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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 지구라는 놀라운 행성에서 함께 살아가는 존재에게 보내는 러브레터
아이작 유엔 지음, 성소희 옮김 / 알레 / 2025년 5월
평점 :
작가 ‘아이작 유엔’은 이야기꾼이다. 나무늘보 이야기를 하다가, 어느새 나무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고, 또 그러다 보면 꼬마해오라기가 인간이 붙여준 이름에도 너그러운 마음으로 봄철 내내 노래를 부르는 모습에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

책 속에는 지구에 존재하는 수많은 동물, 나무, 식물, 곤충, 게, 뱀 등 셀 수 없이 많은 종들 중에서 극히 일부만이 등장하지만, 작가는 굳이 의인화를 하지 않아도 이들을 충분히 인간의 이해 영역 안으로 끌어들인다.
예를 들어, 만약 당신의 파티에 코끼리를 초대한다면 역사상 유일하게 샐러드가 동이 날 거라는 유쾌한 상상을 하기도 하고, 콧구멍을 눈이라고 착각해 항상 웃는 얼굴이라고 믿는 홍어가 사실은 특별히 잘 토라지고 화를 잘 낸다는 등의 농담과 말장난이 이어진다. 우리는 작가의 장단에 적당히 맞춰서 함께 키득거려주기만 하면 된다.
이 책은 인간이 지구상의 수많은 생물들의 터전을 파괴하고, 그들조차도 살아남을 수 없게 만들고 있는 현실을 두고 굳이 설교하거나 비판하려 들지 않는다. 오히려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말한다.
책 전체는 지구에 존재하는 다양한 종들의 여흥과 습성, 취향, 성격에 대한 잡담처럼 진행된다. 그러면서도 문득문득 우리에게 소름 끼치는 진실을 던진다.
“혹독한 빙하 시대를 살아남은 나무늘보는 얼음이 녹으며 다시 찾아온 따뜻한 기후에는 대처하지 못했다. 게다가 새로운 세상과 함께 새로운 위협도 나타났다. 두 발로 걸으며 사냥하는 이 동물은 커다란 덩치로도 날카로운 발톱으로도 막을 수 없었다.” (p.78)
이처럼 중간중간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주는가 하면, 또 한편으로는 희망도 이야기한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무너뜨리고, 가꾼다. 심지어 이 순간에도 우리는 해를 입히고, 눈물을 흘린다. 스스로 초래한 일의 무게를 짊어진 인간은 여전히 타자를 끈질기게 괴롭힐 힘이 있다. 하지만 그런 힘을 지니고도 시선을 반대로 돌려서 집착하는 편협한 생각에서 벗어나 더 넓고 더 커다란 공동체를 보고 깜짝 놀랄 수도 있다.” (p.61)
그럼에도, 작가는 비관적인 사람이 아니다. 책 어디에서도 인간을 직접적으로 비난하거나, 비관의 늪에 빠져 우울해하지 않는다. 대신 조심스럽고 은근한 방식으로,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길에 대한 힌트를 건넨다.
“말을 가지고 놀고, 온 지구를 가지고 놀고, 두 놀이를 뒤섞어 보라. 관점도 바꾸고 감각도 바꿔보라. 땅거미가 질 무렵이나 가을 햇살이 퍼질 때 밖으로 나가서 강둑에 잠시 머물러보라. 기러기 떼가 되는 대로 V자 그리며 하늘 높이 날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라. 물가를 굽어보는 참나무에서 도토리가 떨어지는 소리를 들어보라. 도토리 소리는 피라미가 수면 뒤로 뛰어올랐다가 들어갈 때 나는 퐁당 소리와 무엇이 다른지 귀 기울여보라. 절대로 완전히 잠잠해지지 않는 잔물결을 응시해보라…. 목을 길게 빼고 살펴보라.” (p.254)
이 문장을 읽으며 ‘목을 길게 빼고 살펴보라’는 말이 계속 마음에 남는다. 살아있는 생명체를 바라볼 때, 조금만 더 시간을 들이고 관찰한다면 우리가 혐오하거나 무시했던 존재들에 대해 조금쯤은 이해하게 되지 않을까. 적어도 같은 생명체로서의 약간의 공감은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현실은 매우 다르다. 어느새 우리는 곤충과 해충을 구분하지 못하고, 다리 많은 생명체는 무조건 혐오의 대상이 되었으며, 심지어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벌레가 산다는 이유로 숲에 약을 뿌리고, 예쁜 뿔을 가졌다는 이유로 코끼리를 사냥하며, 넓디넓은 바다를 자유롭게 다니던 고래는 그물에 걸려 죽어간다.
자연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얼마나 좁아졌는지 돌아보게 된다. 책을 읽으며 수많은 생명체를 다시 바라보게 되었지만, 끝내 벌레나 뱀 종류의 사진은 찾아보지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한 반성도 필요하다.
관찰은 마음이 여는 일이고, 이해는 시간이 들여야 가능하다. 그러니 작가의 말처럼, ‘목을 길게 빼고’ 세상을 다시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잔잔히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생각이 많아지는 책이다.
헤스티아(@hestia_hotforever)가 모집한 서평단에 당첨되어 알레 (@allez_pub)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