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책 이야기를 하기 전에 '명화와 함께 읽는'이라는 타이틀이 주는 의미에 대해서 잠깐 이야기기해 보자면, 나에게 이건 굉장한 경험이었다.
중간중간에 삽입된 명화들은 삽화나 일러스트가 표현하지 못하는 묵직함으로 고전이 가진 특유의 서사로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장면들에 생명을 불어넣어 주었다. 이 그림들이 얼마나 놀랍도록 적재적소에 자리 잡았는지 책을 읽기 전에 훑어볼 때는 별 감흥이 없던 그림들이 제자리를 찾음으로써 그림에는 생기가, 텍스트에는 깊이가 더해져 책을 이해하는 데 너무나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앞으로도 고전은 '명화와 함께 읽는' 고전으로 읽어야 할 것 같다.
1940년대가 배경인 이 책의 내용으로 들어가 보면 우리의 2020년대 팬데믹 현실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경계하고, 이어서 무시하고, 결국에는 절망한다. 사회는 무너지고, 질병은 사람을 가르고, 남겨진 자들은 애도한다. 작품 속 인물들이 겪는 감정은 팬데믹을 겪은 우리의 감정선과 그대로 겹친다. 불안, 피로, 분노, 슬픔, 그리고 어쩔 수 없는 체념까지.
400페이지 가량의 긴 이야기임에도 등장인물이 많지 않아 그들의 감정에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었다. 언제나 담담하게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는 주인공 리외 의사와 함께 불안하다가, 피로를 느끼다가, 절망을 하고, 그렇게 이해와 공감과 분노를 함께할 수 있었다. 전염병이라는 거대한 재앙 앞에서 개인이 얼마나 무력할 수 있는지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서로를 붙잡으며 버텨야 한다는 사실을 화자는 책을 읽는 내내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적절한 장면에 들어간 명화가 긴 텍스트에 시각적 도움을 주어서 좀 더 깊이 빠져들 수 있었다.
앞으로 또다시 우리에게 전염병이라는 재앙이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 세대에 이 일을 분명히 겪었고, 마치 없었던 일인 듯 외면하고 살고 있는 그 힘든 나날들을 이 책을 읽으며 다시 기억해 냈다. 우리 시대가 겪은 재앙으로 소중한 사람이나 가진 것을 잃은 많은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들에게 작게나마 공감할 수 있었고, 특히 어느새 잊힌 당시 의료진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어서 무척 고마운 독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