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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리버 여행기 (무삭제 완역본) ㅣ 현대지성 클래식 27
조너선 스위프트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19년 9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책 읽기까지 정말 오래 걸렸습니다!!!
역자 해제 전까지는 361페이지 가량? 분량 때문에 오래 걸렸다는 건 아니라는거죠.
우선 읽기 전부터 워낙 잘 알려진 풍자소설인데 이제서야 읽게 된 것에 대한 설레임과
저 나름의 부끄러움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동안 대한민국에 알려진 <걸리버 여행기> 는 아동문학으로서의 인지도가 더 컸던 거 같아요.
저희 집에도 있는 세계문학 책시루에 걸리버 여행기가 당연히 들어 있고
"상상력이 풍부한 친구" 라는 카테고리에 포함되어 있더라구요.
소인국에 간 탐험가 걸리버 라는 인식은 어른 아이 할거 없이 누구에게나 알려져 있고
세상에 있을 수 없는 소인국을 탐험한다는 건 충분히
어린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는 흥미로운 소재이니까요.
그만큼 아이들에게 필수 권장도서인 걸리버 여행기가 사실은 전체를 보여준 게 아니었다는 걸
부끄럽게도 저는 이번에 정확히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왜 그렇게 최고의 풍자소설이라고 일컬어져 왔는지도 직접 완독한 후에 알았어요!!!
그저 세상에 먼지처럼 떠돌아다니는 이야기로 마치 나도 잘 알고 있다고 떠들고 다니는 일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 한번 더 깨닫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물론 이번에 현대지성 이종인 번역으로 나온 완역본 <걸리버 여행기> 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다고 해서 다 알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지요.
책이라는 게 한번 읽었을 때 들어오는 내용과 두 번째, 세 번째 읽을 때
인상깊게 파고드는 내용들이 다 다르니까요!!

<걸리버 여행기> 의 작가 조너선 스위프트.
역시 이름만 들어서 낯설지 않을 뿐, 잉글랜드계 부모를 둔 아일랜드인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고
영국 국교회의 사제 신분이었으며 잉글랜드의 거물 정치인의 비서로 활동하면서
정치 사회적 감각도 터득했을 법 합니다.
정치평론의 일도 했다는데 당시 보수당인 토리당과 진보당인 휘그당 체제였던 잉글랜드에서
시류에 따라 양 당을 지지하는 입장에서 활동한 전력도 있더라구요.
하지만 당시 아일랜드는 영국의 지배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스위프트는 늘
"아일랜드는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는 글로
아일랜드에서는 애국자로 불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당시 정치와 사회를 풍자하는 글을 쓰기도 했고 마지막 여생은 성직자로서 오랜 시간을 보내다가
어릴 때부터 평생 현기증과 난청 증세로 고생했던 그였기에
마음과 기억이 건전하지 못하다는 평을 받으며 생을 마감합니다.
사제이기도 했으니 그렇겠지만 해제를 읽다 보면 복잡한 이성관계도
평생 결혼하지 못한 삶으로 마감하게 한 이유가 되지 않았을까 싶었어요.
조너선 스위프트의 생애에 대한 평가가 어떻든간에,
당시 잉글랜드의 식민지와도 같았던 아일랜드인으로서,
그리고 인간과 사회에 대한 고찰을 풍자적으로, 그리고 신랄하게 비판함으로써
5년간의 집필, 출간되기까지 15년이라는 시간동안 심혈을 기울였던
<걸리버 여행기> 를 남긴 것만으로 지금까지 그의 이름이 회자되고 있으니 이런 생애 또한
가치있고 의미있는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조너선 스위프트가 남긴 최고의 풍자문학 <걸리버 여행기> 는
총 4부로 구성되어 있어요.
릴리펏 (소인국) 여행기
브롭딩낵 (거인국) 여행기
라퓨타 (날아다니는 섬), 발니바비, 럭낵, 글럽덥드립 (마법사의 섬), 일본 여행기
후이늠국 (말의 나라) 여행기
본편이 시작되기도 전에
공고 / 걸리버 선장이 사촌 심슨에게 보내는 편지 / 발행인이 독자에게
부분을 읽다 보면 걸리버라는 사람이 정말 있었던 사람처럼 느껴질만큼
소설이 아니라 논픽션같은 착각이 생길 정도였습니다.^^
스스로 이건 소설이라고 다시 정신을 차리면서 보는데도
조너선 스위프트가 설정한 상상의 나라들은 참으로 디테일하고도
그 낯선 나라에 사는 존재들의 말과 행동이 하나같이 의미있게 와닿기도 했죠.
그만큼 알게 모르게 풍자의 요소들을 작가 스위프트가 곳곳에 심어두었습니다.
실제로 제4부 12장이 시작하면서 한번 더 거짓말인걸 독자들은 이미 알고 보는데도
거기에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또 한번 언급하는 데서
<걸리버 여행기> 의 풍자에 대한 결기(?) 도 엿보이구요.
"나는 16년 7개월을 넘게 여행했고, 이것이 바로 그 여행에 관한 진실한 기록임을 점잖은 독자께 알린다.
나는 화려한 글이 아니라 진실을 보여주는 글을 쓰고자 무척 신경 썼다.
나는 기상하고 있을 수 없는 이야기로 독자를 놀라게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가장 간결한 방식과 문체로 명백한 사실을 전하기로 했다.
내 주된 의도는 독자를 놀라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걸리버 여행기> 의 가장 마지막 장은 이렇듯 이 책을 출판한 의도를 분명히 밝히면서 시작합니다.
야만적인 식민지 건설을 비판하는 것은 잉글랜드를 말하는 것이고
그렇게하지 않는 조국을 칭송할 때 조국은 바로 아일랜드를 말함이겠지요.
책 속 곳곳에 있던 풍자의 불씨는 마지막 장까지 유효했습니다.^^

책 속의 일러스트가 상상력을 제한한다고 보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제게는 걸리버가 그린 낯선 나라에 대한 이해를 도와준 거 같아요.
항해하다가 우연히 머물게 된 나라는 걸리버에 비해 1/12 만큼 작은 사람들이 사는 소인국이었어요.
걸리버를 발견한 릴리펏의 소인들은 걸리버에게 '산악인간' 이라는 이름으로 불렀고
시간이 지나면서 경계심에서 친근감을 표현하게 되었습니다.
왕과 신하들, 백성들이 있는 나라에서 걸리버는 그들에게 호의적으로 대했고,
그들 역시 낯선 걸리버의 호의를 받아들이며 높은 지위를 선물하기도 할 정도로
상생하며 살아가는 모습도 보여주고 있어요.
하지만 이 소인국 안에서도 스위프트가 보았던 파당 문제는 존재했습니다.
소설 속에서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거든요.
"소인국이 외국인에게는 번창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이 나라는 두 개의 강력한 악 밑에서 신음하고 있다.
하나는 본국에 있는 난폭한 파당이고,
다른 하나는 해외의 가장 강력한 적국이 침공해 올지 모른다는 위험이다.
파당 문제에 대해서 말해 보자면, 지난 70개월 동안 이 제국에는
두 개의 서로 싸우는 파당이 있어 왔다.
그 두 당파의 이름은 트라멕산과 슬라멕산인데,
그들이 신는 구두굽이 높은 굽이냐 혹은 낮은 굽이냐에 따라 그런 이름으로 갈라지게 되었다.
그들은 그런 특징으로 상대방과 자신을 구분했다."
바로 잉글랜드의 토리당과 휘그당을 빗대어 말하는 것이었고
이 소인국에도 그들끼리 그 보이지 않는 굽을 통해 미묘하게 구분짓기가 만연해 있었던 것이죠.
이것은 스위프트가 살고 있던 시대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게 아니겠어요?
가볍게 보자면 현실에 없는 소인들이 사는 나라에 우연히 가게 된 걸리버의 그야말로 '여행기' 라며
흥미롭게만 볼 수도 있겠지만 더 깊이, 내밀하게 들여다 보면
작가 조너선 스위프트가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현실 풍자였던 것이죠.
당시 잉글랜드의 저자의 조국 아일랜드를 빗대어서, 나아가서는
인간과 사회를 더 깊이 생각해보고 현실의 불합리함과 왜곡된 모습들을 풍자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저자의 의도가 분명한 소설입니다.

소인국에서 무사히 집으로 돌아와 아내와 아이들과 2달간 머물렀지만
다시 걸리버의 낯선 땅에 대한 호기심과 그 욕망 때문에 다시 길을 나서게 되었고
우연히 닿게 된 곳은 이번에는 반대로 거인국입니다.
브롭딩낵 이라고 불리는 거인국에서도 소인국에서와 마찬가지로
걸리버가 가장 먼저 그들의 언어를 배우려고 하는 자세가 인상깊었어요.
타자와 소통하려는 노력이 수반된다면 불통을 넘어 상호간의 이해관계가 형성이 되겠죠.
그런 모습을 가게 되는 낯선 나라들마다 걸리버가 보여줍니다.
스위프트가 의도한 부분이 아닐지는 모르겠으나
제게는 언어로 소통하고자 노력하는 걸리버와
그를 무조건 경계하기 보다는 받아들이려 하는 소인들과 거인들의 관계가
구분짓고 경계를 일삼는 현대 사회를 비춰볼 때 제 눈에는 아름답게 보이기도 했어요.
걸리버가 자신이 갖고 있는 항해기술을 뽐내려고도 하고

조너선 스위프트의 풍자는 바로 제4부에서 절정을 이루는 듯 해요.
소인국이나 거인국처럼 크기가 서로 상대적인 차이가 있긴 하나
어쨌거나 걸리버와 외양이 비슷한 사람들이었는데
제4부 말의 나라 후이늠국은 그야말로 주인이 말이였어요.
인간처럼 후이늠들에게는 문자가 없지만 그들의 지식은 인간처럼 이성이 있고
모두 입말이 가능해서 걸리버와 소통이 된다는 것이죠.
그들에게는 천성적으로 미덕이 있고 이성의 지배를 받으며
비유와 세밀하고 정확한 묘사까지 사람 못지 않게 적절하게 사용할 줄 아는 존재였습니다.
걸리버의 말을 빌리자면 후이늠들은 유럽 사회의 사람들보다 우아한 언어를 표현한다고 말하고 있어요.
사람이 주인이 아니라 말이 주인인 나라, 후이늠국에서
그렇다면 말이 하인처럼 부리는 존재는 누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