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아스 (고대 그리스어 완역본) - 명화와 함께 읽는 현대지성 클래식 64
호메로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서적을 제공받아 재미있게 읽은 솔직 후기입니다.> 


어릴 적부터 그리스 신화는 여기저기서 접할 기회가 많았다. 만화책, 영화, 애니메이션을 통해 단편적으로 알게 된 신화의 세계는 늘 신비롭고 흥미로웠다. 하지만 정작 제대로 읽어본 적은 없었다. 이번에 좋은 기회가 생겨 '명화와 함께 읽는 일리아스'를 손에 들게 되었고, 덕분에 오래전부터 마음 한켠에 남아 있던 숙제를 푸는 기분이었다.





이번 책은 출판사 ‘현대지성’에서 출간한 '명화와 함께 읽는' 시리즈 중 하나다. 개인적으로 이 시리즈를 무척 좋아하는데, 이유는 명확하다. 텍스트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게 아니라, 중간중간 그림처럼 삽입된 명화들이 책의 이해를 훨씬 쉽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고전을 읽는다는 긴장감이 명화 한 장을 만날 때마다 부드럽게 풀어진다. 이번 '명화와 함께 읽는 일리아스'도 그런 점에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일리아스'는 트로이 전쟁 10년째, 그리스 영웅 아킬레우스가 아가멤논과의 갈등으로 전장에서 물러나면서 시작된다. 아킬레우스와 헥토르의 대결, 인간과 신의 복잡한 갈등, 영광과 죽음에 대한 고민이 강렬하게 펼쳐진다. 아킬레우스가 전장에서 잠시 손을 떼면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들과, 트로이 함락으로 향하는 길목의 이야기들이 전개된다. 영웅들의 분노와 화해, 죽음과 명예가 끝없이 교차하는 고전적 서사다.

읽다 보면 일리아스에 등장하는 신들은 생각보다 ‘인간적’이다. 서로 말싸움을 벌이고, 시기하고, 심지어 인간들과 직접 싸우기도 한다. 번개를 쏘고 태양으로 마차를 몰던, 강하게만 보였던 고대 신화 속 신들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게 표현한 이런 장면들 속에서 오래전 그리스인들의 사고방식, 문화, 신을 바라보는 태도 등을 엿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명화와 함께 읽는 일리아스'는 무려 842페이지에 달하는 ‘벽돌책’이다. 하지만 무겁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수많은 명화들이 이야기에 맞게 자연스럽게 삽입되어 있어서, 오히려 가독성이 높다. 등장인물들의 상황이나 감정을 화가들이 해석한 그림들을 통해 함께 바라보니, 복잡한 인물 관계나 낯선 이름들도 쉽게 익숙해졌다. 그림을 통해 하나하나 시각적으로 짚어주니 단순한 독서가 아니라 영화를 보는 기분이라해도 과장되지 않는 표현이다.

이번 번역은 고대 그리스어 완역본이라 시편 그대로의 형식을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일반 소설처럼 술술 넘어가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지나치게 어렵지도 않았다. 번역자가 최대한 현대어 감각을 살려 풀어내려 한 흔적이 보여서, 고대어 특유의 리듬과 장중함을 느끼면서도 자연스럽게 따라갈 수 있었다.

'명화와 함께 읽는 일리아스'는 시편으로 된, 셀 수 없이 많은 등장인물이 나오는 시편으로 작성된 고전이라는 진입장벽을 부드럽게 허물어주었다. 텍스트와 명화, 그리고 번역의 세 가지 조화가 만들어낸 특별한 독서 경험이었다. 오랫동안 마음속에만 두었던 그리스 신화를 드디어 제대로 만난 것 같다. 다음에는 이 시리즈의 다른 책들도 꼭 읽어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스트 (컬러 명화 수록 무삭제 완역본) - 명화와 함께 읽는 현대지성 클래식 63
알베르 카뮈 지음, 유기환 옮김 / 현대지성 / 202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서적을 제공받아 재미있게 읽은 솔직 후기입니다.>

읽어보고 싶었던 고전들 중에 팬데믹 상황을 겪으며 더욱 흥미가 가던 책을 좋은 기회가 생겨 읽어볼 수 있어서 기뻤다.



일단 책 이야기를 하기 전에 '명화와 함께 읽는'이라는 타이틀이 주는 의미에 대해서 잠깐 이야기기해 보자면, 나에게 이건 굉장한 경험이었다.

중간중간에 삽입된 명화들은 삽화나 일러스트가 표현하지 못하는 묵직함으로 고전이 가진 특유의 서사로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장면들에 생명을 불어넣어 주었다. 이 그림들이 얼마나 놀랍도록 적재적소에 자리 잡았는지 책을 읽기 전에 훑어볼 때는 별 감흥이 없던 그림들이 제자리를 찾음으로써 그림에는 생기가, 텍스트에는 깊이가 더해져 책을 이해하는 데 너무나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앞으로도 고전은 '명화와 함께 읽는' 고전으로 읽어야 할 것 같다.

1940년대가 배경인 이 책의 내용으로 들어가 보면 우리의 2020년대 팬데믹 현실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경계하고, 이어서 무시하고, 결국에는 절망한다. 사회는 무너지고, 질병은 사람을 가르고, 남겨진 자들은 애도한다. 작품 속 인물들이 겪는 감정은 팬데믹을 겪은 우리의 감정선과 그대로 겹친다. 불안, 피로, 분노, 슬픔, 그리고 어쩔 수 없는 체념까지.

400페이지 가량의 긴 이야기임에도 등장인물이 많지 않아 그들의 감정에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었다. 언제나 담담하게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는 주인공 리외 의사와 함께 불안하다가, 피로를 느끼다가, 절망을 하고, 그렇게 이해와 공감과 분노를 함께할 수 있었다. 전염병이라는 거대한 재앙 앞에서 개인이 얼마나 무력할 수 있는지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서로를 붙잡으며 버텨야 한다는 사실을 화자는 책을 읽는 내내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적절한 장면에 들어간 명화가 긴 텍스트에 시각적 도움을 주어서 좀 더 깊이 빠져들 수 있었다.

앞으로 또다시 우리에게 전염병이라는 재앙이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 세대에 이 일을 분명히 겪었고, 마치 없었던 일인 듯 외면하고 살고 있는 그 힘든 나날들을 이 책을 읽으며 다시 기억해 냈다. 우리 시대가 겪은 재앙으로 소중한 사람이나 가진 것을 잃은 많은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들에게 작게나마 공감할 수 있었고, 특히 어느새 잊힌 당시 의료진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어서 무척 고마운 독서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상한 집 2 - 11개의 평면도 우케쓰 이상한 시리즈
우케쓰 지음, 김은모 옮김 / 리드비 / 202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서적을 제공받아 재미있게 읽은 솔직 후기입니다.>


'이상한 집 2'는 전작 '이상한 집'이 남긴 여운을 이어가면서도 한층 더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일본에서 2024년 종합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하고, 시리즈 누적 255만 부 판매를 돌파한 이유가 분명히 있다. 이번 작품에서는 전작을 읽고 작가에게 직접 연락한 사람들의 실제 경험이라는 설정으로, 11채의 기묘한 집 평면도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책의 가장 독특한 점은 ‘집의 평면도’가 중요한 단서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단순한 괴담이나 미스터리 소설이 아니라, 집 구조의 비정상적인 요소를 바탕으로 이상 현상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과정이 독창적이다. 낯선 구조, 이해할 수 없는 배치, 뭔가 찜찜한 느낌을 주는 공간들이 이야기를 더욱 오싹하게 만든다. ‘왜 이 집은 이렇게 지어졌을까?’라는 의문에서 출발해, 서서히 그 집에 얽힌 과거와 사건을 풀어나가는 전개가 몰입도를 높인다.


이상한 집 시리즈를 읽으며 흥미로웠던 점은, 이야기의 핵심이 단순히 기묘한 주택 구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집이 만들어진 목적과 얽힌 사람들의 감정, 그리고 그 감정을 풀어나가는 방식에 있다는 것이다. 이상하게 지어진 집들은 단순한 건축적 특이성이 아니라, 원한, 복수, 범죄 같은 인간의 깊은 감정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일본이라는 나라의 문화와 인습이 여기에 녹아 있으며, 특히 감정이 축적되는 방식과 이를 해소하는 방식은 조금은 괴상하다고 할 수 있다.


이야기는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되면서도 전혀 지루하지 않다. 집주인들의 증언을 듣고, 거기에 얽힌 수수께끼를 추리해 가는 과정이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읽다 보면 어느새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도달해 있을 정도로 가독성이 좋다. 과장되지 않은 문체와 깔끔한 구성 덕분에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받는다.


'이상한 집 2'는 단순한 괴담이나 유령 이야기와는 결이 다른 작품이다. 평면도를 통한 논리적인 접근, 실제 경험담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들이 주는 리얼리티, 그리고 일본의 문화적 요소들이 결합되며 독창적인 미스터리 세계를 만들어낸다. 재미있게 읽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자책] 가면제사
반지은 / 포레스트 웨일 / 202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서적을 제공받아 재미있게 읽은 솔직 후기입니다.>

반지은 작가의 '가면제사'는 제사라는 전통적 의식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기묘한 호러 소설이다. 한 집안의 독특한 풍습—제사 때마다 가족들이 하얀 가면을 쓰고 의식을 치르는 모습—은 단순한 전통을 넘어선 불길한 분위기를 조성하며 독자를 몰입하게 만든다. 가부장적 권위가 강하게 자리 잡은 이 집안에서는 제사에 대한 집착이 유독 두드러지며, 그 속에 많은 비밀들이 숨겨져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주인공은 이러한 진실을 알지 못한 채 혼란 속에서 방황하며, 읽는 이도 주인공 김지온과 함께 서서히 공포와 긴장감을 체험하게 된다.



이 소설의 가장 큰 강점은 압도적인 분위기 연출과 서스펜스를 유지하는 힘이다. 단순한 공포가 아닌, 집안의 전통과 얽힌 심리적 압박, 그리고 주인공의 꿈과 현실을 오가며 보여주는 장면들이 상상력을 자극한다. 또한, 주인공이 중심에 있지만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않는 듯한 미묘한 위치에 놓여 있어, 읽는 이로 하여금 역시 마치 소설 속에 들어간 듯한 느낌을 받게 한다.

그러나 이 소설에는 아쉬운 점도 있다. 가장 큰 단점은 이야기의 흐름이 결정적인 순간에 갑자기 끊긴다는 점이다. 아마도 다음 편이 나오겠지만 너무 아무 예고 없이 중요한 부분에서 끊겨버려서 너무 허탈했다. 또한, 전자책(E북)임에도 불구하고 PDF 파일 형식으로 제공되어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점도 단점이다. 글씨 크기 조정이 불가능하고 폰트 설정도 할 수 없어, 읽는 내내 불편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여러 가지 단점에도 불구하고, '가면제사'는 재미있다. 제목에 이끌려 생각없이 읽게 된 책인데 다음 편을 기대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는 조금 더 떠나도 됩니다 - 구석구석 여행자 전망키의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전망키 전은재 지음 / 북스고 / 202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서적을 제공받아 재미있게 읽은 솔직 후기입니다.>


여행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감각을 깨우고 마음을 채우는 경험이다. 『우리는 조금 더 떠나도 됩니다』는 그런 여행의 본질을 담고 있는 책이다. 9년간 여행 작가로 활동해 온 전망키 전은재 작가가 한국의 아름답고 고즈넉한 50여 곳을 소개하며, 여행지를 직접 찾아가 느낀 감상을 따뜻한 문장과 감각적인 사진으로 전한다.




이 책이 돋보이는 이유는 단순한 여행 가이드북이 아니라는 점이다. 대개 여행 책들은 방문 시간, 교통편, 맛집 정보 등에 집중하지만, 이 책은 여행지에서 느낄 수 있는 분위기와 감성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작가는 여행자의 눈높이에서 ‘어떤 순간이 가장 아름다운지’, ‘어떤 계절에 방문하면 더 깊은 감동을 받을 수 있는지’ 등을 짚어준다.


책의 구성 또한 인상적이다. 여행지를 지역별, 테마별로 정리하여 독자가 자신의 관심사에 맞게 찾아볼 수 있도록 했다. 또, 각 여행지에 대한 설명이 두세 페이지 정도로 짧게 정리되어 있어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숨 막히게 정보를 쏟아내는 것이 아니라 글에 여백이 많아 독자가 스스로의 여행을 상상할 여지도 남겨둔다. 이러한 점에서 이 책은 단순히 ‘어디를 갈 것인가’보다 ‘어떻게 여행할 것인가’에 대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 책의 가장 특별한 부분은, 작가가 직접 촬영한 사진이다. 여행지의 순간을 포착한 사진들은 단순한 풍경을 넘어 감정을 전달하며,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여행하는 듯한 기분을 선사한다. 여행지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담은 사진과 글을 함께 보면, 마치 작가와 함께 그 장소를 어슬렁거리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 책이 단순한 정보 입이 아니라, 여행의 설렘과 기대감이 독자에게 전달되는 이유이다. 가끔 작가가 인생 샷 포인트도 알려준다.


『우리는 조금 더 떠나도 됩니다』는 여행을 준비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당장 떠날 수 없는 사람에게도 좋은 위로가 될 것 같다. 우리는 종종 바쁜 일상 속에서 여행을 미루지만, 이 책을 통해 가까운 곳에서도 충분히 아름다운 순간을 만날 수 있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는듯하다. 꼭 거창한 여행이 아니라도, 일상의 틈에서 잠깐의 외출만으로도 충분한 건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