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창녀 온우주 단편선 3
정도경 지음 / 온우주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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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능`이라는 말이 붙어있지만, 사실 이 책의 핵심에 들어있는 건 슬픔과 견고함에 가깝다. 계속 마음에 품게 되는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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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김연수 지음 / 자음과모음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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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김연수 지음, 자음과모음 펴냄.



  어머니가 죽었다.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 위해 아버지는 딸의 짐을 정리해 보냈다. 딸의 기대와는 달리 무사히 도착한 25kg짜리 박스 여섯 개에는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입양된 딸의 유년시절이 담겨 있었다. 양부모와 함께한 시시콜콜한 추억과 친모와 포대기에 싸인 아기, 즉 딸 자신이 함께 찍힌 사진까지도. 여태까지 자기 이름이 왜 카밀라인지 궁금해 하던 딸은 비로소 이유를 알게 된다. 사진의 배경에 동백꽃이 흩뿌려져 있으므로. 카멜리아(camellia flower), 동백, 카밀라. 딸은 여섯 개의 박스에 담긴 것들에 대해 글을 썼고, 우연한 기회에 글은 책이 되었다. 그리고 또다시 우연한 기회에 출판사의 제의를 받고, 딸은 어머니를 찾아 모국에 들어온다. 대한민국의 전라남도 진남. 그곳에서 이야기가 시작하고 또 끝난다.



  바다를 건너 고향을 찾은 딸을 맞은 것은 의뭉스럽게 속내를 보이지 않는 진남 사람들이었다. 17살에 딸을 낳은 어머니는 진남여고에 다니고 있었다. 진남여고의 교장은 딸에게 열녀비를 보여주며 진남에는 그런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잘못 알았을 거라고. 서류도 믿을 수 없다고. 그런, 학교 재학 중에 아이를 낳은 사람은 없다고 한다. 학교로부터 아무런 정보도 얻을 수 없게 된 딸은 지역 신문에 인터뷰를 싣는다. 그제야 어머니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스멀스멀 수면 위로 떠오른다. 어머니는 진남여고에 다니고 있었고, 17살에 딸을 낳았으며, 이듬해 자살했다. 딸의 아버지는 어머니의 오빠, 그러니까 큰삼촌이라고도 했다.

 


  어머니는 늘 고독했다. 타인과의 간극이 가장 넓은 이는 어머니 당신이었다. 부당한 대우와 질투, 오해와 이해관계에 따른 희생은 모두 어머니가 감당해야 하는 짐이었다. 어머니의 입지는 점점 좁아져 위태로워졌다. 누구보다도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어머니는 그러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혹은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결과, 발 디딜 자리를 잃어버린 어머니는 낭떠러지 밑으로 떨어지고 만다. 이는 자살이며 또한 타살이기도 하다. 이십여 년이 지난 뒤 어머니의 동창은 말한다. "우리가 걔를 죽인 거잖아."



  어머니가 딸을 낳기 전 낙태를 권하기 위해 어머니를 찾은 다른 동창은 어머니에게서 이런 말을 듣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건너갈 수 있니? 너한테는 날개가 있니? (...) 나한테는 날개가 있어, 바로 이 아이야." 사람과 사람이 통할 수 있는 때는 아주 잠시뿐이다. 보통 다른 사람의 마음 같은 것은 당연히 알 수 없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기 위해서는 날개 같은, 생각하기 쉽지 않은 접근법이 필요하다. 평생 다른 사람의 마음에 닿지 못한 어머니는 그래서 일반적이지 않은 방법을 생각해냈다. 날개. 그것도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 분명한 날개를. 날개의 사명을 띤 딸은 어머니의 메신저다. 따라서 딸과 어머니가 전하고자 하는 바는 같다. 사람과 사람을 잇는 일이다. 평생 단 한 번도 만나 보지 못했더라도 말이다.



  어머니의 흔적을 좇는 딸이 느끼는 고독은 어머니가 느낀 고독과 같다. 차이가 있다면, 딸은 그 고독을 고독이라고 소리 내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어머니가 그토록 원하던 일이었다. 동시에 딸은 어머니를 둘러싼 인물들의 고독을 읽어낸다. 안타깝게도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중 고독하지 않은 자는 없다. 우리 모두 차고 넘치는 값싼 고독에 지쳐있듯이. 어머니의 동창이나 몰락한 가문의 적자가 느끼는 고독은 어머니가 느끼는 고독과 다르지 않다. 인간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또한 관계 속에서 고독하기 때문이다.


 

  이미 죽고 사라진 어머니는 딸을 바라보며 말한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것은 나의 일이었다." 메신저인 딸은 어머니에게는 단 하나의 희망이었을 것이다. 타워크레인에 올라간 어머니의 아버지에게 보내던 모스 부호 HOPE와 마찬가지로. 딸을 바라보는 것은 어머니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인 한편, 끝내 내려놓지 못한 책임이다. 어머니에게는 최후의 전언을 맡은 딸의 끝을 바라봐야 할 의무가 있다.



  마침내 하나로 합쳐진 딸과 어머니, 어머니와 딸은 입을 모아 외친다. 도와달라고. 누군가 그 한 마디를 하기 위해 그토록 먼 길을 힘들게 돌아와야 했다면, 그 누군가를 그렇게 고통스럽게 한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 그럴 필요가 없으며, 그러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언젠가, 내가 그 한 마디를 하기 위해 멀고 길게 돌아갈 필요가 없게 하기 위해서이다.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나와 당신의 고독은 같다. 이 책은 그런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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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어째 이번 달에는 무거운 책이 많은데, 그래서 더 기대되고 그런다.



 


[고기]

마르틴 하르니체크 지음, 정보라 옮김, 행복한책읽기 펴냄.

 

개인적으로 무서운 이야기는 좋아하지 않는데도 이 책은 읽어봐야지 싶은 게, 이 책의 줄거리는 끔찍하지만 어쩐지 세상을 똑바로 보기 위해서는 대면해야만 하는 끔찍함인 것 같기 때문이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통제 도시의 설정은 다음과 같다.


이 도시에서는 모든 범죄에 대한 처벌이 단 하나, 도살뿐이다. 절도나 폭행으로 잡히면 그 자리에서 도살된다. 경찰에게 저항해도 곧바로 도살된다. 두 사람 이상 모여 대화를 나누어도 도살된다. 소란을 피워도 도살된다. 그리고 시장에 고기가 부족한 날이면, 별 이유 없이도 도살된다. 왜냐하면, 이 도시에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식량은 인육, 사람의 고기뿐이기 때문이다. 고기는 도시에서 지급하는 카드를 받아 교환할 수 있다. 카드 없이 시장에 들어섰다 잡히면 그 자리에서 도살되어 일급 판매대에 오른다. 일급실에서 오랫동안 팔리지 않아 상하기 시작하는 고기는 이급실로 넘어가고, 그곳에서 완전히 썩도록 팔리지 않은 고기는 삼급실로 넘어간다. 삼급실의 고기마저도 카드 없이 넘보다 걸리면 도살된다.”


체코는 프라하의 봄으로 유명하지만, 문학적으로도 이름이 높다. [고기]는 깊이 있고 비판적이라는 점에서 인정받는 체코 문학의 전통과, 나치와 소련이라는 체제에 시달렸던 체코 역사의 흐름을 이어받은 것으로 보인다. 사람이 바로 도살되어 먹힌다는 설정은 어지간한 미국 스릴러보다 훨씬 적나라하다. 개인이 지닌 잔인함이 아니라 사회가 지닌 잔인함이라는 점에서, 사서 후회할 책은 아니리라고 기대하고 있다. 그리고 결말은 예상보다 훨씬 무자비하다고 하니, 나는 덱스터나 케빈보다 이 책을 택하겠다.

 



 


[어두운 기억 속으로]

엘리자베스 헤인스 지음, 김지원 옮김, 은행나무 펴냄.

 

   로맨스 스릴러인데, 칙릿이 아니라 현실적이고 충격적인 이야기다. 저자는 경찰 정보분석가로, 남성의 폭력에 희생당한 여성들을 조사하다가 주제를 잡게 되었다고 한다. 그녀들이 어떻게 폭력에 노출되는지, 왜 도움을 청하지 못하는지, 혹은 왜 도망쳐 나오지 않는지, 저자는 정보를 모았고 답을 얻었다. 이 책은 데이트 폭력을 다루면서 연애라는 이름으로 묵인되는 비뚤어진 권력관계와 그 폭력성을 분석한다. 영화 <살인의 추억>의 공포가 내 옆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는 현실성에 기반한다면, 이 책 역시 마찬가지다.


 


 

[디클레어 1]

팀 파워스 지음, 김민혜 옮김, 열린책들 펴냄.

 

저자 팀 파워스가 글을 잘 쓰긴 한다는데, 스팀펑크에 대체역사물이라는데, 하고 고민하다가 수상 내역에 혹해서 그만국제호러협회상과 세계환상문학상을 수상했고, 로커스 네뷸러 아서 클라크 상 최종 후보였다고 한다. 세계환상문학상의 다른 수상작인 [소년시대]를 매우 좋게 읽은 적이 있어서(http://cafe.naver.com/ArticleRead.nhn?clubid=20510740&page=1&inCafeSearch=true&searchBy=1&query=%BC%D2%B3%E2%BD%C3%B4%EB&includeAll=&exclude=&include=&exact=&searchdate=all&media=0&sortBy=date&articleid=3579&referrerAllArticles=true) 신뢰하고 있다. 팀 파워스의 작품 중 국내에 들어온 건 [캐리비안의 해적]인데 영화로 치면 3편 인어 이야기인데 사람들이 제목 보고 떠올리는 게 1, 2편이라 묘하게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한 책이라고.

 

 



[직업의 광채]

앨리스 먼로 외 지음, 리차드 포드 엮음, 이재경 강경이 옮김, 홍시 펴냄.

 

   블루칼라 화이트칼라 노칼라 시리즈 2. 이름대로 블루-화이트-노 칼라를 아우르는 다양한 직업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전편도 작가진이 빵빵하더니 2권도 그렇다. 전편의 제목은 [판타스틱한 세상의 개 같은 나의 일]이었는데, 이번 제목은 어째 보다 희망적일 느낌이다. 2권인 모양이니 이제 세트 구매가 가능하다.

 

 



[초파리 왕국]

이승현 지음, 원고지와만년필 펴냄.

 

이거 한 권 사야겠다. 하나는 작가 이력 때문에. 공장에서 지냈고, 종합격투기 선수였다가, 출판노동자였다가, 장애인 활동 보조인이었다가, 등단 작가가 됐다. 분명 나름의 시각이 있으리라고, 그 시각은 꽤 현실적이면서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점이리라는 느낌이 온다. 그리고 둘째는 <냄비받침>이란 이름 때문에. 내적 자신감 회복 프로젝트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냄비받침은 일종의 잡지라고 할 수 있는, 글과 그림 혹은 사진이 실린 독립출판물이다. 독립출판물 중에는 꽤 인지도가 있고 또 좋아하는데 약력에 이름이 딱 붙어 있으니 사야겠단 삘이 온다. 셋째 이유를 붙이자면 출판사 제공 발췌문이 마음에 들기 때문인데, 이 부분이다.


이충엽은 초파리가 막걸리의 바다에서 허우적대는 모습을 조용히 관찰하면서 초파리에게 영혼이 있을까, 있다면 녀석들이 죽은 후에 만나게 될 세상은 어떤 곳일까, 천국과 지옥이 있을까 하는 남다른 의문을 품게 되었다. 천국은 아마 눈만 돌리면 막걸리와 주스가 흐르고, 덤으로 썩은 과일이 나뒹구는 땅일 것이다. 지옥은 어떤 곳일까? 아마 인간과 별로 다르지 않으리라. 굶기고, 찢고, 쑤시고, 태우겠지.”

표제작 <초파리 왕국>이다.

 


 



[럼 다이어리]

헌터 S. 톰슨 지음, 장호연 옮김, 마티 펴냄.

 

기자는 글을 잘 쓰리라는 생각에 관심이 생겼다. 그리고 푸에르토리코가 배경이라는 점에도. 아마 멕시코 지역이 배경인 소설에서 으레 그렇듯 이 역시 엉망진창인 사람들이 모여 말도 안 되는 폭력과 질서에 맞춰 살고 있는 이야기 아닐까 싶다. 주인공은 기자로 사명감이라고는 없고 미국에선 적응 못 하고 푸에르토리코에서 술 먹고 약 하며 사는 사람이지만, 그 엉망진창인 속에 있다 보니 뭔가 깨닫게 되는 바가 있는 모양이다. 현재 조니 뎁 주연인 영화로 만들어져 한창 광고 중이다. 사실 책은 영화에 편승한 게 아닌가 싶지만, 그리고 영화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원작은 영화와는 다르니 별도로 판단하려 하는 중이다.

 

 



[P세대]

빅토르 펠레빈 지음, 박혜경 옮김, 문학동네 펴냄.

 

   소개글에도 나와있지만, 펠레빈은 현재 러시아에서 가장 유명하고 또 성공한 작가다. 그리고 현재 러시아의 최고 작가 3명 안에 들어가는 사람이고, 그 중에서 유일하게 소설가로서 한창 때이면서 유망한 사람이라고 한다. 포스트소비에트 문학이라는 말이 붙어있는데 이는 소련이라는 공산주의, 집단주의, 관료주의 체제가 무너진 다음 현재 러시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부조리한 상황을 포착하고 있다는 뜻이다. 당연히 풍자적이고, 시의성이 있고, 한국문학이나 영미, 유럽권과는 문제의식이 다르다. 그리고 대대적으로 성공할 만큼 문학성이 있고 재미가 있는 모양. 장르문학도 꽤 썼다. 국내에서 현대 러시아 문학은 별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사람 책은 한번 보고 싶다.

 

 



[은행나무 소년]

정도상 지음, 창비 펴냄.

 

   어쩐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생각난다. 사회구조적 폭력에 억눌리는 개인의 이야기이고 재개발 강제철거의 상황이기 때문인 것 같다. 난쏘공은 당시 누구나 한번쯤 읽어야 하는 책으로 여겨졌고, 지금도 국어 교과서에 실려 누구나 배우고 있다. 하지만 어째서 지금도 같은 이야기가 계속 나오는 걸까. 왜 지금은 사람들이 읽지 않을까. 용산 참사를 다룬 영화 <두 개의 문>은 지금 현재 벌어지는 중요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고 예상보다 훨씬 큰 호응을 얻어내긴 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그 존재조차 모른다. 이 소설 역시 그렇게 될까봐 기억해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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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딩드레스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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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의 웨딩드레스]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다산책방 펴냄.

 

 

0. 유럽권 추리소설

 

노르웨이의 전 법무부 장관이자 추리소설가인 안네 홀트는 이런 말을 했다. “어떤 나라를 알고 싶으면, 그 나라의 범죄소설을 읽으세요.” [그 남자의 웨딩드레스]의 저자 피에르 르메트르는 그저 한 작가일 뿐이지만, [알렉스] [그 남자…]를 연이어 읽다 보니 현대 유럽권 추리소설의 흐름이 보이는 듯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북유럽권 베스트셀러 출신인 헤닝 만켈의 발란더시리즈부터, 네덜란드의 국민 작가 헤르만 코흐의 [디너] 등에서도 마찬가지로 보이는 공통점이었다. 바로 법, 정의, 도덕에 대한 회의다.


 

1. 누가 죽였지?

 

이 책은 소피프란츠의 부분으로 나뉜다. 이야기는 소피가 눈물에 젖고 목이 멘 채 깨어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실성한 이후부터 그녀는 매일 울면서 깨어난다. 소피는 교육받은 사람 특유의 교양 있고 엄숙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지만 물건을 자주 깜박하거나 갑자기 멍한 상태에 빠지는 등 정신상태가 온전치 않다. 그녀에겐 주변인의 죽음과 관련된 과거의 사연이 있고, 현재는 제르베 부부라는 부유한 집안에서 보모를 맡고 있다. 일 때문에 귀가시간이 들쭉날쭉한 부부를 위해 여섯 살 난 남자아이 레오를 돌보는 일이다. 그녀가 누렸을 과거만큼 행복하지는 않지만 상당히 안정된 생활이었다. 추락은 레오가 시체로 발견된 날 아침부터다.

 

그 어린아이는 잠옷으로 온 몸이 묶이고 신발끈으로 목이 졸려 살해당했다. 집에는 그녀 혼자 뿐이다. 아이를 죽인 끈은 소피의 신발끈이다. 그리고 그녀는 자기가 미쳤다는 걸 알고 있다. 아니, 스스로를 믿을 수가 없다.

 

현장에서 정신 없이 도망치는 장면을 보면 소피는 진짜 정신병자로 보인다. 그녀는 스스로에게 속삭인다. “사실은 간단한 이야기야. 네가 애를 보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와서 그애를 죽인 거야. , 레오…… / 하지만 잠깐! 도망쳐 나올 때 발견한 거지만, 아파트 문이 안에서 이중으로 잠겨 있었던 건 어떻게 설명하지? 아냐, 그건 나중에 알아보기로 하자.”

 

이후의 도망생활에도 시체는 그치지 않는다. 법이 명하고 경찰이 붙인 그녀의 이름은 다음과 같다. 소피 뒤게, 최소 3명을 죽인 연쇄살인범. 하지만 정확한 이름은 아니다. 진상은 프란츠의 이야기까지 읽어야 알 수 있다.


 

2. 법을 무시한 복수는 정의로운가?

 

고전적인 추리소설에서는 대개 정의의 편인 탐정이 승리한다. 범죄자는 살인 등의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저지르고, 자수하는 대신 도피를 꾀하는 악인이다. 탐정(혹은 경찰)은 법을 등에 없고 범죄자를 심판한다. 가끔 [오리엔트 특급살인] 같이 정의가 법을 앞서는 예외가 있긴 하지만. 전통적으로 탐정은 법의 수호자이고, 그렇기에 그는 옳다. 탐정이 법의 편에서 벗어나는 때는 그 탐정이 물러나는 순간이다.

 

하지만 만약 가공할 만한 악인이 있는데, 법이 그를 잡아내지 못한다면? 하늘의 그물은 크고 성기지만 절대로 놓치는 법이 없다는 말이 있지만, 법의 그물은 그냥 크고 성길 뿐이다. 법이 악인을 잡아내지 못한다면, 똑똑한 사립 탐정이 나서는 것도 방법이다. 많은 추리소설이 사립 탐정을 내세웠다. 하지만 [그 남자…]에는 경찰도 탐정도 등장하지 않는다. 법을 등에 업지 못한  [그 남자…]의 희생자인 소피는 법에 의지하는 대신 스스로 복수하기를 택한다. 범죄자를 법의 처분에 넘기는 대신 스스로 죽이는 것이다.

 

이는 미국식 액션 영화 히어로들이 보여주는 사적 수호와도 닮은 면이 있다. 법이 미덥지 못할 경우 개인이 총을 집어들고 스스로를 지킨다는 점에서다. 다른 점은, 주인공의 행동이 정의라고 확신할 수 없다는 점이다. 희생자는 언제나 도덕적으로 우위에 서지만, 힘을 행사하는 희생자는 더 이상 도덕적이지 않다. 또 다른 희생자를 낳기 때문이다. 액션 영화는 그런 고민을 제외한 채 재미를 추구한다. 현대 유럽권 추리소설들은 도덕적 딜레마를 남겨놓았다. 저자 피에르 르메트르가 소설에 깊이를 더하는 방법이다.

 


 

3. 정신병

 

국내에 먼저 소개된 작품 [알렉스]에서도 보였지만, 이 작가가 이야기를 이리저리 전환하며 사람 혼을 빼는 솜씨는 정말 뛰어나다. 플롯을 잘 짠다고도 할 수 있겠다. [알렉스]가 너무 뛰어났기 때문에 그에 비하면 초기작 티가 나긴 하지만, 똑같이 정신 없이 읽었다.

 

똑똑하고 능력 있고 행복한 여자 한 사람을 파탄으로 몰아가는 집요함. 유일하게 페이지가 안 넘어가는 부분이었다. 특별히 잔인한 묘사도 없건만, 집요한 악의가 너무 끔찍해서 읽기가 그렇게 힘들었다. 소설로서는 생생해서 좋긴 하지만, 참 가차 없는 사람이다.

 

법에 따르면, 가해자가 심신미약 상태라면 정상참작이 인정된다. 정신과 진단서를 떼오면 크게 처벌받지 않는다는 거다. 이 소설의 범인은 분명 처벌대상 밖에 있는 사람이다. 그는 정신이 멀쩡한 사람보다 더욱 소름 끼치는 피해를 끼치지만 법적으로는 오히려 관대한 처분을 받는다. 그래서 여기의 피해자는 법과 정의의 실현 대신 개인의 이득을 택한다. 법으로, 공개적으로 진실을 규명하는 일은 매우 귀찮고 어렵다. 옳은 선택일까? 이 소설이 은연중에 지적하고 있는 딜레마다.

 

심신미약에 대한 정상참작을 인정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피해자가 사적으로 복수를 해 법의 빈틈을 메우는 게 옳다는 뜻도 아니다. 무엇이 옳은지는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고, 불확실하다. 다만 기존 추리소설의 탐정==정의=옳다는 공식이 무너졌다는 건 확실하다. 앞서 언급한 안네 홀트의 말을 따르면 그만큼 도덕적 딜레마가 전면에 부각된 사회라는 뜻이 될 수도, 유럽권 추리소설(과 그 독자들)이 그만큼 깊이 있게 발전했다는 뜻일 수도 있겠다.

 

추리소설의 트릭으로 활용하기엔 정신병은 부실한 선택지다. ‘중국인의 신기한 기술이나 숨겨진 쌍둥이처럼 손쉽고 허무한 해답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알렉스]에 비해 [그 남자…]의 구조적 완성도가 부족해 보이는 지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고전 추리소설처럼 작가와 독자가 정직한 머리싸움을 벌이는 류의 소설이 아니므로, 그보다는 법-정의-도덕에 따르는 딜레마를 거듭해 제시한다는 점에서 가치 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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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동물원 - 제1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강태식 지음 / 한겨레출판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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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동물원]

태식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돌이켜 보면 부끄러울 정도로 보잘것없는 인생이었다. 괜히 돌이켜봤다는 후회마저 든다. 더 살아봤자 나아질 것도 없는 인생이었다. 차라리 잘된 걸지도 모른다. 이렇게 막을 내리는 것도 나쁘지 않다. / 길었던 인생극장도 어느덧 막바지다. 다음은 그 인생극장의 마지막 회. 오늘 분량이다. 조명이 꺼진다. 필름이 돌아간다.

 

[굿바이 동물원]은 제1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이다. 자기 인생을 두고 돌이켜봐도 부끄러울 정도로 보잘것없고, 더 살아봤자 나아지지도 않으리라고 남의 일처럼 덤덤하게 말하는 이가 바로 이 책의 주인공 김영수 씨다. 그는 몇 달 전 회사에서 정리해고를 당한 후 온갖 부업을 전전한다. 마늘 까기, 인형 눈 붙이기 등 값싸고 고전적인 일거리다. 집은 반지하로 옮겼고 아내는 마트 계산원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잡은 일이 동물원이다. 영수 씨는 동물원이라기에 다른 부업에 비해 훨씬 그럴싸한 직장을 잡았다고 기뻐하지만, 알고 보니 사육사가 아니라 동물원의 동물이 되는 일이다. 하나같이 인간으로서 바닥을 달리는 일거리지만 그렇다고 할 수 있는 일도 달리 없다. 밖에서 인간답게 살기란 너무 힘들다. 차라리 동물이 되는 게 더 사람답다고 느껴질 정도로.

 

원래 사람을 동물이라고, 사람 사는 데를 동물원이라고 부르는 건 모욕적인 표현이다. 동물이란 사람에 비해 제 구실도 못하고 생각도 없고 당장의 필요에 충실한 존재다. 사람은 그 반대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사람이 사람 취급을 받을 때 이야기다. 김영수 씨도 참 먹고 살자고 별 짓을 다 하지만, 다른 동물들의 삶 역시 사람도 아니다.


예를 들면 김영수 씨의 동물 동료 하나는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고시생이다. 대학도 이미 졸업했다. 고시원에 혼자 살면서 144:1을 뚫을 생각에 시달리고 있다. 한창 나이인데도 맨날 무릎 나온 추리닝이나 입고 다닌다. 이 상태에서 나오는 말이 딱 그거다. 이게 사는 건가.

 

반면 동물 팔자는 상팔자다. 동물이라서 일하다 다쳐도 산재보험이 안 되긴 하지만, 대신 사회생활 따위 안 해도 된다. 집값도 밥값도 전기세도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 자기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관람객)이 있고, 충실히 일하면 그에 따라 보상이 나온다. 동료들도 훨씬 인간미가 있다. 사람이기를 포기하기만 하면 따르는 혜택이다.

 

따라서 김영수 씨를 비롯한 동물들이 처한 상황은, 그 자체로 희극적일 뿐만 아니라 사람이 사랍답게 살지 못하는 세상에 대한 절묘한 비유가 된다. 한 동물 선배는 술잔을 기울이며 이런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동물원에 있으면 사람답게 살 수 있어. 사람이 아니니까 사람 구실 같은 건 안 해도 돼. 솔직히 이 나라에서 사람 구실 하면서 사람답게 사는 인간이 몇이나 되겠냐고. 난 거의 없다고 봐. 하지만 동물원은 달라. 사람 구실은 못하지만 사랍답게 살 수 있는 곳이 동물원이야. 웃기지? 내가 그랬잖아. 사는 게 코미디라고.

 

작품의 분위기는 꽤나 발랄하다. 인형 눈 붙이다가 본드에 취해서 슈퍼맨이랑 싸우는 것도 웃기고, 동물(로 취직한 사람들)이 말하는 걸 듣고 놀라 뒤집어지는 것도 웃긴다. 김영수 씨와 같은 팍팍한 처지만 아니라면야 피식피식 웃으면서 읽을 수 있다. 분명 칙칙한 이야기를 하는데도 분위기가 가라앉지 않고 휙휙 읽힌다는 게 이 책의 장점이다. 나 역시 찔끔 피식 웃으며 읽었지만, 한편으로는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사람 구실 못하는 잉여들이 줄곧 유쾌한 이유에 대한 구절이다.

 

이렇게 경쟁에서 탈락한 사람들은 스스로를 잉여로 칭한다. 오늘날 자신을 잉여로 분류하는 사람은 많다. 번듯한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도 스스로를 잉여라고 부른다. 이것은 포기, 항복, 깊은 절망감의 표현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싸우기도 전에 이미 패배해 있음을 깨달았다. 그들은 그 누구도 시키지 않고, 그 누구도 원하지 않는 이상한 일들을 행하기 시작한다. () 잉여들은 이상할 정도로 유쾌한데, 이 유쾌함은 사실 절망의 반작용이다. (53p)

 

앞날이 막막한 20, 김영수 씨처럼 중간에 미끄러진 30대에는 유독 사람 아닌 잉여가 많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그는 스스로 보잘것없는 인생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하지만 자기 자신의 삶을 두고 쓸모 없다는 생각에 젖는 이유는, 바깥에 이미 쓸모 있는 인생의 자격 기준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회에는 이미 이상적인 삶, 성공한 삶이라는 모범 답안이 정해져 있다. 4년제 대학 졸업, 취업, 결혼, 아파트 마련, 사회적 지위 등, 허들을 넘으며 자기를 증명하지 못하면 그것은 쓸모 없는 삶이다. 마늘을 까거나 인형 눈을 붙이면서 사람다운 자존감을 유지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냥 웃을 수밖에.

 

웃음도 그냥 웃음이 아니라 뒤에 쓴 맛이 남는 종류의 웃음이다. 울 수 없어서 대신 웃는 것이기 때문이다. 김영수 씨가 정리해고 당하던 날, 다시 말하면 동물로 굴러 떨어지기 시작한 날, 그는 울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데 빈 칸이 없었다. () 그런 생각으로 발길을 돌리려는데 어디선가 아주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물체가 눌리면서 내는 소리 같았다. 과육이 뭉개지고 과즙이 흘러나오는, 딱 그런 느낌의 소리였다. 소리는 작고 여리고 은밀하고 숨겨지길 원하고 있었다. 두 칸 다 그랬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울고 싶은 사람들이 사용 중이었다. 그래서 나는 울 수 없었다.

 

다른 사람 앞에서는 울지 못하고, 울 수 없어서 소주를 마시며 웃는 사람들. 한두 사람 힘든 게 아니니 마땅히 울 자리도 없다. 남 이야기가 아니다. 입맛이 꽤 쓰다.

 

한겨레문학상 16회 수상작이었던 장강명의 [표백]도 젊은 사람들의 무기력한 체념이 드러나 있는 작품으로 안다. 김영하의 [퀴즈쇼]도 답 없고 돈 없는 늦깎이 청춘의 이야기였다. 이런 모습이 딱 지금 사회의 사람들이 겪는 삶의 형태이기 때문에 계속 소설에 나타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다만, [굿바이 동물원]의 끝은 희망차다. 아쉽게도 문제의 답이 되는 희망은 아니고 그래서 무책임한 회피라는 느낌도 들지만, 하나의 소소한 소설로는 뭐 나쁘지 않다. 그리고 분명 희망적인 결말에서 위안을 받는 사람이 있을 텐데, 그런 사람은 보다 만족스럽게 읽을 수 있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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