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 홈스의 개선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권영주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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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서적을 제공받아 재미있게 읽은 솔직 후기입니다.>


셜록 홈스가 교토에 살고 있다.

그것도 빅토리아 시대의 교토, 데라마치 거리 221B번지.

하지만 놀라운 건 주소가 아니다.

이 홈스는 사건을 풀지 않는다.

의뢰도 받지 않고 하숙집에 틀어박혀 슬럼프에 빠져 있다.

이 세계에서 명탐정은 더 이상 명탐정이 아니다.

"이상한데. 하늘에서 내린 재능은 어디로 갔지?"

모리미 도미히코의 『셜록 홈스의 개선』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셜록 홈스를 낯설게 만든다. 왓슨은 시모가모에 진료소를 차려 매일 하숙집을 오가며 홈스를 걱정하고, 윗집에는 모리어티 교수가, 맞은편에는 아이린 애들러가 탐정 사무소를 연다.


적이었던 모리어티는 슬럼프라는 공통의 문제를 가진 동지로 등장하고,

아이린 애들러는 홈스에게 도전장을 내민다.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홈스의 부재’를 감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 세계가 어디서부터 틀어졌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야기 속 왓슨은 단순히 친구를 걱정하는 동료가 아니라,

그동안 홈스의 활약을 글로 기록해왔던 창작자에 가깝다.

그리고 더는 홈스가 움직이지 않자, 왓슨은 ‘런던에 사는 또 다른 홈스’를 상상해낸다.

자신이 잃어버린 이야기를 되찾기 위해 만들어낸, 또 다른 이야기 속 이야기.

이중 구조의 메타 서사는 이 작품을 단순한 패러디나 오마주로 머무르게 하지 않는다.



"셜록 홈스의 개선"은 탐정소설의 틀을 빌렸지만,

실제로 다루는 건 이세계를 이용한 창작과 정체성, 상실과 회복에 관한 문제다.

홈스는 슬럼프에 빠졌고, 왓슨은 그로 인해 글을 쓸 수 없다.

홈스를 일으켜 세우려는 왓슨의 집착은 결국 자신이 그간 얼마나 홈스에게 의존했는지를 보여준다.


“홈스는 그런 책임을 혼자서 도맡아야 하는 상황에 넌더리가 난 겁니다.”

홈스는 언제나 정답을 알아야 했고,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했으며, 세계의 질서를 회복하는 역할을 맡아야 했다.

그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 ‘해결 장치’였고, 그 무게에 지쳐 결국 멈춰버린 것이다.


이 소설이 제47회 일본 셜록 홈즈 대상을 수상했다는 사실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셜록 홈즈라는 캐릭터를 단지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세계를 해체하고 재조립하며 문학적으로 확장한 작품에게만 주어지는 상이기 때문이다.


『셜록 홈스의 개선』은 이 상의 정체성과 절묘하게 맞닿아 있다.

독자로서 이 소설을 읽고 나면, 사건 해결의 짜릿함보다도 묘한 뭉클함이 남는다.

이야기는 결국 돌아온다.

창작자든 탐정이든, 멈췄던 이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는 순간.

그리고 그때, 우리는 알게 된다.

“왓슨이 있기에 홈스가 있다”는 이 말이 단순한 우정의 표현이 아니라,

이야기를 되살리는 존재에 대한 헌사라는 것을.

읽는 나 역시 왓슨이며,

이 세계를 함께 유지해온 증인이다.

그렇기에 『셜록 홈스의 개선』은

단지 셜록 홈스의 귀환이 아니라, 이야기 자체의 귀환을 선언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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