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해서 질문을 던진다
그래서 평등의 이름으로 다가오는 변화에 불편한 마음이 앞선다. 그런데 정말 평등을 위해 감당해야 할 변화가 현재의 불평등보다 더 부담스럽고 불편한 걸까? 다른 말로, 현재의 불평등은 우리에게 편안한가?
공중화장실은 몇 종류가 적당한가에 대해서도 어려운 논의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 단순한 인간의 ‘보편성‘이 실제 사람들의 ‘다양성‘을 만나면서 복잡해진다. 이때 어차피 모두를 만족시 킬 수는 없다고 결론을 지어야 할까? 차별이 있기는 하지만 완전한 해결 불가능하다는 체념을 현실 인식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까? 평등은 도대체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 것일까?
마이클 왈저는 영토 안에 권리가 적거나 없는 계층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이미 민주주의에 반하는 폭정이라고 말했다
능력주의의 관점으로 보면 많은 불평등이 정당하게 보인다. 본이 불리한 위치에 있더라도 마찬가지다. 여성으로서 직장에서 . 불리한 대우를 받더라도 자신의 능력 부족이라고 생각하면 그 상태를 수긍하게 된다. 능력도 없고 노력도 하지 않는다고 생각되는집단에 대한 불이익은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그 성찰의 시간이 없다면 우리는 그저 자연스러워 보이는 사회질서를 무의식적으로 따라가며 차별에 가담하게 될 것이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 평등도 저절로 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