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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필 탐심 - 인문의 흔적이 새겨진 물건을 探하고 貪하다
박종진 지음 / 틈새책방 / 2024년 8월
평점 :
나에게는 40살도 채우지 못하고 하늘 나라에 간 형이 있다. 6살이라는 터울에도 형은 늘 편안했고 듬직했다. 현재 나는 형이 살아보지 못한 나이를 살아가는 중이다. 형을 생각하면 연관되어 떠오르는 것들이 있다. 낚시가 그렇고, 책이 그렇고, 만년필이 그렇다. 형은 글씨를 잘 쓰기도 했지만, 글씨 쓰는 것을 좋아했다. 어렸을 때부터 50원 100원하던 펜촉을 사서 펜대에 끼워 펜글씨를 썼다.
형이 갖고 있던 것들 중에 내가 갖고 있는 것은 형의 필통이다. 많은 것들을 정리했지만, 정리하지 못했던 것들 중 하나인데 얼마전에 우연히 책상에 넣어둔 그 필통을 발견했다. 필통 안은 형답게 깔끔했다. 몇 개 되지 않는 필기구가 들어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만년필이다. 함께 갖고 있었던 잉크를 넣어서 써보니 여전히 꽤 잘 써진다. 안 써졌다면 어땠을까? 그냥 버리게 되었을까. 모르겠다. 갑자기 그렇게 되면 안되겠다, 싶어 책을 찾아보게 되었다. 만년필에 대해 더 알아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저자는 만년필에 대한 많은 것들을 이야기 하고 있다. 특히 만년필과 연관된 역사적인 사건들에 대해 재미나게 이야기를 해주고 있어, 책을 읽는 재미가 있다. 특히 연구소를 운영하면서 다양한 사연들을 가진 만년필 수리에 관한 이야기들도 전해주고 있는데, 많은 공감을 할 수 있는 부분들이었다.
개인적으로는 구성이 조금 아쉬웠는데, 분류가 되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회사별이나 시대별로 구분지어서 이야기가 전개되었다면, 조금 더 개념을 잡기 쉬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또한 수리나 명칭 부분들에 대한 그림이 함께였다면, 나와 같은 초보 만년필 사용자에게 큰 도움이 되었을 것 같다.
글씨를 많이 쓸 일이 없는 세계를 살아가고 있다. 또한 꼭 만년필이 아니더라도 글씨를 쓸 수 있는 너무나도 다양한 필기구가 존재하는 세상이다. 지금의 만년필은 개인적인 관심에서 비롯될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로부터 연결되어 시작될 가능성이 클 것 같다. 그 연결에는 이야기들이 숨어 있을 것이다. 그 이야기들이 만년필로 쓰여진다면 멋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