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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말씀만 하소서 - 출간 20주년 특별 개정판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24년 12월
평점 :
자식을 잃었다. 자식을 보냈다. 어떤 표현이 가당키나 할까. 형을 잃었다. 형을 보냈다. 형을 잃고 보낸 슬픔도 더 컸지만, 감히 엄마 아빠의 심정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겼다. 하루 하루가 빠르게 지나간다. 형이 떠난지도 10년이 훌쩍 지났으니, 매일이 그날의 심정같지는 않다. 생각도 드문 드문 난다고 해야 할까. 그런데도 부모님만 뵈면 형이 생각난다. 삶이 너무 힘들고 지칠 때가 있다. 무서운 생각들이 나도 모르게 들 때면, 부모님을 생각한다. 부모님에게 또 다시 어떤 아픔을 드리면 안된다는 강박이 생겼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부모님이 계실 때는 아파서도 안된다. 그래야 형에게도 덜 미안할 것 같다.
박완서 선생님의 이야기는 익히 알고 있었다. 외동은 아니었지만, 외아들이었다는 것도 말이다. 형이 병원에 있을 때 박완서 선생님 관련 다큐가 방영되어서 같이 본 기억이 있다. 형과 내가 같이 좋아하던 작가님이셨다. 그 다큐의 내용 안에 선생님 아드님 이야기도 있었던 것 같다. 아무런 이야기도 없이 그렇게 형과 나는 TV만 보았지만, 이내 같은 생각을 했었던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선생님의 아픔이 담긴 이런 일기 형식의 글이 있는지는 몰랐다. 개정판이 나오면서 제목을 접하고, 어렴풋이 그 때의 이야기겠거니 하며 책을 구매했다. 그렇지만 쉬이 읽어볼 엄두는 나지 않았다. 무서웠고, 감히 가늠키도 어려웠던 그때의 부모님 생각이 날 것만 같았다. 내용은 역시 절절했다. 장례식장에서의 엄마의 표정과 몇 번이고 정신을 놓던 엄마에 대한 그 때의 기억이 무섭도록 익숙하게 떠오른다. 그동안 나의 10년과 부모님의 10년은 달랐겠구나.
우리 가족은 모두 크리스쳔이다. 아버지와 큰 누나를 빼 놓고는 모두 교회에 매주 다니며 예배를 드렸었다. 가장 열심히 믿음 생활을 하던 어머니도 형을 보내고 나서는 한동안 교회에 나가지 못하셨다. 하나님에 대한 물음도 있었겠지만, 형과 같이 다니는 교회에서의 형을 아는 사람들과의 만남이 더 어려우셨을 것 같다는 생각이 이 책을 읽으면서 들었다. 시간이 지나고 교회를 옮겨 다시 신앙생활을 이어가시는 것도 아마 남은 자식들과 가족 때문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여전히 형을 생각하면 하나님께 '한 말씀만 해달라고' 떼를 쓰곤 한다. 여전히 답이 없으시지만, 어느 때고 계속 답을 어떤 형태로든 보내셨을 수도 있다. 내가 느끼거나 받아 들이지 못하고 있을 뿐이고 말이다. 지금까지 살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 그 대답일 수도 있고 말이다. 형이 너무도 보고 싶은 밤이다.
주여, 어찌하여 나를 이다지도 미천하게 만드시나이까. 나는 마음으로 무릎을 꺾으며 이렇게 탄식했다. - 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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