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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내 잔이 넘치나이다
정연희 지음 / 창해 / 2005년 6월
평점 :
절판
나에게는 물잔이 있었다. 그런데 그 잔은 상당히 웃기는 잔이라서 아무리 많은 양의 물을 따라도 따라도 반이 채 차지 않는다. 도저히 이 잔으로는 목을 만족스럽게 축일 수 없었다.
그래서 한 남자에게 비가 오는 날 선물로 주었다.
그는 비 때문에 온 몸이 흠뻑 젖었다.
그런데도 그는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내가 어딜 가느냐, 하고 물으니까 그가 말하길 집으로 간다고 하더라.
나는 그 남자를 따라가 보았다.
그동안 남자의 잔속에는 빗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그 고인 빗물은 점점 물잔의 반을 채우더니 이내 가득 차 버렸다. 신기하게도. 물 한 통을 부어도 반만 차던 그 잔이!
비가 그치기 시작했다. 잔에는 여전히 빗물이 고여 있었다. 아니, 빗물이 아니다. 나는 눈을 의심했다. 잔에는 맛 좋은 향기가 흘러 넘쳤다.
거기에는, 포도주가 담겨 있었다.
그는 그재서야 집에 도착했다. 십자가가 달린 집이었다.
나는 그 집에 들어갈 수 없었다. 나는 돌아왔다. 내 손에는 다시 그 잔이 들려 있었다. 하지만 잔은 채워지지 않는다.
나는 불가지론자다. 신이 있는 지 없는 지 알 수 없다고 나는 말한다. 하지만 나는 신을 믿는 자가 좋다. 아무것도 믿을 수 없다는 이 곳에서 그 옷자락 하나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자들이 좋다. 그들은 그럴 수 있는 용기가 있으니까. 나는 용기가 없기에, 용기있는 자들이 좋다. 그가 그 길을 걷는 동안 무척이나 힘들었고 무척이나 불안해 하였지만. 신을 믿는 자들이 흥미롭게 느껴져서 찾은 책이었건만 나는 이 책을 보면서 내 질문에 해답을 아직 얻지 못한 것 같다. 그저 어렴풋이 본 것 같다. 그가 존경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