크게 와 닿았다.

그분은 무한히 지혜로우셔서 처음부터 끝을 내다보시며 우리를 향한 선한 목적을 광야 저편에 숨겨 두셨다. 고난을 인내로 견딘 욥은 지금까지도 수없이 많은 사람을 돕는 귀감이 되었고, 예수님도 이 시험에 통과하여 마침내 역사를 바꾸어 놓고 세상을 구원하셨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영이 우리를 광야로 인도하신다면 이는 분명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다(p. 153).”

저자의 주장에 의하면(그리고 당연히 동의하는) 기독교는 일원론적이거나 이원론적이지 않다. 그렇지만 사탄은 끊임 없이 우리가 예수님을 제대로 발견 하지 못하도록 애쓰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도록 한다.

그렇다. 승리의 열쇠는 결국 성경 말씀이다. 사탄은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사명을 위임 받고 능력을 입으셨기 때문에 시험하려 했던 것처럼, 그분은 우리에게 성경만 주신 것이 아니라, 승리하신 그분께서는, 우리와 함께 하신다. 주님께서 고난 받으신 것은 우리 때문이었다. 시험 받으신 것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과 함께 능히 이 모든 고난을 헤쳐갈 수 있다.

7장은 정말 큰 깨달음과 그 이상의 은혜와 용기를 나에게 주었던 장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보혜사, 대언자의 의미를 풀어가며 두분의 대언자, , 그리스도와 성령을 조명하는 탁월한 내용이 이 장에 등장한다.

예수님이 대언자라는 성경 말씀속에는 정의의 기준이 존재하고, 우리가 그 앞에 서서 심판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 전제되어 있다(p.181).”

그 단어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주로 도덕적 행실의 본보기나 사랑의 지지자가 아님이 암시되어 있다(p.182).”

이미 우리를 위한 화목제물 되신 그리스도께서 이미 죄인된 우리에게 그분의 죽으심으로 베풀어진 자비가 있으므로 즉, 우리는 그분의 십자가 대속으로 이미 용서 받았기에 우리는 그 설득력 있는대언자를 통해 온전히 그 심판대 앞에 설 수 있음을 저자는 강조하는 것이다.

성경대로, 법대로,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우리를 위해 다시 사신 그분, 그 대속의 의미를 우리가 분명히 깨달을 때 그리스도, 그 대언자와의 연합의 의미가 무엇인지 우리는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성령께서도 대언자라는 사실은 매우 의미 심장하다. 성령은 손만 잡아 주거나 에너지만 주시는 것이 아니라 삶을 변화시키시는 분이심을 저자는 강조하고 있다.

성령은 그리스도가 사랑으로 이루신 일과 그 결과에 합당하게 살도록 우리를 설득하고 훈계하고 권고하고 간청한다. 그래서 예수님은 성령을 통하여 비로소 제자들에게 자신을 나타내리라고 말씀하신다(.14:21). 제자들은 마침내 예수를 보고 그 사랑의 임재를 알게 될 것이다(P.189).”

예수님의 평안은 생각을 떨치고 실체를 무시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충분히 생각하며 실재에 주목할 때 찾아온다(p.193)”는 저자의 통찰은 우리에게 계시는 대언자가 어떤 분이시며 왜 예수님께서 또 따른 보혜사가 오심을 근심하는 제자들에게 들려주셨는지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그렇다. 첫째 대언자를 구주이심을 깨닫고 누리도록 하는 분이 바로 두 번째 대언자 이신 것이다.

9장은 예수님의 승천을 다루고 있다. 주님의 승천사건이 이토록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부끄럽게도 나는 생각해 보지 못했고, 사실 이렇게까지 알고 있지 못했다. 그래서 9장과 두분의 대언자를 소개하는 8장은 내게 개인적으로도 큰 힘과 위로, 확신을 경험하게 되는 매우 은혜롭고 의미 심장한 장이었다.

예수님의 승천은 단순히 하늘로 올라간 사건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하늘이 아니라 천국으로, 그 놀랍고 위대하며 영광스런 대관식을 치르신 것이라는 저자의 통찰이 가슴에 와 닿았다.

승천하신 주님은 사람들의 심령에 역사하여 복음을 전파하고 교회를 세우시는 한편 역사의 모든 사건을 영광스러운 종말 쪽으로 이끌어 가신다(p.230).”

예수님은 승천하셨기에 이제 우리와 성령 안에 함께 계신다. 예수님의 임재를 지금도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이유이다. 또한, 그분이 하나님 우편에 계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스리고 계심을 의미 한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승천은 그분께서 권능자이시며, 만물의 머리가 되시고, 또한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천국에 계실 뿐 아니라 죽은 자와 산 자를 심판하러 오시고, 우리의 영광이 되시며 우리를 위해 계신다는 사실을 의미 한다. 이 모든 것이 예수님께서 승천하셨기 때문임을 9장을 통해 더욱 명확하게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승천하신 그리스도를 깨닫고 믿는 다는 것은 나의 죄가 사함 받고 대속의 피로 그분의 중보와 은혜로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음을 확신시켜 준다. 그리고 모든 것이 그분의 다스림 가운데 있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케 됨을 의미 한다.

마지막 10장은 마리아에 관한 이야기, , 수태고지에 대한 묵상이다. 마리아와 요셉, 둘은 모두 어려운 가운데, 아니, 불가능한 가운데 결국 순종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세상의 방식, 기대, 흐름과 정반대로 일하시는 하나님시기에 약한 데서 강하여 지는 주님의 역설을 저자는 강조하고 있다. 저자의 도전을 이렇게 정리해보고 싶다.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실 것인가, 탁월한 자문위원으로 모실 것인가?

참으로 감탄을 금할 수 없는 책이다. 머리와 가슴이 이렇게 동시에 뜨거워지는 책이 또 있었던가!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지만 그 호기심을 위해 한번에 내려 읽어 갈 수 있는 책이 아니라 그 의미를 다시금 곱씹어 보며 다시 고민하며 또 기억하고 마음에 새기며 삶에서 적용하며 누려야 하는 보물창고 같은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이 책을 벌써 교회의 리더분들에게 권면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우리가 먼저 인생질문에 대한 바른 해답과 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책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알려고 하지 않는 분들에게도 매우 유익한 책이다. 최대한 그들의 관점에서 그들이 궁금해할 내용들과 그들이 거부감을 가질 수 있는 부분을 잘 간파하고 저자는 그러한 지뢰밭을 안전하게 피해 예수님과의 만남의 장소로 독자를 노련하게 안내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슴 벅찬 감동이 지금도 가시지 않는다. 나도 더욱 말씀의 진리에 충만하고, 더 배우고 연구하고 성령의 조명을 통해 말씀의 진리를 깨달아 가는 말씀의 종이 되기를 결단하는 귀한 계기가 되었음에 감사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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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켈러의 방탕한 선지자 - 높아진 자아, 하나님을 거부하다
팀 켈러 지음, 홍종락 옮김 / 두란노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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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켈러의 방탕한 선지자를 읽고

                                                                          박정원

얼마 전 우리 가정은 이사를 했다. 2년마다 이사하는 것을 6년째 계속하고 있는데 이삿짐 센터에서도 놀라고 사실은 우리가 더 놀라는 것은 어디서 이 많은 짐들이 쏟아져 나오는가 하는 것이다. 정말이지 작은 공간에 칸칸이 들어있는 우리 가족들의 짐은 놀랍기 그지 없다.

 물론, 이보다 더 놀라운 것이 있다. 바로 흔히 소선지서라 불리는 예언서들이 품고 있는 진리와 은혜들이다. 단지 분량이 적어 소선지서라 불리우지만 그 작은 분량의 책들이 품고 있는 놀라운 지혜와 은혜 그리고 영적 도전들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특별히 그 중, 나에게는 요나서가 더욱 그러한 책이다. 요나서가 주는 감동과 도전, 그리고 수많은 교훈들은 우리가 그저 큰 물고기 이야기라고 오해하며 그 진리를 놓치기에는 더욱 아까운 책이 아닐 수 없다.

 요나서를 특별히 편애(?)하는 나에게 팀 켈러의 신간 방탕한 선지자는 절대로 놓칠 수 없는 책이 아닐 수 없었다. 올 해 중3되는 큰 딸이 책상 위에 놓인 이 책을 보고는 아빠는 진짜 팀 켈러의 책을 좋아하시나봐요..”라고 한마디 건넨다. 그러고 보니 근래에 들어 가장 많이 읽은 책이, 그리고 서재를 장악한 그의 책들이 팀 켈러의 책을 향한 나의 열정을 보여준다. 그래, 이 책은 바로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요나서를 그토록 신뢰하는 저자의 통찰과 묵상으로 쓰여진 책인 것이다!

 책은 총 네 개의 파트로 되어 있다.

Part1. 하나님을 피해 달아나다. 1. 성난 사명자(‘하나님의 선하심때문에 절망했다)에서는 타당한 근거를 찾을 수 없기에 결국 하나님을 피할 수 밖에 없었던 선지자의 모습과 우리의 모습이 자세히 소개되고 있다. 바울의 냉철한 지적을 놓치지 않은 저자의 통찰 덕에 종교적 방탕으로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지만 동시에 종교적 열심으로도 하나님을 피해 도망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 큰 도전이 되었다. 하나님과 함께 한다고 하면서 오히려 멀어지고 있지는 않은지, 순종한다며 오히려 적극적인 불순종으로 나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되었다.

 Part2. 폭풍 속에서 내 신앙의 실체를 마주하다. 에서는 2. 하나님의 막으심(세상의 폭풍에 갇히다), 3. 세상의 꾸짖음(나만의 성벽을 세운 눈먼 신앙이었다), 4. 얄팍한 영적 정체성(하나님보다 더 큰 내 안의 우상이 드러나다) 5. 희생 없는 편한 믿음(나만 괜찮으면 된다는 안일함을 바다에 던지시다.) 6. 바닥에서 드린 기도(하나님밖에 남지 않을 때 은혜 앞에 항복하다) 라는 주제로 요나서의 중요한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저자는 멈춤을 통해 다른식으로는 생겨날 수 없는 믿음, 소망, 사랑, 인내, 겸손 절제가 우리안에 생겨날 수 있다(p.43)”고 말하고 있다. 3세상이 교회를 꾸짖음에서는 이교들에게서 오히려 교훈을 받아야 하는 요나를 통해 이 세대를 변화시키지 못하고, 우리의 알량한 종교적 자존심으로, 종교적, 정치적 가치관의 오류로 공공선에 무뎌진 그리스도인에게 도전을 주고 있다. 4장은 정체성에 대한 중요한 세가지 요소를 제시해 주고 있다. 바로 사명, 장소, 민족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를 통해 그들이 하나님과 맺은 관계가 그들의 마음속 깊이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p.72)”라는 저자의 지적처럼 과연 나 자신은 무엇에 가치를 느끼며, 무엇으로 안정감을 느끼고 있는지, 그리고 그 모든 근거와 이유, 해답이 바로 하나님이 되서야 함을 가르쳐 주고 있다. “얄팍한 정체성은 또한 우리의 참 모습을 보지 못하게 막는다.” “베드로의 가장 근본적인 정체성이 자신을 향한 예수님의 은혜나 사랑이 아니라 예수님을 향한 그의 헌신과 사랑에 근거하기 때문이라는 저자의 통찰은 나에게도 폐부를 찌르는 성찰이 되었다.

 참으로 중요한 개념이다.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것을 놓치고 있는가! (나를 비롯하여) 얼마나 많은 목회자들이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보다 헌신과 율법을 강조함으로 많은 성도들에게 정체성의 혼란을 오히려 부추이고 있는가! 하나님의 자비가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이교도들이나 니느웨 백성들이 아니라 오히려 요나 자신이었고, 바로 우리들 자신이다.

 그리고 “5장 희생 없는 편안한 믿음에 이르러서 드디어 저자는 요나가 예표하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본격적으로 제시하기 시작한다. 결국 요나를 어떻게 평가할 지와 관계 없이, 요나서와 요나는 우리를 위해 어떠한 죄도 없으신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원형적인 사랑과 대속의 희생을 십자가에서 이루셨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결국 요나가 이해할 수도, 그래서 순종할 수도 없었던 이유는 하님을 오해했기 때문이었다. 그분의 엄청난 사랑과 희생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 문제가 바로 우리 모두가 겪는 문제가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된다.

 예수님 밖에 남지 않을 때까지는 예수님만 있으면 되는 것을 결코 깨닫지 못한다. 자기 목숨을 잃어야 하는 것이다(p.99).”는 저자의 명언이 빛나는 6장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역설하고 있다. 은혜, 그것은 우리가 철저히 무능한 죄인(죄인이며 무능함)이며 이를 위해서 값비싼 대가가 치러졌음을 자각하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요나서를 통해 은혜가 은혜 되어야 함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저자는 큰물고기 이슈는 거의 다루고 있지 않다. 그것은 요나서가 이 물고기에 대해 주목하지 않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큰물고기에 빼앗긴 시선을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되찾아와야 한다!

 Part3 순종하지만, 다시 넘어지다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듯 하지만 여전히 그 정수를 경험하지 못하고 다시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선지자를 통해 우리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다. 요나는 여전히 자기의가 있고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을 가지고 있음을 날카로운 저자의 시선이 놓칠 리 없다. 독선과 비교된 선, 상대적 의가 늘 많은 문제를 야기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모르지 않는다. 특히 교회 안에서 이러한 율법적인 순종과 열심이 야기하는 문제들은 늘 우리의 기도거리다.

 그러나 9장은 하나님의 오래참으심 가운데 은혜에 붙들려 다시 사명자로 서는 요나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물론, 요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그분의 그 자비하심으로 구원을 경험했지만 정작 니느웨에 주어진 구원과 자비하심은 인정하지 못하고 있다고 저자는 꼬집고 있다. 책의 중반을 넘어가니 갑자기 이 책의 정체성이 궁금해 진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지금까지 이런 책은 없었다. 이것은 과연 주석인가 설교인가?”

 그렇다. 이 책은 주석책과 설교집의 중간형태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에 목회자에게도 평신도에게도 폭넓은 교훈과 유익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서, 요나의 자기연민, 그 애착을 저자는 하나님의 마음에 대한 철저한 무지의 발로라고 저자는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 우리는 과연 무엇에 긍휼을 느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요나서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자연스럽게 요나와 그리스도의 모습을 상반되게 보여준다. 하나님은 어떻게 사랑(자비)의 하나님이신 동시에 진노(심판)의 하나님이실 수 있는가? 요나서와 이 책은 이것을 우리에게 묵상케 한다.

 그분은 너무나 거룩하시고 너무나 사랑이 많으시기에 요나를 죽이거나 지금 모습 그대로 남아 있게 두실 수 없다. 그리고 같은 이유로 하나님은 우리를 지금 모습 이대로 두실 수 없다(p.172)”

나는 저자의 이 놀라운 성찰이 요나서의 핵심을 보여주는 요약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Part1-3이 강해/주해를 바탕으로 하는 관찰이 주를 이루었다면 Part4는 묵상에 대한 적용과 저자의 메시지가 더욱 도드라지는 파트이다. 마치 부록내지는 전시장의 도록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 책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또 하나의 매력이다.

 저자는 이 네번째 파트를 통해서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마땅한 세계관, 공공선에 대한 관심(헌신), 포용, 그리고 순종,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어 깊은 묵상과 은혜를 경험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나는 이 책을 통해서 내가 지금까지 잘 알고, 또한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 자비와 심판, 그로 인한 우리의 결단과 헌신에 대해 비로소 성경적인 이해를 갖게 되었다. 그것을 잘 이해하고 깨닫고 있다고 믿고 있던 요나서의 주제그리고 요나서의 교훈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요나서의 핵심, 그리고 이 책을 통해 깨닫고 누리게 된 많은 유익 중 으뜸은 바로 위의 깨달음이 아닐까 생각한다. 목회자라면 꼭,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 자비와 진노, 그 사랑과 공의에 대한 균형과 정의에 대한 성경적 시각 등을 필요로 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이 책은 필독서가 되어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 한 문장도 놓치고 싶지 않은 저자의 주옥 같은 명문장 중 몇 가지를 마음에 새겨본다.

 무엇이건 우리가 사는 목적이 실제로 우리를 소유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지배하지 못한다. 우리가 사는 목적과 가장 사랑하는 바로 그것이 우리를 지배한다(p.275).”

그 차이를 보면 우리가 원하는 것이 정상적인 사랑의 대상인지 아니면 우상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p.279).”
하나님께 받은 정체성은 우리의 교만을 치우고 겸손하게 한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지위가 오직 그리스도의 희생을 대가로 주어진 부요한 은혜의 선물이라면 어느 누구에게 우월감을 느낄 수 있겠는가(p.279)?”

나는 너를 노예삼고 조중하고 지배하는 것들로부터 너를 해방시키려 한다. 네가 다른 무엇보다 나를 최고로 사랑하면 참으로 자유로울 것임을 알지 못하느냐? 네 모든 것을 내 안에서 찾아라(p.282)!”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떻게 다른 사람들을 긍휼의 마음 없이 바라 볼 수 있느냐 물으신다(p.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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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오늘도 부탁해요 - 소외된 외국인을 섬긴 30년 기도 사역
김상숙 지음 / 두란노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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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오늘도 부탁해요>를 읽고

                                                                           박정원

나 역시도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기도응답에 관해 이야기 할 때면 빼놓지 않는 인물이 있다. 바로, 조지 뮬러이다. 5만번의 기도응답으로 유명한 그의 이야기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고 도전이 되며, 기도응답이란 주제에서는 도저히 빼 놓을 수 없는 독보적이다. 직접 보지 못한 인물이기도 하고, 조지 뮬러 이후에도 셀 수 없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있었기에 또 다른 간증들이 나올만도 하고, 5만번까지는 아니라도, 3만번, 아니, 5천번 응답 받은 사람들의 간증이 나올 법도 하다. 그것도 저기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라 한국에도 그런 신앙의 사람, 응답의 사람이 나와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그런 분이 벌써 있었다. 바로 한국의 조지 뮬러라 불리는 김상숙 권사님이 바로 그런 분이었다.

  권사님의 신간, ‘주님, 오늘도 부탁해요를 읽으며 무엇보다 강한 도전을 받은 것은 이분의 실천력, 행동이다. 누구나 조지 뮬러가 받은 기도응답의 축복을 놀랍게 여긴다. 그리고, 사실, 많이 부러워하고, 이러한 삶이 나에게 펼쳐졌으면 상상하기도 한다. 그러나, 실상 나부터가 그런 삶이 나에게 펼쳐질 것이라는 즐거운 상상을 실제 나의 삶에 오롯이 옮겨 놓는 것은 별개라 생각한다. 아니, 좀더 솔직히 이야기 하자면, 조지 뮬러는 조지 뮬러고 나는 나다. 그의 삶도 대단했지만, 지금 내게 있는 하나님의 은혜도 과분한 것으로 여기며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김상숙 권사님은 그러지 않았다. 조지 뮬러의 삶이 바로 자신의 삶이 되기 원했고, 하나님 안에서 바로 그런 삶을 살아내었다. 저자가 처음 이 사역에 발을 들이게 된 것도 비슷하다. 남편의 직장을 따라 1995년 말레이시아에 갔을 때 거기서 처음 그곳에서 일하는 인도네시아인을 만나게 되었다. 당시 대학생인 자신의 아들과 그들을 비교하게 되고 내 아들도 이들 같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보통은 그런 생각을 하고 거기서 멈춘다. 잘해야 그런 그들을 아들 생각에 한 두 번 잘 대해 주는 것으로 그친다. 그러나 저자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저자는 실로 실천의 사람이었다.

 책은 구성을 나열하는 것이 큰 의미가 없을 정도로 저자의 풍성한 간증으로 가득차 있다. 그렇다고 수 많은 간증이 그저 나열되어 있는 것은 아니고, 정말 가슴 벅찬 이야기들, 놀라운 하나님의 손길, 그리고 구원의 이야기, 또 따뜻하고 감격적인 휴먼 스토리가 녹아져 있다. 그러면서도 이 모든 것에 스토리를 뛰어 넘는 성경의 진리가 이 책의 근간을 이룬다. 그래서 더 강력한 영향력이 되고 도전이 되는 것이다.

 저자는 결코 기도기도응답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 않다. 그보다 더 중요한 하나님의 말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래서 이 책과 간증의 내용이 더 신뢰할만하고, 균형을 이룰 수 있다.

 저자는 기도의 응답을 이야기 하기 전에 다시 한 번 자신이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에 중심을 두고 있는가를 1장에서부터 강조하고 있다. 저자는 책을 쓰는 현재 138독을 한 상태라며 평생 200독을 향해 정진하고 있음을 이야기 하고 있다. 저자가 이야기는 하는 성경 통독의 유익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게 되는 것이고, 둘째는 바르게 기도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그렇게 말씀을 의지하여 행동한 자신에게 하나님께서 어떤 역사를 이루어주셨는지를 풍성히 나누고 있다. 정말 읽는 내내 어떻게 이렇게 놀라운 간증이 이리도 풍성히 있을 수 있나?’ 할 정도로 수많은 간증과 구름 같이 허다한 증인들이 저자의 사역에 등장하고 있다. 저자는 이 비결을 성경과 그 말씀에 대한 믿음그리고 믿음대로의 실천에 있다고 고백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순종할 준비가 된 사람을 쓰신다는 저자의 고백이 이를 분명히 말해준다.

 또한, 저자는, 이러한 기도를 통해 재정이 채워지는 놀라운 역사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고난을 극복하게 하며, 질병에서 치유의 역사를 누리게 하며, 또한 한 영혼이 전도되는 놀라운 간증을 나누고 있다. 또한, 이 모든 일을 통해 저자는 사랑을 배웠노라고백한다. 그리고, 이 사랑이 진정 사람을 변화시킨다고 분명히 고백한다. 뿐만 아니라, 이제는 이 믿음의 기도, 순종의 실천이 자기 자신에게서 그치지 않고 16년 동안 함께 한 수많은 동역자들, 바로 기도의 군사가 되어 어떻게 세계 곳곳에서, 사역의 현장마다 일어나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증거하고 있다.

 이 책의 마지막 내용이 사랑쟁이 가족, 사랑으로 하나된 부부와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것이 흥미롭다. 단순히 말하자면 이 책은 성경에서 출발하여 기도의 여정을 거쳐 사랑으로 종착지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책을 덮으며 간만에 마음이 훈훈하고, 또 뜨거워진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귀하게 쓰시는 한 사람, 한 단체가 있음이 감사하고, 또 그러한 모델을 현실에서 보여준 믿음의 사람이 있어 감사하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동역자들은 소위 평신도들이다. 하나님께서는 지휘고하와 남녀노소, 신분의 귀천과 관계 없이 어떻게 역사하시는지를 보여주어 또한 번 큰 도전과 기대를 주었다. 조지 뮬러처럼, 김상숙 권사님처럼 그렇게 수많은 간증을 바로 주님 나라 위해, 그리고 바로 한 영혼위해 나도 수 없이 남길 수 있는 그 날을 꿈꾸며 나도 그렇게 고백해 본다. ‘주님, 오늘도 부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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