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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모와 어둠 속의 기적 - 전2권 세트
발터 뫼르스 지음, 이광일 옮김 / 들녘 / 2006년 6월
평점 :
품절
만약 내게 스티븐 킹, 어슐러 르 귄, 애거서크리스티 등등, 수 많은 작가들의 이름을 대면서 누가 가장 좋냐고 한다면, 나는 발터 뫼르스를 꼽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얼마나 학수고대했는지는, 말하지 않으리라.
안개 도시나, 구리병정과 째깍째깍 장군, 볼퍼팅어, 미세존재 등등등. 머리속에는 아직 그의 자취가 가득 자리 잡고 있다. 그 다운 발상. 뭔가 괴상하고 "그런 게 어딨어!!" 하고 버럭 지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는 그런 거. 그러면서도 짜증보다는 웃음이 나오고 흥미롭게 탐험하고 싶은 욕구가 샘솟는다. 은띠를 마음 속으로 그릴 때면 나도 내심 설렁인다. 딱히 뭔가 거대한 주제는 없더라지만, 가볍게 그 여행길을 따라 오르는 것만 해도 힘들다.
지난 <꿈꾸는 책들의 도시>와 뭔가 관련성이 있지만 그다지 깊이 관련있지 않다. 힐데군스트가 차모니아 대륙 어딘가에있다는 정도만. 부흐링들의 약속을 나름 훌륭하게 지켜내 가고 있다는 정도만. 그렇기 때문에 조금 아쉬운 감이 있다. 하지만 또 어떻게 보면 루모에게 푸욱 빠져 버렸다. 카드 게임녀석에게. 수 많은 도박과 아슬아슬한 한계점까지 달아오른다.
...잡설인데, 사실 조금 슬픈 사건이 있었다. 책이 아니라 책 밖에서.
나는 친구에게 이 책을 추천했다. 밸려주고 손에 쥐어 주었다. 원한다면 '꿈꾸는 책들의 도시'도 빌려주겠다면서. 덕분에 나도 책 한권을 녀석에게 빌렸다. 무슨 내용인지는 모른채, 그냥 태백산맥마냥 길고 긴 장편소설이라는 것만 안 채.
그냥 줄줄이 읽어 대고 눈으로 훑어보고 낄낄 웃는 책이 있었다. 마치 코미디 한 편을 써 준 것 같이, 뜻 모를 잡설과 욕이 한웅큼. 양반다리에 수건 한장 걸치고 돌아다니는 내가 말하기에는 뭣하지만 '천박하다'라고 생각할 만한 대화만 오가며 설명이며 상상은 없고 만화같은 장면에 일본 애니메이션 장면만 따오는 책. 며칠전 그런 책을 잡고 있었다. 녀석이 이걸 볼때마다 아저씨 웃음을 짓던게 생각났다. 캘캘, 킬킬, 캬하하하!
녀석이 다음 날 책을 돌려주었다. 벌써 다 봤나, 하고. 그런데 녀석은 심통을 부린다. 이게 무슨 책이냐. 재미 없다는 둥, 무슨 소린 지 모르겠다는 둥, 지루하고 따분하다는 둥, 삽화가 엉망이라는 둥, 둥, 둥........
물론 뭔가 관점이라든가 취향이 다르다는 것은 안다. 나 같은 경우는 <다빈치코드>라든가 <팔란티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연금술사>도 딱히 내 취향에 맞지 않았었고. 다만 책갈피를 보고 몇장 보지도 않고 그냥 돌려주고 있다는 것을 알 때는 뭔가 김이 빠졌다. 그점이 조금 슬프다. 고등학생. 책을 좋아해야할 나이. 그런데 조금 더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릴 수 없는 걸까. 조금만 다르다고 무조건 싫어하는 녀석의 모습에 눈물이 나려고 했다.
발터 뫼르스는 독특한 매력이 있다. 어디 저 서양 넘어의 지문 사냥꾼 같은 이국 냄새도, 캔터배리 이야기같이 아주 고서적인 냄새가 아닌 그만의 특유 종이 냄새. 만약 그 냄새를 실망하는 눈으로 볼 수도 있다. 내 친구같은 녀석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둘도 없는 책이며 모험과 그 수 많은 상상력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좋아하리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