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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리커버 한정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 / 2023년 3월
평점 :
품절
달리기를 좋아한다. 그렇지만, 코로나 핑계를 대지 않더라도, 좋아하는 달리기가 아니더라도, 어떤 운동이든 항상 귀찮을 뿐이다. 달리기를 안 한지 오래되었다. 작년에 며칠 주말 아침에 일어나 뛰어 보기는 했었지만, 육아를 핑계로 그 며칠도 며칠로 끝나버렸다. 달리기든 어떤 운동이든 꾸준함과 성실함이 수반되어야 빛을 본다. 그래야 효과가 있다.
하루키의 에세이를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많이 있지는 않다. 특히나 음악에 관한 책들에서는 말이다. 하루키가 엄청난 음악광이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 특히나 재즈와 클래식에 조예가 깊어 관련한 책들도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중에서 몇 권 읽었던 기억도 있지만, 그렇게 기억에 남아 있진 않다. 비교적 최근에 읽었던 클래식에 관한 책에 관해서도 말이다.
달리기에도 관심이 많고 즐겨 한다는 이야기를 접한 기억은 있었다. 그러나 이 정도로 '마니아'인줄은 몰랐다. 아니, 내 기준에서는 선수라고 해도 될 것 같다. 매일 아침 정해진 시간에 글을 쓰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달리기도 그렇게 규칙적이고 꾸준히 해오고 있었다니, 흔한 말로 respec이다. 완전 리스펙!!
이 책은 달리면서 자신을 돌아보는 이야기다. 자신에게 달리기란, 달리기의 효과란, 나란 인간이란? 그런 질문들에 대한 대답이 담겨 있다. 가만, 달리면서 생각을 안한다고 했는데? 달린 이후의 생각들인가...... 아니다, 달리면서 어떤 생각이든 생각은 한다. 글에 등장하는 것처럼, 초반엔 자신의 몸상태와 컨디션을 스스로 체크하며 새로운 기록을 예상해 본다. 그러다 어느 순간 왜 내가 달리고 있는지 고통 속에서 후회를 한다. 하지만 마지막 도착점을 통과하면 다음 달리기를 생각한다. 어쩜 이렇게 생각이 같을까, 러너들은 몸뿐만이 아니라, 적어도 달리는 순간만큼은 생각마저 닮아가는지도 모르겠다.
달리기를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본업인 소설과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도 적혀있는데, 달리기가 아닌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 의아했지만, 그래서 재밌었다. 달리기에 관한 책이라고 달리기 이야기만 적혀 있으라는 법은 없잖은가. 하루키에게 달리기는 글을 더 잘 쓰기 위한 몸의 단련 수단일수도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각 챕터마다 등장하는 음악에 대한 부분이었다. 음악에 대해서 길게 이야기 할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지는 않다. 이 책은 달리기에 관한 책이다. 소개되는 음악이 달릴 때 듣는 음악일 수도 있고, 생각나는 음악일 수도 있다. 그 음악에 대한 부분들이 짧아도, 길어도 좋았다. 챕터마다 기대되는 부분들이 될 정도로 말이다.
해마다 나이를 먹어 가면서 몸의 변화가 직접적으로 느껴진다. 아내의 말처럼, 이제는 살기 위해서라도 운동을 해야만 하는 나이가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매년 1번씩이라도 마라톤에 나가야 겠다는 거창한 목표까지는 아니다. 적어도 일주일에 1번씩이라도 30분 이상 뛰고 싶다. 느리더라도,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고 싶다. 느리더라도, 적어도 끝까지 달리는 인생이고 싶다.
Pain is inevitable, Suffering is optional. ‘아픔은 피할 수 없지만, 고통은 선택하기에 달렸다’ - P9
체념하고 손에 넣을 수 있는 것만으로 해나갈 수밖에 없다. 그것이 인생의 원칙이며, 그 효율의 좋고 나쁨이 우리가 살아가는 가치를 결정하는 기준은 아닌 것이다. - P83
나는 지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은 아니다. 진다는 것은 어느 정도 피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누구든 영원히 이기기만 할 수 없다. 인생이라는 고속도로에서 추월 차선만을 계속해서 달려갈 수는 없다. 그러나 그와는 별개로 똑같은 실패를 몇 번이나 되풀이하고 싶지는 않다. 하나의 실패에서 뭔가를 배워서 다음 기회에 그 교훈을 살리고 싶다. 적어도 그러한 생활 방식을 계속하는 것이 능력적으로 허용되는 동안은 그렇게 하고 싶다. - P88
제정신을 잃은 인간이 품는 환상만큼 아름다운 것은 현실 세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 P103
소설가로서 인터뷰를 하다 보면, "소설가로서 가장 중요한 자질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소설가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자질은 말할 나위도 없이 재능이다. 문학적 재능이 전혀 없다면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소설가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것은 필요한 자질이라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전제 조건이다. 연료가 전혀 없으면 아무리 좋은 자동차도 달릴 수 없다. - P120
재능 다음으로 소설가에게 중요한 자질이 무엇인가 질문받는다면 주저 없이 집중력을 꼽는다. 자신이 지닌 한정된 양의 재능을 필요한 한 곳에 집약해서 쏟아 붓는 능력. 그것이 없으면 중요한 일은 아무것도 달성할 수 없다. 그리고 이 힘을 유효하게 쓰면 재능의 부족이나 쏠림 현상을 어느 정도 보완할 수 있다. 나는 평소 하루에 3시간이나 4시간 아침나절에 집중해서 일을 한다. 책상에 앉아서 내가 쓰고 있는 일에만 의식을 집중한다. 다른 일은 아무것도 생각하지도, 보지도 않는다. - P121
집중력 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지속력이다. 하루에 3시간이나 4시간 의식을 집중해서 집필할 수 있었다고 해도, 일주일 동안 계속하니 피로에 지쳐버렸다고 해서는 긴 작품을 쓸 수 없다. - P121
내일이 무엇을 가져올 것인가, 그것은 내일이 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다. - P161
자랑스럽다고 할 만큼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그 나름의 성취감 같은 것이 이제야 생각난 듯이 가슴속에 북받쳐 오른다. 그것은 ‘위험스러운 일을 자진해서 맡아 그것을 어떻게든 극복해 나갈 만한 힘이 내 안에도 아직 있었구나’ 하는 개인적인 기쁨이며 안도감이었다. 기쁨보다는 안도감 쪽이 오히려 강했는지도 모른다. - P180
우리가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필요에 쫓겨 명쾌한 결론 같은 것을 구할 때, 자신의 집 현관문을 똑똑똑 노크하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나쁜 소식을 손에 든 배달부이다. ‘언제나’ 그렇다고까지는 말할 수 없겠지만, 경험적으로 말해서 그것이 우울한 소식인 경우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훨씬 많다. - P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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