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도서관 - 책과 영혼이 만나는 마법 같은 공간
알베르토 망구엘 지음, 강주헌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 원서의 애독자로서 오늘 시내 서점에 나가 기쁜 마음으로 번역서를 들었다. 원서를 읽은 기억에 비추어 약간 이상한 느낌이 들어 집에 돌아와 비교를 해보았더니 아닌 게 아니라 번역이 잘못 되었다. 처음부터 결정적으로 독해가 잘못된 부분만 짚어본다.  


[번역서] 신학과 환상문학을 제외하면, 우리가 사는 세상에 특별한 의미도 없고 뚜렷한 목표도 없다는 걸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듯하다. 그런데도 우리는 당혹스러울 정도로 낙관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이 세상을 의미와 질서로 포장하려는 처절한 목적을 가지고 두루마리와 책과 컴퓨터에서, 또 도서관의 선반에서 이런저런 정보 조각들을 끊임없이 모아댄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노력이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우리는 완벽하게 알고 있다. 반대로 생각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그런데 우리는 왜 그렇게 하는 걸까? 이 의문의 답을 구할 가능성이 없다는 걸 나는 처음부터 알았지만, 답을 구하는 과정은 그런대로 가치가 있을 것 같았다. 이 책은 그 과정에 관한 이야기이다.  


[원서] Outside theology and fantastic literature, few can doubt that the main features of our universe are its dearth of meaning and lack of discernible purpose. And yet, with bewildering optimism, we continue to assemble whatever scraps of information we can gather in scrolls and books and computer chips, on shelf after library shelf, whether material, virtual or otherwise, pathetically intent on lending the world a semblance of sense and order, while knowing perfectly well that, however much we'd like to believe the contrary, our pursuits are sadly doomed to failure.  


Why then do we do it? Though I knew from the start that the question would most likely remain unanswered, the quest seemed worthwhile for its own sake. This book is the story of that quest.  

 


역자는 in scrolls and books and computer chips, on shelf after library shelf 이라는 부분을 “두루마리와 책과 컴퓨터에서, 또 도서관의 선반에서”라고 번역하여 두루마리/책/컴퓨터 등이 정보수집의 원천인 것으로 번역한다. 이것은 독해가 완전히 틀린 것이다. 정보를 수집해서 고대/중세에 두루마리 종이나 양피지 같은 데 기록하고 그 다음에 책이라는 형태로, 또 그 다음에 컴퓨터 메모리에 기록하게 되었으며, 이런 것들로 도서관을 채워왔고 또 지금도 그 일이 끊임없이 진행되고 있다는 얘기다.  


이 부분 말고는 독해가 잘못된 곳이 있는지 없는지는 더 이상 비교를 안해봐서 모르지만, 설령 없다 할지라도 번역 베테랑들이 말하는 정밀독해와 이해가 선행된 번역인지는 솔직히 의문이다. 첫 문장부터 의미가 분명하지 않은 것이 계속 마음에 걸린다. 바쁜 직장생활만 아니라면 원서와 역서를 꼼꼼하게 비교해보고 싶을 정도로 이 책은 나에게 각별하다.  


그리고 사소하지만 “perfectly well”에서 perfectly는 “완벽하게”라기보다는 well을 강조해서 “너무나”라고 하는 게 좋다. 아무튼 이 책을 읽어보는 독자들은 시간이 허락된다면 원서와 번역서를 꼼꼼히 비교해 보면 좋을 것이다.


[대안 번역] 우리가 사는 우주가 의미도 없고 목적도 뚜렷하지 않다는 것이 그 주된 특징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신학과 환상문학의 범주를 벗어나면 그렇다. 그럼에도 우리는 끊임없이 두루마리나 책, 컴퓨터 칩의 형태로 정보의 조각들을 그러모아 정리하여 물질로든 가상 기억으로든, 또는 어떤 다른 형식으로든 도서관의 서가를 계속 채워나간다. 애절하게도 세상에 의미와 질서의 겉모습을 부여하려는 마음에서 그러는 것이지만 우리는 그런 모든 추구가 애석하게도 (성공할 것을 제아무리 굳게 믿고 싶을지라도)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그 짓을 하는 것일까? 나는 애초에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미결로 남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 추구는 그 자체로 가치 있는 일인 듯했다. 이 책은 그 추구에 대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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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스승 2011-06-29 1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한국에 나가면 번역서를 보는 건 도박이라고 하던데...... 참 답답한 심정입니다. 비록 강단에 있지만 일일이 원서와 대조하며 읽기에는 돈도 시간도 여의치 않으니 말입니다. 일반 독자들은 대충 읽으며 넘어가며 대충 말이 되면 잘못된 걸 눈치 못 채게 될 거고, 또 심지어는 잘못된 정보가 계속 유통 순환될 테니, 그것도 참 문제예요. 소설이야 조금 사소한 오역이 있어도 사실 괜찮을 수 있지만 인문교양서 등 구체적인 정보를 전하는 책들은 조심해야겠어요. 이렇게 지적해놓으신 것을 보니 전적으로 공감하고 새삼 경각심이 고취됩니다. 게다가 역자의 경력을 보니 납득하기 힘든 일이로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