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라는 우주를 건너는 너에게 - 수학자 김민형 교수가 아들에게 보내는 인생 편지
김민형 지음, 황근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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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형 교수님의 비교적 최근 책이 유명할 것 같다. <수학이 필요한 순간>. 나도 읽어보려고 사 두었지만, 아직 읽지는 못하고 있다. 그 뒤에 <다시, 수학이 필요한 순간>도 장바구니에 담아 두었고, 그 사이에 <역사를 품은 수학, 수학을 품은 역사>를 구입했다. 하지만 정작 교수님의 책을 읽어본 것은 이 책이 처음이다. 제목이 너무 근사했다. 아들과 딸을 키우고 있고, 아직은 돌봄이 필요한 나이이기에 많은 시간들을 함께 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코로나 시국으로 집에서 함께 생활하는 시간들이 더 많아지고 길어졌다. 아이들이 한없이 좋기만 해도, 현실 육아에 부딪히고 내 시간이 줄어들면, 그 좋음도 한계에 이를 때가 있다. 한계육아의 법칙이랄까. 그런 중에 이런 멋진 제목이라니. 나는 편지는 고사하고, 말로라도 어떤 말들을 '삶이라는 우주는 건너는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을까. 궁금했다.


  김민형 교수님의 책들을 읽지도 않으면서 구입한 이유는 수학때문이다. 숫자 감각이 뛰어나거나 수학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관심이 가고 좋아한다. 뭔가 있어 보이고 똑똑해 보인다고 할까. 아무래도 이과적 머리보다는 문과적 감수성이 더 높은 나라고 생각되지만, 그래도 종이에 숫자나 수식들을 적어나가는 모습은 내가 생각하는 형상화된 멋진 이미지 같은 것이었다. 경제학을 공부하면서 많은 수식들을 접하게 된다. 특히 실증분석에서는 모형이 필수적으로 등장하는데, 그 모형들을 설명하는 수식들이 어렵게 느껴지기 보다는 아름답게 느껴진다고나 할까. 이해를 하고 못하고는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이 책은 수학과 관련된 이야기들은 아니다. 수학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어디까지나 하루 중에 일과로 하셨던 부분들로 종종 등장할 뿐이다. 시나 역사, 음악에 관련된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는데, 방문학자로 2개월 동안 거친 지역들에 대한 여행기가 이 책의 주요 내용이다. 여행 기록이 교수님의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기에 참으로 어울리는 멋진 제목이지 싶다.


  수학자들을 머릿속에 그릴때의 이미지가 있었다. 하지만 이 글 속에 나타나는 교수님은 그런 이미지의 수학자는 아니었다. 앞서 이야기한 이 책에 주로 등장하는 시나 역사, 음악 등에 대한 해박한 지식들이 이 책에 고스란히 묻어 있다. 정말 저런 내용들을 모두 기억하고 계시는 걸까. 특히 시와 음악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는데, 시에 대한 본인의 해석, 시인에 대한 이해, 그리고 슈베르트에 대한 애정까지. 수학이 이과를 대표한다고 가정할 때, 문과적 부류인 문학, 음악, 역사 등과의 만남은 내 안의 수학자들에 대한 이미지들을 깨는 신선한 느낌을 주었다. 책에서도 간간히 느낄 수 있다. 교수님은 뭔가 정형화되거나 경계를 긋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있음을 말이다. 항상 가능성을 열어두고 계신 느낌이랄까. 그래서 받아들이는 폭이 넓으신것 같았다.


  삶이라는 우주를 건너는 아이들에게 그런 것들을 알려주고 싶다. 많은 아이들이 이미 규격화된 길을 걸어가는 듯한 요즘이다. 그렇지만 그렇지 않은 길들도 있다고.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삶이니 그 우주를 잘 건넜으면 좋겠다고. 어떤 선택을 하든 그 선택에 책임을 질 줄 안다면, 언제든 그 선택을 존중하고 응원할 거라고. 현실 육아로 돌아오면, 5살, 3살이라는 나이에게 정형화된 길을 걸어가길 바라는 부모들이지만, 그래도 우리 아이들이 '삶이라는 우주를 건너는 중'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겠다.

교육의 구심점은 항상 ‘영혼의 풍족하고 균형 잡힌 성장’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 P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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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Time for 클래식
김흥식 지음 / 그림씨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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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부분들의 이유를 나이 탓으로 돌릴 때가 있다. 적절하고 마땅한 이유를 찾지 못할 때 나이 핑계를 대는 것 같다. 이유없이 눈물이 많아진다거나,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진다거나, 클래식 음악이 좋다거나 할 때 말이다. 음악 듣는 게 일상이 되어 버렸다. 중고등학교 때는 이어폰은 몰래 소매에 감추고 들었었다. 대학교때나 직장을 다니면서도 이어폰을 끼고 책을 보고 일을 하고 있으니, 눈 뜨며 생활하면서 가장 많이 하는 일은 음악을 듣는 일이 아닐까 싶다.


  그중 운전을 하거나 아이들과 함께 거실에서 무언가를 할 때는 라디오를 즐겨 듣는데, 좋아하는 프로그램이 나오는 시간이 아닌 경우는 클래식 FM을 듣는다. 이 책의 뒷 표지에 적혀 있다. '이것은 한 권의 클래식FM이다!'. 과연 구성을 보니 클래식 FM처럼 시간대를 나누어 목차가 구분되어 있다. 가끔 5시부터 한시간 방송되는 국악 프로그램도 즐겨 듣는데, 이 책도 한 챕터에 국악이 들어 있다. 순간 정말 클래식 FM과 관련이 있는 책인가, 싶었다. 저자가 혹시 PD인가 싶기도 했고 말이다.


  그렇지는 않았다. 클래식 음악에 관한 책인 동시에 포맷만 동일할뿐 클래식 FM 방송과는 전혀 관계가 없었다. 혹 모르겠다. 저자도 그 방송을 즐겨듣는 사람인지는...... 표지 안쪽의 저자 소개를 보니, 클래식을 좋아하는 분인건 틀림없었다. 클래식 전문 음반사를 운영했었고, 음반 제작도 했었던 것 같다. 흘러나오는 음악을 즐겨 들을 뿐 주변의 이야기들까지는 잘 모르는 나로서는 저자가 낯설기만 했다. 그래도 좋은 구성과 클래식 이야기라는 이유만으로 책을 시작하기에는 아무 무리가 없었다.


  목차에 구성이 나뉘어져 있긴 하지만, 오페라와 국악 부분을 제외하면 크게 무의미한 구분일지도 모른다. 클래식을 잘 모르는 일반인들에게는 그냥 모두가 클래식 음악일 뿐이다. 그런 면에서 조금은 지루할수도 있을 것 같다. 구성이 비슷하고, 곡이 매번 바뀌기는 하지만, 비슷한 내용과 전개는, 소설로치면 클라이막스 같은 전개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끝까지 읽을 수 있는 비결은 음악에 있을 것이다. QR코드로 챕터마다 소개되는 음악을 들을 수 있다(나는 해보진 않았다). 다소 진도가 더딜 수는 있겠지만, 음악을 들으며 해당 내용을 읽어 나가는 재미가 있다. 뭐랄까, 라디오 디제이가 음악을 한 곡 틀어주고 그 곡을 설명해 주는 느낌이랄까. 또한 설명한 곡과 비슷하거나 상반된, 아니면 관련이 음악들을 함께 듣기로 제공하고 있어 비교해서 들어볼 수 있는 것도 이 책의 커다란 재미일 것 같다.


  처음에는 목차에 나뉘어진 시간대에 맞춰 읽어 나갈 생각이었다. 같은 시간대에 설명되는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어 나가다 보면 뭔가 더 현장감이 있을 것 같았다. 지켜진 시간도 있고 그렇지 않은 시간도 있다. 지켜진 시간이 특히 더 재밌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음악과 책에 집중하다보면 시간은 의미가 없어 보였다. 중간 중간 지루하지 않게 제공되는 그림들이나 설명 자료들도 읽다가 지루해 지지 않도록 잡아주는 역할을 했다. 특히 읽기 시작하면서 내내 궁금했던 작품번호에 대한 설명을 만났을 때의 그 시원함이란... 인터넷으로 검색 한 번 하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는 것들일텐데, 그 귀찮음과 답답함을 한번에 해결해 주었다.


  아쉬운 점도 있었는데, 앞서 말한 음악 제공 관련 부분이다. 요즘처럼 인터넷이 발달한 시대에 검색을 통해 책에 나오는 음악들을 하나하나 찾아 들을 수 있지만, 귀찮은 일이다. 앞서 말했듯이 QR 코드로 음악을 제공하기는 하지만, 휴대폰 스피커로 음악을 듣는 것보다는 다른 스피커로 음악을 듣는 사람들도 있다. 출판사 홈페이지에서 관련 음악들을 제공한다고 되어 있어 들어가 보니 회원가입 후 로그인을 해야 했다. 음원에 대한 저작권 문제일지는 몰라도 조금은 번거롭게 되어 있었다. 개인적으로 너트뷰로 하나하나 찾아 가며 들었다. 덕분에 최근 너튜브 알고리즘은 상당부분 클래식 음악을 추천해 주게 되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조금은 클래식 음악들을 알게 되었을까. 글쎄. 작품번호 정도가 머리 속에 남았을뿐, 여전히 어떤 음악을 들어도, 모차르트의 곡인지, 베토벤의 곡인지 알지 못할 것이다. 그냥 '어! 이거 들어본 음악인데' 정도가 최선의 표현이 아닐까. 그래도 여전히 클래식 음악들을 들을 것이고, 클랙식 FM을 들을 것이다. 저자도 이야기 하지 않았던가. 음악은 알기 위해 듣는 것이 아니고, 즐기기 위해 듣는 것이라고. 클래식 음악을 들어서 좋다면, 그게 좋은 거 아닌가. 이따금씩 이 책처럼 클래식 관련 책들도 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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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좌파생활 - 우리, 좌파 합시다!
우석훈 지음 / 오픈하우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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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이 뭔가 의미심장하다. '슬기로운'으로 시작하는 시리즈의 드라마가 있다. 인기가 많아서 그런지, 종종 '슬기로운 XX생활'이라는 표현들을 보곤 한다. 시대의 흐름에 올라탄 듯 한데, '좌파'라니. '좌파'라는 단어가 무슨 금기어도 아닐진대, 가슴이 벌령거린다. 대놓고 표지(그것도 붉은색으로)에, 그렇지만 명랑해 보인다. 저자가 책에서 이야기한 좌파에 대한 명랑함과 상냠함의 표현이 담긴 제목인 듯 하다. 그래도 놀랐다.


  '좌파'라는 단어는 앞에서 말한대로 금기어도 아니고 비속어도 아니다. 그런대로 이렇게 가슴이 두근댈 정도로, 무언가 봐서는 안되는 걸 본 것 같은 느낌을 갖는 것은, 아마도 우리나라에서만 갖게되는 특수성이 아닐까 싶다. 현재 40대의 삶을 살아가는 나에게는 '좌파'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가 크진 않았다. 내가 느끼는 그 불편함은 모두 책이나 영화 등에서 접한 '좌파'의 이미지였기 때문일 것이다. 한마디로 나는 '좌파'를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모르고 있는 것에 가깝다. 이념이나 사상 등에 관해 생각해 본 적도 없고, 그런 것들을 생각하기에는 나의 10대와 20대는 그저 미숙하기만 했었다.


  우석훈님은 <88만원 세대>로 알게 되었다. 경제학을 공부하면서, 이 책에서도 등장하는 비주류 경제학을 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주류 경제학을 공부하기에도 모자란 시간들이다. 그런 와중에 <88만원 세대>는 크게 이슈를 만들었고, 현재를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많은 생각거리들을 제공했다. 내가 아는 선에서 아마도 비주류 경제학으로 유명한 분은, 장하준 교수님과 우석훈님 두 분뿐인 것 같다. 여튼, <88만원 세대>부터 우석훈님의 책들을 읽어 보고 있다. <국가의 사기>도 재밌었고, <오늘 한 푼 벌면 내일 두 푼 나가고>도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입장에서 크게 공감하며 읽었더랬다.


  이 책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없어서는 안 될 좌파적인 인식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 본인부터 자신은 좌파라고 이야기하며 시작하는데, 현재 우리나라에서 사라진 좌파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즉, 저자의 표현대로 좌파 상실의 시대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나라는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져 있는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좌파가 없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 젊은 남성들을 중심으로 극단의 보수화가 되는 현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들은 많은 공감과 함께 우리 아들은 어떻게 성장할지 걱정이 되었다. 또 페미니즘과 관련된 부분들에 대해서도 많은 부분 공감을 했다. 우석훈님처럼 나 역시 페미니즘을 알지 못한다. 어려운 사상이다. 하지만 '남이사' 무엇을 하든 신경을 안 쓰면 되는 게 가장 적당한 해결방법인 것 같다. 개인적인 문제일 뿐이다. 개인적인 선호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남이사' 무엇을 하든 내가 신경 쓸 문제는 아닌것이다. 내 문제들만 신경쓰기에도 바쁜 세상이 아니던가.


  문유석님의 <최소한의 선의>에서도 이 책과 비슷한 의견이 나왔었다. "자유에 대한 제한을 너무 쉽게 받아들이는 사회는 결국 자유 자체를 잃게 될 것이다. 누군가 일견 철없어 보이고, 낯설고, 내가 보기에는 그다지 가치 없어 보이는 자유에 대한 권리를 주장한다 해도 가벼이 넘기지 말고 일단 그의 주장을 경청해야 하는 이유다." 우석훈님이 말하는 좌파가, '철없어 보이고, 낯설고, 가치 없어 보이는 권리들을 주장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저자의 말처럼 좌파의 세상이 오지는 않을 것이다. 설령 좌파의 세상이 온다고 하더라도 무언가 드라마틱하게 변화가 일어날 것 같지도 않다. 모든 문제들이 일시에 사라져 우리나라가 유토피아가 되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거다. 촛불로 새롭게 태어난 이번 정부에 기대를 갖고 있는 사람들 중 충족된 기분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얼마 남지 않은 대선에서 큰 기대를 갖고 투표에 임하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될까. 그렇다고 기대를 전혀 버려서도 안된다. 무엇이 잘 못 되었을 때는 잘못된 것들을 인지할 수 있어야 하고, 그 인지들에 대해 목소리도 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완전히 망가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 역할을 우석훈님은 좌파적인 삶에서 찾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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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선의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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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문유석님을 알게된 것은 라디오를 통해서였다. 좋아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인 '배철수의 음악 캠프'에 초대되어 나왔더랬다(이렇게 작성한 문유석의 다른 책 리뷰가 있는 것 같다). 판사인데 음악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서일까, 기억에 남았다. 그 후에 제목에 끌려 <개인주의자 선언>을 읽었다. 저자의 이름을 보고 기억이 떠올랐는지, 읽고 나서 떠올랐는지 선후 관계는 기억이 정확치 않다. 뭐 중요한 사실도 아니고 말이다. <개인주의자 선언>은 많은 부분들에 공감하며 읽었다. 그동안의 내 삶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개인주의적인 삶이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그렇게 저자와 저자의 책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러다 비교적 최근엔 <악마판사>라는 이색적인 법정 드라마를 짤방으로 보게 되었는데, 재판 장면이 인상적이어서 보다가 드라마를 정주행하게 되었는데, 그 작가도 문유석님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판사 생활을 마무리했다고 한다. 뭔가 대단해 보였다.


  뭐, 아무리 좋아하는 작가라도 신변을 검색해서 찾아볼 정도로 관심을 갖는 편은 아니어서, 내가 적당히 책이나 우연히 접하게 되는 기사들을 통해 알게된 근황은 이 정도인것 같다. 이 책은 판사 이후의 첫 작품인듯 했다. 가장 단순하게 <개인주의자 선언>처럼 제목이 마음에 들어 선택했다. 법에 대한 이야기인줄은 몰랐다. <미스 함부라비>는 보지 못했지만, 책으로서 법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처음인것 같았다. 오히려 법관 생활을 하지 않아서 조금은 더 편하게 일반인(?)의 입장에서,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것 같은 이야기를 푼 것이었을까. 여러가지 생각들과 함께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개인주의자 선언>에서 독서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와서 나중에 <쾌락독서>라는 책도 읽긴 했지만, <개인주의자 선언>보다는 공감이 가는 부분들이 덜했다. 이 책도 제목에 혹한 것에 비해, 법에 관한 이야기라서 조금은 공감을 못할까 걱정을 했지만, 내용이 법에 대한 이야기라고 해서 실망한 부분은 없다. 오히려 생각을 해 볼 만한 것들이 많았고, <개인주의자 선언>에 이어서 지금 우리에게 있어서 조금은 잘못된 개념들과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이 무엇일지 고민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딱딱한 부분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법은 법이다. 일반인들에게는 멀고도 먼 이야기 같은... 그래도 최대한 쉽게 설명이 되어 있고, 작가님의 개인적인 의견들도 제시되어 있다. 본인의 표현대로 중간중간 아재식 개그들도 등장하는데, 그게 개그보다는 쉽게 하는 설명처럼 들려서, 적어도 나에게는 훌륭한 각주처럼 다가왔다. 왜 회의할때 어렵게 발표하면, 중간이나 나중에 '그래서 발표하신 내용이 이러 이러 하다는 말씀이신 거죠?' 하며 쉽게 다시 짚어주는 누군가처럼 말이다.


  최근에 배우 김혜수님이 출연하는 법정 드라마가 새로 시작한다는 것을 본 기억이 났다. 촉법소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라고 하는데, 김혜수님이 본인의 SNS에 이 책을 읽고 있는 사진을 올린 기사를 봤다. 많은 홍보가 되었을 것 같다. 나는 그런 정도의 홍보 효과를 내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주위 사람들에게 이 책을 소개해 주고 싶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무엇도 아닌 '최소한의 선(善)'이라는 데에 너무 큰 공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꼭 이 책을 읽지 않더라도 이 책의 제목이 널리 퍼져서, 많은 사람들이 최소한으로 지금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법이란 사람들 사이의 넘지 말아야 할 ‘최소한의 선線’인 동시에, 사람들이 서로에게 베풀어야 할 ‘최소한의 선善’이기도 하다. - P9

대체로 무엇이 엄청나게 중요하게 강조된다는 것은 그것이 엄청나게 위협받고 무시당해왔다는 반증일 때가 많다. - P34

적당히 비겁하고 이기적이고 모순 덩어리이고 위선적인 것이 현실의 인간이다. 그것을 애써 부정하고 높은 기준을 충족할 것을 강요하며, 하물며 개인의 사생활과 생각까지도 기준에 부합할 것을 요구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숨이 막혀서 살 수가 없다. 우리는 서로를 볼 때 흐린 눈을 뜨고 볼 필요가 있다. - P108

자유에 대한 제한을 너무 쉽게 받아들이는 사회는 결국 자유 자체를 잃게 될 것이다. 누군가 일견 철없어 보이고, 낯설고, 내가 보기에는 그다지 가치 없어 보이는 자유에 대한 권리를 주장한다 해도 가벼이 넘기지 말고 일단 그의 주장을 경청해야 하는 이유다. - P120

이것이 발전이다. 자유가 사회를 견인하되, 그 속도가 누군가를 낙오시켜 쓰러지게 만들지 않도록 평등이 제어하는 것. 무조건 달려나가는 것이 아니라 아직은 시기가 아니라면 잠시 멈출 줄도 아는 것. 어쩌면 그 망설임의 순간이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어려운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일지도 모르겠다. - P205

헌법은 결국 공존을 위한 최소한의 선의다. - P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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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동 이야기
조남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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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뭔가 되게 현실적이다. 읽는 내내 생각했다. 소설은 허구의 이야기인데, 뭐가 이렇게 사실적인거야? 그것도 아주 극사실주의 말이다. 서영동은 다른 지역이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동네였다. 등장인물들 또한 하나같이 내가 갖고 있지만 표면화되지 않은 내 안의 다른 모습들이었다. 부끄러웠지만, 나는 안승복이었고, 샐리 엄마였고, 경화인 동시에 희진이었고, 봄날아빠였다. 그래서 소설이 아닌, 내 이야기 같다. 그래서 사실적이고, 현실적이었다.


  이런 이야기였을줄은 몰랐다. <82년생 김지영>이라는 파도가 세게 몰아칠 때, 그 파도에 휩쓸려 만나게 된 작가였다. 너무나 유명한 소설인 동시에, 그 이야기가 마침 첫 아이를 낳은 우리 부부에게 전해지는 이야기 같아서 정말 과몰입해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남자인 내가,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함부로 꺼내기도 어려운 요즘이지만, '페미니즘'을 떠나서, 나는 내 가족과 아내에 대해서, 그리고 여성의 삶에 대해서 많은 생각들을 했었더랬다.


  이번엔 집으로 대표되는 아파트다. 집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이고 존재일까. 인간의 삶에서 없어서는 안될 의(衣), 식(食), 주(住) 중에 하나라고 집을 단순하게 생각하기에는 이미 단순한 사회가 아니다. 사회적 관점과 경제적 관점이 혼재되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현대로 오면서 집은 살(住)아야 하는 것보다는 사(買)야 하는 재화의 성격이 강해졌다는 의미일 것이다.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은지가 꽤 되었지만, 하늘 아래 내 몸 하나 누울 곳을 갖춘 사람들은 100%에 미치지 못한다. 누구나 더 좋은 옷을 입고, 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더 좋은 집에서 살고 싶어 한다. 인간이기에 당연히 갖는 욕망인 셈이다. 이 책은 그 욕망에 대한 이야기였다.


  처음은 인터넷 게시물로 시작한다. '봄날아빠'라는 아이디로 서영동 아파트 커뮤니티 사이트에 글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자신이 살고 있는 서영동 아파트 가격에 대한 이야기이다. 모두들 이 아이디가 누구인지 궁금해한다.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모두 '봄날아빠'라는 아이디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렇다. 모두가 아닌척 하고 있지만, 사실은 모두 봄날아빠일 것이다. 그것이 겉으로 드러나든 그렇지 않든 표현의 차이일뿐 모두가 가진 욕망일 뿐이다.


  읽으면서 리뷰를 작성하게 되면 쓸 말이 많을 것 같았는데, 막상 무언가를 적어보려 하는데 잘 써지지 않는다.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이 모두 책 속에 있기 때문일까. 아파트에 대해, 집에 대해, 내 속에 담아 두고 있었던 이야기들 말이다. 그렇기에 무언가를 적어 갈수록 내가 까발려지는 느낌이랄까. 솔직하면 속물처럼 보일 것 같고, 솔직하지 못하면 내 자신을 속이는 글이 될 것이다. 그래서 글은 여기까지다. 모든 이야기는 책 속에 있다.

사실 알고 있다. 난이 언니 같은 사람들을 안다. 성실하고 다정하고 선량한 사람들. 씩씩하게 뚜벅뚜벅 걸어 나가는 사람들. 남들 눈에는 작고 초라해 보일지 몰라도 자기 세계를 차근차근 만들어가는 사람들. 작은 기쁨을 알고 큰 슬픔에도 담대한 사람들. 조금만, 아주 조금만, 혼자 설 수 있을 만큼만 기회를 주고 응원해주면 소박하고 행복하게 잘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 끝까지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을 사람들. - P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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