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과 작업 - 나를 잃지 않고 엄마가 되려는 여자들 돌봄과 작업 1
정서경 외 지음 / 돌고래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디서 소개를 받은 책이었는지, 아니면 알고리즘에 의한 추천이었는지 생각은 나지 않는다. 육아. 이 책의 제목을 빌리자면, 돌봄. 육아가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다면 돌봄은 육아보다는 더 넓은 범위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사실 돌봄이라는 단어에서 육아보다는 어른들을 돌보는 느낌을 더 갖게 마련이다. 물론 내 생각이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제목을 보고 단번에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것을 떠올렸다. 그렇게 바쁜 와중에 또 읽고 싶은 책이 하나 추가 되었다. 


  일을 하면서 학업을 마치고 싶었다. 학업을 마친다고 무언가 삶에 대단한 변화가 나타날 것이라는 기대를 가졌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거기가 종착역은 아닐까. 거기까지 하면 더이상 학업에 대한 미련이나 아쉬움은 없지 않을까. 그렇다고 공부가 끝난다는 생각이 든 것도 아니었다. 해야할 숙제같은 느낌이었달까. 수료를 2학기 남기고 결혼을 했다. 수료를 하는 해에 아이를 가졌고, 그 해 9월에 첫째 아이와 만났다.


  수료만 하면 금방 졸업을 할 줄 알았다. 결혼도 육아도 일도 모두다 다 잘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수료를 하고 2년이 지나 첫번째 논문이 나왔다. 그 다음 해에 둘째 아이를 가졌고, 9월에 둘째 아이와 만났다. 예상보다 조금 늦어질뿐 여전히 나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박사 과정 중에 처음 쓴 논문이 나오고 나서 5년이 지난, 올 10월 드디어 졸업 예비심사를 받았다. 수료 후 8년 안에 졸업을 해야 하는데, 다음 해면 그 기한이다. 


  육아가 꼭 반반씩 나누어 할 수 있는 일도 아니지만, 아이들을 돌보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었고, 참여하려고 노력을 했다. 아내의 말도 들어 봐야겠지만, 공부보다도, 일보다도, 더 많은 시간을 아이들과 보내고 싶었다. 그러다 졸업'은' 하고 싶다고 아내에게 도움을 청했다. 작년 7월 이후부터는 퇴근 시간 이후에 회사에 남아 졸업을 준비했다. 한 학기면 충분할 줄 알았다. 그런데 머릿속에 자리한 생각들이 한 자도 써지지 않았다. 모든 생각들은 머릿속에서만 정리가 될 뿐, 막상 키보드의 키는 눌러지지 않았고, 모니터의 커서만 반짝일 뿐이었다. 그러다 눈에 보이면 책을 읽고 말이다.


  그렇게 두 학기가 지나갔다. 여전히 아무것도 없었다. 이제는 정말 해야만 했다. 억지로라도 쓰기 시작했다. 머리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그냥 다 적었다. 그리고 정리했다. 시간은 많이 걸렸지만, 그렇게라도 써야 했다. 잘 쓰고 마음에 들고 그런걸 따질 여유도 없었다. 예비심사 전날까지도 수정하고 수정했다. 떨리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지만, 물러설 곳도 없어, 그렇게 발표는 시작되었다. 그래도 논리적으로 말은 되지 않을까, 했던 내 연구들은, 1시간의 발표 시간 동안 너덜너덜 해졌다. 어느 정도 인지 알 수 없는 높이에서 발버둥치는 내 모습이 그려졌다. 그 높이가 발이 닿는 아주 낮은 곳은 아닐까, 하는 자괴감이 밀려왔다.  


  예비발표를 하러 가기 전까지는 발표 자료를 볼 것이지만, 발표 후에는 집으로 오면서 읽을 책이 필요했다. 그 때 내 눈에 이 책이 들어왔다. 역시 내 예감대로 '돌봄'은 '육아'와 연결되어 있었다. 성별은 다르지만, 많은 부분들에서 공감을 하며 읽었다. 10달동안 아이를 품고 있지도 않았고,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이라는 출산을 경험하지도 못했지만, 돌봄에서 오는 많은 경험들에 공감했다.


  모성과 부성을 나눌 필요도 없다. 그저 부모로써 아이들에게 갖는 그 의무와 헌신들. 첫째 아이를 낳았을 때, 아내가 아이에게 수유할 때는 항상 같이 있었다. 수유 후 트림을 할 때까지 안고 토탁이는 일은 나의 일이다. 이유식을 시작하고부터는 이유식은 만드는 일도 나의 일이다. 둘째 아이는 첫째보다 예민했다. 손을 더 탔던 것인지, 유독 밤에 잠을 잘 못 잤다. 잠들어 침대에 내려 놓으면 1~2시간 후에는 꼭 깼다. 그럴 때는 데리로 나와 안아서 잠을 재우고, 소파에서 안고 앉아서 잠든 경우도 많았다. 그렇게 몇 달을 했더니, 1년 뒤에는 허리가 아파 반년은 고생을 했던 것 같다.


  아이를 탓하지는 않는다. 탓할 일도 아니다. 육아에 대해 나도 아내도 너무 무지했던 탓이다. 책의 내용 그대로다. 육아의 힘듦에 대해 누구 하나 속 시원하게 현실적으로 조언을 해 준 사람들이 없었다. 첫째는 둘 다 몰랐기에 아, 생각보다 힘든 일이구나, 했다. 그렇게 2년의 시간이 지나면 힘듦과 고됨은 희석되기 마련이다. 책의 내용처럼 1+1이 반드시 2는 아니었는데, 우리는 또 그렇게 둘째를 낳아 지금도 돌봄의 과정 속에 있다.


  결혼을 하기 전에는 결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이상해 보였다. 결혼을 해서는 아이를 낳지 않는 사람들이 이상해 보였다. 이상하다기 보다는 이해를 겉으로만 했다고 해야 하나. 이해는 하지만 공감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나 결혼 생활을 경험하고 나니, 결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이해가 되었다. 아이들과 함께 지내다 보니 아이를 낳지 않는 사람들에 공감을 할 수 있었다. 결혼과 아이들을 후회한다는 이야기가 절대 아니다. 그만큼 나 스스로가 결혼과 육아를 너무 가볍게 생각을 했었다는 이야기다.


  해외 출장을 가야만 했다. 1주일 정도의 시간을 아내 혼자 독박 육아에 두는 일이 마음에 걸려 계속 반려를 했으나, 가야만 했다. 다소 무뚝뚝한 첫째임에도 처음 떨어지는 아빠였는지, 공항가는 버스를 타는 걸 보면서부터 울기 시작했다. 출장을 내내 반려하기도 했었지만, 내심 육아에서 합법적(?)으로 벗어나는 시간이 되지 않으려나, 하는 마음도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정말 그 마음은 몇 시간도 가지 않았다. 타국에서의 세미나가 끝나고 남겨지는 그 많은 시간들 속에서, 이국적인 풍경이 주는 색다름도 잠깐이었다. 이 시간, 이 공간에 아내와 아이들이 함께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들이 남은 출장의 모든 시간들을 지배했다.


  예비심사가 끝은 아니다. 자괴감을 조금이라도 벗어나려면 더 많은 시간들을 투입해서 본심사를 준비해야 한다. 이번 학기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저 노력할 뿐이다. 육아의 탓도, 일 탓도 하기 싫다. 그렇게 하다보면, 자괴감만 더 커질 것이다. 모든 것은 나의 부족함이다. 조금은 많이 날카로워진 요즘이다. 그 날카로움이 소중한 사람들에게 향하지 않기만을 바랄뿐이다.


  책 이야기보다는 개인적인 이야기들만 주저리주저리 늘어 놓은 것 같다. 좋은 책이다. 너무 좋은 책이다.

하지만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창조적인 작업은 정지되고 고독한 시간 속에서가 아니라 흘러가는 분주한 일상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말이다. - P18

다만 어떤 순간에도 아이들이 있는 것이 행복했다. 아이들이 없던 삶으로 되돌아가고 싶었던 적이 한 번도 없다. 물론 아이를 낳지 않았더라도 행복했으리라는 것을 안다. 조금 다른 행복이었을 것이다. 조금 덜 고통스럽고 조금 덜 맹렬한 행복. - P41

첫째 아이를 낳을 때였다. 갑자기 정신이 혼미해지고 주변의 소리가 멀어지더니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사 선생님이 산소마스크를 씌워주며 숨을 크게 쉬라고 했다. 그때 떠오른 생각이 대문자처럼 생생하다. 아기를 낳고 내가 죽는 것과 아기가 죽고 내가 사는 것 사이에 선택해야 한다면? 당연히 아기를 낳는 쪽을 택할 것이다. 망설일 필요도 없다. 왜일까? 내 선택이 아니라 자연의 선택이니까. 우리 어머니가, 할머니가, 수많은 엄마들이 똑같은 선택을 했고 나는 방금 그중 하나가 된 것뿐이니까. 지금부터 나는 비슷한 선택지 앞에서 끝없이 같은 선택을 하겠지. 그것이 앞으로의 내 삶이다. - P42

다른 테이블에 앉아 있던 것이 미안해질 때면 나만 소설을 안 쓰면 모두가 행복해지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에 빠졌다. 잘 쓰지도 못하면서 왜 모두를 외롭게 힘들게 하고 있나 자책하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좀 더 깊이 있는 소설을 쓰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혔다. 소설을 쓴다는 건 노트에 열심히 기록하고 키보드를 두드리며 글자 수를 늘리는 일이 아닌데 나는 그저 어떤 이야기를 잘 정리해서 전달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소설적 순간을 만나고 소설적인 장면을 만들고 소설적 깊이를 가지려면 어떤 대상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피어오르는 생각을 이렇게 저렇게 만지작거려야 하는데, 예열만 하다 끝나거나 예열 없이 바로 써버리는 것 같다는 자괴감이 들었다. 새벽에 깨어 마음에 들지 않는 문장과 베란다 창문을 번갈아 볼 때면 ‘그만 쓰는 게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절망적인 목소리로 찾아왔다. - P54

시간이 많았다면 소설을 더 잘 쓰지 않았을까, 돌아보는 게 대표적이었는데 그 생각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버텼던 건 그게 진실이 아니라는 걸 내가 더 잘 알았기 때문이다. - P55

아이만 자라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도 어떤 겹이 생겨나는 걸 느꼈다. 이것을 성장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인간의 성장은 날개를 펴는 것처럼 자유로워지거나 꽃이 피듯 눈부신 방식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어떤 일을 통과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다른 곳에 도달하게 되는 일인 것 같다. - P59

어디서 나왔을까 깊은 산길
갓 태어난 듯한 다람쥐새끼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 맑은 눈빛 앞에서
나는 아무것도 고집할 수가 없다
세상의 모든 어린것들은
내 앞에 눈부신 꼬리를 쳐들고
나를 어미라 부른다
괜히 가슴이 저릿저릿한 게
핑그르르 굳었던 젖이 돈다
젖이 차올라 겨드랑이까지 찡해오면
지금쯤 내 어린것은
얼마나 젖이 그리울까
울면서 젖을 짜버리던 생각이 문득 난다
도망갈 생각조차 하지 않는
난만한 그 눈동자,
너를 떠나서는 아무 데도 갈 수 없다고
갈 수도 없다고
나는 오르던 산길을 내려오고 만다
하, 물웅덩이에는 무사한 송사리떼

- 나희덕, 「어린 것」,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창비, 1994. - P65

고결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성이 때로 사납고 난폭하게 폭발해서 나를 당황하게 하리라는 것도 예상하지 못했다. - P67

아이의 성취는 내가 축하할 일이고, 아이의 실패는 내가 위로할 일일 뿐이다. - P73

‘모성’은 열 달 아이를 품고 있다고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찾아 배워야 실현할 수 있는 것이었다. - P99

엄마를 ‘당연히 사과를 (껍질이 안 끊기게) 잘 깎아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 ‘한때 칼을 어떻게 쥐어야 하는 줄도 몰랐지만 사과 껍질을 잘 깎게 된, 변화된 인간’으로 봐줬으면. 나도 내 엄마를 떠올리며, 엄마니까 당연하다고만 여겼던 것들에 대해 반성한다. 내 엄마도 엄마가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과 변화의 과정을 거쳤던 것일까? 어떤 이는 나와 다르게 사라진 것에 대한 회복을 갈망하는 방식으로 삶을 견뎌내기도 한다. - P128

모든 인간은 자신의 쓸모와 가치를 입증하지 않아도 살 권리가 있다는 것을. 내가 이렇게 열심히 다른 사람들의 필요, 사회의 필요, 공적인 필요에 부응해내는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그냥 태어났기 때문에 살아갈 권리가 있다는 것을. - P18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노을 건너기 소설의 첫 만남 30
천선란 지음, 리툰 그림 / 창비 / 202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목과 그림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SF 소설을 잘 모름에도 우연히 읽었던 <노랜드>는 SF 소설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 해 주었다. 막연하게나마 짐작하고 있었던 어중간한 생각을 바꾸게 된 계기였다고나 할까. 그렇게 천선란 작가의 이름을 각인한 상태에서 표지의 그림까지 너무나 아름다운 책이라니. 구매했다. 책을 받고 나서는 이렇게 얇은 책일줄 몰라 놀랐다.


  역시 SF 소설이다. 그러나 <노랜드>에서 느꼈던 것처럼 장르를 SF라고만 한정지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정확하게 장르적 정의를 찾아본 것은 아니지만, 단지 미래의 이야기라고 해서 SF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이 책도 주인공은 우주비행사다. 새로운 우주 비행을 앞두고 훈련상 과거의 나를 만나야만 한다.


  그 설정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책의 뒷 표지에는 '가장 외로웠던 나를 만나러 간다. 잘 만나고 와. 그리고 한번은 꼭 끌어안아 주어야 해'라고 써 있다. 누구라도 과거의 나는 외로웠던 것일까. 지금의 외로움이 과거의 나를 반추하게 하는 것일까. 많은 생각들이 지나쳐 간다. 지금의 나를 형성하는 데에는 어느 시점의 내가 가장 큰 역할을 했을까. 궁금한 것들, 생각나게 하는 것들이 많아졌다.


  노을을 건너는 의미는 책을 다 읽은 후에도 어렴풋하게만 남는다. 정확하게 말이나 글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나는 가장 외로웠던 어린 날의 나를 만나 꼭 끌어안아 줄 수 있을까. 만약 그 후에라면 노을을 건널 수 있을까. 노을은 마주 볼 때만 아름다운 것은 아닐까. 오히려 그 건너에는 블랙홀 같은 암흑만 있는 것은 아닐까. 여전히 생각만 늘어날 뿐이다.

어린 공효는 늘 예기치 못한 곳에서 마음이 상했다. 엄마가 마트에서 장을 보며 전화를 너무 오래 할 때, 옷매무새를 정리해 주며 공효의 눈을 보지 않을 때, 늦은 시간에 귀가해 공효에게 밥을 먹었느냐 묻지 않을 때, 달이 예쁜데 엄마가 앞만 보고 걸을 때, 엄마가 싱크대 앞에 서서 물을 너무 오래도록 마실 때, 쓰레기를 버리러 갔다가 한참 동안 오지 않을 때, 금방이라도 놓을 듯 힘없이 손을 잡을 때, 공효가 어깨에 기대도 몸이 목석처럼 굳어 움직이지 않을 때, 자는 공효의 뺨을 만져 주지 않을 때, 엄마가 양말 짝을 맞추지 않고 신을 때. 그럴 때, 공효는 걸음을 멈췄다. - P32

아무런 준비 없이 엄마의 외로움을 보았던 거다. 그게 외로운 사람이 짓는 표정과 정적이라는 걸 모른 채로 그 마음의 중력을 온몸으로 받아 버린 거지. 소리를 지르고 싶었던 건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서였으리라. - P35

노력해도 되지 않는 것들은 매달리기보다 포기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말하는 노력해도 되지 않는 것들이란, 기록이나 시험 통과가 아니라 엄마의 기일이 오면 찾아오는 무기력함, 예고도 없이 밀어닥치는 자기혐오, 앞으로는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라는 확신 따위였다. 그런 기분이 들 때마다 공효는 도망쳤다. 무엇이 문제인지, 무엇을 직면해야 하는지, 무엇을 감싸야 하는지 생각하지 않았다. 천천히 짚기에는 삶이 너무 바빴다. 공효는 해야 할 게 많았다. 당장 눈앞의 것들을 잘 해 내면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리라 믿었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알아서 사라질 거라고. 하지만 그런 믿음은 틀렸다. 외면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정말로 죽여야 할 때가 온 것이다. - P47

"응. 나는 네가 보는 시선의 처음이고, 네가 느끼는 감정의 중심이고, 네가 선택하는 모든 순간의 기준이야. 내가 없으면 너는 안이 텅 빌 거야. 그럼 바람에 훅 날아가 버려." - P6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 2 사계절 만화가 열전 21
이창현 지음, 유희 그림 / 사계절 / 202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할 일이 많아서 책은 당분간 좀 멀리 하려고 했었는데, 1권을 재밌게 읽고 어떻게 2권을 그냥 지나칠 수 있겠어. 그래서 아침에 짬을 만들어 읽어 보았다. 1권보다 분량이 짧기도 햇지만,소개되는 책들도 적고 해서 1권보다 빠르게 읽을 수 있었다. 물론 재밌는 책이지만, 1권보다는 재미가 덜했다. 1편보다 재밌는 2편은 없다,는 느낌이랄까.


  우선 1권은 잠입수사를 한 경찰의 커다란 서사가 있었다. 2권에도 사서가 새롭게 등장하지만 큰 줄기의 서사가 있는 것은 아니다. 자잘자잘하게 등장하는 도서관 관련 소재의 이야기들이 반갑고 재밌게 등장하지만, 그외는 모두 1편의 부록같은 느낌이다.


  재미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1편에 등장했었던 대부분의 캐릭터들이 그 특징을 살려서 여전히 등장하고 있으며, 예티에 이어 새로운 캐릭터도 등장한다. 소개되는 책들이 1편보다는 줄어서, 인문학적인 내용들도 덩달아 줄어든 느낌이 있지만, 오히려 가벼워진 느낌도 있고 전반적으로 읽기에는 더 편해진 느낌이다.


  짧은 시간이지만 간만에 재밌는 책을 만났다. 미뤄뒀던 일들을 처리하느라 마음의 여유도 사라져가고 신경만 날카로워지는 시점에 조금의 쉼을 선물받은 기분이다. 다음에 또 3편이 나오든, 새로운 책이 나오든 기다리고 있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 사계절 만화가 열전 13
이창현 지음, 유희 그림 / 사계절 / 2018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독서와 관련된 책들을 여러번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일까, 비교적 최근에 출간된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 2>가 나왔을 때, 알고리즘으로 추천된 책이었다. 클릭은 해 봤던 기억이 있는데, 미리보기로 몇 장만 들춰보다가 창을 닫았다. 그림체도 나쁘지 않았고, 제목이 주는 이끌림도 있었는데, 왜 바로 창을 닫았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최근에 북유투버(겨울님)의 채널에서 이 책이 소개되는 걸 봤다. 내용 중간 중간 어, 어, 하면서 어느 순간 책을 주문했다. 겨울님만큼 독서력이 높지 않기에, 유투브 내용만큼의 공감과 재미는 아니었지만, 다른 종류로 나에게도 큰 재미와 공감을 준 책이다. 간만에 만난 재밌는 책이라는 이야기다.


  만화로 되어 있어서 빠른 시간 내에 읽을 수 있다. 큰 서사 안에 자잘자잘하게 책들이 소개되는 형식인데, 그 자잘자잘함이 좋다. 대부분이 내가 모르는 책들이지만, 몰라도 상관없다. 책 내용 중에도 등장하지만 얼마든지 읽지 않고서도 아는체, 아니 웃을 수 있다. 책 뒷표지의 문구처럼 B급 감성이 제대로 살아있는 인문학 대잔치다. 다만 큰 서사의 마지막이 조금은 황당하지만, 그 역시 만화라는 틀 안에서 자유롭게 허용될 수 있을 것 같다.


  평소와 같으면 이어서 바로 2권을 읽었겠지만,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다. 미루고 미루었던 일을 마무리해야 한다. 그러기 전까지는 책을 보지 않으려 했는데, 이 책도 주문만 해 두려고 한건데, 비닐 포장을 벗기지 말았어야 했다. 첫 페이지만 잠깐 볼까, 하는 마음부터 지웠어야 했다.

이 지구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 절대 다수가 책을 읽지 않는다. 그들은 평생 동안 살아 있는 자연만을 마주하고 살아간다. 퍼덕퍼덕 움직이는 세계가 있으니 죽어 있는 글자 따위는 눈에 담지 않는다. 그들은 평생을 아프리카 초원의 사자나 얼룩말처럼 살다가 어머니인 대지의 품에 안겨서 잠든다. 나서 죽을 때까지 단 한 번의 자기반성도 하지 않는다. 마치 사자가 지금까지의 얼룩말 잡아먹기를 반성하고 남은 생을 풀만 뜯어 먹으면서 살아가기로 결심하지 않는 것처럼. 사자가 위장에 탈이 나면 풀을 먹듯이 병든 인간만이 책을 읽는다.
- 강유원, <책과 세계> - P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또 못 버린 물건들 - 은희경 산문집
은희경 지음 / 난다 / 202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문에 나온 글로 시작하려 한다. 224쪽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오래 좋아했던 작가의 책을 읽으며, 이제 그만 작별할 때가 온 것 같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있다. 그럼에도 그중 어떤 작가는 신간이 나오면 여전히 다시 찾게 된다. 그 책에서 내가 좋아하는 점이 유지되면, 비록 나와 맞지 않는 점이 발견되더라도 다음 책을 또 사리라 마음먹는다. 그 작가가 주는 것을 다른 작가에게서는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그런 작가가 몇 명 있다. 그 작가의 작품을 다 좋아하지는 않지만 두말없이 그 작가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예전에는 두말없이 좋아하는 작가라고 말하고 다니던 작가분들을, 나 혼자 이제 그만 작별할 때가 온 것 같다고 생각하는 순간들이 있다. 그렇게 조금은 멀어진 작가분들도 계시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도 계신다. 그 작가분의 작품을 다 좋아하지는 않지만 두말없이 여전히 그 작가를 좋아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작가분들. 그 분들 중 한 분이 은희경 선생님이다.


  처음 만난 선생님의 소설, <새의 선물>을 읽고 선생님의 글과 무언가 코드가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이 시크하면서도 유머스러움이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문체와 스타일이었다. 그 후로 선생님의 책들을 찾아 보고, 신간이 나오면 또 꾸준히 만나고 말이다. 책으로 출간된 선생님의 글들은 모두 다 읽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데 서두처럼 내 마음이 예전과 같지 않다. 시크하면서도 유머스러웠던 글들이, '아, 선생님. 여기서 그런 개그감은...' 싶을 때도 있고... 세련되면서도 무언가 내 감정 같았던 글들이, 오래전에 썼던 나의 일기를 보듯 민망하고 부끄러운, 무언가 옛스러운, 그런 느낌을 갖게 했다. 그러면서 문득 문득 이제는 헤어질 때가 온건가, 싶었는데, 딱 저 문장과 글을 만난 것이다. 그렇게 나에게 선생님의 책은 "또 __ 못 버린 물건들"이 되었다. 


  이 책은 선생님이 갖고 있는 물건들에 대한 글이다. 개인적으로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하고 쟁여두는 스타일인 내게, 선생님도 비슷한가, 비슷하다면 선생님은 어떤 물건을 곁에 두고 지내시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책들을 모아두고, CD를 수집한다. 좋아하는 만화책들을 다 갖고 싶지만, 가장 애장하는 만화 시리즈 2종류만 하기로 했다. 선생님처럼 술을 좋아하지만, 많이 마시지는 못하고, 술과 마찬가지로 술잔은 사실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제목에서는 사실, 그래서 그 물건들을 다 버리거나 정리될까, 싶었는데.. 그런 글은 아니었다. 그래서 다 읽고 난 후에는 내가 갖고 있는 물건들을 돌아 보았다. 그러면, 나는 정리했을까? 아니다, 오히려 갖고 있는줄도 몰랐던 새로운 물건들만 더 만났을 뿐이다.  


  끝으로, 선생님하면 떠오르는 미안함을 적어본다. 자전거를 타고 서울의 끝과 끝으로 달리던 시절이 있었다. 한 여름으로 기억되는 어느 날. 강남 교보문고에서 은희경 선생님의 사인회가 있었다. 어떤 소설의 출간 기념행사였던 것 같은데, 소설은 기억나지 않지만, 집에 있는 선생님의 책들을 가방에 넣고, 자전거를 타고 1시간 넘게 달려 교보문고에 갔다. 사인을 받고 함께 사진까지 찍었던 기억이 나는데, 온 몸이 땀에 쩔어서 너무 죄송했던 기억이 난다. 독자로서의 예를 갖추지 못햇던 것만 같다. 너무나도 죄송했다.


  두말없이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작가, 은희경 선생님. 어서 또 다른 글로 만나뵈면 좋겠다.

글을 쓰는 것은 나의 내면을 남에게 내보이고 또 설득하는 일이다.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 P124

오래 좋아했던 작가의 책을 읽으며, 이제 그만 작별할 때가 온 것 같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있다. 그럼에도 그중 어떤 작가는 신간이 나오면 여전히 다시 찾게 된다. 그 책에서 내가 좋아하는 점이 유지되면, 비록 나와 맞지 않는 점이 발견되더라도 다음 책을 또 사리라 마음먹는다. 그 작가가 주는 것을 다른 작가에게서는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그런 작가가 몇 명 있다. 그 작가의 작품을 다 좋아하지는 않지만 두말없이 그 작가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 P22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