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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무죄 세계의 사랑법 - 범죄 너머에서 발견한 인간에 대한 낙관
정명원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7월
평점 :
<유퀴즈> 라는 TV 프로그램이 있다. 긴 원래의 프로그램명이 있을 테지만, 이미 너무도 유명한 프로그램이라 원래의 이름도 잊어버렸다. 'Step by Step'으로 너무나도 유명했던 미국 그룹의 이름과 같았던 것 같은데... 가끔 이 프로를 보긴 하지만, 정규시간에 본 기억은 없다. 풀 버전의 한 회차를 제대로 본 적도 없는 것 같다. 유투브의 짧은 버전으로만 가끔 봤었던 것 같다. 이 책의 저자도 이 프로그램에 출연했었다고 한다. 보진 못했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에 출연 여부가 광고에 미치는 영향력이 있는 것 같다. 얼마 전에 배우로서의 휴식기간에 출판사 운영을 하고 있다는 박정민 배우편을 보게 되었는데, <유퀴즈>에 출연하면서 인쇄 부수를 늘렸다고 한다.
일반인들이 주변에서 검사를 보는 일이 흔치는 않을 것이다. 이 책의 맨 뒷편에 소개되는 오은 시인님의 추천의 말처럼, 보통 사람은 '검사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을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아마도 드라마나 영화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편견이 안좋은 의미처럼 받아들여질지 모르겠지만, 검사라는 이미지가 나에게 어떤 한정적이거나 제한적인 부분을 갖게 했다는 의미이다. 그 흔히 볼 수 없는, 검사를 옆에서 볼 기회가 생겼다. 아내의 언니, 즉 나의 처형이 검사라는 직업을 갖고 있었다. 자주 보지는 못하지만, 명절을 포함해 1년에 3~4번은 보게 되는데, 뭐랄까 범접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아내의 언니라는 입장에서지 검사라는 직업때문은 아니다. 처형이 아닌 처제였다면 조금은 편한 사이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나의 지극히도 막연한 추측은, 곁에서 본 검사라는 직업 자체에 대한 편견, 즉 내가 갖고 있는 그 직업에 대한 한정적이면서도 제한적인 이미지를 사라지게 만들었다.
이 책은 한겨레출판에서 진행하는 서평단 이벤트에 당첨되면서 읽게 되었다. <유퀴즈>라는 프로그램 출연자라는 안내보다는 우선 제목에 이끌려 서평단 모집에 참여하였다. 제목만으로 남녀 사이에서 벌어지는 여러 소송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그 안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있을까, 하는 생각들이 책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책은 내 생각과는 달리 범위가 넓었다. 그저 남녀만이 아닌 인간 전체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기본적으로는 법이나 소송과 관련된 이야기들로 시작되지만, 그 안에는 사람들 사이의 이야기로 나아간다. 검사로서, 직장인으로서, 어머니로서, 여성으로서, 무엇보다 사람으로서 자신과 주변에 관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무엇보다 너무 법이나 소송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주가 되지 않아서 좋았다. 오은 시인님의 편견이 깨졌듯, 내가 곁에서 본 검사도 자식이고 부모였으며 사람이었다. 최근에 방영하고 있는 <서초동>이라는 드라마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법무법인이 가장 많이 모여있다는 서초동의 어쏘변호사 5인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지금까지와의 법 관련 드라마와는 많이 달라서 좋았다. 조금 더 현실적이라고 해야 할까. 극적인 변론 장면이 등장하지도, 반드시 정의로운 변호만을 하는 것도 아니다. 패소도 하고 맡기 싫은 변호도 일이라 어쩔 수 없이 하는, 현실적인 드라마라 잘 보고 있다. 이 책도 비슷한 느낌이다. 얼마나 어렵고 까다로운 사건을 멋드러지게 해결했는지 등의 그 과정들이 등장하지 않는다. 저자가 좋아하는 상주지청도 발령을 받으면 옮겨야 하고, 소신과 직장 문화 사이에서 고민해야 하며, 일과 육아의 병행에도 신경을 써야 하는 일반적인 주인공의 이야기가 전해질 뿐이다. 그래서 너무 좋았다. 나와 내 주변도 다르지 않은 같은 삶의 결을, 같은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뭔가의 안도감 같은 것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딱딱할 것만 같은 법생활 속에서도 따듯함이 느껴졌다.
지금은 판사를 안 하시는 것 같지만, 문유석 작가님의 글을 좋아한다. 김웅 검사님의 <검사내전>도 재밌게 읽었었던 기억을 갖고 있다. 정명원 검사님도 글을 참 잘 쓰시는 것 같다. 우선 문유석 작가님처럼 문체에 유머가 있다. 재밌게 잘 읽힌다. 정명원 검사님도 기본적으로 밝은 성격이신지는 모르겠으나, 글 속에 위트가 있다고 해야 할까. 밝지만은 않은 내용들도 있지만, 글이 전반적으로 밝은 느낌이다. <유퀴즈>에 출연하셨던 부분도 찾아봐야 겠다. 이 책보다 전작이 있다고 한다. 그 책도 찾아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