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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위안 - 불안한 존재들을 위하여
알랭 드 보통 지음, 정명진 옮김 / 청미래 / 2023년 10월
평점 :
알랭 드 보통이라는 작가를 좋아한다. 모든 서적을 다 읽어 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국내에서 출판된 책들 중에서) 읽지 않은 책보다는 읽은 책이 많은 것 같다. 너무 심오한 철학적인 이야기들은 여전히 어렵기도 하고 잘 읽히지도 않지만, 그래도 사랑에 관한 철학적 소설을 중심으로 여행과 미술 등에 관한 보통의 글들을 좋아한다.
책들이 제목을 달리하거나 표지가 바뀌어 나와서 이 책도 갖고 있는 책 중에 읽지 않은 책의 하나일지도 모른다. 출장을 가면서 기차에서 읽어 볼 책으로 표지는 소프트하나 단단해 보이는 책을 골랐는데, 이 책이었다. 제목에서부터 철학책이다. '불안한 존재들을 위하여'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인생학교 시리즈가 생각나는 부제여서 조금 망설여지긴 했으나, 저자 소개에 인생학교 단어가 없길래 읽기 시작했다. (인생 학교 시리즈를 처음에는 재밌게 읽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처음과 달라진 느낌을 받았고, 그 이후로는 멀어지고 있다.)
내용은 불안한 존재들에게 보내는 철학적 위안을 담고 있다. 불안한 원인을 인기, 가난, 좌절, 부적절, 상심, 어려움의 6가지에서 찾으며 각각의 원인들을 철학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각각의 불안에 대한 이유가 한 명의 철학자의 삶과 철학으로 연결되는데, 인기와 관련해서는 소크라테스, 가난은 에피쿠로스, 좌절은 세네카, 부적절은 몽테뉴, 상심은 쇼펜하우어, 어려움은 니체와 연결되어 있다. 철학자들의 삶과 그들의 철학을 통해 불안에 대한 위로 혹은 위안을 받을 수 있다.
좋은 구성이고 좋은 내용이다. 글도 재미있고, 읽다 보면 공감을 하게 되며, 정말 어떤 불안정한 느낌에 대해서는 위안을 받기도 한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처음 읽을 때, 비슷하게 경험했던 상황을 철학적으로 설명하는 부분에서 감탄을 하곤 했었는데, 이 책도 여러 곳에서 비슷한 감탄이 나오기도 했다. 역시 대단한 철학자이자 소설가다. 이 책은 시차를 조금 더 두었다가 한 번 더 읽어 볼 생각이다. 그때 이 리뷰도 다시 한 번 읽어 보며 느낌을 비교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우리가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는 현상에 대해서 의문을 품지 않는 것은 다른 사람의 적의敵意를 두려워해서만은 아니다. 그것에 못지않게, 사회적 관습이라는 것은 당연히 그만한 근거를 가지고 있음에 틀림없다고 치부해버리는 각자의 내적 인식에 의해서도 의문을 품으려는 의지는 곧잘 꺾여버린다. 심지어 그 근거라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지도 못하면서 그런 관습들이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지켜져 내려왔다는 이유만으로도 우리는 좀처럼 의문을 품지 않는다. 우리는 사회가 어떤 신념을 정착시키는 과정에 중대한 실수를 저질렀을 수도 있고, 또 그런 사실을 깨달은 사람이 나 혼자일 수도 있다는 점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 같다. 우리는 스스로를 지금까지 전혀 알려지지 않은, 따라서 접근하기 어려운 진실을 추구하는 선구자로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의문이 생기더라도 쉽게 무시해버리고 그저 다수를 따른다. - P21
사람들이 틀릴 수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의 신념을 논리적으로 검증하지 않기 때문이다. - P33
하나의 관념이나 행동이 유효하느냐 않느냐는 그것이 폭넓게 믿어지느냐 아니면 매도 당하느냐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논리의 법칙을 지키느냐의 여부로 결정되는 것이다. - P67
삶의 단편들을 놓고 흐느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온 삶이 눈물을 요구하는 것을. Quid opus est partes deflere? Tota flebilis vita est. - 『마르키아에게 보내는 위로문』 - P163
행동거지를 평가하는 수단은 편견보다는 꼼꼼한 추론이 되어야 했다. - P208
이 세상에 존재했던 가장 현명한 사람은 아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자신이 아는 것은 오직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 하나뿐이라고 대답했다. - 『수상록』 II - P208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이라고 해서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들이라고 해서 다 나쁜 것은 아니다. - P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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