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다 보면 일리아스에 등장하는 신들은 생각보다 ‘인간적’이다. 서로 말싸움을 벌이고, 시기하고, 심지어 인간들과 직접 싸우기도 한다. 번개를 쏘고 태양으로 마차를 몰던, 강하게만 보였던 고대 신화 속 신들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게 표현한 이런 장면들 속에서 오래전 그리스인들의 사고방식, 문화, 신을 바라보는 태도 등을 엿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명화와 함께 읽는 일리아스'는 무려 842페이지에 달하는 ‘벽돌책’이다. 하지만 무겁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수많은 명화들이 이야기에 맞게 자연스럽게 삽입되어 있어서, 오히려 가독성이 높다. 등장인물들의 상황이나 감정을 화가들이 해석한 그림들을 통해 함께 바라보니, 복잡한 인물 관계나 낯선 이름들도 쉽게 익숙해졌다. 그림을 통해 하나하나 시각적으로 짚어주니 단순한 독서가 아니라 영화를 보는 기분이라해도 과장되지 않는 표현이다.
이번 번역은 고대 그리스어 완역본이라 시편 그대로의 형식을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일반 소설처럼 술술 넘어가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지나치게 어렵지도 않았다. 번역자가 최대한 현대어 감각을 살려 풀어내려 한 흔적이 보여서, 고대어 특유의 리듬과 장중함을 느끼면서도 자연스럽게 따라갈 수 있었다.
'명화와 함께 읽는 일리아스'는 시편으로 된, 셀 수 없이 많은 등장인물이 나오는 시편으로 작성된 고전이라는 진입장벽을 부드럽게 허물어주었다. 텍스트와 명화, 그리고 번역의 세 가지 조화가 만들어낸 특별한 독서 경험이었다. 오랫동안 마음속에만 두었던 그리스 신화를 드디어 제대로 만난 것 같다. 다음에는 이 시리즈의 다른 책들도 꼭 읽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