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좌파생활 - 우리, 좌파 합시다!
우석훈 지음 / 오픈하우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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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이 뭔가 의미심장하다. '슬기로운'으로 시작하는 시리즈의 드라마가 있다. 인기가 많아서 그런지, 종종 '슬기로운 XX생활'이라는 표현들을 보곤 한다. 시대의 흐름에 올라탄 듯 한데, '좌파'라니. '좌파'라는 단어가 무슨 금기어도 아닐진대, 가슴이 벌령거린다. 대놓고 표지(그것도 붉은색으로)에, 그렇지만 명랑해 보인다. 저자가 책에서 이야기한 좌파에 대한 명랑함과 상냠함의 표현이 담긴 제목인 듯 하다. 그래도 놀랐다.


  '좌파'라는 단어는 앞에서 말한대로 금기어도 아니고 비속어도 아니다. 그런대로 이렇게 가슴이 두근댈 정도로, 무언가 봐서는 안되는 걸 본 것 같은 느낌을 갖는 것은, 아마도 우리나라에서만 갖게되는 특수성이 아닐까 싶다. 현재 40대의 삶을 살아가는 나에게는 '좌파'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가 크진 않았다. 내가 느끼는 그 불편함은 모두 책이나 영화 등에서 접한 '좌파'의 이미지였기 때문일 것이다. 한마디로 나는 '좌파'를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모르고 있는 것에 가깝다. 이념이나 사상 등에 관해 생각해 본 적도 없고, 그런 것들을 생각하기에는 나의 10대와 20대는 그저 미숙하기만 했었다.


  우석훈님은 <88만원 세대>로 알게 되었다. 경제학을 공부하면서, 이 책에서도 등장하는 비주류 경제학을 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주류 경제학을 공부하기에도 모자란 시간들이다. 그런 와중에 <88만원 세대>는 크게 이슈를 만들었고, 현재를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많은 생각거리들을 제공했다. 내가 아는 선에서 아마도 비주류 경제학으로 유명한 분은, 장하준 교수님과 우석훈님 두 분뿐인 것 같다. 여튼, <88만원 세대>부터 우석훈님의 책들을 읽어 보고 있다. <국가의 사기>도 재밌었고, <오늘 한 푼 벌면 내일 두 푼 나가고>도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입장에서 크게 공감하며 읽었더랬다.


  이 책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없어서는 안 될 좌파적인 인식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 본인부터 자신은 좌파라고 이야기하며 시작하는데, 현재 우리나라에서 사라진 좌파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즉, 저자의 표현대로 좌파 상실의 시대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나라는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져 있는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좌파가 없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 젊은 남성들을 중심으로 극단의 보수화가 되는 현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들은 많은 공감과 함께 우리 아들은 어떻게 성장할지 걱정이 되었다. 또 페미니즘과 관련된 부분들에 대해서도 많은 부분 공감을 했다. 우석훈님처럼 나 역시 페미니즘을 알지 못한다. 어려운 사상이다. 하지만 '남이사' 무엇을 하든 신경을 안 쓰면 되는 게 가장 적당한 해결방법인 것 같다. 개인적인 문제일 뿐이다. 개인적인 선호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남이사' 무엇을 하든 내가 신경 쓸 문제는 아닌것이다. 내 문제들만 신경쓰기에도 바쁜 세상이 아니던가.


  문유석님의 <최소한의 선의>에서도 이 책과 비슷한 의견이 나왔었다. "자유에 대한 제한을 너무 쉽게 받아들이는 사회는 결국 자유 자체를 잃게 될 것이다. 누군가 일견 철없어 보이고, 낯설고, 내가 보기에는 그다지 가치 없어 보이는 자유에 대한 권리를 주장한다 해도 가벼이 넘기지 말고 일단 그의 주장을 경청해야 하는 이유다." 우석훈님이 말하는 좌파가, '철없어 보이고, 낯설고, 가치 없어 보이는 권리들을 주장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저자의 말처럼 좌파의 세상이 오지는 않을 것이다. 설령 좌파의 세상이 온다고 하더라도 무언가 드라마틱하게 변화가 일어날 것 같지도 않다. 모든 문제들이 일시에 사라져 우리나라가 유토피아가 되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거다. 촛불로 새롭게 태어난 이번 정부에 기대를 갖고 있는 사람들 중 충족된 기분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얼마 남지 않은 대선에서 큰 기대를 갖고 투표에 임하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될까. 그렇다고 기대를 전혀 버려서도 안된다. 무엇이 잘 못 되었을 때는 잘못된 것들을 인지할 수 있어야 하고, 그 인지들에 대해 목소리도 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완전히 망가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 역할을 우석훈님은 좌파적인 삶에서 찾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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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선의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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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문유석님을 알게된 것은 라디오를 통해서였다. 좋아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인 '배철수의 음악 캠프'에 초대되어 나왔더랬다(이렇게 작성한 문유석의 다른 책 리뷰가 있는 것 같다). 판사인데 음악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서일까, 기억에 남았다. 그 후에 제목에 끌려 <개인주의자 선언>을 읽었다. 저자의 이름을 보고 기억이 떠올랐는지, 읽고 나서 떠올랐는지 선후 관계는 기억이 정확치 않다. 뭐 중요한 사실도 아니고 말이다. <개인주의자 선언>은 많은 부분들에 공감하며 읽었다. 그동안의 내 삶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개인주의적인 삶이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그렇게 저자와 저자의 책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러다 비교적 최근엔 <악마판사>라는 이색적인 법정 드라마를 짤방으로 보게 되었는데, 재판 장면이 인상적이어서 보다가 드라마를 정주행하게 되었는데, 그 작가도 문유석님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판사 생활을 마무리했다고 한다. 뭔가 대단해 보였다.


  뭐, 아무리 좋아하는 작가라도 신변을 검색해서 찾아볼 정도로 관심을 갖는 편은 아니어서, 내가 적당히 책이나 우연히 접하게 되는 기사들을 통해 알게된 근황은 이 정도인것 같다. 이 책은 판사 이후의 첫 작품인듯 했다. 가장 단순하게 <개인주의자 선언>처럼 제목이 마음에 들어 선택했다. 법에 대한 이야기인줄은 몰랐다. <미스 함부라비>는 보지 못했지만, 책으로서 법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처음인것 같았다. 오히려 법관 생활을 하지 않아서 조금은 더 편하게 일반인(?)의 입장에서,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것 같은 이야기를 푼 것이었을까. 여러가지 생각들과 함께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개인주의자 선언>에서 독서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와서 나중에 <쾌락독서>라는 책도 읽긴 했지만, <개인주의자 선언>보다는 공감이 가는 부분들이 덜했다. 이 책도 제목에 혹한 것에 비해, 법에 관한 이야기라서 조금은 공감을 못할까 걱정을 했지만, 내용이 법에 대한 이야기라고 해서 실망한 부분은 없다. 오히려 생각을 해 볼 만한 것들이 많았고, <개인주의자 선언>에 이어서 지금 우리에게 있어서 조금은 잘못된 개념들과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이 무엇일지 고민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딱딱한 부분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법은 법이다. 일반인들에게는 멀고도 먼 이야기 같은... 그래도 최대한 쉽게 설명이 되어 있고, 작가님의 개인적인 의견들도 제시되어 있다. 본인의 표현대로 중간중간 아재식 개그들도 등장하는데, 그게 개그보다는 쉽게 하는 설명처럼 들려서, 적어도 나에게는 훌륭한 각주처럼 다가왔다. 왜 회의할때 어렵게 발표하면, 중간이나 나중에 '그래서 발표하신 내용이 이러 이러 하다는 말씀이신 거죠?' 하며 쉽게 다시 짚어주는 누군가처럼 말이다.


  최근에 배우 김혜수님이 출연하는 법정 드라마가 새로 시작한다는 것을 본 기억이 났다. 촉법소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라고 하는데, 김혜수님이 본인의 SNS에 이 책을 읽고 있는 사진을 올린 기사를 봤다. 많은 홍보가 되었을 것 같다. 나는 그런 정도의 홍보 효과를 내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주위 사람들에게 이 책을 소개해 주고 싶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무엇도 아닌 '최소한의 선(善)'이라는 데에 너무 큰 공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꼭 이 책을 읽지 않더라도 이 책의 제목이 널리 퍼져서, 많은 사람들이 최소한으로 지금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법이란 사람들 사이의 넘지 말아야 할 ‘최소한의 선線’인 동시에, 사람들이 서로에게 베풀어야 할 ‘최소한의 선善’이기도 하다. - P9

대체로 무엇이 엄청나게 중요하게 강조된다는 것은 그것이 엄청나게 위협받고 무시당해왔다는 반증일 때가 많다. - P34

적당히 비겁하고 이기적이고 모순 덩어리이고 위선적인 것이 현실의 인간이다. 그것을 애써 부정하고 높은 기준을 충족할 것을 강요하며, 하물며 개인의 사생활과 생각까지도 기준에 부합할 것을 요구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숨이 막혀서 살 수가 없다. 우리는 서로를 볼 때 흐린 눈을 뜨고 볼 필요가 있다. - P108

자유에 대한 제한을 너무 쉽게 받아들이는 사회는 결국 자유 자체를 잃게 될 것이다. 누군가 일견 철없어 보이고, 낯설고, 내가 보기에는 그다지 가치 없어 보이는 자유에 대한 권리를 주장한다 해도 가벼이 넘기지 말고 일단 그의 주장을 경청해야 하는 이유다. - P120

이것이 발전이다. 자유가 사회를 견인하되, 그 속도가 누군가를 낙오시켜 쓰러지게 만들지 않도록 평등이 제어하는 것. 무조건 달려나가는 것이 아니라 아직은 시기가 아니라면 잠시 멈출 줄도 아는 것. 어쩌면 그 망설임의 순간이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어려운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일지도 모르겠다. - P205

헌법은 결국 공존을 위한 최소한의 선의다. - P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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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동 이야기
조남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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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뭔가 되게 현실적이다. 읽는 내내 생각했다. 소설은 허구의 이야기인데, 뭐가 이렇게 사실적인거야? 그것도 아주 극사실주의 말이다. 서영동은 다른 지역이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동네였다. 등장인물들 또한 하나같이 내가 갖고 있지만 표면화되지 않은 내 안의 다른 모습들이었다. 부끄러웠지만, 나는 안승복이었고, 샐리 엄마였고, 경화인 동시에 희진이었고, 봄날아빠였다. 그래서 소설이 아닌, 내 이야기 같다. 그래서 사실적이고, 현실적이었다.


  이런 이야기였을줄은 몰랐다. <82년생 김지영>이라는 파도가 세게 몰아칠 때, 그 파도에 휩쓸려 만나게 된 작가였다. 너무나 유명한 소설인 동시에, 그 이야기가 마침 첫 아이를 낳은 우리 부부에게 전해지는 이야기 같아서 정말 과몰입해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남자인 내가,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함부로 꺼내기도 어려운 요즘이지만, '페미니즘'을 떠나서, 나는 내 가족과 아내에 대해서, 그리고 여성의 삶에 대해서 많은 생각들을 했었더랬다.


  이번엔 집으로 대표되는 아파트다. 집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이고 존재일까. 인간의 삶에서 없어서는 안될 의(衣), 식(食), 주(住) 중에 하나라고 집을 단순하게 생각하기에는 이미 단순한 사회가 아니다. 사회적 관점과 경제적 관점이 혼재되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현대로 오면서 집은 살(住)아야 하는 것보다는 사(買)야 하는 재화의 성격이 강해졌다는 의미일 것이다.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은지가 꽤 되었지만, 하늘 아래 내 몸 하나 누울 곳을 갖춘 사람들은 100%에 미치지 못한다. 누구나 더 좋은 옷을 입고, 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더 좋은 집에서 살고 싶어 한다. 인간이기에 당연히 갖는 욕망인 셈이다. 이 책은 그 욕망에 대한 이야기였다.


  처음은 인터넷 게시물로 시작한다. '봄날아빠'라는 아이디로 서영동 아파트 커뮤니티 사이트에 글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자신이 살고 있는 서영동 아파트 가격에 대한 이야기이다. 모두들 이 아이디가 누구인지 궁금해한다.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모두 '봄날아빠'라는 아이디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렇다. 모두가 아닌척 하고 있지만, 사실은 모두 봄날아빠일 것이다. 그것이 겉으로 드러나든 그렇지 않든 표현의 차이일뿐 모두가 가진 욕망일 뿐이다.


  읽으면서 리뷰를 작성하게 되면 쓸 말이 많을 것 같았는데, 막상 무언가를 적어보려 하는데 잘 써지지 않는다.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이 모두 책 속에 있기 때문일까. 아파트에 대해, 집에 대해, 내 속에 담아 두고 있었던 이야기들 말이다. 그렇기에 무언가를 적어 갈수록 내가 까발려지는 느낌이랄까. 솔직하면 속물처럼 보일 것 같고, 솔직하지 못하면 내 자신을 속이는 글이 될 것이다. 그래서 글은 여기까지다. 모든 이야기는 책 속에 있다.

사실 알고 있다. 난이 언니 같은 사람들을 안다. 성실하고 다정하고 선량한 사람들. 씩씩하게 뚜벅뚜벅 걸어 나가는 사람들. 남들 눈에는 작고 초라해 보일지 몰라도 자기 세계를 차근차근 만들어가는 사람들. 작은 기쁨을 알고 큰 슬픔에도 담대한 사람들. 조금만, 아주 조금만, 혼자 설 수 있을 만큼만 기회를 주고 응원해주면 소박하고 행복하게 잘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 끝까지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을 사람들. - P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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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여우눈 에디션) - 박완서 에세이 결정판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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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 글을 언제부터 좋아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소설을 좋아해서 한참 읽기 시작했던 20대 중반부터 였을까. 선생님이 돌아가신게 벌써 10년이 넘었다. 그랬다. 선생님의 부고 소식을 형이 누워있던 병원의 침상에서 형과 함께 접했었다. 형도 나도 좋아하던 선생님이었고, 선생님의 글들이었다. 선생님의 부고 소식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형도 하늘나라에 갔다. 그렇게 한동안 선생님의 책들은 선생님의 부재와 형의 부재로 이어졌다.


  그렇기에 의도적으로 선생님 글을 멀리한 것은 아니었다. 내 생활에 변화가 있어 책을 더 적게 읽게 되었고, 소설보다는 다른 장르의 글들을 더 자주 읽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사두었던 선생님의 소설들을 중간 중간 보기도 했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형의 부재로 연결되는 고리도 끊어져 있었다. 그저 션생님의 글만 오로지 다시 다가오기 시작하는 순간들이었다.


  이 책은 예전에 사두고 읽지 않던 에세이였다. 최근에 여우눈 에디션으로 새롭게 재출판되었다. 출판사에서는 서평단을 모집했고, 나는 운이 좋았다. 선생님의 부재가 10년을 넘어가도 선생님은 유명 작가셨고, 인기 작가셨다. 서평단 신청자들도 매우 많았고, 이미 소장하고 있는 책이 있던지라 기대가 크지 않았는데, 운이 좋았다고 밖에 할 수 없었다. 덕분에 소장만 해 둔 책을 읽게 되는 운도 따랐다.


  읽는 내내, 맞다, 내가 이래서 선생님 글들을 좋아했었구나 싶었다. 뭔가 푸근하지만 내용은 선생님의 소신으로 가득한 날카롭고 정겨운 표현들. 그랬다, 선생님은 글 속에서 여전하게 그대로 계셨다. 선생님의 부재가 얼마되지 않은 것처럼 느껴져 날짜를 찾아 봤다. 그렇게 다시 선생님의 부재는 형의 죽음으로 연결되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예전처럼 슬픔이 아프게 다가오진 않았다. '시간은 신이었을까'에서 말씀하셨듯 시간이 나를 치유해준 몫이 가장 클 것이다. 또한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하신 것처럼, 그 당시에는 죽음으로 밖에 해결되지 않을 법한 일들도, 어차피 나도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는 기대와 희망이 마음 깊은 곳에 자리했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읽는 책들마다 기록을 남기기 위한 개인적인 다짐에서 느낌들을 적어 나가고는 있지만, 서평단 참여는 가끔 고역일 때가 있다. 운이 좋은 것도 잠시, 읽은 후가 좋든 싫든 서평을 남겨야 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선생님의 글은 읽은 후에 뭔가 남기는 것이 쉽지 않다. 아니 어렵다. 뭔가 개인적인 내용들을 너무 드러내게 되는 것 같기 때문이다. 누가 이 곳까지 찾아와 읽을 것인가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민망하고 창피한 것은 감추기 어렵다.

  '자랑할 거라곤 지금도 습작기처럼 열심히라는 것밖에 없다. 잡문 하나를 쓰더라도, 허튼소리 안 하길, 정직하길, 조그만 진실이라도,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진실을 말하길, 매질하듯 다짐하며 쓰고 있지만, 열심히라는 것만으로 재능 부족을 은폐하지는 못할 것 같다.'

  선생님도 저리 열심히 쓰시는 것을, 나는 어떠했는지. 그저 허튼소리가 없었길, 내 감정에 솔직했기를 바라고 원할 뿐이다. 선생님이, 선생님 글이 그립다.

이 세상 사람들이 다 나보다는 착해 보이는 날이 있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고, 그런 날은 살맛이 난다. - P20

사람을 믿었다가 속았을 때처럼 억울한 적은 없고, 억울한 것처럼 고약한 느낌은 없기 때문에 누구든지 어떡하든지 그 억울한 느낌만은 되풀이해서 당하지 않으려든다. 다시 속기 싫어서 다시 속지 않는 방법의 하나로 만나는 모든 것을 일단 불신부터 하고 보는 방법은 매우 약은 삶의 방법 같지만 실은 가장 미련한 방법일 수도 있겠다.
믿었다가 속은 것도 배신당한 것에 해당하겠지만 못 믿었던 것이 실상은 믿을 만한 거였다는 것 역시 배신당한 것일 수밖에 없겠고 배신의 확률은 후자의 경우가 훨씬 높을 것이다. - P24

자랑할 거라곤 지금도 습작기처럼 열심히라는 것밖에 없다. 잡문 하나를 쓰더라도, 허튼소리 안 하길, 정직하길, 조그만 진실이라도,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진실을 말하길, 매질하듯 다짐하며 쓰고 있지만, 열심히라는 것만으로 재능 부족을 은폐하지는 못할 것 같다. - P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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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와술
쑬딴 지음 / 쑬딴스북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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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술을 좋아한다. 정말 심하게 대취한 적도 많았고, 하얗게 기억이 사라진 적도, 술병으로 고생한 적도 많았다. 그렇게 심하게 고생을 하고 나서는 후회를 하면서도 이내 다시 술을 마시곤 했다. 집에 술을 좋아하거나 잘 드시는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다. 오직 나만 술을 마시고, 취하곤 했었다. 가끔 부모님의 걱정도 있었지만, 이제는 걱정도 덜 하시는 듯 하다. 결혼 후에 술자리가 줄어서도 그렇겠지만, 요즘은 술을 예전만큼 많이 마시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쉬이 취하고, 금방 잠이 든다. 늦게 까지 술자리를 지키며 이야기하면서 술을 마시는 일은 너무나도 힘든 체력이 되었다.


  제목에 이끌리지 않을 수 없었다. 술의 양을 떠나서 술 마시는 걸 좋아하는 애주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숙취에도 술 생각이 나듯 자연스럽게 끌리는 제목이 아닐까. 부제에도 써 있듯이 저자가 세계를 돌아다니며 마셨던 술에 대한 이야기가 써 있다. 글은 이야기를 듣듯이 자연스럽게 읽을 수 있다. 막히는 부분이나 흐름에 방해되는 문맥들은 없었다.


  그럼에도 책은 별다른 재미가 없었다. 너무나 지극히 개인적인 술 마신 이야기로 다가오기 때문이었다. 개인적인 이야기이기에 에세이로 보면 별 문제가 안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에세이도 무언가 생각거리를 던져주거나 생각거리가 담겨 있기 마련이다. 그저 술마시고 취한 이야기여서 에세이로서 받을 수 있는 재미는 없었다. 그렇다면 술에 관한, 즉, 음식으로 분류해서 생각을 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책을 선택한 이유 중에 하나도 술에 관한 정보를 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였다. 알고 마시는 술은 더 맛있거나, 적어도 모르고 마실때와는 다른 맛일테니까. 그러나 음식쪽으로 분류해서 읽어도 이 책은 그쪽 분류는 아닌것 같다. 술에 관한 정보도 빈약했다. 부제처럼 '세계 곳곳을 다니면서 마셔본 술과 인생 이야기'였다. 다만 지극히 개인적인 인생 이야기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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