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 미스터 갓
핀 지음, 차동엽 옮김 / 위즈앤비즈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이미 서른이 넘었지만, 이 동화 같은 책을 이제라도 읽었다는 것이 다행스럽다. 『Hi 미스터 갓』을 읽고 난 후의 감상은 어린 시절에 읽었던 『어린왕자』의 느낌이다. 어린 시절에 비춰진 넓고 따스한 세상, 어딘가에 살고 있을 것 같은 반가운 친구를 서른이 넘어 다시 만난 것 같은 책이었다. 아마도 책의 내용이『어린왕자』와 같이 쉽게 읽히는 동화 같은 이야기 속에 세상에 대한 따스하고 깊은 생각이 담겼기 때문인 것 같다. 그렇기 때문인지 『Hi 미스터 갓』을 읽으면서 어린왕자를 많이 떠올렸고, 감상도 그와 비교하게 되는 것 같다.

『어린왕자』가 시(詩)적이고 환상적인 이야기였다면, 『Hi 미스터 갓』은 철학적이고 상대적으로 현실적인 이야기였다. 밤하늘에 빛나는 별 B612에서 온 어린왕자와 달리 학대당하다가 런던 이스트엔드 어딘가에서 발견되는 안나는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귀엽고 엉뚱한 아이다. 땅에 발을 붙이고 다니고, 신을 믿는 안나는 철학적인 사유를 이미 알고 있는 아이가 아니라 순간순간 질문을 통해 깨닫는 평범한 아이다. 어린왕자처럼 잠자는 모습으로 우주로 떠나버리는 것이 아니라 나무에서 떨어져 삶을 끝내기 때문에 평범한 슬픔을 주는 아이이기도 하다.

가슴으로 읽히는 관계와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어린왕자의 발길을 통해 펼쳐진다면, 엉뚱함과 철학적인 사유, 인간미가 안나의 시선을 통해서 펼쳐진다. 어린왕자의 이야기가 가슴으로 읽힌다면, 안나의 이야기는 머리와 가슴으로 읽힌다. 안나가 들려주는 철학적 사유를 따라가기 위해 나는 연필을 들고 밑줄을 그으며 책을 읽었고, 그 의미를 곱씹어 보기도 했다. 아이의 시선으로 읽히는 세상, 인간관계, 미스터 갓이라 불리는 신에 대한 사유가 절로 고개를 끄덕일 만큼 명쾌하고 쉽게 이해가 됐다. 

핀에게 질문을 던지면서 스스로 이해하는 안나, 질문을 던지면서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안나의 이야기가 끝이 나지 않기를 바라며, 책의 페이지를 넘겼다. 그러나 책은 너무 짧았다. 너무 흥겨워서 하룻밤 만에 책을 다 읽을 수 있었고, 몇 번을 더 뒤척거렸지만 이야기는 끝났다. 따스하고, 아쉽고, 내 시각을 다시 바꿔준 책을 책장에 꽂으며, 언젠가 어린왕자처럼 다시 읽힐 것 같은 책이다. 안나는 아이들에게 어린왕자와 함께 꼭 소개해주고 싶은 친구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젊음의 탄생
이어령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3년 9월
평점 :
절판


젊음은 과거에 이미 나를 지나갔다. 그러나 사회가 다시 내게 젊음을 돌려줬다. 20대 때와 같이 방황했고 인생에 대해서 진지하게 질문하는 시기가 길어졌다. 그래서 나는 젊음을 살고 있다. 나와 같이 젊음을 맞은 사람이 늘었다. 방황하는 젊은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내게도 그들에게도 젊음은 미지에 대한 두려움이고, 불완전한 자신에 대한 답답함이다. 우리의 젊음은 어떻게 탄생했는지, 어떻게 되돌아왔는지 나는 이 책을 꼭 읽어보고 싶었다. 연장되는 젊음을 맞은 나이에 더 이상 부유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어령 선생님의 글을 읽은 기억이 별로 없다. 한 권의 책이 아니라 짧게 조각난 글들을 여기저기서 읽었던 것이 전부였다. 달필이었다. 간결하게 벼려진 칼날 같은 글이었고, 어려운 것을 너무도 쉽게 설명해서 깔끔한 글이었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깔끔한 문장과 독자의 흥미를 사로잡으며 이어가는 젊음에 대한 이야기는 깊은 조언을 담고 있지만 그 자체로도 재미가 있다. 특히 놀라운 것은 선생님의 폭넓고 깊은 지식이다. 철학과 예술, 과학과 기술, 사회와 문화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으로 젊음을 이야기해서 지루할 틈이 없이 책이 읽힌다.

 

이 책에는 젊음에 대한 9개의 창조 아이콘이 담겼다. 자신의 힘으로 날 것을 당부하는 첫 장부터 끝없는 질문을 통해 스스로 깨닫기를 바라는 두 번째 장, 방황을 통해 길을 찾는 젊음인 세 번째 장. 9개의 장마다 선생님이 젊음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은 세 번째 장이다. 내가 젊음의 속성을 방황으로 정의하고 있어서 더 공감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길을 찾기 위해 끝없이 방황하는 것이 젊음의 특권이고 젊음이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책을 너무도 쉽게 읽었다. 책장이 쉽게 넘어가게 만들어진 책의 구성도 좋았지만 워낙 글이 좋아서 쉬웠다. 쉬었다는 것이 책을 모두 이해해다는 것은 아니다. 재미있게 읽었고 내 상황을 더듬어보는 시간이 되었다. 하지만 책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지 못한 것 같아서 다시 읽고 싶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이 책을 내 주변에서 나처럼 방황하고 있는 젊은이에게 전하고 싶다. 방황이 젊음의 특권인지 깨닫기 전에 두려움을 느끼는 친구에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랑이 다시 내게 말을 거네 - 외롭고 슬프고 고단한 그대에게
류근 지음 / 곰 / 2013년 7월
평점 :
품절


숙취로 침대를 벗어나지 못할 때, 팔을 길게 뻗어 벽에 세워진 기타를 끌어 안는다. 손이 가는 대로 기타를 치다가 익숙한 3개의 코드로 만들어진 노래를 부른다.

그대 보내고 멀리

가을 새와 작별하듯

숙취의 외로움과 노래의 쓸쓸함을 느끼며 서너 번 연속으로 부르다가 목이 메이고 말라서 물을 찾아 침대를 벗어난다. 오늘도 변함없이 쨍쨍하고 찌질한 아침이다.

『사랑이 다시 내게 말을 거네』를 읽고 어떻게 찬사를 써야 할까 고민했다. 난생 처음 책을 읽고 웃다가 의자에서 굴러 떨어진 일? 찌질함과 씁쓸함이 교차하는 자학의 글 속에 빠져 며칠을 멍하게 있었던 일? 몇 페이지만 읽고 자려고 했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다 읽고 설 잠을 잤던 일? 책을 네 권이나 더 사서 친해지고 싶은 지인들에게 선물했던 일? 어떻게 이 책이 좋다고, 마냥 좋다고 리뷰를 써야 할까 몇 주를 고민했던 일?

책 한 권을 읽고 꽤 긴 시간을 빠져들었다. 책을 안 읽는 주변사람들을 괴롭히듯 책을 선물하고 머리 속에 책 내용이 지워지지 않았음에도 재독했다. 블로그나 일기장에 써 있어야 할 것 같은 글이 책으로 묶여 나와서 긴 글을 읽기 싫은 내 입맛에 잘 맞았는지도 모르겠다. 나와 같은 인간은 손발이 오글거리는 감상이나 인생을 통달하신 분들의 잠언이 익숙지 아니하여 술 먹고 뱃속이 뒤집힐듯 허할 때 튀어나올 것 같은 글이 좋다. 좋음을 온갖 미사여구를 사용하기도 전에 '좋다'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이 책이 좋다.

류근시인은 이 책을 위해서 자신을 내던진 듯하다.  씁쓸하고 장난기어린 고백이 이어진다. 세상에 대한 통탄과 감상적인 글들도 숨어있지만 자신을 내던진 유머가 살아있다. 나는 이 글을 보고 마음껏 웃었다. 타인을 비하하는 대신 자신을 내던진 웃음은 안타깝기도 하지만 편안히 웃을 수 있게 해준다. 시래기국만 끓여주는 하숙집아줌마, 동화의 세계에 계신 아저씨, 들비, 밍규 등의 등장인물들은 류근시인을 통해 웃음 띤 얼굴로 나타난다. 시의 행간 사이에 보이지 않게 채워져 있을 것 같은 '시바'와 '조낸'은 그보다 적절한 시어가 없을 것처럼 잘 들어맞는다. 자신을 완전히, 마음껏 내던진 이 책은 그냥 좋다. 침대 근처에 놓아두고 숙취에서 깨지 못했을 때 손을 더듬어 기타대신 읽고 싶을 만큼 좋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 마음속의 느티나무
박희주 지음 / 책마루 / 2013년 7월
평점 :
품절


단편은 짧지만 완결성이 있어서 출퇴근 시간에 읽기가 좋다. 특히 잘 모르던 작가의 책에서 마음에 드는 단편이라도 발견하면 익숙한 지하철에서도 보물을 발견한 것마냥 기분이 좋아진다.  『내 마음속의 느티나무』의 작가 박희주님을 잘 몰랐기에 어떤 보물이 숨겨져 있을지 궁금해하며 책장을 넘겼다. 


덜컹거리는 지하철에서 정신 없이 소설을 읽었다. 대체로 소설들이 자전적인 문체로 잘 읽히는 편이었다. 「아내의 나무」라는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소설이라 화자와 작가를 겹쳐서 읽게 됐다. 죽음을 기다리는 아내를 병실에 남겨두고 첫사랑을 만나러 가는 주인공의 감정을 잘 따라가지 못했다. 병수발을 해보지 못했고 결혼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 생각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몇몇 소설들을 읽으며 소설의 감정을 따라가지 못해서 어려웠는데, 나이와 주제에 대한 고민을 하기엔 내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인 것 같다.


이 책에서 내 취향에 잘 맞는 것은 두 편이었다. 「떠도는 익살의 희화」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라는 소설이다. 「떠도는 익살의 희화」는 지하엔 성인이발소가 이층엔 술집이 삼층엔 교회가 있는 한 건물에서 벌어지는 사건이다. 목사는 교회가 있는 건물에 술집이 있어서 불만이고 술집 주인은 교회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는 손님들의 발길이 끊겨 불만이다. 교회에서는 신도들이 술집이 망하게 해달라고 기도를 한다. 한 지붕에서 서로 망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재미있는 상황이 그려져 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알코올중독자와 정신병자가 함께 수감되어 있는 정신병원에서 악랄한 보호사를 감금하고 자신들의 부당한 처우를 느끼게 해준다는 내용이다. 정신병원에 대한 묘사와 상황에 대한 서술이 좋아서 재미있게 읽혔다.


대부분의 소설에서 작가의 경험이 보이는 듯하다. 작가의 경험이 많이 드러나있고 특정 연령층에 맞춰져 있는 느낌이 들어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그러나 간결하고 꾸밈없는 문체와 소재가 독특한 소설들이 좋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요나스 요나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100세는 상상이 되지 않는다. 겨우 상상할 수 있는 것이 인생을 달관해 희노애락을 모두 상실한 상태다. 인생의 막바지에 이르러 희망과 욕심을 버린 채 죽음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이라는 책 제목을 보고 읽고 싶다고 생각된 것은 모든 것을 초탈했을 것 같은 노인이 그 나이에 도망친 이유를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책을 처음 받아들었을 때, 500페이지에 가까운 분량에 행간이 빡빡해서 읽기 힘들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간결한 문체와 독특한 유머, 쉬지 않고 진행되는 이야기로 책에서 눈을 떼기 힘들었다. 쉽게 접하기 힘든 북유럽 작가에 대한 호기심도 책을 쉽게 읽을 수 있게 만들어줬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을 읽으면서 들었던 느낌은 판타지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드래곤이 등장하는 판타지에서 드래곤은 삶의 무료함을 견디는 방법으로 유희를 떠난다. 인간으로 변신하거나 다른 이생명체로 변신해서 인간세계 곳곳에 간섭한다. 판타지 소설을 이끌어 가기 위해 드래곤이 유희를 떠나는 장소는 대부분 전쟁의 한복판이나, 정치의 한복판에 등장해 욕심이 아닌 순수함으로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창문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은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면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과거와 현재가 알맞게 구성되어 있어, 책의 흥미를 더한다. 100세 노인 알란의 과거의 삶은 평탄치 않다. 정신병자로 몰려 거세가 되고 미국에서 원자폭탄을 개발하는데 도움을 준다. 원자폭탄 개발의 지식을 가진 알란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사건, 사고에 휘말린다. 전 세계의 분쟁이 발생하는 곳인 미국, 소련, 중국, 북한 등에 알란의 이동 경로는 세계대전과 냉전의 시대의 중심지다. 그의 경로는 정치적 분쟁지이지만 그는 정치를 싫어한다. 그는 편안하고 안락한 의자에 앉아 술을 마시는 것이 삶의 목표인 것처럼 행동한다. 이런 그의 성격과 그의 모험은 판타지의 드래곤과 닮은 현실의 유희로 읽혀 재미를 더했다. 


현재로 진행되는 이야기에서 100세 노인 알란은 술을 허용하지 않는 요양원에서 탈출해 최대한 멀리 도망친다. 도망치면서 코카인 밀매조직원의 부탁으로 맡게 된 돈다발이 든 캐리어를 훔치면서 이야기는 전개된다. 그는 또 다른 동료들을 만나며 도망을 이어간다. 알란과 그의 동료의 실수로 살인을 저지르기도 하지만 작가는 그 죽음을 가벼운 해프닝처럼 지나가고 후엔 또 다른 황당한 사건으로 이어 붙여서 책의 가벼운 분위기를 유지한다. 어쩌면 100세라는 나이가 그의 면죄부처럼 읽히는 지도 모르겠다. 책의 가벼운 분위기와 이야기로 인해 희노애락 중 희노는 겉으로 드러나지않아 책을 덮을 때쯤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드는 교훈적인 작용을 한 것 같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은 꽤 많은 분량이지만 가볍게 읽을 수 있다. 쉬지않고 이야기를 만드는 작가의 간결한 문장들이 책을 지루하지 않게 만든다. 책장의 현실적이고 우울한 소설들 틈에 유쾌하고 가벼운 이야기의 힘이 강한 책 한 권이 꽂힐 수 있어서 다행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