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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오파트라와 카이사르 ㅣ 클레오파트라의 남자들
조지 버나드 쇼 지음, 김연수 옮김 / 히스토리퀸 / 2025년 6월
평점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재미있게 읽고 생각을 전이한 서평입니다.>

조지 버나드 쇼의 희곡 『클레오파트라와 카이사르』는 제목만 보면 뭔가 거창하고 역사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지만, 막상 책을 펼쳐보면 그 분위기가 꽤 다르다. 작가 특유의 유쾌함과 풍자가 번뜩이는 대사들 덕분에, 아주 오래된 고대 로마 이야기가 갑자기 가까운 옆집 얘기처럼 느껴진다.

처음엔 클레오파트라를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치명적이고 매혹적인 여왕’ 이미지로만 생각했는데, 이 작품 속의 그녀는 훨씬 다르다. 어리숙하고 철없는 소녀, 겁도 많고 잘 우는 애기 같기도 했다. 그런데 바로 그 점이 이 희곡을 특별하게 만들었다. 작가는 클레오파트라를 전설적인 인물로 그리는 대신, ‘성장하는 사람’으로 그려낸다. 자기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겁에 질려 도망치던 소녀가, 카이사르와의 대화를 거치며 점점 리더로서의 자의식과 책임감을 배워간다. 그 과정이 너무 생생하고 사랑스럽다.

그리고 카이사르!
그는 힘으로 밀어붙이는 정복자라기보다는, 이상하리만치 여유롭고 사려 깊은 철학자 같았다. 전쟁 중에도 유머를 잃지 않고, 클레오파트라와 이야기할 때는 아이에게 말하듯 다정하게 설명해준다. ‘위대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위대하게 만든다’는 말이 떠올랐다. 클레오파트라가 성장할 수 있었던 건, 카이사르가 그녀를 억누르지 않고 그녀에게 질문하며 답을 찾게 만들어 준 덕분이다.
원 제목은 ‘Caesar and Clopatra’로 1899년에 쓰여졌다. 원제에서 알 수 있듯이 내 생각에 이 책의 주인공은 카이사르 같다. 상냥한 남자인척 하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여유있고 능글맞은 정치인으로 멋지게 장식하는 그의 모습이 좀 얄밉기도 하다.
희곡의 모습을 한 이 책은 그 생김새보다 훨씬 재미있다. 고대의 대제국을 다루고 있으면서도 이야기의 중심은 인간적인 대화와 성찰에 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작가의 위트가 촘촘히 박혀 있어서, 가볍게 웃다가도, ‘아…’ 하고 생각하게 되는 순간들이 찾아온다.
이 희곡은 단지 역사극이 아니다. 작가의 탁월한 글 솜씨로 클레오파트라를 포함한 모든 등장인물들에게 생명력을 불어넣어 마치 눈앞에서 한편의 연극을 보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클레오파트라의 이미지는 이 책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조지 버나드 쇼의 다른 작품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되는 고전이며 명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