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다의 도시관찰일기
이다 지음 / 반비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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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서적을 제공받아 재미있게 읽은 솔직 후기입니다.>


일단 이 책은, 너무 재미있다. 약 2시간 조금 넘는 시간 동안 꼼짝도 하지 않고 책을 끝냈으며 중간중간 껄껄거리며 웃었다. 두리번거리며 걸어 다니느라 항상 중간에 길을 잃곤 하는 나는 공감 가는 일이 너무 많았다. 나 같은 사람이 아니라도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 봤을, 경험해 봤을 이야기들이 가득한 책이고, 그 이야기를 너무나 재미있게 풀어놓은 책이다.




"관찰하면 관심이 생긴다. 관심이 생기면 이해하고 싶어진다. 그렇게 내가 존재하는 이 세상을 조금씩 알아가고 싶다."




거창한 관찰일기가 아니다. 내가 지난주에 흘려 한 생각들을 콕 집어서 이야깃거리로 만들었다. 나도 작가처럼 오래된 문방구를 좋아한다. 물론 대형 쇼핑몰 서점이나 다이소도 좋아하지만, 점점 없어지고 있는 오래된 문방구를 보면 꼭 들어가야 직성이 풀린다. 이럴 때 작가의 팁이 있다. 어정쩡한 나이의 어른이 어울리지 않는 곳에 들어갔을 때 수상해 보이지 않으며 자연스럽게 공간에 머물 수 있게 하는 한마디.




"카드나 엽서 있어요?"

그렇게 오래된 비닐 행거 안을 뒤져서 어이없는 카드나 엽서 한두 장을 손에 쥐고 나면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다. "좀 둘러볼게요~." 이천만 문구인들에게 이건 정말 개꿀팁이다.


식당을 고르는 일, 그리고 그 식당에서 밥을 먹고 하는 생각, 버스 탈 때의 행동 요령 등 몇 가지 작가의 생각은 정말 나와 쌍둥이라고 해도 믿어질 지경인데, 중요한 건 이런 사소하고 보편적인 생각을 기가 막히게 즐겁게 표현해 놓은 작가의 글 솜씨와 찰떡같이 어울리는 그녀의 일러스트다.첫 문장에 말했듯이, 재미있다.




오늘 책을 읽고 저녁을 먹은 후에 산책을 다녀왔다. 언제나처럼 사소한 것들이 눈에 들어오지만 작가를 흉내 내듯 이 사소함에 이야기가 더해진다. 이렇게 쓰면 어떨까, 이렇게 그리면 어떨까, 나는 솜씨가 없으니 아마도 이렇게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오지는 않겠지만 상상만으로도 오늘의 산책은 더 즐거웠다.




작가는 관찰하는 산책의 장점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꼭 사물이나 사람에 대해서도,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서도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닐까?


"관찰을 할 때는 나 자신이 중요하지 않다. 그것이 관찰의 핵심이다. 그러나 평소의 나는 나 자신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하다. 자꾸만 예전의 잘못과 아쉬운 점을 되새긴다. '나는 왜 그럴까?' '나는 왜 그랬을까?' 모든 게 '나는', '나는'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관찰을 할 때는 잠시 나를 잊어버릴 수 있다..... 관찰을 시작하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내가 아닌 것들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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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기원 - 우주와 인간 그리고 세상 모든 탄생의 역사
김서형 지음 / 클랩북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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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서적을 제공받아 재미있게 읽은 솔직 후기입니다.>


존재의 기원 –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묻는 여정

빅뱅으로 우주가 탄생한 순간부터 138억 년이라는 기나긴 시간을 지나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 거대한 흐름을 이렇게 쉽게 풀어낸 책이 또 있을까? 『존재의 기원』은 말 그대로 ‘쉽다’. 얼마나 쉽게 읽히냐 하면, 과학책은 늘 어려웠던 나조차 한 번에 읽을 수 있을 정도다. 고등교육을 받은 우리가 어디선가 들어봤을 법한 이야기들이 이 책을 읽고 나서야 안개 속에서 빠져나와 자리를 잡는다.





김서형 작가는 과학자의 시선으로 이 세계를 바라보지만, 이야기꾼의 언어로 풀어낸다. 단순히 과학 이론을 나열하는 게 아니라, 신화와 역사, 인간의 실수와 진보, 우주의 법칙과 철학적 질문들을 하나로 엮어낸다. 빅히스토리라는 낯설고 거대한 틀을 복잡하지 않게, 오히려 익숙하고 자연스럽게 설명해낸다. '구성요소'와 '골디락스 조건'이라는 개념이 만나 ‘복잡성’을 창조하고, 그 결과로 별이 탄생하고, 생명이 시작되고, 인간이 출현하게 된다는 흐름은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정돈된 구조다.





나는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와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도 시도했지만 끝까지 읽지 못했다. 시작은 흥미로웠지만 뒤로 갈수록 낯선 배경과 번역된 문장들이 벽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존재의 기원』은 달랐다. 무겁고 낯설어 보이는 주제임에도 술술 읽혔다. 그 이유는 명확하다. 이 책은 처음부터 ‘우리말’로 쓰여졌기 때문이다. 같은 문화에서 형성된 언어는 뇌가 받아들이기에 더 빠르고 자연스럽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책은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서, 인류가 스스로에게 던져왔던 근본적인 질문들을 다시 물을 수 있게 만든다.


“우리가 우주의 먼지에서 시작된 존재임을 자각하여, 지구라는 푸른 행성을 지키는 책임을 자발적으로 감당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가 어디서 왔고, 지금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나아갈지를 묻는 그 질문의 끝은 다시 ‘우리는 어떤 존재가 될 것인가?’라는 물음으로 이어집니다.”


책을 덮고 나서도 이 두 문장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과학은 단지 과거를 설명하는 학문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야 할지를 묻는 거대한 거울이라는 걸 느꼈다. 『존재의 기원』은 단순한 과학책이 아니다. 그것은 인류의 존재 이유를 묻는 성찰의 여정이자,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 푸른 행성에 대한 책임감을 일깨우는 책이다.






359페이지의 두께에 주눅들지 말자. 이 책은 진짜로 재미있다. 언제 무엇이 생겨났고, 우리는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를 찬찬히 따라가다 보면, 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 그리고 나 자신이라는 작은 존재가 얼마나 긴 시간과 복잡한 우연의 결과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존재의 기원』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에 꼭 필요한 이야기다.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를 묻는 일은 결국, 지금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묻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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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낙원에서 만나자 - 이 계절을 함께 건너는 당신에게
하태완 지음 / 북로망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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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서적을 제공받아 재미있게 읽은 솔직 후기입니다.>


『우리의 낙원에서 만나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괜찮아”라는 말을 다정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건네는 책이다. 누군가에게는 그 한 마디가 인생 전체를 흔들 만큼 깊이 다가올 수 있다. 바로 그런 경험을, 나는 이 책을 통해 했다. 이 책은 단순한 에세이가 아니다. 마음이 무너질 듯한 날, 그 잔해 위에 놓인 조용한 손길 같고, 한겨울을 건너는 어깨 위에 포근히 내려앉는 햇살 같다.




우리는 종종 일상이라는 거대한 기계 안에서 감정을 눌러두고 살아간다. 괜찮은 척, 무던한 척, 충분히 애쓰고 있는 자신을 모른 척. 그러다 문득, 자신이 너무 낯설어지는 순간이 온다. 이 책은 그런 우리에게 말해준다. "당신은 그 자체로 충분하다"고.




하태완 작가는 그간의 책들에서도 보여주었듯 따뜻하고 섬세한 언어로 독자들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하지만 이번 책에서는 한층 더 깊고 부드럽다. 단순한 위로나 응원이 아니라, 오랫동안 그 사람의 마음 곁에 앉아 다정하게 기다리는 느낌이다. 작가가 던지는 문장 하나하나는 누군가를 위한 짧은 편지 같기도 하고, 스스로를 향한 위로의 메모 같기도 하다. 읽다 보면 ‘이건 나를 위한 글이구나’ 싶은 구절들이 곳곳에서 반짝인다.





살아가며 우리가 느끼는 좌절과 실수, 고단함과 무력감을 전혀 이상하거나 특별한 것으로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감정들마저도 삶의 한 방식이고, 그조차 의미 있는 여정이라고 말해준다. 그 말 한 마디가 마음속에 쌓여 있던 부끄러움과 두려움을 한 겹씩 벗겨내 주는 느낌이다.


책은 ‘낙원’이라는 상징을 통해 우리가 바라는 궁극적인 위로의 공간을 상상하게 한다. 그것은 누군가와의 관계일 수도 있고, 스스로를 받아들이는 마음속의 평온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그 낙원이 거창한 이상향이 아니라는 점이다. 마음을 기댈 수 있는 단 한 사람, 나의 고단함을 알아주는 단 한 문장이 때론 그 자체로 낙원이 될 수 있다는 것.


각 장에는 ‘낙원’에 대한 다양한 변주들이 있다. 첫 번째 낙원은 자신을 안아주는 것, 두 번째 낙원은 삶의 리듬을 받아들이는 것, 세 번째는 관계 속에서 길을 찾는 것, 그리고 네 번째는 사랑이라는 머무름. 이 낙원들은 어떤 교훈을 주려 하지 않는다. 대신 조용히 속삭인다. “네가 느끼는 그 감정은 틀리지 않았어.”


중간중간 삽입된 풍경 사진도 인상적이다. 책 속 문장들이 가슴을 어루만진다면, 사진들은 시선을 맑게 하고 숨을 고르게 한다. 고요한 호수, 싱그러운 초록, 해 질 무렵의 노을. 바쁜 삶 속에서 잠깐이라도 멈춰 쉬게 하는 여백들이다. 사진과 글이 만나 하나의 온기 있는 장면을 완성한다.


책을 덮고 난 뒤, 가장 오래 남는 감정은 ‘편안함’이었다. 마치 나를 잘 아는 친구가 내 얘기를 조용히 들어주고, 다 듣고 나서 “그래도 잘했어”라고 말해준 듯한 기분. 마음이 무너졌을 때 꼭 필요한 건 화려한 위로나 극적인 반전이 아니다. 그저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존재 자체를 인정해주는 다정한 말 한마디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낙원에서 만나자』는 그런 다정함을 가진 책이다.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독자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그리고 잊고 있었던 자존감의 불씨를 다시 피워준다.

지금 당신의 하루가 유난히 힘들고, 감정의 끝이 어디인지조차 가늠되지 않는 날이라면, 이 책이 하나의 쉼표가 되어줄 것이다. 조용히 당신에게 말을 건넬 것이다.

“당신은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괜찮아. 그리고, 나는 당신이 자랑스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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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로우 오사카·교토·고베·나라 - 2026년 최신판, 완벽 분권 follow 팔로우 여행 가이드북 시리즈
제이민 지음 / 트래블라이크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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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서적을 제공받아 재미있게 읽은 솔직 후기입니다.>


여행을 떠나기 전, 가장 번거롭고 동시에 가장 흥미로운 준비 과정이 있다면 바로 여행 정보를 수집하고 계획을 세우는 일이 아닐까 싶다. 이왕 떠나는 여행, 후회 없이 다녀오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새벽까지 블로그를 헤매고 인스타그램을 뒤지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수고를 단번에 덜어주는 책이 있다. 트레블라이크에서 출간한 제이민 작가의 『팔로우 오사카 교토』다.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이 책은 단순한 여행 정보가 아니라, 정말 여행자를 ‘팔로우’하듯 붙어서 동행해주는 느낌의 책이다. 



처음엔 ‘여행 가이드북이 다 그렇지 뭐’ 하고 별 기대 없이 펼쳤다가, 정작 책장을 덮고 나니, 내가 했던 질문들은 어디로 갔나 싶었다. 무언가를 읽고 나서 궁금한 게 하나도 남지 않는 기분. 이보다 더 촘촘한 정리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꼼꼼하게 안내된 구성이 인상적이다. 여행 일정은 물론이고, 교통편과 철도패스 사용법, 여행지의 계절별 매력 포인트까지. 단순히 정보를 주는 걸 넘어, 여행자의 성향까지 배려하며 안내해준다.


책은 한 권처럼 보이지만 실은 세 권으로 나뉘어져 있고, 그것도 억지로 찢은 듯한 형태가 아니라 굉장히 깔끔하게 분권되어 있다. 손에 들기 부담 없는 두께, 원하는 지역만 골라 들고 다닐 수 있는 실용성까지. 여행지에서 실제로 이 책을 꺼내 들었을 때의 편리함이 확실하게 계산된 구성이다.



첫 번째 권은 ‘오사카 교토 버킷리스트 앤드 플랜북’. 이 책을 읽다 보면 여행지를 고를 때 흔히 드는 질문들—벚꽃이냐 단풍이냐, 전망대냐 테마파크냐 같은 고민들이 자연스럽게 정리된다. 그저 훑어보기만 해도 어느 계절, 어떤 장소가 나에게 맞을지 감이 온다. 시간, 요금, 장소, 준비물, 옷차림, 쇼핑 포인트까지 다 나와 있어서, 다른 매체에서 정보를 뒤질 필요가 없다. 책 한 권 들고 있으면 끝이다. 교통편과 철도패스 사용 정보는 물론이고, 패스를 어느 상황에 쓰는 게 이득인지, 혼합할 수 있는지까지 알려준다. 정보량이 많으면서도 가독성이 좋고, 각 섹션별로 정리도 잘 되어 있어 어디를 펼치든 헤매지 않는다.




두 번째 권에서는 보다 구체적인 지역들—오사카 난바, 도톤보리, 고베, 아리마온센 등이 등장한다. 도톤보리 맛집 리스트는 솔직히 ‘이 정도면 나 대신 밥 먹고 와준 거 아냐?’ 싶을 만큼 세세하다. 어디서 뭘 먹을지 고민하다가 허비할 시간을 줄여주는 고마운 안내다. 고베의 경우, 유명한 베이커리나 스테이크집만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첩첩 산중에 있는 아리마온센까지 자세히 소개한다는 점에서 균형 잡힌 구성이 돋보인다. 


세 번째 권은 내가 가장 정이 가는 파트. 교토, 우지, 나라, 오하라. 교토의 단아한 매력은 여행자마다 다르게 다가오겠지만, 이 책은 교토의 여러 결을 담아낸다. 쇼핑 포인트와 숙소 정보는 물론, 시기별로 추천하는 루트도 있어, 시간 여유가 많지 않아도 알차게 다녀올 수 있도록 짜여 있다. 나라 사슴공원, 우지 녹차까지 동선과 지역 특유의 분위기까지 잘 살려 놓았다. 오하라는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인데, 이 책을 읽고 나니 마치 이미 몇 번쯤 다녀온 듯한 친근함이 생겼다. 다음 여행지로 바로 찜.



나는 더운 날씨에 여행 다니는 걸 썩 좋아하지 않는다. 뜨거운 햇빛 아래 돌아다니는 것보다, 선선한 바람 불어오는 계절에 천천히 걷고 사진 찍는 쪽이 좋다. 그러다 보니, 지금은 더운 한여름이지만 내 마음은 벌써 가을의 교토에 가 있다. 세 번째 권만 들고 슬쩍 떠나고 싶어진다. 교토 골목골목을 걷다 마주치는 감나무 아래서,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차 한 잔을 마시며 이 책의 몇몇 문장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팔로우 오사카 교토"는 단순한 정보의 나열이 아니라, 경험에서 우러난 안목과 여행자에 대한 진심어린 배려가 느껴지는 책이다. 무엇보다 믿음직한 점은, ‘이 정도면 됐겠지’ 하고 던져 놓은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끝까지 책임지는 가이드북. 내 손에 책이 들려 있는 한, 여행은 이미 반쯤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 이제 남은 건 책장을 덮고 비행기를 타는 일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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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스의 개선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권영주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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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서적을 제공받아 재미있게 읽은 솔직 후기입니다.>


셜록 홈스가 교토에 살고 있다.

그것도 빅토리아 시대의 교토, 데라마치 거리 221B번지.

하지만 놀라운 건 주소가 아니다.

이 홈스는 사건을 풀지 않는다.

의뢰도 받지 않고 하숙집에 틀어박혀 슬럼프에 빠져 있다.

이 세계에서 명탐정은 더 이상 명탐정이 아니다.

"이상한데. 하늘에서 내린 재능은 어디로 갔지?"

모리미 도미히코의 『셜록 홈스의 개선』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셜록 홈스를 낯설게 만든다. 왓슨은 시모가모에 진료소를 차려 매일 하숙집을 오가며 홈스를 걱정하고, 윗집에는 모리어티 교수가, 맞은편에는 아이린 애들러가 탐정 사무소를 연다.


적이었던 모리어티는 슬럼프라는 공통의 문제를 가진 동지로 등장하고,

아이린 애들러는 홈스에게 도전장을 내민다.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홈스의 부재’를 감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 세계가 어디서부터 틀어졌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야기 속 왓슨은 단순히 친구를 걱정하는 동료가 아니라,

그동안 홈스의 활약을 글로 기록해왔던 창작자에 가깝다.

그리고 더는 홈스가 움직이지 않자, 왓슨은 ‘런던에 사는 또 다른 홈스’를 상상해낸다.

자신이 잃어버린 이야기를 되찾기 위해 만들어낸, 또 다른 이야기 속 이야기.

이중 구조의 메타 서사는 이 작품을 단순한 패러디나 오마주로 머무르게 하지 않는다.



"셜록 홈스의 개선"은 탐정소설의 틀을 빌렸지만,

실제로 다루는 건 이세계를 이용한 창작과 정체성, 상실과 회복에 관한 문제다.

홈스는 슬럼프에 빠졌고, 왓슨은 그로 인해 글을 쓸 수 없다.

홈스를 일으켜 세우려는 왓슨의 집착은 결국 자신이 그간 얼마나 홈스에게 의존했는지를 보여준다.


“홈스는 그런 책임을 혼자서 도맡아야 하는 상황에 넌더리가 난 겁니다.”

홈스는 언제나 정답을 알아야 했고,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했으며, 세계의 질서를 회복하는 역할을 맡아야 했다.

그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 ‘해결 장치’였고, 그 무게에 지쳐 결국 멈춰버린 것이다.


이 소설이 제47회 일본 셜록 홈즈 대상을 수상했다는 사실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셜록 홈즈라는 캐릭터를 단지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세계를 해체하고 재조립하며 문학적으로 확장한 작품에게만 주어지는 상이기 때문이다.


『셜록 홈스의 개선』은 이 상의 정체성과 절묘하게 맞닿아 있다.

독자로서 이 소설을 읽고 나면, 사건 해결의 짜릿함보다도 묘한 뭉클함이 남는다.

이야기는 결국 돌아온다.

창작자든 탐정이든, 멈췄던 이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는 순간.

그리고 그때, 우리는 알게 된다.

“왓슨이 있기에 홈스가 있다”는 이 말이 단순한 우정의 표현이 아니라,

이야기를 되살리는 존재에 대한 헌사라는 것을.

읽는 나 역시 왓슨이며,

이 세계를 함께 유지해온 증인이다.

그렇기에 『셜록 홈스의 개선』은

단지 셜록 홈스의 귀환이 아니라, 이야기 자체의 귀환을 선언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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