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적인 미스터리를 쓰는 법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민경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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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서적을 제공받아 재미있게 읽은 솔직 후기입니다.>


유명작가 나카야마 시치리 이번 작품은 작법서와 에세이를 합쳤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그가 ‘무결근, 무지각 38년’이라는 말을 실제로 자신에게 적용하며 살아온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리고 전업 작가가 된 뒤에도 하루 3시간 수면, 하루 1식 또는 2식, 하루에 반드시 영화 한 편, 그리고 책 한 권. 화장실도 하루 1번으로 제한한다고 한다.

이것이 그의 작가로서 선택한 삶이다.




아니, 이건 ‘삶’이라기보다는 일종의 기계 같은 루틴이다.

그는 밥을 먹는것도 책을 쓰기위한 에너지를 채우기 위한 것이며 나머지 그의 모든 생활이 그저 책을 쓰기위해 만들어진 삶의 방식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것을 고통의 표현이 아니라 ‘선택의 태도’로 말하고 있다.


글을 쓰기 위한 모든 것을 정비해두고, 글을 중심에 두고 살아간다는 선언.

이 책은 기술서가 아니라, 선언문에 가깝다.

‘이렇게 살아야만 한다’는 엄포가 아니라,

‘나는 이렇게 살아왔다. 그리고 나는 쓰는 사람이 되었다’는 담백한 고백.


책을 읽다 보면 작가가 얼마나 ‘책임’이라는 단어를 중요하게 여기는지가 느껴진다.

'작가 형사 부스지마'에서 내내 보여준 것처럼, 그는 책임감 없는 작가를 정말 경멸한다.

읽는 사람의 시간을 앗아가 놓고, 그에 대한 책임도 없고 준비도 안 된 채 글을 쓴다는 건 그에게는 범죄나 다름없다.

그는 그것을 자신의 작품수로 증명한다.


이 책의 제목은 '합리적인 미스터리를 쓰는 법'이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결국 하나로 귀결된다. 글을 쓰는 모든 이들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결론은 하나입니다. 인풋의 양을 이기는 건 없습니다.” (p.57)




아무리 트릭을 기가 막히게 떠올려도, 아무리 문장을 잘 다듬어도

결국 독자가 느끼는 신선함이나 감동은 얼마나 많은 것을 본 눈과, 얼마나 깊게 읽은 마음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그는 매일 영화를 보고, 매일 책을 읽는다. 그것도 그저 ‘많이 보기’가 아니라, 철저히 입력(input)된 정보를 어떻게 가공하느냐에 집중한다. 이건 단순한 다독이 아니라, 수집-가공-배치의 일이다.


책은 두 시간이면 읽을 수 있을 만큼 가볍지만, 그 안에 담긴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다.

한 페이지, 혹은 두 페이지 안에 하나의 주제로 구성되어 있어 읽기 편했고,

작법서이면서도 동시에 작가라는 삶의 방식을 관통하는 일기장처럼 느껴졌다.

무겁지도, 그렇다고 가볍게 넘길 수도 없는, 균형 잘 잡힌 이야기들..


글을 잘 쓰는 법보다 “어떻게 써야 할지를 고민하는 인간이 되는 법”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래서 '합리적인 미스터리를 쓰는 법'이라는 제목보다

'합리적인 작가로 살아가는 법'이라고 불러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다.

배울 게 많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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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층 탐정
정명섭 지음 / 팩토리나인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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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지적이고 싶은 사람을 위한 명문장 필사책
박경만 지음 / 책글터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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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서적을 제공받아 재미있게 읽은 솔직 후기입니다.>

좋은 문장을 만난다는 건,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과 닮아 있다

'인생에서 지적이고 싶은 사람을 위한 명문장 필사책'은 말하자면 '문장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인도서'다. 잘 정돈된 구절들, 깔끔하게 선을 그은 노트 페이지, 책장을 활짝 펼칠 수 있는 노출제본까지. 이 모든 게 어쩐지 '이제는 써보라'는 조용한 초대처럼 느껴진다.


왼쪽엔 명문장, 오른쪽엔 나의 자리

책의 구성은 간단하다. 왼쪽 페이지에는 국내외 작가 120여 명의 대표작에서 발췌한 문장들이 실려 있고, 오른쪽엔 그 문장을 따라 써볼 수 있도록 줄이 놓여 있다. 단순하지만 이 구조가 주는 힘은 크다. 나만의 독서 공간이 생기는 느낌이다.




노출제본으로 180도 펼쳐지는 자유로움

손으로 쓰는 작업은 불편함을 허락하지 않는다. 책이 덜 펼쳐지거나 종이가 얇고 번지면 금세 흥이 식는다. 그런데 이 책은 노출제본 방식을 채택해서 180도로 착 펴진다. 필사에 최적화된 구조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필기구도 잘 받는 종이 질감

만년필은 쓰지 않지만, 젤펜이나 연필도 부드럽게 미끄러진다. 종이가 부드럽고 질감이 좋아서 한 페이지를 채우는 동안 ‘필사의 물리적 기쁨’까지 느낄 수 있다.


‘좋은 문장’의 큐레이션이 만들어낸 감정의 흐름

단지 멋진 문장만 모은 게 아니다. 어떤 순서로 배열되어 있는지, 어떤 문장들이 나란히 놓여 있는지에 따라 쓰는 이의 감정도 달라진다. 하루에 한 문장씩 따라 쓰다 보면, 어쩌면 내 안에 쌓인 감정의 결들이 조용히 정리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하게된다.


필사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고 싶은 사람’에게

필사를 '잘'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늘 있었다. 하지만, 어떤 문장이 '필사하기 좋은 문장'인지를 판단하는 건 어렵다. 인터넷에서 누군가 올린 글귀를 베껴도 공감이 되지 않을 때가 많았고, 책을 읽다 감동했던 문장을 다시 보면 그 순간의 감정이 사라진 뒤라 무덤덤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고민을 대신해준다. 이미 누군가가 '문장의 본질'을 고민하고, '쓰는 행위에 적합한 문장'을 고르고 다듬어 내 앞에 펼쳐놓은 것이다. 나는 단지 그 문장을 보고, 읽고, 그리고 손으로 따라 쓰면 된다.


그리고 그 단순한 과정을 반복하는 동안, 왠지 모르게 나의 머릿속은 아주 조용해진다. 한꺼번에 해치우기 보다는 시간을 두고 한장씩, 혹은 두장씩 따라쓰며 내가 아직 읽지 않은 좋은 책들의 문장들을 훔쳐보는 재미를 느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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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드디어 만나는 북유럽 동화 - 노르웨이부터 아이슬란드까지 신비롭고 환상적인 북유럽 동화 32편 드디어 시리즈 6
페테르 크리스텐 아스비에른센 지음, 카이 닐센 그림, 서미석 옮김 / 현대지성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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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서적을 제공받아 재미있게 읽은 솔직 후기입니다.>


오늘은 조금 특별한 책을 읽었다. '드디어 만나는 북유럽 동화'.

제목부터 참 정겹다. 행여나 구겨질까 너무 예쁜 책 표지를 살며시 넘겨보면 “아… 동화란 이런 거였지” 하고 한숨처럼 새어 나왔다.

오래간만에 만나보는 동화는 신선하다.




어릴 적을 생각하면 사실 동화에 대한 기억이 많지 않다. 초등학교 고학년쯤 되어서야 책을 제법 읽기 시작했는데, 그땐 이미 동화는 조금 유치하게 느껴졌던 것도 같다.

하지만 오늘, '드디어 만나는 북유럽 동화'를 읽으며 깨달았다.

내가 동화를 몰랐구나, 아니… 동화를 다시 읽게 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이 되어 다시 읽어보면 비로소 동화의 깊이를 조금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책은 총 32편의 짧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단편이라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데, 한꺼번에 후루룩 넘기기보다 하나하나 천천히 음미하고 싶어진다. 마치 비 오는 날 창가에서 조용히 커피 한 잔과 함께, 한 편씩 아껴가며 읽고 싶은 기분. 가볍게 시작했지만, 읽고 나면 마음 한구석이 따뜻하게 데워지는 느낌이 든다.

누가 나쁘고 누가 착하다를 굳이 구분하지 않고, 그저 흘러가는 이야기 속에서 삶의 한 조각을 툭 내어주는 기분. 그리고 그 이야기를 읽고 나면 괜히 혼자서 흐뭇해지고, 내 안의 뭔가가 조용히 정돈되는 느낌. 그게 참 좋았다.




무엇보다 이 책을 더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건, 세계적인 일러스트레이터 카이 닐센(Kay Nielsen)의 일러스트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책은 일러스트가 다했다.

예전부터 카이 닐센의 삽화를 참 좋아했는데, 이번에도 역시 실망시키지 않는다.

그림이 등장할 때마다, 이야기가 다섯 배쯤 재미있어지는 느낌, 마치 활자로만 존재하던 이야기에 순결이 불어넣어지는 마법 같은 느낌이다.

그림 하나만으로도 그 장면이 머릿속에 뚜렷이 그려지고, 마치 애니메이션처럼 장면들이 생생히 펼쳐진다.

굳이 정리하자면, 이 책은 동화의 ‘기본기’를 아주 잘 보여주는 책이다. 왕주와 공주가 나오고 마법사와 욕심 많은 형제들이 등장한다. 거기에 북유럽 특유의 신비로운 분위기와, 말없이 건네는 따스함, 그리고 카이 닐센의 황홀한 일러스트.

오랜만에 동화라는 단어가 주는 따뜻함을 다시 느낄 수 있다.

아마도 '드디어 만나는 북유럽 동화'는 한동안 내 책상 위를 지켜줄 것 같다. 좋아하는 시집처럼 하루 한 편씩, 혹은 마음이 무거운 날 한 편씩 꺼내 읽고 싶은 그런 책, 이 책을 만나서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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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명문장 필사 100 - 생각을 깊게 삶을 단단하게 마음을 다해 쓰는 글씨, 나만의 필사책
김지수 엮음 / 마음시선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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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서적을 제공받아 재미있게 읽은 솔직 후기입니다.>


가끔은 종이 위에 손글씨를 쓰고 싶어질 때가 있다. 스마트폰 자판만 두드리다가 문득, 펜을 들고 느리게 글자를 그려가고 싶은 순간이 온다. 하지만 작가가 아닌 우리는 무엇을 적어야 할지 망설이다가 노트를 접게 되는 날이 많다. 바로 그런 날, 우리는 『고전 명문장 필사 100』을 펼치면 된다.



요즘 고전에 도전해 보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고전이라고 하면 선뜻 책을 펼치기 부담스럽다. '1984',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오만과 편견' 같은 이름들은 익숙하지만, 책장을 넘기는 건 왠지 어렵고 무겁게만 느껴졌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런 마음을 부드럽게 만들어준다.

책을 펼치면 왼쪽에는 짧고 힘 있는 고전의 명문장이 담겨 있었고, 오른쪽에는 넉넉한 빈칸이 준비되어 있다. "하루에 한 줄, 나만의 속도로 따라 쓰면 된다"는 듯한, 따뜻한 배려가 느껴졌다. 무엇보다 종이 질감이 너무 좋다. 펜촉이 부드럽게 미끄러지면서도 적당한 저항이 있어, 손글씨를 쓰는 즐거움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노출 제본이라 책이 180도로 편하게 펼쳐지는 것도 정말 마음에 들었다. 필사를 하려면 책이 들뜨지 않고 평평하게 펴져야 하는데,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편안하게 누워 있었다. 손으로 꼭 누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는 책. 덕분에 글씨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게다가 필사한 문장의 출처를 바로 뒤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단순히 문장을 베끼는 게 아니라, 그 문장이 어떤 이야기 안에서 나왔는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예를 들어, '죄와 벌'의 한 문장을 썼을 때, 그 문장이 라스콜리니코프라는 인물이 얼마나 치열하게 자신의 죄책감과 싸웠는지를 알려주면서, 고전이 단순한 과거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우리의 고민과도 이어진다는 걸 느끼도록 안내해 준다.


준비된 문장을 필사하고, 책 맨 뒤에 압출된 짧은 책의 스토리를 접하고 나면 원작을 읽고 싶다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긴다. '변신'의 한 문장을 쓰고 나니, 갑자기 카프카가 왜 그런 이야기를 썼는지 궁금해지고, '어린 왕자'의 짧은 대사를 따라 쓰고 나서는, 오래전에 읽었던 이야기를 다시 꺼내 보고 싶어졌다. 이 책은 단순히 문장을 모아놓은 책이 아니라, 고전으로 가는 작은 다리가 되어준다.



필사를 하면서 나만의 고전 노트가 만들어지는 것도 정말 뿌듯하다. 며칠 동안 쓰고 나서 다시 첫 장을 펼쳐보니, 내 손글씨로 가득 찬 문장들이 나를 반겨줬다. 책에 함부로 낙서할 수 없는 성격이지만 내가 적은 필사에는 내 생각을 담은 낙서를 할 수 있는 것도 좋다. 그렇게 고전과 나의 생각이 만나 세상에 하나뿐인 나만의 책이 된다. 필사를 위한 책은 처음 접해보았는데 너무나 즐거운 경험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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