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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라디오 - 우리는 내내 외로울 것이나 ㅣ 아무튼 시리즈 71
이애월 지음 / 제철소 / 2024년 10월
평점 :
라디오를 좋아한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다. 그렇다고 어떤 시간에 꼭 맞춰 반드시 들어야 하는 프로그램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MBC FM4U 주파수인 91.9의 방송을 즐겨 들었다. 김기덕님이 오전 11시부터 12시까지 진행하면서 팝송을 틀어주었던 방송을 기억하고, 이어지는 '정오의 희망곡'과 '두시의 데이트'도 방송 시간 내내 모두 다는 아니고 간헐적으로 들었다. 오전 11시 방송은 프로그램이 자주 바뀌었지만, '정오의 희망곡'이나 '두시의 데이트'는 DJ의 변화만 있었을 뿐 프로그램은 현재까지도 오래 지속되고 있다. 오후 4시 프로그램들과 가장 좋아하는 프로그램인 6시 '배철수의 음악캠프', 같은 MBC지만 95.9 채널에서 방송(지금은 91.9로 옮겨온 것 같다)되던 '별이 빛나는 밤에'도 애청 프로그램이었다.
이상하게도 오디오가 비어 있는 상황이 어색했다. 학창시절에도 회사에서도 거의 모두 이어폰 혹은 헤드폰을 끼고 있었다. 그냥 흘러나오는 음악이 좋았다. 가요도 팝도 좋았다. 심지어 KBS 클래식 FM이나 같은 채널에서 오후 5시쯤 방송되던 국악 프로그램도 좋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이유를 알게 되었는데, 저자의 표현대로, 나의 외로움 때문이었던 것 같다. 사연을 꼭 귀담아 듣지 않아도, 듣게 되는 이야기들에 꼭 공감하지 않아도, 그저 귀에 무언가 들림으로 인해 나의 외로움이 조금 진정이 되고 위안이 되었던 것 같다.
이 책은 라디오 작가가 들려주는 라디오에 대한 이야기이다. 라디오 방송국에 대한 이야기 뿐만 아니라, 작가의 글쓰기, 주변 이야기, 방송국에서 라디오 작가로서의 현실 등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린시절 라디오와의 만남을 소개하는 부분에서는 저자의 나이가 나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은 에피소드가 등장해서 반가웠다. 카세트 테이프 위쪽의 두 구멍을 막아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길 기다려 녹음하던 그 시절. 노래가 시작하는데도 DJ의 멘트가 이어지면 원망했고, 노래가 끝나기 전에 광고가 나오면 그 녹음은 실패했던 그 기억. 반갑고 아련했다.
TV를 잘 보지 않았기에,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을 꽤 나중에야 보게 되었다. 인기가 한창일 때, <무한도전>의 도전 과제는 라디오 DJ였다. 그 방송이 라디오를 조금은 다르게 생각하게 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 책도 그렇고 말이다. 뭔가 아련하다는 그 느낌. 운전을 할 때가 아니면 라디오를 들을 시간이 많이 없는 요즘인데, 이 책을 보면서 라디오에 대한 나의 생각과 <무한도전>에서의 그 느낌이 살아났다.
퇴근하고 집에 가는 30~40분 동안은 거의 매일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듣는다. 얼마 전 배철수 DJ의 사정으로 조우진 배우가 스페셜 DJ를 했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배우인데, CD 플레이어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다. MP3가 보편화되던 그 시절에도 CD플레이와 CD를 가지고 다니면서 들었다는 이야기. 나도 그랬다. 편리한 MP3도 좋았지만, CD플레이어에서 MP3로 넘어가는 일을 나는 쉽게 할 수 없었다. 라디오가 그렇다. 언제든 쉽게 원하는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현재임에도, 자의가 아닌 선곡들과 이야기로 채워지는 라디오를 떠나기가는 쉽지 않다. 그러면서 만나게 되는 다양하고 넓은 음악도 좋고 말이다. 아! 오전에 출근하면서 10~20분 정도 듣는 '오늘 아침' 프로그램. 얼마전(벌써 몇 달이 지났구나) 정지영 아나운서에서 가수 윤상님으로 DJ가 바뀌었는데, 정지영 아나운서 막방분은 다시듣기로 전체를 다 들었다. 나까지 눈물날 뻔 했다. 라디오 그런 것 같다. 이 친근함. 아무튼, 어쨌든, 내게도 '라디오'다.
트라우마가 있다는 건 마음에 해결되지 못한 슬픔이 있다는 뜻이다. 받지 못한 사과가 있다는 뜻이다. - P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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