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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선의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12월
평점 :
처음 문유석님을 알게된 것은 라디오를 통해서였다. 좋아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인 '배철수의 음악 캠프'에 초대되어
나왔더랬다(이렇게 작성한 문유석의 다른 책 리뷰가 있는 것 같다). 판사인데 음악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서일까, 기억에 남았다. 그
후에 제목에 끌려 <개인주의자 선언>을 읽었다. 저자의 이름을 보고 기억이 떠올랐는지, 읽고 나서 떠올랐는지 선후
관계는 기억이 정확치 않다. 뭐 중요한 사실도 아니고 말이다. <개인주의자 선언>은 많은 부분들에 공감하며 읽었다.
그동안의 내 삶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개인주의적인 삶이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그렇게 저자와
저자의 책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러다 비교적 최근엔 <악마판사>라는 이색적인 법정 드라마를 짤방으로 보게 되었는데,
재판 장면이 인상적이어서 보다가 드라마를 정주행하게 되었는데, 그 작가도 문유석님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판사 생활을
마무리했다고 한다. 뭔가 대단해 보였다.
뭐, 아무리 좋아하는 작가라도 신변을 검색해서 찾아볼 정도로 관심을 갖는 편은 아니어서, 내가 적당히 책이나 우연히 접하게 되는 기사들을 통해 알게된 근황은 이 정도인것 같다. 이 책은 판사 이후의 첫 작품인듯 했다. 가장 단순하게 <개인주의자 선언>처럼 제목이 마음에 들어 선택했다. 법에 대한 이야기인줄은 몰랐다.
<미스 함부라비>는 보지 못했지만, 책으로서 법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처음인것 같았다. 오히려 법관 생활을 하지
않아서 조금은 더 편하게 일반인(?)의 입장에서,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것 같은 이야기를 푼 것이었을까. 여러가지 생각들과
함께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개인주의자 선언>에서 독서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와서 나중에 <쾌락독서>라는 책도 읽긴 했지만,
<개인주의자 선언>보다는 공감이 가는 부분들이 덜했다. 이 책도 제목에 혹한 것에 비해, 법에 관한 이야기라서 조금은
공감을 못할까 걱정을 했지만, 내용이 법에 대한 이야기라고 해서 실망한 부분은 없다. 오히려 생각을 해 볼 만한 것들이 많았고,
<개인주의자 선언>에 이어서 지금 우리에게 있어서 조금은 잘못된 개념들과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이 무엇일지 고민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딱딱한 부분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법은 법이다. 일반인들에게는 멀고도 먼
이야기 같은... 그래도 최대한 쉽게 설명이 되어 있고, 작가님의 개인적인 의견들도 제시되어 있다. 본인의 표현대로 중간중간
아재식 개그들도 등장하는데, 그게 개그보다는 쉽게 하는 설명처럼 들려서, 적어도 나에게는 훌륭한 각주처럼 다가왔다. 왜 회의할때
어렵게 발표하면, 중간이나 나중에 '그래서 발표하신 내용이 이러 이러 하다는 말씀이신 거죠?' 하며 쉽게 다시 짚어주는 누군가처럼
말이다.
최근에 배우 김혜수님이 출연하는 법정 드라마가 새로 시작한다는 것을 본 기억이 났다.
촉법소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라고 하는데, 김혜수님이 본인의 SNS에 이 책을 읽고 있는 사진을 올린 기사를 봤다. 많은
홍보가 되었을 것 같다. 나는 그런 정도의 홍보 효과를 내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주위 사람들에게 이 책을 소개해 주고 싶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무엇도 아닌 '최소한의 선(善)'이라는 데에 너무 큰 공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꼭 이 책을 읽지
않더라도 이 책의 제목이 널리 퍼져서, 많은 사람들이 최소한으로 지금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법이란 사람들 사이의 넘지 말아야 할 ‘최소한의 선線’인 동시에, 사람들이 서로에게 베풀어야 할 ‘최소한의 선善’이기도 하다. - P9
대체로 무엇이 엄청나게 중요하게 강조된다는 것은 그것이 엄청나게 위협받고 무시당해왔다는 반증일 때가 많다. - P34
적당히 비겁하고 이기적이고 모순 덩어리이고 위선적인 것이 현실의 인간이다. 그것을 애써 부정하고 높은 기준을 충족할 것을 강요하며, 하물며 개인의 사생활과 생각까지도 기준에 부합할 것을 요구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숨이 막혀서 살 수가 없다. 우리는 서로를 볼 때 흐린 눈을 뜨고 볼 필요가 있다. - P108
자유에 대한 제한을 너무 쉽게 받아들이는 사회는 결국 자유 자체를 잃게 될 것이다. 누군가 일견 철없어 보이고, 낯설고, 내가 보기에는 그다지 가치 없어 보이는 자유에 대한 권리를 주장한다 해도 가벼이 넘기지 말고 일단 그의 주장을 경청해야 하는 이유다. - P120
이것이 발전이다. 자유가 사회를 견인하되, 그 속도가 누군가를 낙오시켜 쓰러지게 만들지 않도록 평등이 제어하는 것. 무조건 달려나가는 것이 아니라 아직은 시기가 아니라면 잠시 멈출 줄도 아는 것. 어쩌면 그 망설임의 순간이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어려운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일지도 모르겠다. - P205
헌법은 결국 공존을 위한 최소한의 선의다. - P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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